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맹렬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걱정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아침엔 또 얼마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왔을까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고.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 지켜보는 것도 아찔한 느낌이다. 오늘도 무사해야 할 텐데 괜찮을까? 남은 재택 근무도 한다던데 괜히 부러워지기도 하고. 전엔 어쩌다 출근 안하면 그것도 부담스러웠는데 그렇지가 않다.

게다가 그제부터 우리집  다롱이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다. 18년 가까이 키운 노견이라 언제든 보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워낙에 잘 먹지 않아 애를 태우니 병을 완전히 떨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속이 상해 어제 밤 기도하다가 왈칵 눈물을 쏟아서일까? 아침부터 머리가 띵한 게 거의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 저녁무렵이 되서야 겨우 기운을 차렸다.

분명 봄이 왔는데 느껴 볼 새도 없이 마음만 심란하다. 봄이 외롭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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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20-02-2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다롱이가 빨리 낫기를 빕니다. 18세 노견이라니, 보는 것만으로 가끔씩 마음아프겠어요. 글구 천안이 요즘 난리났습니다. 화요일에 첫번째 환자가 나오더니 지금 36명.... 저도 집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세상이 무섭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그의 영화를 좋아해 볼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영화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보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그의 영화가 아니었다. 아마도 감독의 이름과 영화 제목이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고 생각해 착각을 불러일으켰나 보다. 그렇게 멋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가 완전 빠져들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토니 타키타니.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그람은 잘 그리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성인이 되어 어느 여인의 가슴을 그리는데 정교하지만 느낌이 없다. 그냥 인형의 가슴을 그리는 것만 같다. 그런 것을 보면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는 악단의 연주자로 그의 곁에 있지 않았던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독은 그의 친구다. 늘 조용하고 표정 없는 얼굴이다. 결국 그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우연찮게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고독이 그의 친구였기 때문에 이런 것은 그의 생애 없을 줄 알았다. 그는 너무 많이 외로웠기 때문에 이젠 아내가 없으면 불안하다.


아내는 너무 사랑스럽다. 하지만 사랑스럽다는 건 사랑하기에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아내에게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그건 옷을 사랑해도 너무 사랑하는 쇼퍼홀릭이라는 것. 화구 외에는 살 것이 없는 토니와 옷이 자신의 빈 영혼을 채워준다고 믿는 아내 에이코와의 결혼은 처음엔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사는 옷과 신발은 집에 그득하다 못해 포화상태다. 결국 그는 가볍게 아내에게 옷 사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하고, 아내는 노력해 보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말에 허물어지고 극단적 선택인지 아니면 우발적 사고인지도 모를 사고로 죽고 만다.


        

다시 홀로 남게 된 토니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흔적을 지워야 하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방법 그대로 자신의 일을 도와줄 비서를 구하는데, 아내와 똑같은 사이즈와 발 크기를 가진 여자를 구한다. 그는 새로 온 비서에게 유니폼 삼아 아내의 옷을 입고 일해 주길 바란다. 그것을 통해 아내를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정말 빠져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미장센이 갑이다.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어떤 공간을 보여주기보단 큰 창을 자주 보여준다. 어린 토니의 집 주방 창문, 성인이 돼서 그가 일하는 사무실 창문, 결혼한 후 신혼집 주방, 침실도 온통 큰 창문이 보인다. 시점은 (거의 대부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구도다. 관객의 관음증을 최대한 만족시키겠다는 전략인 걸까. 그게 또 호퍼의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그림을 연상케도 한다. 입체적인 공간감을 일부러 배제하고 회화적 느낌을 극대화 시켰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는 멀리서 슬로모션으로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등장한다. 그리고 간간히 보여주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숲. 일단 그런 것만 유심히 봐도 감독이 뛰어난 미술적 감각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영화엔 가급적 내레이션을 안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굳이 그걸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레이션은 보통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감정을 설명할 때 또는 낯설게 보기를 유도할 때 사용되겠지만, 이 영화는 연극에서의 방백처럼 등장인물이 직접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쇼핑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아내가 토니의 말 한마디에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또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토니를 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린 어쩌면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할 줄 모르고 그 사람의 옷이라고 하는 빈껍데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죽어야 비로소 부재에서 오는 고독과 공허를 통해 그 사람의 영혼을 깨닫게 되는 인간의 비극성. 무엇보다 토니는 아내와 같은 사이즈의 여인을 구해 옷을 입게 하므로 위로를 넘어 광적으로 변해 가려고 하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런데 비해 졸지에 고급스러운 옷과 신발을 입게 된 토니의 새로운 비서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왜 울었을까? 뭔가 압도된 듯하다. 이 화려하고 멋진 옷을 두고 간 나오코는 어떤 여자였을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것처럼 감독은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를 꼬집으려 했던 건 아닌지. 또 그것은 영화 초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토니의 여자의 가슴을 그린 것과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 마니아라면 영화 제목에서부터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하루키를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개인적으로 하루키 원작의 영화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언젠가 <상실의 시대>을 본 적이 있는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 그런지 꽤 괜찮았다. 그땐 꽤 괜찮다는 표현을 썼지만 이 작품은 가히 좀 놀랍다 싶다. 보통은 원작을 영화화하면 잘해야 본전이란 선입견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하루키의 원작을 200% 끌어올린 작품은 아닐까 한다.


