완벽주의자


또 누군가에게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들었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회의에서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통찰력으로 파악하는 분을 만났다. 그날 회의에 어느 분이 못 나와서 사전에 합의된 준비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서 몇몇 분들이 평소 그 분이 좀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날 못 나온 사람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는데, 다들 그 말에 동의하고 수긍했다.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으로 소소한 일들을 잘 해내지만, 좀 큰 일이 주어지면 소화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다를 수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계신 다른 선배 한 분을 향해서도 딱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표현에 대해서도 다들 딱 맞는 설명이라고 동의했다. 그 분의 표현이 짧으면서도 딱 적절하다고 느껴 다들 놀라워했다. 경험이 많은 것에 대해 타로 카드나 아로마 카드 등으로 상담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그 분은 나중에 나에게도 한 말씀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 완벽주의자 라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늘 들어왔던 말이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가끔은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득보다는 실이 될 때가 더 많은 성향이다. 평소 생활은 썩 그렇지 못한데, 일을 할 때면 늘 저 완벽주의자 기질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자연히 저 기질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도 좋은 뜻과 그렇지 못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투로 깨닫는다.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이 원한다고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못 고치고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좋지 않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는 일이 내 기준으로 완벽하게 될 때까지 계속 손을 댄 다거나(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적당히 괜찮다고 여겨도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경우), 아니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때도 있다. 대개 짧은 시간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다. 몇 해전 친한 친구와 같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회의를 진행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보좌관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등 한 20여명이 참여한 회의였는데,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자꾸 논점을 흐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내가 바로 잡아주고, 발언들 중간중간에 핵심을 정리해주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회의를 마칠 때 참여한 분들의 발언을 전부 정리하고 요약해서 공유했었다. 회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음에도 각 발언자들의 순서와 발언의 요지를 머리 속에 잘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간이 회의록을 폰으로 만들어서 공유까지 했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할 때 그 정도로 집중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다고 했다.


지겹게 듣고 있는 저 완벽주의자 소릴 또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버릴 수 없는 기질이라면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숫자 착오 /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어려움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파주행 좌석 버스를 탔다. 언젠가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이용해 경기도를 오가는 좌석버스들은 입석을 금지하고 좌석이 꽉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것 때문에 추위에 1시간 넘게 서너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입석으로라도 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벌금을 맞는다며 매몰차게 출발해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여유있게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퇴근시간 보다 조금 일찍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겨울에 버스 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게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기 전에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류장 보다 몇 정류장 앞으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좌석 버스는 정류장 간격도 길고 퇴근 시간에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며칠 전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년 겨울 몇 차례 1시간씩 추위에 떨며 버스들 여러 대를 그냥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조마조마했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 정차 위치를 예측해 움직였다. 남은 좌석 수를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몇 좌석이 안 남았을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앞쪽에서 타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앞에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의 없이 그 사람들을 미쳐내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정말로 다행히 나까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나서 기사님께서 다음 사람을 제지했다. 딱 내 차례에서 좌석이 다 찬 것이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앉을 자리르 찾았는데, 어라!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은 버스를 출발시켰고, 내가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전체 좌석을 훑으며 빈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내게 얼른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가 없어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너번을 둘러봐도 정말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께서 숫자를 착각해 나 한 사람을 더 태운 것이다. 나는 30분 넘게 자동차 전용 도로를 서서 가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 바로 뒷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거부 당했다면 이번에도 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배차 간격이 긴 이 좌석버스들은 자주 오지도 않아서 한 대를 보내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린 버스도 좌석이 없다고 또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것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오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딱 한명의 승객이 내렸다. 그 분은 내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내렸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님도 내가 앉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출발했다.


올 겨울에 몇 번이나 더 그 좌석 버스를 타고 파주를 가야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게 참 경기도민은 어떻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라는 말인지. 차라리 입석 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안전 문제 때문에 내린 그 조치를 쉽게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안에만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기도의 버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 다행히 전철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거나 특정 좌석 버스 노선 밖에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노선에 탑승객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보러 파주에 갈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낮이나 밤에 버스를 타면 거의 대체로 대여섯 명도 안 되는 승객이 탄 것을 본다. 어떤 경우엔 나 혼자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넘게 달리기도 한다.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를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눌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뀔까? 뭐든 대안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공부모임


지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경영을 책임지거나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과 복지 영역이 만나 이 지역에 꼭 필요한데, 아직 잘 구현되지 못한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월 첫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모임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다들 정말 바쁜 분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2월에는 [래디컬 헬프]를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책은 일찍 공지가 되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구매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야 구매했다. 이번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대한 빠르게 1번 읽고, 모임 직전에 중요한 내용들만 다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첫 모임에선 [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모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선 참가자들 모두 지역에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들이라 그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한 분 한 분 말씀하실 때마다 배울 점들이 보였다. 책의 내용을 두고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이 일본의 굉장한 사례를 어떻게 우리 동네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과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향이 각자 달랐는데,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같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약간 틀에 박힌 활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과 위기감을 갖고 있었디 때문에 이런 공부모임이 무척 반가웠다. 그날 마지막 소감으로 나는 이 자리가 나에게 힐링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었다.
















