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역사 -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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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한국외대 국제정치특강에 참석했을 때, 서강대 교수님의 강력추천으로 존 루이스 개디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 추천받은 책은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We now know: rethinking cold war history, 1997) 이었다. 그 책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대출기한 3주를 꼬박 밤낮으로 읽었다. 3주 후 도로 반납을 하고선 소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헌책방 거리를 헤메기도 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검색 중 2010년 막 발간된 이 책 <냉전의 역사> 를 찾을 수 있었다.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의 개정판이고 내용과 해석 모든 면에서 업데이트가 되어있었다. 이 책을 찾은 순간 -오버였을지도 모르나- 환호성을 질렀다. 목을 빼고 찾아 헤메이던 나의 반쪽이 알고보니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라고 말할 때의 느낌과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현대사를 치우침 없는 사관에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늘 간절했으나, 그것은 국내외적으로 모두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재해석되는 것이고, 현대사는 게다가 그 해석이 오늘날의 정치경제권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다 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몇십년 앞선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해석하고 싶어하는 것은 과욕이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개디스가 그 일을 해냈다라고 평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국인이고 예일대 역사학 교수이며 CNN 다큐 '냉전'의 고문으로 있다. 2005년에는 미국 국가 인문학 대통령 훈장까지 수상했으니 냉전의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저작을 바라볼 때 마음이 불편할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에 의해 해석된 역사는 유럽이 해석한 결과물과 상당부분 차이가 난다. 냉전처럼 미국이 한쪽 side를 담당하고 있는 이슈에 있어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 정부 차원에서 숨기려 했던 내용들이 30년, 50년 외교문서 공개 시한이 지나 외부에 오픈되고, 그 자료를 토시 하나까지 소화하려고 고군분투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당분간 이 책보다 더 넓고 깊으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냉전 입문서를 찾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쉽고 재밌다' 라는 것이다. 역사서가 쉽고 재미있기는 어려운데, 개디스는 냉전의 대가답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 것 정도의 에너지를 투자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책 앞부분에 제공된 다양한 냉전시대의 사진들과, 본문 중간중간에 끼워진 지도나 각주등을 통해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표지는 이렇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추천사는 키신저의 추천사였다.  

"냉전에 관한 종합적이고 현명한 개관. 나처럼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과 이 책의 시야와 박학함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사실 키신저는 미국 내에서도 중립보다는 한쪽 극단에 치우친 편이기 때문에 역사가인 개디스가 정치가인 키신저와 의견을 달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추천사는 분명 인상적이다. 이 책과 개디스에 학문으로서의 완결성을 부여해주는 듯한 추천사.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나는 약간 갸우뚱했다. 키신저가 크게 반대할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하고. 그래 추천사도 일종의 마케팅이지. ) 

 

  

책 앞부분에 실린 다양한 사진들. 사진들을 보고 글을 읽으니 더 실감났다. 남의 나라 과거 이야기인 '냉전'이 내 이야기로 다가오는 느낌. 하긴 우리 나라도 싫든 좋든 냉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절절히 알 수 있었다.  

 

 