누구는 하루키는 장편에 강한 작가라고 하는데 그것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단편에서 감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란 단편은 정말 도시에서의 가난을 위트 있게 그린 작품으로 그 이미지가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루키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 중에 나오는 이 작품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을까? 소소하게도 한 장의 티셔츠라고 한다. 마우리 섬에서 '토니'라는 서양식 이름에 '타키타니'라는 성이 붙은 기묘한 이름이 쓰인 1달러짜리 티셔츠를 구입한 하루키는 그 셔츠를 입을 때마다 토니 타키타니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에 착안해서 이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한다.  


감독은 또 그 작품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하나하나의 영상적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게다가 전편에 흐르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뭔가 고독하면서도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잘도 표현해 주었다. 이쯤 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든 예술인들의 뮤즈는 아닐까? 이제 마니아뿐만 아니라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필히 하루키를 알아야 하는 하나의 문예 사조를 이룬 것만 같다. 하긴, 그는 언젠가 오리지널리티를 얘기했었다.    


사람들은 인간은 어차피 고독한 존재니 고독을 벗 삼으라고 한다. 고독은 스스로 있는 존재임을 확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고독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향하게 되어 있다. 고독한가? 당신의 고독 끝에 누가 있는지를 직시해 보라. 그렇다면 그가 자신이 사랑해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랬다고 그 영혼은 바스러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아무리 사랑해도 꽉 끌어안으면 쉽게 깨지는 크리스털 술잔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기보다 차라리 고독하기를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쩌면 하루키를 읽으며 자신의 고독을 위로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오랜만에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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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8 18:1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같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 좋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기도 하죠.
그게 인간인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수 양준일을 알고 있긴 하다. 90년대 윤상, 심신, 박정운, 강수지 틈에 끼어 나왔다가 어느 틈엔가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가수. 들보단 서태지와 아이들이 워낙에 막강해서 미처 대중들이 못 알아 보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중성적 매력을 가진 연애인들도 많다지만 90년대만 해도 양준일은 좀 특별했던 것 같다. 묘하게 끌리긴 했지만 대놓고 좋아하기엔 그도 앞서 갔다면 앞서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궁금하기도 했지만 반짝했다 사라진 연예인이 양준일 하나뿐인가? 그도 곧 잊혀졌다. 책까지 나왔는데도 시큰둥이했다. 그런데 웬일. 그가 M본부의 <배철수 잼>에 나온단다.

 

요즘 방송가 트렌드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옛날에 인기 있었던 가수를 다시 소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에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EBS의 <싱어즈>란 프론데 최근 2, 3개월 사이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재밌긴한데 방송 특성상 그냥 잔잔하고 소박하고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비해 <배철수 잼>은 나름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든다. 첫 시간에 정미조와 이장희가 나와 그들의 이야기와 음악과 초대손님으로 2주간 꾸며졌는데 꽤 볼만했다. 거기엔 기타리스트 박주원을 고정 게스트로 했다는 게 주효해 보이기도 한다. 박주원의 기타 실력은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해 보인다. 