긴 시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보니 꾸준히 나가던 독서모임들도 다 그만두었고, 등산모임도 못 나간지 오래되었다. 늘 나오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는 늘 힘들다. 피곤하다. 죽을 것 같다고 답하며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젠 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찾아볼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내가 더 즐겁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내 관심에 맞는 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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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날에는 완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그보단 계속 수정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게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하더라구요..ㅎㅎ

저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비교적 서울 직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라 출퇴근엔 그리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되는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공부모임은 이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임에 이제는 회의감이 드는지라...이제는 뭐든 혼자하고 혼자 잘 할 수 있는 배움의 루트를 찾고 있죠. 찾아보니 참 많더군요. 모임은 모임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 이제는 피하게 되요~^^

감은빛 2023-12-09 03:4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아요.

경기도는 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전철로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더라구요.
경기도의 일부 지역 버스는 정말 답이 안 나올 정도였어요.

저도 대체로는 야무님처럼 공부 모임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한 모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 구성원들이 죄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것들이 많고,
그 분들의 경험담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대체 왜 이래?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낡은 빌라로 이사 온 지 5년 6개월 가량 지났다. 이 집에 살면서 위 아래층에서 물이 새는 문제를 여러 번 겪었다. 아래 층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 받은 것이 총 3번, 위 층에서 우리 집으로 물이 샌 적이 한 번 있었다. 위 층에서 물이 샜던 경우에는 위층에서 누수공사를 해서 해결한 후에 물이 샌 자리 도배를 새로 해줬었다. 아래층에 물이 샜던 3번 중에 첫 번째는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가벼운 문제였던 것 같다. 두번째 물이 샜을 때, 좀 심하게 새서 화장실 바닥을 다 깨부수고 새로 바닥을 깔았었다. 그리고 한 2년 가량 지난 최근에 다시 아래층에서 또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아! 진짜 이 놈의 낡아빠진 집. 정말! 안그래도 피곤한 인생인데, 나한테 대체 왜 이래? 그새 집주인이 바뀌어서 새 집주인에게 2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물이 샜었고, 그때 공사를 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2년 전에 공사했던 업체 사장님이 이번에도 오셨다. 나도 기억을 못 했고, 그 분도 처음엔 기억을 못 하다가, 우리집 화장실을 보고서야 "어! 이거 내가 했던 건데." 하고 말하시더라. 제대로 된 세면대도 없는 우리집 화장실의 열악한 환경이 그 사장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가보다.


화장실에서 물을 쓸 때마다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했고, 사장님과 업체 직원 한 분이 우리 집과 아랫집을 여러 차례 오가더니 하수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시멘트를 부수는 드릴과 망치로 바닥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그 분들을 맞아 공사를 시작하는 걸 보고 출근했다. 씻지 못한 상태가 너무 마음에 걸려서 출근길에 근처 후배 집에 들러 씻었다. 나중에 연락 받았는데, 결국 두 군데 누수지점을 찾아 공사를 마쳤다고 들었다. 깨부순 바닥에 다시 시멘트를 발라 놓았으니 내일까지 장판을 덮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고, 화장실에서도 물을 쓰지 말라고 했다. 오늘과 내일은 씻지도 못하고, 집도 엉망진창일 거라서 아침에 잠시 들러 씼었던 후배 집에 하루 재워달라고 요청해놓았다.


수능 전날


내일은 수학능력시험 치는 날이다. 큰 아이가 내일 수능을 본다. 앞서 한 번 글에 적었듯이 아이는 최근에 몇 군데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고 면접과 실기시험 등을 보았었다. 아직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도 있고, 결과 발표를 했는데, 바로 합격하지 못하고 예비 합격자 순번을 받은 곳도 있다. 내일 수능 결과에 따라 정시에도 응시를 하겠지.


내가 대학 갈 때와는 제도 자쳬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지금의 이 입시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무 쓸데없이 복잡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엄청나게 비싼 대학 등록금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합격도 못 했는데, 벌써 등록금을 걱정하는 것은 오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회의를 하는 날이다. 회의 자료 출력을 걸어놓고 지금 이 글을 빠르게 두드린다. 에휴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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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11-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편하셨겠어요. 그래도 누수 지점 찾아 해결이 됐으니 다행입니다. 아드님이 수능을 보는군요! 잘 보기를 기원합니다.

감은빛 2023-11-24 20: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누수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고 또 반복되어서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다행히 오래가지 않고 해결이 되긴 했는데,
워낙 낡은 집이라 또 문제가 생길까 두렵네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에요.
조심스레 잘 봤냐고 물었더니, 어려웠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11-1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쪽이든 물이 새면 불편하고 공사를 해야 하니 정말 번거롭죠.
그나마 누수지점을 잘 찾아 다행입니다.
아드님, 내일 수능 시험 잘 봐서 꼭 대학 합격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은 제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다르게 국가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최저임금이 괜찮아 알바를 조금 하면 충분히 용돈 벌이도 가능하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은빛 2023-11-24 20:0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맞아요.
물이 샌다는 얘길 들은 날부터 해결될 때까지
빨래도 못 돌리고, 씻을 때에도 제대로 못 씻고,
최대한 빨리 가볍게 씻곤 했어요.
어떤 날엔 가까이 사는 후배 집에 가서 씻기도 했구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 수능을 봤는데,
어려웠다고 하네요.
평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어려웠겠죠. ㅎㅎ

아마 당장은 합격하더라도 장학금을 받을 성적은 못 될 것 같고요.
알바를 할 생각은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봐야 알바로 학비까지 충당하기는 쉽지 않을거예요.
본인 용돈 정도 벌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희선 2023-11-1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새는 건 정말 안 좋아요 그런 일 여러 번 있고 오랫동안 있기도 했군요 물이 새는 곳을 찾고 공사해서 다행입니다 여러 날 걸리지 않고 하루 만에 한 것도 다행이네요 감은빛 님을 재워주는 후배 분이 있는 것도...

