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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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의뢰 #김성민 #창비교육

 



12시가 되면 비밀채팅방 <해결 사이트> 공지란이 깜박거린다. ‘오늘의 의뢰라는 글이 올라오며 채팅방이 들썩거린다. 누군가 의뢰를 한다. 어디 고등학교 몇 학년 몇 반 실명까지 거론되며, 전교 1등인 그 아이가 전교 1등 못하게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한다. 이어 해결사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해결해주면 다음엔 자신의 의뢰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규칙은 간단하다. 약속을 못 지키면 영원히 사이트 이용 금지다. 매일 비밀번호를 바꿔가며 소수의 인원만 참가하게 되는 비밀채팅방이 열리면 다양한 의뢰가 생긴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준다. 아주 심플한 일일 것 같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 시끄럽게 짖는 개를 죽여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면 그건 동물보호법 위반이 될 것이다. 또한 동물에서 인간까지 해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에피소드 중에 문구 센터에서 볼펜을 구입해 계산대로 갔더니 점원이 슬쩍한 펜을 내놓으라고 했다며 문구 센터 유리창을 깨달라는 의뢰 같은 경우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에 의해 문구 센터 유리창이 와장창 소리가 나며 깨지고, 안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짜릿한 무언가를 찾아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점점 정도를 더할 것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가 오픈 채팅방에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가림 중학교 2학년 해민이는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2층에 새로 이사 온 도경과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 문예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해민에게 주영은 소중한 친구다. 해민은 친구가 많고 활달한 성격의 주영이 부럽다. 동아리에서 공감 에세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대상을 수상하며 동아리 회원인 소정이와 불편한 사이가 된다. 소정이는 해민의 대상을 인정할 수가 없다. 수상에 대한 욕심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소정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고 노력도 많이 한다. 부모님 또한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기에 꼭 대상을 받고 싶었다. 물론 당연히 대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것도 없지 않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기다려주면 되는데, 부모가 되는 순간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큰 기대를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는가 말이다.

 



해민과 도경, 주영은 어른에게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친구와 생겼던 오해도 스스로 풀 줄 알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가며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대화를 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약간의 결핍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우친다. 어떤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들면, 결국 자신의 삶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혹시 이런 글을 보고 실제로 채팅방을 만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어떤 게 옳은 일인지 파악하고 있다. 오히려 어른보다 더 나은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엔 친구가 거의 모든 것이다. 만약 친구와 싸웠다면 세상을 잃은 것 같다. 친구와 우정, 시험공부, 글쓰기,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중학생이 하는 일상적인 고민과 비밀채팅방에서 일어나는 오늘의 의뢰 사건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친구와의 관계를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등 현실적인 문제와 상상력을 가미한 비밀채팅방, 누군가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주변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다. 시험 고민이나 친구와의 갈등, 미래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위로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오늘의의뢰 #김성민 #창비교육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청소년 #청소년소설 #한국문학 #한국소설 #창비교육성장소설상 #성장소설 #비밀채팅방 #너만아는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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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집 -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아무튼 시리즈 62
김미리 지음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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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집 #김미리 #코난북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춰두었던 기억까지 꺼내야 하는 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진솔한 글이 되는 것 같다. 글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일. 솔직하지 않은 글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글은 마음을 두드리는 일. 글 쓰는 이가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어야 진심이 통하는 법이다. 이 글을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미리 작가는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작가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52촌 생활을 하는 작가. 퇴근 후 금요일마다 시골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든든하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다. 목요일 퇴근 후 간단한 짐을 꾸려놓고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시골집으로 향한다.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여행지에서 집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김미리 작가의 집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다. 나 또한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작가가 생각하는 집과 내가 생각하는 집의 차이를 알고자 했다. 집은 안식처이자 생활공간 혹은 일터이기도 하며 가족과 머무는 공간이다. 가족과 머문다는 건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으며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어쩌면 집은, 혹은 집안에서 가족은 작은 사회를 배우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집은 기억의 공간이다. 내가 거쳐 온 집,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살았던 시골집, 지방 소도시로 이사해 남의 집 문간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셋집, 엄마가 학교 앞에서 핫도그를 팔았던 다락이 있던 가겟집. 그리고 유달산 밑의 오래된 우리집.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이층집과 아파트, 아파트.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을 떠올릴 때면 그 집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과거의 기억과 맞닿은 집. 집은 곧 기억의 장소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다. 거의 주말마다, 시골집(농막), 여행지의 숙소를 떠돌아도 결국 우리집에 들어서는 길은 안온함이다. 저 멀리서부터 안도감이 든다. 어서 들어가고 싶다.



