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26. 2013.10.5.

 


  큼지막한 호박을 썰어 볶음을 하고 국을 끓인다. 떡볶이떡을 불린 뒤,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한 알씩 썰어서 먼저 볶은 뒤 물을 조금 붓고 떡을 넣어 졸인다. 소금과 꿀로 간을 한다. 떡이 잘 익었다 싶을 무렵 밥을 넣어 함께 볶는다. 마무리는 마당에서 까마중을 따서 볶음밥에 얹는다. 작은아이는 서툰 젓가락질로 까마중부터 집어서 먹으려고 용을 쓴다. 아버지가 손으로 못 집어먹도록 하니 젓가락을 쓰려고 애쓰는데, 되다가 안 되다가 한다. 만만하지 않지? 그러나 재미있으리라 느껴. 네 누나도 서툰 젓가락질 흉내내려고 애쓰고 용쓰면서 오늘처럼 야무지고 씩씩하게 밥을 잘 먹는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0-07 07:30   좋아요 0 | URL
참 맛있어 보이는 영양볶음밥입니다~!!
그릇들도 예쁘고 무와 오이를 놓은 그릇에 눈이 가네요..^^
산들보라가 젓가락으로 까마중을 집어 먹으려고 애를 쓰는군요~ㅎㅎ

파란놀 2013-10-07 10:40   좋아요 0 | URL
네, 알뜰히 다 집어서 먹습니다~
아무튼 끝까지 다 먹고 싶으니까요~ ^^
 

육아일기 쓰는 마음

 


  두 아이를 모두 재우고 나서 홀로 깊이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왼쪽에 큰아이 오른쪽에 작은아이 재우느라 자장노래를 한참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다가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하나씩 꿈나라로 사뿐사뿐 접어드는 결을 조금 더 자주 느낀다. 이때에 나는 우리 옆지기가 ‘몸이며 마음이 안 아픈 사람’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본다. 몸도 마음도 튼튼한 옆지기였다면, 몸이나 마음 가운데 한쪽이 튼튼한 옆지기였으면 어떠했을까.


  모르는 노릇이지만, 옆지기가 몸이나 마음이 튼튼할 적에는 아버지가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가르치고 하지는 못했으리라 본다. 내가 게을러진다기보다 ‘우리 사회 여느 흐름’ 물살에 따라 ‘몸과 마음이 튼튼한 옆지기’가 집일이며 아이돌보기이며 거의 도맡지 않으랴 싶다. 이러면서 나는 시골살이는 꿈조차 못 꾸면서 도시에서 바깥일 맡아 돈을 버는 일에 매달려야 하지 않았으랴 싶기까지 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유아원·어린이집·유치원을 다닐 테지. 나는 아이들과 저녁에만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될 테지.


  내가 육아일기를 쓸 수 있는 까닭이 옆지기가 아픈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대목은 몹시 크구나 싶다. 또한, 옆지기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나 스스로 이모저모 살피거나 배우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느낀다. 또는 퍽 늦게 깨닫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였겠지.


  다른 한편으로, 몸이며 마음이 튼튼한 옆지기를 만났을 적에 이녁이 바깥일에 더 눈길을 두어 바깥으로 돌아다닌다면, 나로서는 오늘날과 같이 집일을 하면서 아이돌보기를 도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처음부터 깊거나 넓게 살피지 못한다. 아이한테 무엇을 먹이고, 살림살이를 어떻게 건사하며, 예방주사가 어떤 화학성분으로 이루어졌다든지, 또 아이를 낳고 세이레를 어떻게 맞이하고, 시설 아닌 집에서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어떤 넋으로 빚느냐 하는 대목을 얼마나 살필 수 있을까.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 여미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람이라 할 텐데, 오늘 내 삶은 스스로 바라면서 걸어가는 길이라 할 만하다. 집일과 아이돌보기 도맡는 사내(아버지)가 거의 없는 이 나라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랑을 물려받을 때에 아름답게 자라는가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에 걷는 길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육아일기를 쓰고 싶었기에 걷는 길이 아니라, 우리 집 두 아이가 삶과 마을과 보금자리를 고루 돌아보도록 이끌고 싶기에 걷는 길이다. 함께 일구며 함께 꾸리는 삶과 살림이지,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이 짐을 짊어지는 삶이나 살림이 아니다. 시설이나 학교에 섣불리 맡길 교육이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이룰 교육이다. 아이들은 지식이 아닌 삶을 배우면서 물려받을 때에 싱그럽게 자란다. 아이들은 학습(선행학습이건 후행학습이건)이 아닌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누릴 때에 즐겁다. 호미질을 학습시킬 수 없고, 모래밭에 그림 그리며 노는 삶을 학습시킬 수 없다.