따님 대학에 붙겠지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3-11-24 20:03   좋아요 0 | URL
희선님, 안녕하세요.
물이 샌다고 듣고 공사업체를 부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말씀처럼 다행히 업체가 하루만에 해결해줘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직은 합격한 곳이 없지만,
결과 발표가 나지 않은 곳들이 있으니 희망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3-11-2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수는 복층 건물의 숙명이군요. 타인과 결부된 문제라 처리도 머리 아프고요.

대입시의 간결함만으로 따지면 선지원 후시험제의 학력고사가 제일 화끈했던 것 같아요.

감은빛 2023-11-24 20:0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세요.
정말 낡은 빌라에서 누수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 같은 세입자의 고충이 있고, 또 집 주인의 고충이 있겠지요.
일단 물이 새면 모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고
누수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아 정말 머리가 아픈 문제인 것 같아요.

학력고사 세대이시군요. ㅎㅎ
수시라는 제도가 생겨서, 수시와 정시로 복잡하기만 한
요즘 입시제도는 참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자전거 VS 달리기


9월 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제대로 타는 것을 성공했다. 그 당시 글에도 적었지만, 그 전에 시도했던 건 20년 전이었고, 그때도 골목에서 조금 타는 것은 성공했으나, 차도를 만나자마자 도저히 더 탈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자전거를 평생 못 탈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할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 덕분에 다시 해봤고, 첫 시도에서 바로 자전거를 탔다. 당일 사람 없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우리 동네 천변 자전거 도로를 같이 달려보자는 후배들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골목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괜히 혼자 긴장해서 어버버 하다가 넘어져서 손가락과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달 이상 자전거를 안 탔다. 최근에 어쨌든 이번에는 꼭 제대로 자전거를 익히고 싶어서 다시 짧게 연습했다. 두 번. 그래서 지금까지 세 번 자전거 연습을 한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곳을 그냥 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시야에 사람이나 차량이 보이는 순간 긴장해서 자꾸만 균형을 잃는다.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도 한데, 다음 순간에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자전거를 타면 긴장해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조금만 타도 엄청 힘들고 피곤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이렇게 힘들구나. 게다가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는 무거워서 초심자들이 타기에 적절치 않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그렇구나. 뭐 가벼워도 나는 여전히 잘 타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어 준 두 후배는 늘 내게 칭찬만 한다. 잘 탄다고. 처음 타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하는 거라고. 두번째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라고. 며칠 전 세번째 탈 때에는 그 두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가 자전거 연습을 하는 그 공간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았다. 도중에 계속 사람들을 마주치고 심지어 차량도 마주쳤는데,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왔다. 물론 중간에 위태로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주 낮은 플라스틱 과속방지턱이 한 대여섯 개 정도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긴장하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조심 넘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좀 타고 나서는 달리기를 했다. 자전거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면, 달리기는 제법 자신 있는 종목이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단거리 경주를 해본다면 한 2~30미터 정도까지는 내가 자전거 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전거는 속도를 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바로 전력질주가 가능하니까. 한 50미터 이상 넘어가면 자전거가 앞서가기 시작해서 100미터 이상 지나면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달리기를 쉬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달리기를 조금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월엔 달리기를 별로 못 했다. 그걸 반성하는 의미로 10월 말부터 그러니까 이번 주부터 다시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1킬로미터 최고 속도를 찍기도 했다. 엊그제 달리기를 마치고 앱에서 기록을 확인해보니 올해 거의 95킬로미터를 달렸더라. 4월과 5월에 좀 많이 달렸고, 6월부터 7월까지는 확 줄었고, 8월엔 거의 달리지 않았었다. 9월에 다시 조금 달리기 시작했고, 10월엔 다시 확 줄었다. 암튼 욕심 내지 않고 하루에 1~2 킬로미터 정도로, 1주일에 5킬로미터 정도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도중에 분명 못 달리는 기간이 생길테니, 연말까지 120 킬로미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저번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선배와 최근에 달리기 이야기를 좀 했었다. 그 양반은 매주 금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고, 나는 매주 목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 분은 거의 준 프로에 가까워서 본인의 달리기 실력은 뭐 말이 필요 없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챙기는 데에는 조금 신경을 덜 쓰는 듯하다. 나는 평소 달리기를 할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사람들 보다는 잘 달리지만, 그래도 그냥 아마추어라 내 실력은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다만 내가 어렵게 힘들게 폐활량을 키우고, 주법을 익히며,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배웠던 과정을 생생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 경험이 별로 없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많이 알려주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편이다.


