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0


《백두산부대의 얼》

 김선호

 보병제21사단

 1988.12.



1997년 12월 31일은 제가 강원도 양구 동면 ‘완전무장지대’에서 살아남아 바깥으로 나간 날입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지요. 순 거짓말입니다. ‘완전무장지대’입니다. 무기에 군인이 얼마나 바글바글한데요. 미사일에 전차에 폭탄이 얼마나 아슬아슬한데요. 주먹다짐이나 총질은 가볍게 흐르던 그곳에서 웃자리에 있는 분들이 허울좋은 거짓말을 일삼으며 젊은이를 짓밟아 바보로 길들이고 갖은 검은짓을 일삼는 하루하루를 똑똑히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너희 막짓에 주먹질에 발길질에 총질에 목숨이며 넋을 빼앗기지 않겠어!’ 하고요. 서슬퍼런 데에서 빠져나오던 때에 살그머니 챙긴 ‘2급비밀 책’이 있습니다. ‘신병교육훈련자료’라 하는 《백두산부대의 얼》인데, 찬찬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뻥튀기에 거짓말만 가득한데 뭔 2급비밀인지 우스웠어요. 아마 뻥튀기에 거짓말이기에 숨기려 들겠지요. 그때 2급비밀 가운데 하나는 이제 사라진 주둔지인 ‘도솔대대’ 최저온도 -54℃입니다. 온도계로 찍은 이 숫자까지 2급비밀이라 하니 할 말이 없지요. 군대가 있으니 평화가 동떨어집니다. 얼빠진 채 군대와 무기를 때려박으니 사람들이 얼간이가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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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09


《スポツの施設と用具》

 東次右衛門 글

 旺文社

 1950.10.30.



지난 2007년에 저로서는 텃마을인 인천으로 돌아가서 서재도서관을 열었는데요, 이때에나 예전에나 요즈음에나 인천을 비롯한 나라 곳곳에서는 오랜마을을 하루 빨리 허물어 높다란 시멘트 아파트로 바꾸는 짓을 끝없이 일삼습니다. 한 사람이 사랑을 담아 지은 집은 백 해뿐 아니라 이백 해나 삼백 해는 거뜬히 갑니다. 장삿속이나 돈벌이로 올리는 시멘트 아파트는 고작 서른 해도 못 버티기 일쑤입니다. 시멘트 아파트를 허물자면 쓰레기가 엄청나지요. 사랑으로 지은 오랜마을 살림집은 나무나 흙이나 돌 모두 되살릴 수 있어요. 그나저나 인천은 한국에서 처음 닦은 야구장을 2008년에 가뿐하게 헐었습니다. 그 터에 축구장을 새로 지었지요. 이러면서 몇 해 앞서부터 ‘류현진 길’이니 뭐니 시끄럽습니다. 웃기지요. ‘처음’인 집이며 경기장이며 시설이 잔뜩 있던 인천인데 거의 몽땅 쓸어냈거든요. 《スポツの施設と用具》는 1950년에 나온 책이라는데 매우 정갈합니다. 운동경기장을 어떻게 짓는가를 꼼꼼히 다룹니다. 일본이란 나라가 처음부터 빈틈없거나 꼼꼼하지는 않았다고 느껴요. 모두 스스로 애쓰고 아끼고 가꾸고 돌보면서 오늘에 이르렀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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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08


《직장훈련교재》

 부산시

 1970년대?



1970년대 첫무렵에 부산시에서 내놓았지 싶은 《직장훈련교재》를 보면서 그 뒤 쉰 해쯤 지난 요즈막 온나라 벼슬아치는 얼마나 달라졌으려나 하고 돌아봅니다. 벼슬아치 자리에 서는 모든 이가 엉터리이거나 바보스럽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엉터리나 바보가 되어 벼슬힘을 부린다든지 뒷돈을 챙기는 이가 꽤 보일 뿐입니다. 스스로 슬기롭게 일하면서 마을살림을 넉넉히 가꾸는 길은 멀리하면서, 자리를 건사하거나 쇠밥그릇을 움켜쥐려는 이가 자꾸 보일 뿐이에요. 높은벼슬이건 낮은벼슬이건 매한가지예요. 왜 심부름꾼이 아닌 벼슬지기가 되려 하고, 감투놀음을 할까요? 오직 돈하고 힘 이 두 가지를 두고두고 거머쥐려는 뜻으로 벼슬자리를 노리고 감투다툼을 한다면 삶이 즐거울까요? ㅅㄴㄹ


