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도서관


 안 돼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4.1.)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종합소득세이든 부가가치세이든 홈텍스로 신고를 할 적에 보면 어째 ‘건강보험료’로 나간 돈은 안 뜹니다. 나라에서 솔찮게 떼어가면서 어째 이럴까요? 저는 책 팔아서 글삯으로 살림을 짓는데, ‘글삯’을 모두 세금을 떼고서 받는데, 글삯으로 버는 돈은 ‘근로수입’에 하나도 안 잡힙니다. 제 근로소득은 으레 ‘0원’으로 뜨기 일쑤입니다. 이러다 보니 근로장려금을 아예 못 받기 일쑤입니다. 무슨 나라가 이럴까요? 없는 살림돈을 바닥까지 긁어서 이웃고장 책집으로 마실을 다녀올까 하고 어림하며 찻길을 알아보았습니다만, 아이들 밥 지어서 먹이고, 쑥잎을 덖고, 읍내 볼일을 마치고, 저잣마실까지 한 뒤, 저녁에 찔레싹 훑어서 찔레무침을 차리고 보니, 영 몸을 일으킬 힘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2020년 아르코 문예창작기금도 예전처럼 짬짜미로 흐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째 4월 첫머리부터 모두 ‘안 돼’투성이입니다만, 거꾸로 보면 이모저모 ‘된’ 일이 수두룩합니다. 이 일도 되었고 저 살림도 되었으니, ‘더 될 일을 해보자’ 쪽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그래, 오늘은 모과꽃을 따서 모과차로 말려야겠어요.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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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9.


《형아만 따라와》

 김성희 글·그림, 보림, 2019.9.25.



새로 쑥을 훑는다. 올해 첫 쑥을 열흘쯤 앞서 훑었던가.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바지런히 쑥잎을 덖을 생각이다. 쑥잎덖기를 맨손으로 하기에 곧잘 손이나 손목이 덴다. 실장갑을 끼면 델 일이 없을는지 모르나, 실장갑을 끼면 실장갑 냄새가 배기에 싫다. 이렇게 말하면 ‘가스렌지로 덖으면 가스 냄새가 배지 않나?’ 하고 따질 만한데, 참말로 잔냄새 아닌 꽃냄새가 배기를 바란다. 노래를 부르면서 쑥잎을 덖고, 등허리를 펴려고 틈틈이 춤까지 춘다. 가만히 서서 덖으면 등허리가 몹시 결리지만, 춤을 추면 새로 기운이 난다. 다시 말해, 등허리 펴려고 춤을 추다가 아뜨뜨 하면서 손목이 데기 일쑤인 셈. 그림책 《형아만 따라와》는 재미있다. 척 보아도 알 만하다. “형아만 따라와” 하고 읊는 언니는 틀림없이 동생을 지키지 못할 때를 맞이할 테고, 동생이 의젓하게 언니를 돌보겠지. 뻔히 알 만한 얼개일 텐데, 어린이 삶이든 어른 살림이든 ‘뻔히 알 만한 길’을 능청스레 풀어내니 더욱 알뜰하지 싶다. 맞다. 뻔히 알 만한 쉬운 줄거리가 좋다. 수수한 삶을 그리니 반갑다. 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얘기가 아닌, 오늘 이곳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면 넉넉하다. 오늘도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하고 놀고 쑥 훑고 살림하고 사전 짓고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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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8.


《나의 살던 북한은》

 경화 글·그림, 미디어 일다, 2019.8.5.