그 형이랑 제대로 달리기를 딱 두 번 했는데, 확실히 장거리 달리기를 주로 하는 사람을 내가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더라. 나는 단거리, 무호흡, 전력질주 중심으로 훈련하는 사람이라, 장거리 달리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장거리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1킬로미터나 2킬로미터 단위로 끊어서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편이다. 목요일에는 하루에 5킬로미터까지 달리지만, 나머지 평일에는 보통 1킬로에서 멈추고, 좀 컨디션이 좋다 싶으면 2킬로까지 가곤 한다. 그런데 저 형은 제일 짧게 달리는 것이 6킬로 이상이다. 도중에 전혀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런 훈련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기는 했다. 진짜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노랗게 변했다가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부로 저 사람이랑 같이 달릴 일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아주 가끔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짧게 달리기를 자주 하고, 매주 목요일엔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좀 과한 육체노동을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다. 처음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셔츠가 완전히 땀에 젖어버렸다.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일하기가 그래서 티셔츠를 벗었다. 어제 아침에 속에 받쳐 입을 옷이 없어서 여름 휴가 때 해변에서나 입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를 안에 입고 나왔던 것이 기억나서였다. 위에 입었던 티셔츠가 다 젖었으니 당연히 민소매 셔츠도 다 젖어 있었고, 몸에 완전히 붙는 옷이라 좀 민망하긴 했다. 게다가 새빨간 색이라서 더욱. 다행히 작업하던 곳에 지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긴 햇다. 하지만 처음에만 잠시 그랬을 뿐, 나중엔 일하느라 그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저녁까지 그렇게 육체 노동을 한 후에 달리기 모임을 위해 잠시 쉬면서도 땀에 젖은 긴팔 셔츠를 입지 않고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빠르게 땀이 식길래, 조금 고민을 했다. 달리기를 하면 또 땀에 젖을텐데, 이 차림으로 달릴까 아님 지금 조금 몸이 식기 시작하니 젖은 옷이라도 그냥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하나.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오시기로 한 참여자가 더 늦는다고 연락이 왔고, 슬슬 맨 몸인 팔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옷을 다시 입었고, 참여자가 온 후에 그 상태로 그냥 달리기를 했다. 


믹스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커피 맛도 잘 모르고,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일을 하기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려고 가끔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 그런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믹스커피는 너무 달다. 그렇다고 커피 맛도 모르는데, 밖에 나가서 비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물을 많이 타서 약간 밍밍한 믹스 커피를 종종 마셨다. 최근에 매니저님께서 사무실에 전혀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의 두유를 좀 많이 사 두신 것을 봤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우유를 못 마시니 두유를 한 번 타서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면서 두유를 엄청 많이 섞어서 마시니 단 맛이 거의 안 느껴지고 담백한 맛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나는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날이 많아서, 저녁 한 끼만 먹는 1일 1식을 하는 편이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어도 별로 지장이 없는데, 가끔 머리를 많이 쓴 날이나, 가끔 육체 노동을 한 날이면 오후에 좀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 이렇게 믹스 커피와 함께 두유를 섞어 마시니 점심 대용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이거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다가 집중이 필요할 때 커피와 함께 두유를 타서 마셨다. 아직 매니저님께서 사두신 두유가 좀 있으니 한동안은 이렇게 계속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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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거리를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 다 프로시네요.
자전거를 세 번쯤의 연습으로 타신다면 훌륭합니다. 옆에서 동기부여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요. 커피 좋아하지 않는 점은 참 좋은 점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고 싶은데 그건 할 수 없겠더라고요. 자기의 기록에 도전하고 새로운 걸 배우며 사는 게 좋아 보입니다. 파이팅!!!

감은빛 2023-11-24 20:0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답이 좀 늦었네요.
보통 한 번 달리면 1~2킬로미터 달립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기준으로는 적은 거리죠.

자전거는 첫 시도에서 어떻게 타긴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타지는 못 했죠.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23-11-04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평소처럼 삼시세끼를 먹지 않아요. 주말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날인데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면 어느새 밥 먹는 시간을 놓쳐버려요. 밥 대신에 커피를 마실 때가 많아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혀가 심심하면 달콤한 맛이 나는 라떼를 마셔요. ^^

2023-11-11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3-11-24 20:12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반가워요.
밥 시간이라고 밥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저는 좀 신기하더라구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입맛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요.
그런데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길들어진 후로는
낮엔 배고픔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요.

저는 커피도 몸에 안 받아서 잘 마시지 않아요.
단 맛을 싫어해서 라떼는 거의 먹어 본 적이 없구요.
간혹 먹을 일이 생기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주말에 뭔가 집중하면 다른 일은 잊게 마련이죠.
시루스님의 멋진 글들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향하는 삶을 사시는 감은빛님, 달리는 사람 감은빛님, 1일 1식 감은빛님.