 

운동회가 시작되는 참에 전학을 가야하는 게 서러워 울었던 어느 날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랑 싸운 뒤 울음을 참고 집에 들어와서야 엎드려 울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숨길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보이던 등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말이라도 시키면 곧 울음이 터지고 말 그 표정 말이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비록 새로운 집이지만, 익숙한 물건과 사람이 있는 공간은 소중한 공간이다. 곧 집이라는 건 사람과 더불어 자란 역사다.



 

내가 닫은 문을 내가 다시 열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문은 열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만 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뒀던 내가 그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어느 회사의 최종합격 소식이 들려온 날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도 도착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렇게 울며불며 살아낸 만큼만 앞으로 간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이었다. (139~140페이지)



 

집은 추억의 공간이다. 시골집을 떠올릴 때면 늘 떠올렸던 증조할머니의 모습처럼, 저자 또한 집은 곧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추억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늘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이다. 집은 엄마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돌보아주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상실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집은 또 다른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시골집을 구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마음을 달랬다. 꼭대기집과 다르게 수풀집은 일주일 동안 쌓아두었던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 하나가 위로가 되는 법이다. 집을 가꾸고, 농작물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리다 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퇴사 후 유럽 여행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염병이 찾아왔고, 유럽 여행은 막혔다. 퇴사 후 여행을 떠나려고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집에서 한 달을 보냈다는 저자의 에피소드에 웃음이 났다. 한 달 동안 집과 동네를 탐색했던 저자가 보고 느꼈을 모든 것이 상상됐다. 분위기 좋은 카페, 맛있는 음식점,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 한구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집, 현재의 집, 미래의 집을 포개어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50페이지)



 

지금 집으로 이사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지난 집에서의 기억이 많다. 새로운 기억을 엮어갈 이 집에서 쌓아갈 기억들이 기대된다.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정 붙이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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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별리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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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사소한별리 #최석규 #문학수첩

 

순정만화 속 인물 같은 표지를 만났다. 노란 유채꽃 사이로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를 향하지 않은 여자는 다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즉 등을 보인 여자는 나와 헤어진 사람이다. 물론 등을 바라보며 뒤따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상황은 이별한 사람일 것이다.




 

2023년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최석규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다양한 이별의 감정을 담은 소설을 엮은 것으로 문학수첩 신인문학상 수상작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을 포함해 총 일곱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일곱 편의 소설에서 삶과 죽음, 그로 인한 이별의 감정을 담았다. 타인의 사랑이야 지나가는 바람처럼 덧없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나 나의 사랑은 삶의 모든 것이다. 이별은 또 어떤가. 마치 세상의 끝을 향한 듯, 삶의 마지막을 앞에 둔 듯 행동하지 않나.