 많지는 않으나 본문에 간간히 지도가 삽입되어서 이해에 도움을 준다. 사실 냉전에 관여된 나라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나라들이라 지도나 부연설명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책 내용을 요약해 보다가 출판사 설명을 먼저 옮겨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 옮겨본다.  이 부분은 내가 다시 단어를 바꾸어 써보아도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인류 절멸 위기에 놓인 아찔했던 순간, 공포와 속임수로 점철된 ‘냉전의 실체’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이 책은 말 그대로 냉전에 관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되 간결하고 읽기 쉽게 틀을 짠 대중서다. 사건을 (‘1945년부터 1991년까지’라는 식으로) 시대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역사서가 아닌 만큼 단순한 연대기 서술은 자제하고 주제별로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의 뷰파인더는 동일 사건을 겹쳐서 바라보기도 하고 단번에 다른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마치 장편소설처럼 전개되는데, 저자가 냉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전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목적이 국가의 안보에 있다면 열전보다는 제한전(limited war)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전면전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가의 목소리와 함께 역사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며 비사를 가감 없이 첨가함으로써 각 인물들의 성격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저작인 만큼 정보 왜곡은 없다.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인 인물들의 성향, 인간적인 얼굴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에 동화될 것이다.(베를린장벽은 크렌츠의 부하 귄터 샤보프스키의 사소한 실수로 붕괴되었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공포 영화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냉전의 역사, 세계 현대사를 한 권으로 훑다
세계는 20세기 후반이라는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냉전(冷戰)과 열전(熱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왔다. 냉전 기간 중에 결정론에서 벗어난 가장 중요한 일탈은 열전과 분명히 관계가 있었다. 1945년 이전에 허다했던 강대국 간 전쟁은 그것이 영원한 양상인 양 굳어지게 했고, 레닌은 이런 전쟁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변수는 핵무기다.
핵전쟁이 시작되면 승전은 고사하고 양쪽 다 생존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1952년 11월 1일에는 미국의 첫 수소폭탄 실험으로 태평양에 있던 섬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때문에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정작 전면전을 개시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즉 강대국끼리 붙기만 하면 핵무기가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인류가 절멸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위협이 되어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냉전이며, 그렇게 해서 1945년 이후에 벌어진 전쟁들은 초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이나 약소국끼리 전쟁으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냉전을 끝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사망한 지 31년이나 된 전 총리 임레 너지의 장례식에 몰려가 가시철조망이 낡았다고 선언한 헝가리 사람들, 자유 노조 솔리다르노시치를 집권시킨 폴란드 사람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휴가를 지내고,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 담벼락에 기어오르고, 열병식에서 호네커에게 창피를 주고, 라이프치히에서는 경찰에게 발포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끝내는 문을 열어 장벽을 허물고 나라를 재통일시킨 독일인들이다.

“냉전은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시작됐고 희망이 승리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치고는 이례적인 궤도였다”
냉전 전문가 개디스는 냉전 자체를 역사의 무대로 보았을 때 당대를 관통하기 위해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이 ‘위대한 배우’들이 위대한 배역을 맡을 기회는 미ㆍ소 동맹국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권력이 세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 찾아왔다. 그들은 극적인 연출로 역사의 진로를 바꾸었으며 용기, 웅변술, 상상력, 결단력, 신념 같은 무형의 지배력을 구사했다. 냉전이라는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 구석구석까지 정부 당국을 당황하게 한 요한 바오로 2세,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독립 노동조합을 결성한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여성으로서 최초로 대영제국 수상이 되어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의 명성을 되살렸던 마거릿 대처,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덩샤오핑, 실제로 직업 배우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국내에서 신뢰를 재건함과 동시에 소련의 연로한 지도층을 섬뜩하게 만들었던 로널드 레이건, 레이건과 협력해 소련을 변혁시키는 과업을 떠안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방식에 도전하고 관중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냉전을 지속시켜온 세력에 대항하고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모습, 한반도와 한겨레
냉전과 한국전쟁 이후 세대를 위한 필독서

이 책은 20세기를 규정지은 냉전 시대의 극한 대립에 대해서 그 역사와 논리를 파헤친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가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냉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때마다 제기하는 의문에 응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참고한다면, 이 책이 “냉전을 현재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냉전은 끝났지만, 새로운 냉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8월,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공격했고,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그루지야를 지원했다. 얼마 전(2010년 2월)에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미스트랄급 수륙양용 전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신냉전의 기류는 이처럼 본격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 구도가 남긴 분단국가 한국은 냉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실증해준다. 개디스의 역사관에 따르면, 과거는 먼 미래에서 망원경으로 볼 때 반드시 다르게 보인다. 마치 남극 관광객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빙원 위에서 펭귄들이 다투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대하고 아찔했던 지나온 순간과 불안한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 답은 위기 국면에서 이루어졌던 회담과 속임수, 독재자와 권력투쟁,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물론이고 지나간 냉전과 신냉전을 평가하면서 앞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성상 장점을 하나 더 꼽자면, 책 후반부에 index가 실려있어서 후에 필요할 때 발췌해서 읽을 수 있다. 교과서 (부교재 정도이겠지만) 로 쓰이기에도 충분할만한 구성이다. index기능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인문사회과학서, 특히 이런 종류의 책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냉전과 6ㆍ25 이후 세대를 위해 개디스가 강의를 기획했고, 출판했다. 책을 읽고 나니 이런 기획이 왜 필요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모든 역사는 후대에 어떤 모양으로든 영향을 미치지만 현대사는 그 영향의 범위와 정도가 더 넓고 깊다. 그러나 영향의 긴밀성때문에 대중들은 남발하는 쪽정보를 얻기 쉽고, 제대로 다루어져야 할 역사가 한 세대 두 세대를 더 흘러 의미없는 과거청산이라는 과업이 되기 쉽다. 냉전의 당사자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고작 2-30년 더 늦게 태어난 나는 남일처럼 혹은 조선시대 왕이름 외우듯 냉전의 역사를 대해왔던 것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이 근近과거의 공부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강대국 사이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아 생존해야하는 우리 나라는, 냉전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  
  