근데 저는 그걸 지키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ㅎ

감은빛 2023-11-24 20:15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안녕하세요.
저도 저녁만 먹기 시작하기 전에는 낮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일단 한 번 시도해보시면 어때요?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탄수화물이 적게 들어가면 그만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구요.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요.
저도 얄라알라님께 부러워하는 점이 있고,
저만의 어려움도 많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선물


오늘은 큰 아이의 생일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이 눈에 선한데, 아이는 벌써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제 어른이 다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진통 주기가 짧아져서 병원에 문의한 후에 애들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오늘 아이가 태어나면 시월의 마지막 날이 생일이 되겠네." 라고 이야기하며 가수 이용의 유명한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나는 정말 숫자를 못 외우는 편이라, 가장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 생신도 자주 잊는다. 정말 외우기 쉬운 숫자로 된 내 생일도 가끔은 잊는다. 그런데 시월의 마지막 날인 큰 아이의 생일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쩌면 이런 아빠를 둔 큰 아이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아이는 5월 2일에 태어났는데, 5월 1일인 노동절이 생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도 손잡고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어제 태어났으면 노동절이 생일이었을텐데. 그럼 내가 행사 때문에 생일을 못챙기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잘 됐다." 이런 말들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작은 아이의 생일도 한번도 잊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내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자, 태어나줘서 고마운 선물 같은 존재다. 어제 밤 자정을 막 지나 아이에게 축하의 문자를 보내며 지금껏 아이와 지낸 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 속에서 상영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심하게 아픈 적도 없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특히 큰 아이는 첫째라 내게는 더 각별한 존재였다. 물론 둘째도 막내로서 내게 중요한 의미이지만, 맏이인 첫째는 철이 일찍 들어서 아빠를 잘 챙기는 편이고, 가끔 친구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실기 수업을 하는 날이라 못 만나고, 내일 저녁에 만나 생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빈 시간이 없이 일정이 꽉 찼고, 오후 워크숍은 약 4시간 동안 혼자 진행해야 해서 엄청 힘든 하루가 될 예정이다. 내일이 휙 지나가고 얼른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떠남


어제는 모친상을 당한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올해 초에 어떤 수술을 받은 후에 갑자기 여기저기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잠시 퇴원해 계셨고, 곧 다시 병원에 가실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새벽에 돌아가셔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 했다고 한다. 애써 웃음 짓는 그의 어깨를 쓸어주며,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흰머리 가득한 남자들이 껴안는 모습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당황할 것 같아서 참았다.


나를 비롯해서 내 주위에 참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특이한 사람이다. 나도 무엇이든 의심하고 보는 편이고, 무엇이든 분석부터 하고 보는 편인데, 이 사람은 나보다 한 백배 정도 더 한 사람이다. 본인 주장이 너무 강한 편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 안 듣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적을 많이 만드는 편인데,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인다. 나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주려 노력하고,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는 편인데, 이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좀 이상하고 고약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가장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옳은 주장을 펼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성격 탓에 남들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는 일들을 시원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글을 참 잘 쓴다. 내가 이 사람에게서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이다. 글을 쓰는데 좀 오래걸리는 것이 흠이지만, 다 쓴 글을 검토해달라고 가장 먼저 내게 보내는데, 읽다보면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는 글을 쓰면 대게 제일 먼저 내게 봐달라고 보낸다. 이건 오래 전 그가 시민신문 기자였고, 내가 편집위원이었을 때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신문 마감하는 날이면 그가 급하게 마무리한 기사들을 받아서 교정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었다. 편집위원을 그만 둔 후에도 가끔 그는 글을 봐달라고 연락을 해왔었다. 그건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어제 장례식장에 한동안 앉아 있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멀리 계셔서 자주 뵙지 못하는 부모님이 생각났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생각났다. 장례식장에 앉아 있으니 어쩔수 없이 기억 속의 다른 장례식장 모습들이 겹쳐졌다.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기간 내내 잔심부름을 하며 함께 있다가 장지까지 따라가서 운구를 도왔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장례식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장례식 내내 멍하니 지내다가 화장장에서 화로에 관을 넣고 나서야 갑자기 울컥 감정이 솟구쳤던 기억도 났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 품에 안겨서 통곡을 하셨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본 많은 지인들은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도 대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우리가 못 본 다른 시간에 아주 많이 슬퍼했겠지만.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애들 엄마는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장례식 내내 함께 있었지만, 우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물론 마찬가지로 어디 다른 공간에서 혼자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재수없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는 담담히 장례식장 앉아서 손님들을 맞아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상상했다. 인간은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헤어짐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슬퍼하지마. 아빠는 갈 때가 되어서 가는 거니까. 절대 아빠가 너희를 떠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쩔수 없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대로 잘 받아들이면 좋겠어." 물론 쉽지 않을 일일 것이고 나 역시도 마음과 달리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이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나는 삼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거의 죽을 뻔 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현대 사회는 워낙 많은 일들이 예상하지 못하게 벌어지니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와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오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1999년 10월 30일 벌어진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에 대한 글을 읽었다. 당시 1층 고기집 손님들과 3층 당구장 손님들은 모두 무사히 잘 대피했는데, 유독 2층 호프집 손님들은 갇혀 있다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56명이 죽고 78명이 큰 부상을 당했는데,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당시 2층 호프집은 그 화재 7개월 전에 안전기준 미달로 영업 정지를 당했었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을 계속 해왔다고 했다. 그날은 학교 축제를 마친 고등학생들이 그 호프집을 가득 채웟다고 했다. 비상구도 없는 호프집은 창문들도 모두 석고보드로 막아두어서 유일한 탈출구는 출입문 하나였는데, 불이 나서 대피하려는 학생들을 주인이 못 가게 막았다고 했다. 술값을 내고 가라는 이유로 그랬단다.