 

업무 특성상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만나는 일이 가끔 있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제도와 직업이었는데 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안의 문어는 향후 조경 관련 직장에 취직하려는 주인공이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는 이야기를 했다. 배정된 집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대학 때 탱고 무용수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 있었다. 그와 함께 정원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자처럼 자기의 모든 마음을 정원을 만드는 거로 소진했다. 죽음을 잊고자 했던 행동일 수도 있겠다. 그녀를 도와 정원을 만들며 희열을 느끼는 감정 또한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계단 아래 우리는 기타리스트인 남자가 주인공으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자 음악을 포기하려고 한다. 친구의 권유로 30만 원을 벌기 위해 제약회사의 생동성 실험에 참여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며 혼자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다가가 대화를 나누다, 웹툰 작가인 그녀가 작업할 때 들었던 음악이 자기가 만든 곡이라는 걸 알고 반가워한다. 자기의 곡을 듣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 같다. 음악을 포기하려던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풍경이었다.




 

전직 형사 출신 준배에게 친구 부인이 찾아와 남편이 증발했다며 찾아달라고 한다.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인 기태가 증발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자취를 찾을수록 드러나는 건 그가 스스로 사라졌다는 거다.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살다가 나를 위해 베팅한다는 것. 괜찮은 생각 같다. 누구나 꿈꾸는 삶이지 않을까. 강원도의 펜션에 젊은 남녀 셋이 찾아와 하룻밤을 머물고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조사 및 현장 답사하여 글로 쓴 내용 내일은 해피 엔딩은 우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가수가 되고 싶은 여자, 시인이지만 호스트바 접대부로 일하는 남자,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하여 우울증에 걸린 남자가 삶을 비관하여 자살 카페에서 만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페의 이름 또한 시인의 시에서 따 온 내일은 해피 엔딩이었다. 해피 엔딩을 꿈꿨던 이들의 선택이 죽음밖에 없었을까. 죽음과 삶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존감과 긍정적인 마인드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했다.

 




식물인간인 아내를 떠나 독일의 주재원으로 있는 진석이 영국 정원을 산책하다가 젊은 여자를 만났다. 과거 첫사랑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그녀다. 그녀가 가고 싶다고 했던 자그레브에 대하여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세상의 끝, 그곳에 있는 것들, 영국 정원과 독일 가문비나무의 유래 그리고 한 사람과의 만남은 새로운 시작이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주인공들, 우리 주변 인물들을 말하는 듯하다.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삶을 접하고,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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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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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답장이되어줄게 #백승연 #텍스티



 

어딘가를 여행하면 방문하는 장소에 어김없이 우체통이 있다. 이번에는 포항이었다. 호미곶과 일본인 가옥 거리에 갔을 때도 있었다. 지난 3월 대구 여행에서 김광석 거리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엽서를 골라 탁자에 앉아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시간이 지난 후 받아본 편지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점점 짧아진다.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는 훗날 부끄럽지 않게 단문으로 쓴다. 편지라는 매개체는 느리게 전하는 메시지다. 어떤 편지는 1년이 걸리고, 어떤 편지는 6개월이다. 가장 짧은 건 2~3일의 기간이다. 지금도 개인 간 손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손편지를 받아본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백승연의 소설이 좋았다. 아날로그적 감성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울에 존재하는 편지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출간된 후, 마치 추억에 잠기듯 책을 읽었다. 편지가게 글월에서는 영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편지로 전하는 언니의 마음이 힘들어서 그것을 피해 서울로 도망친 효영이 주인공이었다. 대학 동기 선호의 권유로 편지가게 글월에서 일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편지가게 글월의 맞은편 연화아파트에 사는 영광과 효영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에 소설이 끝나 아쉬웠었다. 이 작품의 후속작 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는 효영이 영광과 짧은 사랑을 하고 헤어진 후 편지가게 글월성수점 매니저가 되어 글월을 이끌어가는 효영이 다시 돌아온 영광과 마주치며 소설이 시작된다.