 

난 정미조가 70년 대초 그저 입 큰 가수로만 기억했는데 그녀가 얼마나 지적이고 매력적인 가수였는지 다시 보니 알겠더라. 이장희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프로에 양준일이 두 번째 손님으로 나온다니 안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양준일. 생각 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가 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중성적 외모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어 보는 내내 훈훈했다. 나는 그가 데뷔 곡'리베카'를 부를 때 검은 모자를 사용했다고 기억하는데, 모자는 'Dance with me 아가씨'에서 썼다니 헷갈린다. 놀라운 건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가 그가 처음 썼던 건 아니라는 것. 이미 오래 전부터 춤꾼들 사이에선 널리 사용됐고 대회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양준일이 좋아하는 가수는 존트라볼타다. 마이클 잭슨과 존 트라볼타의 춤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데 진짜 매력적이었다. 더 매력적인 건, 리베카를 들고 나왔을 때 프로 안무가의 안무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안무로 무대를 평정한 것. 근성있다. 

 

근데 그 프로를 너무 잘 봤나 보다. 꿈에 양준일인지 양준일 닮은 사람인지 하는 사람이 나와 나를 좋아한다고 해 놓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을 보고 깼다. 이거 원, 양준일을 좋아해, 말아?ㅎㅎㅎㅎㅎ

 

아무튼 <배철수 잼>은 좋은 프로다. 이런 프로 오래 오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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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5 17:38   좋아요 0 | URL
저는 양준일 좋아했습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정말 물건이었죠.
서태지 인기에 가려져서 그렇지.
중요한 건 그가 386세대였다는 거죠. 그런데 외모는 뱀파이어라능.
함 보세요. 왜 양준일, 양준일 하는지 아실 거예요.^^

코로나는...빨리 옛날 얘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ㅠ

얄라알라북사랑 2020-02-2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마이클 잭슨과 존 트라볼타의 춤을 직접 보여주시는 거예요? 프로를 검색해봐야겠어요

stella.K 2020-02-25 17:29   좋아요 1 | URL
아, 뭐 그렇다기 보단 일종의 시범을 보여주는 거죠.
함 보세요. 다음 주에도 방송해요.^^

2020-02-25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6 14:56   좋아요 0 | URL
앗, 보셨군요! 정말 좋죠? 저도 그랬어요.
다음 주도 기대되요.^^

마태우스 2020-02-2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양준일을 찾아본 적은 없습니다. 중성적 매력의 소유자군요. 사진만 보면 정말 그러네요. 오랜 세월이 지나서 뜨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아마도 그도 나름열심히 노력했겠지요, 이때까지? 언제 프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stella.K 2020-02-26 15: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실 거예요. 젊었을 때 참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그때 여자 댄스 가수론 김완선이 있었고,
그룹으론 소방차도 있었는데 왜 양준일을 뜨지 못했는지...
지금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운 건 아마도 방부제를 넘어
뱀파이어 외모 때문일 겁니다. 그가 무려 69년 생이더군요.
50이 넘었다는 말씀. 함 보세요.^^
 
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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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 좋아한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의 무슨 책 보단 그 책을 쓴 작가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쓴 책.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에 관한 책은 그가 쓴 책들보다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유명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글을 쓰고, 뭐에 관심이 많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남의 삶이 왜 그렇게 궁금하냐고 할 텐가?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일반 대중이 연예인들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거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 난 그저 그 대상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뿐. 하루키는 새벽 4시 전후로 일어나 한잔의 커피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아 10시까지 글을 쓰고, 이후 10킬로미터를 달리고, 2시엔 번역 작업을 하거나 어느 음반 가게를 기웃거리고, 저녁에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은 뒤 책을 읽다 밤 10시경 잠자리에 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또 이런 식으로 작가들의 일상을 써 놓은 책은 없을까 기웃거린다. 그래서일까? 저자들 중엔 아예 작가의 일상을 채집해서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이 책은 무려 131명의 여성 예술가의 루틴을 소개하고 있다. 그 정도라면 너무 많아 세례가 아니라 폭격 수준이다.  


루틴, 말 그대로 일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떤 작업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넓게는 무용가나 화가, 연출가, 배우 등 예술가라 불릴만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가장 많이 다룬 직업은 시나 소설가 같은 문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하루키에 대해 느꼈던 흥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의 루틴을 모았을까, 읽는 사람은 좋긴 한데 쓰는 저자는 멀미가 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솔직히 읽는 나도 멀미가 좀 났다.ㅠ) 


소개된 예술가들 대부분은 하루키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루틴을 철저하게 실천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워커 홀릭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코코 샤넬은 쉬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는데, 일만 하고 살면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지만 나름 오래 살았다. 하루키 때문일까, 나 역시 작가는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어 오히려 반가웠다. 예를 들면, 시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비숍이 그렇다.