예전에 이 뉴스를 흘려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는데, 정말 몰상식한 일이다. 게다가 이 고등학생들은 술집에 갔다가 죽었다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당했을 지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나는 주말부터 계속 작년 이태원 참사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전 국민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이태원 참사. 그런데 99년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56명의 고등학생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니! 


오늘은 할일이 많았는데도 마음이 심란하여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 알라딘에 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내일 워크숍 준비 때문에 계속 머리 속이 복잡하지만, 나는 늘 임기응변에 강한 편이니, 내일의 나를 믿고 오늘을 그냥 보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공부만 하셨어요?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약 두 달 반 정도 주말마다 일정이 있다. 계속 주말을 온전히 쉬지 못해 피로가 많이 쌓였다. 일정이 계속 있다는 건, 그 준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업무가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가장 바쁜 사람으로 언급되는 편인데, 이번 두어달은 정말 역대 최악으로 정신이 없이 지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 달 더 남았다. 죄다 중요한 일정들이고 잘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늘 피곤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에 동네 축제에 판매 부스와 체험 부스를 운영한 날이었다. 무대가 가까이에 있었고, 무대 스피커 음량이 너무 커서 부스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자꾸 내 목소리가 지워져 계속 목을 많이 써야했다. 그래도 최근 후배에게 두성을 배운 것을 응용해 가급적이면 성대를 쓰지 않고 배 힘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설명을 하다보면 목을 아예 안 쓸수는 없어서 금방 목이 가버렸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몇 주째인지 기억도 못할만큼 계속 주말을 못 쉬었기에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날 우리 체험 부스를 방문했던 친한 언니들이 다들 내 얼굴을 보고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하셨다.


암튼 축제를 마칠 때쯤 짐을 정리하면서 손수레에 여러 박스를 쌓고 고무줄로 고정하고 있었다. 이런 손수레를 별로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고무줄을 어떻게 잘 묶어야 할지 몰라 조금 헤매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시던 매니저님이 내게 아주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사님, 공부만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서 아주 익숙하게 고무줄로 짐들을 고정시켰다. 아, 내가 이런 일에 너무 서툴러서 공부만 했느냐고 물었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실 공구를 사용하거나, 뭔가 도구들을 사용하는 일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 매니저님의 말씀처럼 공부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나도 막노동도 많이 했고, 이런저런 힘쓰는 일들을 많이 해봤는데, 도구 사용에 조금 익숙치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에 차를 구매한 후배가 가까이에 살고 있다. 업무 상 짐을 옮길 일이 많은데, 우리 법인은 차가 없고, 나도 차가 없어서 공유카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날은 근처에 비어있는 공유카가 없어서 후배에게 연락해 차를 잠시 빌렸었다. 저녁에 그 후배가 퇴근하면서 우리 사무실에서 차를 받아갔는데, 차 오른쪽 뒷바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가 떴다고 했다. 나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 후배 집에 놀러 갔다가 생각난 김에 차 바퀴를 살펴보기로 했다. 주차타워에서 차를 꺼내 뒷바퀴를 보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센서에서는 압력이 낮다고 나오니 타이어에 공기를 좀 더 넣어보기로 했다. 트렁크에서 전기에어펌프를 꺼낸 그 후배의 손놀림이 좀 많이 어설퍼 보였다. 차를 운전하고 관리한 경험이 적으니 그건 당연했다. 나는 예전에 차가 있을 때 손 펌프나 발 펌프를 주로 사용했었는데, 이런 전기식 펌프는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한참을 후배가 애쓰는데, 전혀 해결이 안 되는 눈치였다. 그 전기펌프의 소음이 너무 커서 잘 몰랐는데, 공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계속 새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보니 연결 부위를 끝까지 돌려넣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설명을 했는데도 그 친구가 잘 이해를 못 한거 같아서 내가 나서서 해결해줬다. 한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전반적으로 이런 류의 경험이 부족해 뭔가 고치는 등 손으로 하는 작업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차는 그래도 오래 몰았었고, 간단한 점검과 정비는 직접 했었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일은 또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공부만 해서 이런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심지어 나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도 절대 아니고.


그 손수레의 고무줄 고정하는 방법도 매니저님이 보여주셔서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순하고 조용조용한 매니저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는 재밌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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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0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월 마지막 날이 첫째 따님이 태어난 날이었군요 오늘 만나시겠네요 몇 시간 뒤에...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님이 숫자 기억 못하는데 두 따님은 기억하기 좋은 날 태어나서 잊지 않겠습니다 감은빛 님이 쓰신 것처럼 보물처럼 여기니 더 기억하는 거겠지요 사랑은 내리사랑이죠

사람은 다 죽고 그렇게 헤어지기도 하죠 그런 일을 평소에 생각하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덜 슬플지... 많이 슬프지 않도록 평소에 잘 지내면 좋을 듯합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감은빛 님은 따님하고 지낼 시간은 만들기도 하시는군요 앞으로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처음 하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해도 한번 하면 다음엔 잘 하기도 하죠 감은빛 님 십일월 즐겁게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3-11-24 20:18   좋아요 0 | URL
와! 제가 이 댓글에도 답을 안 달았었군요.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딸아이의 생일만큼은
어떤 이유를 달아서라도 외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요. ㅎㅎ

저 며칠 전에도 해외에서 만든 이태원 참사 다큐를 보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계속 우느라 멈췄다가 다시 보다가 또 울고 그랬네요.