이 책에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분명히 미국 중심에서 기술되었다. 정치가가 아닌 학자가 기술한 것이라 중립성의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충분한 점수는 아닐 것이다. 이 책으로 냉전역사의 '맛'을 볼 수는 있겠지만 '전체'를 볼 수는 없다. 균형을 위해서 베른트 슈퇴버 (독일)의 '냉전이란 무엇인가', 김연철(한국, 후마니타스) 의 '냉전의 추억', 마루카와 데쓰시(일본)의 '냉전문화론' 등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에 번역된 냉전관련 입문서 중에서만 꼽아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으로는 저자의 예전작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보다 분명 더 재미있고 구성도 세련되기는 한데 디테일이 좀 더 사라졌다고 해야하나. 예전작은 두께에 비해 정보가 너무 많아 읽는 속도가 더뎠고, 메모해 가며 꼼꼼히 읽어야 해서 가독성이 좀 떨어지긴 했으나 이 책에는 빠진 나름 유용한 정보들이 예전 책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내용이 상당부분 겹치므로 둘다 살 필요는 없는데 혹 도서관이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다면 예전책을 구해서 빠진 부분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더 풍성히 읽는 한가지 방법임은 분명하다.   

 

이 책에도 인용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클라우제비츠의 이 말은 이 책을 잘 설명해준다.  "전쟁은 단지 그 수단만 다를 뿐 정치 활동의 연장이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수단은 결코 목적과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냉전의 '정치'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서 혹은 다른종류의 사회과학서가 지향해도 좋을 모델이라 말하고 싶다. 곁에 두어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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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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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뒷 얘기가 궁금해서 책장을 허겁지겁 넘기다가 워-워- 하고 숨고르기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뒷 얘기가 궁금해 죽겠으면서도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장면 그 장소 그 시공간속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의 뒷껍질에 다다를때까지. 

뭐라 리뷰를 남기기가 송구하다. 삶이 빡빡해 눈물이 날 것 같이 숨이 차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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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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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기대가 크니 실망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은 작가이지만, 하루키 꼬리표 떼고 그의 작품과 만난다면 어떤 독자도 쓴소리만을 내뱉을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초기 에세이집인 이 책과 우연히 만나, 추석 귀성길을 재미나게 보냈다. 모든 에피소드의 마지막 한 줄 (혹은 한 단락)의 위트가 안아주고 싶을만큼 마음에 들었다. '달리기를...'이 하루키 에세이의 남성버전이라면 (하루키는 분명히 남자이지만), 이 책은 여성버전이랄까. 소소하고 가끔 찡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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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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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재미는 아니지만 끝까지 지겨워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인물들이 정말 사랑스럽다.  장모 케이와 조지와 드웨인. 그리고 델리의 손님들. 하나도 미운 사람이 없다.  

번역에는 몇 부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원서로 다시 읽고 싶은데 원서가 비싸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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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원 산책 -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오경아 지음, 임종기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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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보다, 저자가 16년동안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홀연히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정원조경공부를 하러 떠났다는 그 사실이 읽는 내내 참 위안이 되더라. 요즘 내 상황 때문인지, 목표지향적으로 계속 열심히 달리는 사람보다 이렇게 외도(?)를 했지만 행복해하며 삶을 누리는 사람 이야기가 귀에 더 잘 들어오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답고 역사가 스며있는 정원이, 풍경이, 문화재가 더 많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던,
팍팍한 나의 시험기간동안 소풍이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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