그녀는 만성 천식 환자로 코르티손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약물의 부작용이 오히려 유익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그것의 부작용은 불면증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창작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줬다고. 하지만 그 희열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고 정서가 망가질까 봐 복용을 중단하고 아주 천천히 쓰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는 뭔가의 강박에 쫓겨 하루에도 몇 장의 원고를 써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에 동조라도 하듯 시인인 니키 조반니와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 같은 사람은 쓰고 싶을 때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엔 긴장해서 열심히 쓰다가도 중간쯤 되면 느슨해지고 나중엔 포기하고 싶거나 정말 포기하게 된다. 그럴 때 니키는 장벽 같은 건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또 좀 말이 된다. 장벽을 받아들이면 장벽은 없는 것이다. 장벽이라고 생각되면 장벽인 것이고. 즉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디 스미스는 한 술 더 뜬다. 글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읽을 때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글을 써야겠다 싶을 때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도 맞는 얘기 같다. 죄짜듯 또는 싫은데 억지로 쓰는 거 별로다.  


그러고 보니 누가 생각이 난다.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는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 글을 써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글을 썼다. 작가라는 직업은 정말 묘한 직업 같다. 이렇게 절박함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니. 그렇다고 절박함을 위해 일부러 빚을 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라. 절박함을 갖는 방법이 꼭 그것만이 있는 건 아니다. 글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고, 출판사와 계약 맺거나 아니면 일부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넣으면 된다. 솔직히 빚을 지든 원고 계약을 맺든 작가가 돈만큼 절박한 게 또 있을까.  


이와 반대의 개념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최초의 여성 사회학자요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해리엇 마티노(1802~1876)는, 글을 쓰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면 처음 무조건 쓰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글 쓸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쓰면 당혹감과 우울함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공부든 글 쓰기든 책상 앞에 앉았다고 바로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단 인터넷에 들어가 여기저기 서핑을 하다 하게 되는데 이게 좀 위험하긴 하다. 유독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땐 그걸로 시간을 채우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땐 마티노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다. 25분 동안 글을 쓰고 인터넷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럼 그 25분 안에 풍덩 빠져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25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25분 동안만 인터넷을 하다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하던가. 그러니까 인터넷 25분은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리추얼 같은 것이다. (나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인터넷 25분은 가능한 시간 같지는 않다. 25분은 그냥 상징적 시간으로 해 두자.ㅋ)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의 경우 그런 대작을 썼다면 매일 최소 30장 이상은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고작 두 장 정도를 쓰고, 다음 날 아침 다듬고 나면 겨우 여섯 줄이 남는다고 한다. 그럼 다시 시작하고.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몇 년에 걸쳐서 그 작품을 완성시킨 걸까. 책을 보니 1928년에 쓰기 시작해서 1935년 가을에 편집자에게 원고를 넘겼다고 하니 나 같으면 진작에 못 쓴다고 했을 것 같다. 더구나 각장을 20번 이상 고쳐 썼다. 문득 습작이라고 썼던 내 지난날의 글들을 그렇게 쉽게 폐기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싶기도 하다. 글 쓰기는 그렇게 지난한 것이다. 문득 내가 처음 작가의 꿈을 가졌을 때 이럴 줄 알고 있었나를 생각하면, 난 꿈에도 몰랐다. 미첼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무엇을 준다고 해도 그 일을 다시 시작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오래전 나의 사부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힘들 게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생각이 나면 작가가 자기 천성에 맞는 거라고. 그렇다면 마거릿 미첼 같은 작가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인생 한 방이라더니 작가도 한 방인 건가.