늘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11-03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4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년 10월 돌아오는 일정

해마다 이맘 때에는 이곳 알라딘 서재에 이 이야기를 썼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난주 쯤부터 이 북플 ‘지난 오늘‘ 쓴 글에서ㅠ이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정확한 날짜는 달라도 늘 10월 중순에는 애들 엄마가 약 1주일 정도 해외출장을 간다. 그럼 나는 그 1주일을 아이들과 보냈다. 이건 애들 엄마가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해마다 해왔던 일이고, 큰 아이를 낳고 다음 해에도 다녀왔고, 작은 아이를 낳고도 다녀왔었다. 그리고 이혼하고도 매년 다녀왔다. 이혼 후에는 이 기간 동안 내가 온전히 1주일동안 아이들과 지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갔다. 혼자 아이 둘을 챙겨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주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서 애들 데려와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를 많이 찾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다 옛날 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젠 엄마를 찾아 울지 않았고, 보고 싶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아침에도 내가 할 일이 적은 편이다. 그저 나를 닮아 아침 잠이 많은 두 녀석을 차례로 깨워 화장실에 보내고, 가벼운 아침을 먹이고, 시간 맞춰 출발하도록 잔소리를 좀 하면 끝이다. 아이들은 씻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는 일을 스스로 다 잘한다. 저녁에도 내가 회의가 있어 늦으면 아이들끼리 차려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한테 주문해달라고 요구할 줄도 안다.

올해 좀 다른 점이 있긴하다. 큰 아이의 대학 입시 때문에 실기 시험 일정 두 개가 이 기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애들 엄마는 여러 이유로 내가 큰 아이를 데리고 실기 시험장에 다녀와주기를 원했다. 사실 아이를 혼자 보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와 길찾기 등에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시험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배려일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세 곳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한 학교는 본고사 시험을 한 번 보았고, 나머지 두 학교는 면접만 봤는데, 세 번 모두 나 혼자 학교를 찾아갔었다.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는 뜻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그냥 그랬었구나 하는 회상이다. 하긴 내가 대학에 갈 때는 수시입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서, 지금 큰 아이가 수능도 치기 전에 많은 학교에 원서를 넣고 면접과 실기시험을 보러 다니는 일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아이는 시를 쓰고 있다. 여러 백일장과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대상도 몇 번 수상했지만, 그 정도로는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학교 선생님이 말했다고 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대학에는 문창과가 별로 없다. 하긴 나도 그 옛날에 대학 입학 할 때는 문창과의 존재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나서 편입을 해서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알아보니 문창과를 가진 학교가 별로 없었었다. 그래도 서울에는 2년제 예술대학들이 몇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이는 문창과가 아닌 극작과에 실기 시험을 보러 들어갔다. 아이는 지금 열심히 주어진 주제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시험을 마칠 때까지 학교 근처 커피숍에 차를 시켜놓고 기다리며 이 글을 폰으로 두드리고 있다. 극작과는 문창과와는 많이 다를텐데, 아이는 학교에서 2학년 때부터 전공을 나눠서 극작에 대해서도 별로 배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글을 쓴다는 점에서 대학을 못 가는 것 보다는 나을수도 있겠지.

음, 이번에 아이에게 들어보니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는라 원서 접수비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내년에는 아이의 대학 등록금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겠구나. 내 경우엔 일부 장학금을 받았고, 일부는 알바를 해서 벌기도 했고, 나중에는 학자금 대출도 좀 받았었다. 아이는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대학에 합격한다면 등록금을 납부해야 할테니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아이는 토요일에도 경기도 어딘가의 대학에 실기 시험을 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이라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였는데, 토요일엔 차로 움직여야 한다. 아이는 아마 지금 여러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시절에 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원서를 넣었던 세 곳의 대학 중 하나만 부산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지역이었기에, 태어나서 쭉 자라왔던 고향을 떠나는 문제부터 변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이 세 학교 모두 합격했고 가장 좋은 학교였던 부산에 있는 학교를 입학했지만, 만약 다른 지역을 선택했다면 내 인생은 아마 제법 많이 달라졌으리라.

아까 아이를 시험장 건물에 들여보내면서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었는데, 극본을 써본 경험이 없어서 딱히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쉽게 쓰고 편하게 쓰라는 말만 겨우 해줬다. 소설이었다면 뭔가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까? 이미 아이는 학교에서 나보다 더 전문가인 선생님들에게 잘 배우고 있으니 내 조언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2년 전, 아이가 아직 1학년이었을 때에는 내가 이런저런 조언을 가끔 해줬으나, 2학년이 되어 전공을 시로 정한 후로 나는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끔 백일장이나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시를 보내달라고 해서 살펴보고 잘 썼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유일하게 해줄수 있었던 일이었다.