 





후속작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영광과 라이벌이 될 인물로 동규가 등장한 것이다. 동규는 효영이 영화 커뮤니티에서 만나 친했던 인물로 파혼 뒤 요리를 배워 레스토랑을 열었다. 글월 성수점에 왔다가 펜팔을 시작하는 인물이다. 효영과 러닝메이트로 지내는데 누가 봐도 효영에게 마음이 있는 듯하다. 아주 늦게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된다. 효영을 사이에 두고 동규는 영광이 신경 쓰이고, 영광은 동규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질투에 가깝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듯 불현듯 깨닫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낸다. 용기를 낸 자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전작이 연희동을 배경으로 했다면, 후속작은 성수동을 배경으로 했다. 패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장소에서 사랑이야말로 느리게 걷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편지는 실제 연애편지를 공모받아 몇 편을 실었다.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이었다. 성수동을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낭만적인 장소로 탈바꿈한 것 같다.



 

사랑은 가만가만히 다가와 스며드는가 보다. 사랑이 희미해졌을 때조차 처음 설렘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고 흐뭇해하지 않나. 지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한 번씩 꺼내 보는 편지와도 같은 것. 서간집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마음의 표현이기에 상대방의 마음이 너무도 궁금한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그것들이 궁금해 자꾸 읽게 된다.



 

책 뒤편에는 공모한 편지 사본과 편지가게 글월을 찍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예쁜 편지지를 골랐을 그 마음이 먼저 엿보인다. 고심하며 썼을 시간의 흔적이 보였고,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편지를 쓴 순간이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편지는 결국 나를 내보이는 것. 아는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게 편지가 가진 역할이다.



 

만약 편지가게 글월이 주변에 있다면 과거 펜팔을 했던 경험을 살려 누군가와 편지를 나눌 것만 같다. 내 편지를 받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손꼽아 답장을 기다리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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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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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온여름 #성해나 #창비

 



2025년을 뜨겁게 달군 혼모노의 작가, 예스24, 2024년 젊은 작가상 1위에 선정된 작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살의 기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한 살의 재하와 가족이 되었다. 새어머니는 기하와 친해지려고 다가서지만 기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재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노력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면 모르겠지만,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 새로운 가족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성인이 된 기하가 4년 동안 가족으로 지냈던 재하와 재하 어머니에 대하여 좀 더 다가서지 못했던 후회의 감정을 말한다. 그와 동시에 재하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기하 형과 다정한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새아버지를 기억한다. 조곤조곤 말하듯, 편지 형식으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서술한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에게 저기혹은 그쪽이라고 불렀다. 반면 재하는 아버지와 금세 친해져서 우리 막내,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기하는 곁을 내주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다시 만나면, ‘잘 지냈니?’라는 말을 할 것 같았다. 늘 혼자 찍던 사진을 재하가 온 뒤 가족사진을 찍어 기하의 사진이 놓인 자리에 가족사진을 두었다. 왜 재하와 재하 어머니께 다정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시간을 지나, 마치 지난 안부를 묻는 듯하다.

 



농밀하게 자란 오리나무 사이에서 한 무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푸른 기운을 띄던 숲이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38페이지)



 

아무래도 소설의 제목을 암시하는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버지가 자주 출사를 나가곤 하던 인릉을 방문할 때면 홍살문을 빠져나올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남겨둔 거 같은 마음. 누군가가 붙잡는 거 같은 느낌. 아버지에 관한 서운함이 재하 모자를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다정함을 처음 느껴보는 재하에게 기하는 어렵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모두 친형제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반추한다. 친형제였다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열한 살의 재하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새아버지에게, 형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든 노력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인 척하며 산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진짜 가족은 느끼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비록 4년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 있지 않았을까. 먼 훗날 떠올려보며 그때 조금만 마음을 열었다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반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재하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 한편으로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는 상상 말이다. 재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재혼하지 않더라도 형제만큼은 친형제처럼 고민을 얘기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상당히 냉정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뀐 전화번호를 주지 않고, 그런 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먼 훗날 우연히 마주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해나의 문장이 좋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풀어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감동은 배가 된다. 어긋났던 관계를 뒤돌아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고 대하지 않을까.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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