내가 이런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한 관음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뭔가 쓰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를 논할 때 보통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 하는데 이제 그 말은 너무 단순하고 식상해서 웃음도 않나 온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루틴 속에서 예술을 창조해 나갔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책은 매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사람이 누구고 뭐했던 사람인지를 짤막하게 써 놓고 있다. 거기엔 그들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까지도 밝혀놓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살다 간 예술가들은 언제까지나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 것 같은데 어느 하루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날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소 허망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들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아쉬움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다고 일상의 고단함 또는 무료함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지 않으면 둘 중 하나다. 어디가 아프거나 죽은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파보면 일상이 주는 고마움을 알게 된다. 부디 삶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삶의 비결은 별 것 없다. 꿈이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합당한 루틴을 만들고 하루하루 그것에 맞혀 사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 매일 루틴을 지키고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그게 재능보다 더 힘든 거라는 건 잠 작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루틴을 다뤘다. 이 책이 여성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건, 이 책 이전에 저자는 <리추얼>이란 책을 썼는데 그건 남성 예술가를 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책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열심히 글 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가 알만한 작가들의 사진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그게 참 섹시해 보인다. 저 표정 한컷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자기 루틴을 지키며 살았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누구는 그랬다. 작가에겐 원죄가 있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평생 뭔가를 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그들은 평생 거미줄을 잣는 아라크네의 후예들이라고. 일부러 글 감옥에도 들어가는데 그 정도라면 칭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작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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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리추얼>도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돼요.

stella.K 2020-02-23 20:32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해서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내용이 좀 많다는 느낌은 듭니다.
리추얼은 안 읽어서 모르겠는데 오히려 리추얼이 더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자들이 첫 책에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북프리쿠키 2020-02-23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나 페이퍼를 쓸때도 아~이번 글은 참 마음에 든다. 할 때가 쥐똥만큼 생길 때도 있는데, 작가는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꿈틀거리는 욕구 좀 푸셔야 하지 않을까요~^^

stella.K 2020-02-24 12:1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솔직히 쿠키님 저한테 이렇게 자극 주실 때가
젤 좋고 감사합니다. 작가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고맙습니다. 쿠키님을 위해서라도
올해는 어떻게든 두번째 책을 내보도록 노력하겠슴다.ㅋㅋ

2020-02-25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6 15:05   좋아요 0 | URL
와우, 도서관 매니아시군요.
저도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이 한 번은 중고샵을 나가려고
생각중인데 그 루틴은 안 지켜지고 있어요.ㅠ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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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워낙에 책을 오래 읽기도 하거니와 중간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경우엔 며칠 또는 몇 주씩 방치해 두기도 했다. 변명 같지만, 그런 게으른 독서가 가능했던 건 미니멀리즘하고  디테일의 강점을 앞세우며, 약간은 지루한 듯 하지만 왠지 보기를 포기할 수 없게 일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이 책에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영화로는 <행복한 사전>이 언뜻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소설도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를 내내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니면 착하면서 실사에 가까운 느낌의 애니메이션이나. 더욱이 건축 설계를 소재로 했다는 게 이색적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건축 설계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몇 번이나 읽게 될까. 한마디로 요즘에 보기 힘든 만연체의 문장에 회상 문학이 더해졌다.  


제목이 좋다.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물론 끈적하고 숨 막히는 한 여름은 나도 힘들지만 상큼한 초여름과 한풀 꺾여 왠지 보내기 아쉬운 늦여름은 붙잡고 싶으리만치 좋아한다. 게다가 주인공 도오루는 어느 설계 사무소에 취직이 됐는데 합숙을 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왠지 나를 부럽게 만든다. 가끔 가족을 떠나 목적이 같은 사람과 몇 개월을 먹고 자며 뭔가의 작업을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왠지 설렐 것 같다. 물론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흐름을 봤을 때 그런 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목적이 같으면 성격이 여간 못 되지 않고서야 팀워크가 나쁠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내건 설계 사무소의 무리이 슌스케가 수장으로 있고, 모인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온화하고 절제되어 갈등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뭐 그게 작가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개인보단 전체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이란 말에 거부감부터 드러낸다. 꼰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에선 아부하고 뒤로 뒷담화하는 민족 아닌가. 뭐 그만큼 존경할만한 어른이나 선배가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고, 앞에서 보이는 것과 뒤에서 보이는 것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에서 살아 남기는 해야겠고. 