당장 아이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학교에 응시해서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는 것은 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경험은 반드시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어제 밤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너는 아빠 딸이라서 면접도 실기시험도 다 잘 볼거야. 아빠는 면접에서 떨린 적도 별로 없고,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아이는 잘난 척 한다고 뭐라 했지만, 마음 속에 잘할 수 있다는 씨앗 하나를 심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자신감을 잘 품고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나중에 아이가 이 시기를 돌아볼 때, 그때 아빠가 이런 말로 나를 응원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쪼그려 앉기

어제 작은 아이가 자기는 쪼그려 앉는 동작이 안 된다고 발바닥을 붙이고 앉으면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는 아빠 닮아서 그런거래.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쪼그려 앉는 동작을 보여줬다. 이 자세는 스쿼트의 기본 동작으로 이 자세를 못하면 역기를 들 수가 없다. 중학교때부터 역기를 들었던 내가 이 자세를 못할수는 없는 일이다. 큰 아이도 내 옆에서 같은 자세를 편하게 취했다. 작은 아이는 그럼 왜 나만 안 되는 거냐고 약간 투정을 부렸다. 발바닥을 대고 쪼그려 앉았을 때 뒤로 무게중심이 쏠려 넘어가는 건 발목 유연성과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발목 유연성을 길러줄 수 있는 동작 두세가지를 아이에게 알려주고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하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그닥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라면서 좀 나아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좀 신기한 일은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 쇼츠 콘텐츠를 넘겨보다가 운동 영상을 주로 올리는 어느 채널에서 정확하게 이 문제를 다룬 영상을 올렸더뉴걸 봤었다. 그래서 내가 그 기억을 떠올려 작은 아이에게 그 얘기를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끔 우연히 이렇게 딱 들어맞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생각해보면 큰 아이와는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고, 글쓰기와 관련해 공통의 대화 주제도 풍부한 편이고, 내가 아이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는데, 작은 아이와는 접점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나도 어릴 때에는 만화를 그렸다. 다만,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고 시기를 놓치고 난 후에는 관심도 많이 멀어졌다. 나중에 잠깐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재주가 영 별로라는 현실을 확인하고 좌절하게 되었을 뿐이다. 작은 아이에게 평소 미술학원에서 그린 것들을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고 여러번 얘기했는데, 아이는 사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 단순히 잊은 것인지, 아니면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작은 아이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구나. 좀 더 세심한 태도로 아이와 지내야 하겠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해야할 일이 잔뜩 밀려 있는데, 지금 이렇게 커피숍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편치 않다. 당장 다음 주에 토론자로 참여해야 해서 토론문을 써서 보내야 하는데, 내용을 다 구상해놓지 못했다. 이번 주말 일정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고, 11월 중순까지 일정이 빽빽하고 그들 대다수가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다.

에휴, 이걸 성격 탓을 해야할지, 운명이나 팔자 탓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또 힘을 내서 해나갈 수 밖에. 바쁜 탓에 시간이 잘 가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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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1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창과 이야기를 하시니...

얼마 전에 저희 회사 동료분의
자제분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
다고 해서 한참 이야기한 기억
이 났습니다.

결국 문창과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들었네요.

그렇게 우리의 시간들을 흘러
가는 모양입니다.

감은빛 2023-10-19 18:2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 진학하고 한참 후에 문창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문예창작이라는 과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갓 같은 기분이었어요. 국어국문과에서는 어학 수업이 더 많아서 제가 원했던 문학 수업은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레삭매냐님 지인의 자제분은 결국 다른 길을 선택했군요. 우리 큰 아이는 원하는대로 갈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10-19 1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극작과라는 것도 있군요?
요즘 아이들 대학에 과 종류도 정말 많고, 생소한 과들도 정말 많이 생겨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조언 해주기도 참 조심스럽더군요. 너무 생소하고 지식이 없으니까요.ㅜ
전 그냥 듣고만 있는...ㅋㅋ

따님의 좋은 소식 기원드립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 따님이라 극작과에 합격한다면 재미나게 수업을 받으리라 생각되네요.
요즘은 글 쓰는 작가들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기량을 쌓는 좋은 발판이 되겠습니다.^^

감은빛 2023-10-31 18:09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안녕하세요.
정말 요즘은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전공이 생겼더라구요.
극작과라는 과가 있다는 걸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우리 아이는 아마 대학 진학과 관계없이
평생 글 쓰는 삶을 살거라고 생각해요.
결과가 좋아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좋은 일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또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yamoo 2023-10-20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은 정말 좋은 아빠인듯합니다.
아내분이 해마다 10월이면 해외출장을 가는군요! 어는 직종인지 부러운 직종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잘 돌보시는 감은빛 님...리스펙 합니다!!ㅎㅎ 어찌 그리 불평도 안하시는지..ㅎㅎ

감은빛 2023-10-31 18:13   좋아요 0 | URL
야무님, 고맙습니다!
애들 엄마의 해외출장은 부러운 면도 있겠지만,
엄청난 강행군이라 막 부러워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불평을 할 수는 없죠.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또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저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라
제게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ㅎㅎ

희선 2023-10-21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첫째 따님이 고등학교 3학년이군요 어느새 그렇게 됐다니...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가면 다른 것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따님이 공부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따님하고도 이런저런 거 함께 하고 더 알아가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3-10-31 18:4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아이는 정말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게 금방 어른이 되었네요.
태어나자마자 눈도 못 뜬 조그만 아기를 품에 안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요.

아이들이 공부만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히 잘 자라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