…… 이 책자는 단순한 외식금지, 출퇴근엄수, 무단이석금지, 당직철저 등의 외형적 복무자세확립을 위해 쓰여진 목적보다, 조국근대화는 결코 물질의 재건만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정신의 재건이 앞서야 한다는 과제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므로, 직장훈련담당관 역시 이 점을 직시하고, 공무원의 보다 철저한 정신의 재건과 윤리관확립에 성실한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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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2.5. 모심글


어릴 적에는 ‘초청장·초대장’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나이가 제법 들어서도 이런 말씨는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부르고 싶기에 이런 글월을 주고받는구나 하고만 생각했어요. 이러다가 “모십니다”라든지 “모시는 말씀”이라 적은 초청장이나 초대장을 보았고 ‘모심글’ 같은 이름을 새로 쓸 만하다고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말일 만해요. 그러나 첫글 하나가 놀라운 씨앗 구실을 합니다. 짤막짤막 흐르는 말씨가 너른 숲이 됩니다. 드문드문 오가던 말씨가 우거진 풀빛물결이 돼요. 널뛰는 마음을 다스립니다. 차분히 가라앉도록 달랩니다. 우리 마음도, 온누리를 덮는 날씨도, 마구마구 흐르기보다는 찬찬히 철빛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온터에 아름다운 빛이 흩뿌리기를 바라요. 온나라에 따사로운 눈빛이며 손길이 번지기를 바라고요. 뒤에서 쑥덕거리지 않기를 바라지요. 몇몇이 몰래 일으키는 일이 아닌, 시원스레 트인 자리에서 너나없이 어우러지면서 슬기롭게 하루를 지으면서 일하고 놀고 쉬고 잔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리하여 사랑님을 부르는 글을 쓰고, 사랑벗을 모시려는 글월을 적습니다. ㅅㄴㄹ


모심글·모심글월·부름글·부름종이 ← 초대장, 초청장

밑글·첫글·애벌글 ← 초고(草稿)

깜빡깜빡·드문드문·짤막짤막·자꾸·틈틈이 ← 단속적

널뜀질·널뛰기 ← 조울, 조울증

바뀐날씨·궂은날씨·얄궂날씨·막날씨·널뜀날씨 ← 이상기후, 기후변동

온터·온땅·온누리·온나라 ← 세계, 세계적, 천지, 세상, 우주, 글로벌, 범세계, 범사회, 국민적, 전국

쑥덕질·몰래 만나다·몰래 사귀다 ← 밀회, 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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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2.4. 뜬널


좀 차갑거나 쌀쌀맞다 싶은 사람은 무뚝뚝하지요. 무뚝뚝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못 느낀다 싶은 사람은 무덤덤해요. 무디어요. 무덤덤하기에 제아무리 높다란 곳에 매단 뜬널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나요. 무섭다는 마음이 아니기에 하늘널을 척척 오가면서 일할 수 있으려나요. 다른 것이 없던 곳에 새롭게 세웁니다. 뚝딱거리기도 하고, 옮기기도 합니다. 차근차근 짓습니다. 이처럼 짓는 터전에는 씩씩한 숨결이 흐릅니다. 어제는 불꽃튀는 판이었다면, 오늘은 툭탁거리는 마당일 수 있고, 모레에는 티격태격할는지 몰라요. 맞서면서 자라고, 부딪히면서 큽니다. 하나하나 마주하는 동안 두 마음이 만나니 넌지시 얼크러집니다. 같은 자리에 서서 새삼스레 말을 섞어요. 영 생각한 적이 없으니 뜬금없거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어요. 익삭판이 벌어집니다. 우스우니 함께 웃으면서 넘어가요. 가볍게 웃습니다. 바람처럼 웃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잎망울처럼 웃습니다. 짧던 해는 차츰 길어지고, 한겨울에는 토막틈에 겨우 해바라기를 하며 빨래를 널었다면 봄이 가까울수록 느긋하게 햇볕을 쬐며 쉽니다. 그리고 새로운 철에 할 일을 하나하나 가다듬어요. ㅅㄴㄹ


못 느끼다·무디다·무덤덤하다·덤덤하다 ← 불감, 불감증, 무감, 무감각

뜬널·하늘널 ← 비계(飛階), 고공가설물

짓는곳·짓는터·지음터 ← 공사장, 작업실, 창작실, 공방(工房)

다투다·싸우다·치고받다·툭탁거리다·티격태격·불꽃튀다·힘겨루기·부딪히다·맞서다 ← 공방전, 공방(攻防)

얼크러지다 ← 연관, 연루, 상관, 관계, 관련, 혼란, 혼선, 복잡, 융합, 조화, 조응, 궁합, 상대, 교류, 교제, 존재

토막판·토막마당·우스개·익살·우스꽝스럽다 ← 촌극(寸劇)

짧다·토막틈·빈틈·틈·틈새 ← 촌극(寸隙), 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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