무라이 슌스케라면 나라도 존경할 것 같다. 정말 신뢰와 존경이 뚝뚝 묻어난다. 그렇다고 자신을 알아 달라고 행동을 과장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도오루를 비롯한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닮았다. 역시 한 조직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를 따라가는 것 같다. 슌스케가 도오루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어록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9p)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286p)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 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 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설계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이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 할 수 없어." (287p)


이밖에도 밑줄 긋고 곱씹고 싶은 말이 많다. 읽으면서 새삼 건축도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싶다. 무엇보다 건축도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만큼 사람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승효상이나, 유현준, 김진애 같은 건축가가 나와서 건축의 중요함, 필요성, 철학 같은 것을 일반인에게도 깨우쳐 줘서 다행이긴 하지만 난 솔직히 건축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이나 그림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고칠 수도 있는데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한번 지어 놓으면 못해도 50년이고 10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중간에 보수도 하고 리모델링도 한다지만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나 같이 가난한 서민은 꿈도 못 꿀 일이라 관심이 없다. 물론 주마간산식으로 무슨 조형물 작품 감상하듯 할 수는 있겠지. 무엇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건축 설계 보단 도시와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란 말이 아직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가급적 도시란 말로 대체해서 쓴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건축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예전엔 건축하는 일이 그렇게 대접받는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그것도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시 일본인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의식주 전반을 잠식해 들어갔을 것이다. 그 시대야 말로 상명하복에 굴복해야 했으니 무슨 우리나라만의 건축 철학을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야말로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건축물은 부동산으로 분류한다. 공공재 보단 사유재산의 개념이 더 많다. 더구나 도시 계획하면 철거민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서글픈 일이 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사회학에서나 다룰 법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건축 설계의 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이런 문학 작품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똘똘 뭉쳐 뭔가를 해낼 것만 같은 사무소 사람들은 뜻밖에도 슌스케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슌스케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라 언제까지나 건강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야기의 말미는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후 주인공 도오루가 옛날 슌스케 사무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에서 끝나는데 묘하게도 나는 거기서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다시 찾아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들 저마다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다. 도오루에겐 슌스케 사무소가 특별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고, 가히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슌스케를 만나고, 결혼으로 이어질뻔한 여인을 만났으며 주변 경관도 좋아 오래도록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29년 만에 찾았다면 평생 안 찾아볼 생각을 했을 것도 같다. 분명 도오루에겐 꽤 의미 있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 좋고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고 해서 그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은 여간해서 잘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만 가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 같이 살았던 동네가 나오는데도 나는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지난 달 오랫동안 알고지나 온 지인을 그가 사는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지인은 나를 잡아끌듯 그 초등학교에 한번 가 보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간 적이 있다. 다시 찾은 학교는 소인국의 어느 건물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건물이고 운동장이고 어쩌면 그렇게 아담하던지. 처음 그곳에 갔을 땐 엄청 크고 넓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초등학교를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전학을 갔는데, 분명 운동장 한쪽에 큰 수영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물기 없는 수영장 안에서 체육 수업을 받기도 했는데 다시 찾아가 보니 수영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운동장이 넓지 않고 수영장의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아 나중에 메워 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시절엔 학교의 자랑거리였는데. 그렇게 사라져 버리니 내 기억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마음 한편이 휑했다.    


그뿐인가, 그때는 교문 앞 길은 탁 트여 있었고, 교문 앞에 문방구가 두 채가 있었는데 무슨 건물만 다닥다닥 붙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얼마나 낯설던지. 문득 왜 사람들이 추억의 공간으로 가기를 주저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보면 머릿속에서만 어른 거리지 그 공간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괜히 뭔가 추억이 손상된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이다.이 책의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지 그렇지 않을까. 인생이 한 번이듯 지나 온 곳 역시 한 번이면 족하다 싶다. 그래도 그 지인 덕에 옛 초등학교도 가보고 모처럼 옛 추억에 잠겨 한참 서로 어린 시절을 얘기했었다. 


아무튼 요즘 보기 드문 소설에 보기 드문 문체를 장착했다. 만연체의 느린 문장을 좋아하거나 견딜 수 있다면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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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02-1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너무 좋았어요. 특히나 아침에 연필 깎는 장면은 와, 그 묘사가 정말 섬세하더라고요. 스텔라님 모교 찾아가신 얘기 너무 좋네요...저도 3학년까지 다니고 전학갔었는데...

stella.K 2020-02-16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장면이 있었나요?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것도 같네요.
사실 이책 처음 봤을 때 끌리긴 했는데 결정적으론 브랑카님 글 보고
읽을 생각을 했죠. 벼르고 벼르다 중고샵에 있길래 최근 읽기 시작했느네
너무 오래 띄엄띄엄 읽은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만 멀어지는 어린 시절이 아쉽기만 하네요.
브랑카님도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