  어머니들이 아기를 몸속에 열 달 보듬는 느낌이 더없이 즐거우며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이 땅에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으며 재우고 입히고 먹이는 느낌 또한 그지없이 즐거우며 아름답다. 아이를 씻겨 보라. 아이를 먹여 보라.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보라. 아이와 그림놀이를 하고 공놀이를 해 보라. 아이와 손을 맞잡고 마실을 다녀 보라.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녀 보라. 아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책을 읽어 주고 글을 가르쳐 보라. 하루하루 얼마나 새로우며 기쁜가. 너무 많은 사내(아버지)들이 이 기쁨과 보람과 웃음하고 동떨어진 채 지내니, 사내들도 자꾸 바보스럽게 살고, 이 나라와 사회와 마을도 아름답지 못한 쪽으로 기울어지는구나 싶다.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꼬장꼬장한 글쓰기

 


  나더러 너무 꼬장꼬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곧다”와 “꼿꼿해서 굽지 않다”를 뜻하는 낱말인 ‘꼬장꼬장하다’이다.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아서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다”를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꼬장꼬장하다’라는 낱말을 즐겁거나 반갑거나 달가운 자리에 안 쓴다. 내키지 않거나 못마땅하거나 싫은 자리에서 이 낱말을 쓴다.


  낱말뜻부터 헤아려 본다. “곧다”와 “꼿꼿하다”는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무는 곧게 자란다. 나무는 비바람에도 꼿꼿하다. 딱딱하기만 하면 비바람에 꺾인다 하는데, 나무는 비바람에 좀처럼 안 꺾인다. 왜냐하면, 비바람이 불면 나무는 흔들흔들 춤을 춘다. 비바람 세기에 따라 나무가 흔들거리는 세기가 더 크다. 아주 커다란 바람이 불 적에 마당에서 우리 집 후박나무 줄기를 만진 적 있는데 어찌나 크게 흔들거리는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흔들거려 주어야 나무가 꺾이지 않는다.


  풀은 비바람에도 눕기만 할 뿐 꺾이거나 안 쓰러진다고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뿌리가 얕게 되고 만 나무는 비바람에 뿌리가 뽑히는데, 여느 때에는 이렇게 뽑힐 일이 없다. 사람들이 나무 둘레 흙을 망가뜨리거나 건드렸기 때문에 나무가 비바람에 뿌리를 뽑힌다. 그러면, 풀은? 비바람이 드세면 나무는 흔들거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풀은 드러누운 채 못 일어난다. 오히려 풀이 뿌리가 뽑혀 쓰러지기까지 한다. 풀에서 꽃대가 올라 꽃을 피우려 하면 모조리 비바람에 쓰러지곤 한다. 유채풀도 모시풀도 고들빼기풀도 쑥풀도 꽃대가 올라 한창 꽃을 피울 무렵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예 드러누워 못 일어난다.