이른아침에 전화를 받는다. 나는 저녁 일고여덟 시만 되면 전화를 받기 버겁지만 새벽 여섯 시 무렵에는 전화 받기에 좋다. 아이들이 있으니 새벽 전화는 되도록 조용히 받으려 하지만, 혼자 산다면 새벽 너덧 시 전화도 좋을 만큼 하루를 꽤나 일찍 연다. 이른아침에 전화를 하신 분은 아침에 우리 책숲에 찾아오셨다. 이태쯤 앞서는 허둥지둥 ‘고흥군수 선거’에 나오시느라 막상 떨어지고서도 넋을 차리기 힘드셨겠네 싶은데, 이분들은 이태 뒤 새로운 군수를 뽑는 자리에서 틀림없이 뽑히리라 여긴다. 부디 시골군수 물갈이가 제대로 되면 좋겠다. 책숲 손님이 가신 뒤에 불현듯 생각나서 순천 〈형설서점〉 마실을 다녀온다. 이동안 시외버스에서 《나의 살던 북한은》을 읽는다. 북녘을 떠나 남녘에서 ‘아줌마’로 살아온 분이 애틋한 북녘을 그리면서 남녘하고 다른 여러 살림 이야기를 수수하게 펼친다. 그런데 왜 “내가 살던”이 아닌 “나의 살던”일까. 이원수 님은 이녁이 쓴 동시에 ‘나의’로 적은 대목을 죽는 날까지 안타까워 했는데, 이를 아는 분은 있을까. 글쓴님은 북녘을 떠난 지 무척 오래되었기에 요즈음 북녘은 사뭇 다르겠지. 앞으로 두 나라는 어떤 길을 갈까. 두 나라는 언제쯤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전쟁무기를 버릴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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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정답 : 정답이 궁금한 사람은 끝까지 정답을 알지 못한다. 정답이 무엇이라는 말소리를 듣더라도 마음으로 알아내지 못한다. 정답을 궁금해 하지 않기에 어느새 정답에 다가설 뿐 아니라, 삶이 고스란히 정답을 녹여내는 몸짓이 된다. 수수께끼를 열여섯 줄 동시로 갈무리했다. 한 해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둘레에 슬그머니 여쭌다. 마음으로 이 수수께끼를 들은 어린이나 어른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거 그거네요!” 한다. 마음읽기로 수수께끼 이야기를 맞이하는 어린이하고 어른은 내가 쓴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하나도 안 틀리고 대번에 맞추더라. 그러나 마음읽기 없이 서두르거나 빨리빨리 읽어내려 하는 이는 하나도 못 맞출 뿐 아니라 “뭐예요? 다 그게 그거인 동시 아냐? 문제가 너무 어려워?” 하고 대꾸한다. 이 대꾸를 듣고 느낀다. 그래, 나는 ‘우리말 + 수수께끼 + 동시’에다가 ‘사전’을 엮은, 다시 말하자면 ‘우리말 + 수수께끼 + 동시 + 사전 + 살림 + 노래’를 들려주려 하는데, 그쪽에서는 ‘정답 맞추기 문제’로 여기니 하나도 못 맞출밖에. 이러면서 툴툴거릴밖에. 이리하여 새삼스레 ‘어른시’를 한 자락 적어 본다. 2020.3.31.


빨리 읽어내어

빨리 맞추려고 하면

모두 어렵습니다


혀에 얹고

마음을 실어

느긋하게 읽으면서

머리에 그림을 그리는


동시 하나를 놓고

하루나 이틀을 누리듯

천천히 나아가지 않고

후딱 정답만 알아내려 하면

모두 헷갈리겠지요


적어도

한 해를 놓고서

함께 읽으면

모두 맞추겠지요


서둘러 읽으면 못 맞춥니다

서둘러 쓰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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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기계랑 사람 : 돌아가신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다만, 어른을 ‘섬긴다’거나 ‘존경’한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다. 떠난 어른이 남긴 뜻을 찬찬히 밝히는 일하고 ‘섬기기·존경’은 확 다르니까. 어느 분이 “언중(言衆)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 같은 말씨를 쓰더라. “의도적으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한다고도 하더라. 이런 말씨를 쓰면서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씨’를 헤아리거나 쉽게 말하려 한다는데, 하나도 믿기지 않는다. 아니, 눈속임이나 거짓말이로구나 싶다. 아니, 겉치레이거나 자랑질이나 잘난척이지 싶다. 미국사람이 미국말 하기가 어려울까? 일본사람이 일본말 하기가 힘들까? 어느 나라 사람이건, ‘아이하고 주고받는 말’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들려주고, 아이가 물려받아서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생각을 빛내며 가꿀 말’을 가만히 돌아보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저절로 ‘즐겁게 우리말로 생각을 짓고 빛내어 나누는 살림길’이 되겠지. 덧붙이자면, 모든 사전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쓰기 때문에 어떤 사전도 ‘객관적’이지 않다. 사전이란 책에 뜻풀이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다면, 진작에 사전짓기 같은 일은 기계한테 맡기고 사람은 이 일을 안 했겠지. 사전이건 책이건 모두 ‘사람이 짓’는다. ‘사람이 짓는다 = 그 사람 마음이 깃든다’요, 이는 “언중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이 아닌 말”로 하자면 ‘모든 책과 사전 = 주관적’이란 소리이다. 너랑 내가 왜 만나는가? 우리는 서로 ‘객관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만날까?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른 눈(주관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하면서 즐겁고 신나고 사랑스러우’니까 만난다. 모든 만남은 사랑이다. 사랑인 ‘주관적’이다. 2015.3.3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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