  ‘꼬장꼬장하다’ 셋째 낱말뜻을 헤아린다. 셋째 낱말뜻에는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안 듣는다”가 나오는데,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다”도 나란히 나온다. 곰곰이 생각한다. 누군가 나더러 꼬장꼬장하다고 얘기한다면, 내 마음씨가 곧고 착하며 맑다는 뜻이 된다. 그런가? 곧고 착하며 맑은 마음씨라면 ‘아름다움’이다. 몹시 남우세스러운 이름이다. 부끄러우면서 즐거운 이름이다. 그런데, 곧고 착하며 맑은 사람이 왜 “다른 사람 말을 좀처럼 안 들으려” 할까? 너무 마땅하다고 느끼는데, 곧은 일이 아니고 착한 일이 아니며 맑은 일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수 없”다. 이를테면, 4대강사업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국가보안법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핵발전소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끝 간 데 모르고 치닫는 아파트짓기와 고속도로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골프장과 먹는샘물 공장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연예인들이 서로 호박씨 까는 이야기로 그득하고, 정치꾼 부질없는 이야기로 가득한 방송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농약과 비료를 엄청나게 쏟아붓는 농사짓기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교육 아닌 입시지옥으로 아이들 목을 조르는 초·중·고등학교 제도권학교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써서 만드는 예방주사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말이라면 얼마든지 듣는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 아름답지 못한 말을 왜 들어야 할까. 아름답지 못한 짓을 왜 따라야 할까. 낯선 나라 사람들을 갑자기 적군으로 삼아 총을 쏘아 죽이라고 하면, 전쟁이 터졌으니 이웃나라 사람들 죽이라고 시킨다면, 이런 짓을 고분고분 따라야 할까. 따를 수 없고, 마땅히 안 따라야 한다고 느낀다. 이런 모습을 두고 ‘꼬장꼬장하다’고 한다면, 국가보안법에 손사래를 치고 농약농사와 4대강사업에 고개를 젓는 일이 ‘꼬장꼬장하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이 모습대로 살아가리라.


  나는 아무 말이나 안 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이란 바로 내 넋이요 내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아무것이나 함부로 먹일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이 일본 핵발전소 뒤탈 때문에 바닷것이나 일본에서 나온 것은 안 먹인다고 하는데, 그러면 한국에서 농약 옴팡지게 뿌린 먹을거리는 ‘괜찮다’고 여겨도 되겠는가? 방사능은 걱정이 되고 농약은 걱정이 안 되는가? 항생제와 화학약품은 걱정스럽지 않은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할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사람답지 못하게 한국말을 망가뜨리는 누군가 있으면, 이들이 망가뜨린 말을 찬찬히 보듬어 되살려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 글 바로쓰기’라든지 ‘우리 말 살려쓰기’를 말하고야 만다. 바로잡아야 할 글은 바로잡고, 살려써야 할 말은 살려쓴다.


  국가보안법이나 4대강사업이 왜 말썽거리요, 시화못 더럽힌 짓이 왜 끔찍한가를 깨닫자면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자료 저런 글 그런 모습을 본대서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을 해서’ 옳고 그르며 바르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와 말하기에서도 이와 같다. ‘생각을 해서’ 말과 글을 바르고 알맞으며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


  말을 엉터리로 쓰고 글을 터무니없이 쓰는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야’ 말도 글도 삶도 아름다운 길로 접어든다.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정치나 사회나 노동이나 경제에서 잘못된 대목을 바로잡으려고 이야기할 적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올바로 쓰거나 아름답게 쓰도록 이야기할 적에는 고개를 돌린다. ‘생각을 하기’가 귀찮을까. 말과 글 이야기까지 생각하기는 힘들까.


  우리 말과 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꼬장꼬장’하니까 듣기 싫을까. 그러면, 정치비평이나 사회비평이나 노동비평을 하는 사람들은 ‘안 꼬장꼬장’한가?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글 읽기
2013.10.5. 큰아이―한글 쓰는 몸가짐

 


  벽에 한글을 적어서 붙이기는 했지만, 아이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 과자상자를 잘라 뒤쪽에 한글을 세 가지로 적는다. 아이더러 공책을 가져오라 해서 글씨를 보고 소리를 내어 천천히 적으라고 얘기한다. 아이는 처음에 옹크린 채 글씨쓰기를 하다가, 이내 모로 엎드린다. 엎드려서 글씨쓰기를 해도 참 재미나게 엎드리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아이 46. 2013.10.5.

 


  큰아이가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준다. 아직 한글을 다 모르면서 그림책을 읽어 준다. 상냥한 말씨로 조곤조곤 읽어 준다. 그림을 보며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예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읽어 준 말을 떠올리며 아이 나름대로 요모조모 이야기를 꾸민다. 아이가 글을 깨쳐서 글을 보고 읽어 주어도 재미있을 테지만, 이렇게 그림만 보며 그림에서 이야기를 헤아려 동생한테 읽어 줄 적에도 재미있다고 느낀다. 나도 아이들한테 그림책 글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책을 읽어 주기도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