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27] 가을 더위
― 들사람 살찌우는 하늘

 


  여름이 저물 무렵 ‘가을이 없이 겨울이 다가오나’ 하고 느낄 만큼 바람이 선선했습니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은 이내 가시고 따스한 바람이 불더니, 어느덧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을 더위가 됩니다.


  도시는 어떤 햇볕일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에서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면서 가을걷이 마친 나락을 알뜰히 말려 줍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비지땀을 흠뻑 쏟게 합니다. 덥다 싶도록 내리쬐는 햇볕이니, 가을부터 조용히 쉬며 겨울나기를 해야 할 풀이 새로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을에 더위일까, 가을 더위라는 이름이 맞을까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이 햇볕은 겨울을 앞두고 겨울맞이 집일과 들일을 바지런히 마치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들사람한테 내려주는 고운 선물이 아니랴 싶어요.


  햇볕에 기대어 논을 일구니 나락이 무르익습니다. 햇볕을 바라며 나락을 베어 길바닥에 말리니 나락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빨래도 잘 마르고 이불도 잘 마릅니다. 들일을 쉬며 나무그늘에 앉으면 산들바람 시원하게 훅 지나갑니다.


  아마 먼먼 옛날부터 가을철에 후끈후끈 따사로운 볕이 드리웠겠지요. 들사람도 들짐승도 모두 즐거이 가을날 누리면서 겨울날 씩씩하게 맞아들이라면서, 가을볕 새삼스럽게 빛났겠지요.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살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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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10.4. 작은아이―다 그렸어요

 


  이제 작은아이도 그림놀이에 발을 디디는가. 금만 죽죽 긋던 흐름에서 살며시 벗어나 무언가 동글뱅이를 그리는 티가 난다. 서른 달째 살아가는 아이다운 그림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그리고 나서 문턱에 척 올라서더니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다 그렸어요!” 하고 외친다. 꼭 제 누나가 하듯 몸짓도 말짓도 똑같이 따라한다. 그림을 척 보여주고 나서 돌돌 말더니 아버지한테 가져와서 들이민다. “자, 가져요.” 네 그림도 벽에 붙이라고? 글쎄, 벽이 붙일까? 파일에 꽂아 건사할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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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3-10-07 12:32   좋아요 0 | URL
어머머, 이뻐라~^^
사금벼리 얼굴 속에, 누나 산들보라의 얼굴도 님의 얼굴도 들어있네요, ㅋ~.
(엄마 얼굴은 몬 봐서 뭐라고 못하는...ㅋ~.)

특히 세번째 사진 속 살짜쿵~ 미소, 넘 좋네요.
어느 아인들 비껴가겠냐마는 완.소. 사금벼리예요, ㅋ~.

파란놀 2013-10-07 14:56   좋아요 0 | URL
작은아이는 산들보라이고
큰아이는 사름벼리예요 ^^;;

아무튼, 아이들은 참으로 재미나고 즐겁게 잘 놀아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 이한우 편 재미마주 어린이 미술관 1
원동은 글, 이한우 그림 / 재미마주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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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2

 


내가 사는 마을
― 나의 살던 고향은
 이한우 그림
 원동은 글
 재미마주 펴냄, 2011.11.5. 13000원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참새가 놀러옵니다. 대청마루에서 놀던 아이들이 “와, 저기 봐. 참새야.” 하고 말할 적에 설마 참새가 제비집으로 깃들며 놀까 싶었는데, 참말 참새였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제도, 참새 몇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을 들락거립니다.


  마을 참새들은 우리 집에서 여러 가지 먹이를 얻습니다. 먼저 나무열매를 얻습니다.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에 아직 열매가 남았는지 살핍니다. 몽글몽글 돋는 보드라운 잎사귀를 쪼아먹을는지도 몰라요. 다음으로 초피나무에 앉아 초피열매를 먹습니다. 이렇게 나무열매를 찾으면서 나무에 깃든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새들은 우리 집 풀벌레도 잡아서 먹으리라 생각해요. 마을에서 우리 집만 농약을 안 치니 우리 집 둘레는 풀밭을 이루고, 풀밭에서는 내도록 노래잔치 이루어집니다.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드문드문 개구리 노랫소리 섞입니다. 참개구리는 참개구리대로 노래를 하고, 풀개구리는 풀개구리대로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글씨쓰기를 하거나 그림그리기를 하는 동안에도 노래를 듣습니다. 풀벌레와 새들도 노래를 하지만, 바람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은 풀잎과 나뭇잎을 살랑이며 노래를 부르는데, 조용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구름 흐르는 결에 따라 햇볕이 내리쬐는 결을 같이 느낍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다른 빛과 볕이 드리웁니다. 새벽과 저녁과 밤마다 다른 별빛이 감돕니다. 별똥이 떨어질 적에는 휙 하고 하얀 빛꼬리 나타나는데, 저 먼 데에서 울리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곤 합니다.


  아침에 이슬이 맺히고, 저녁에 촉촉한 바람이 붑니다. 가을입니다. 아침노을이 여름과 달리 새삼스럽고, 저녁노을이 겨울을 앞두며 싱그럽습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집 앞에 작은 섬 하나 똑딱선 두 척 텃밭을 지나 집이 세 채, 그리고 사철 환한 햇볕이 드는 먼 남쪽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

 

 


  마을 빨래터에는 여름까지 푸른 물이끼 꼈습니다. 여름이 지나며 빨래터에 물이끼 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이나 물 긷는 사람이 없기에 흙과 먼지가 뽀얗게 쌓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보름이나 한 달에 한 차례쯤 빨래터를 치웁니다. 아이들은 물놀이 한다며 좋아하고, 나는 시원한 물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구니 재미있습니다.


  어느새 마을 빨래터 배롱나무는 꽃이 거의 다 집니다. 도시에서는 ‘백일홍’이나 ‘목 백일홍’이라 말하지만, 시골에서는 ‘배롱나무’라 하고, 때로는 ‘간지럼나무’라 합니다. 시골사람은 ‘배롱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식물학을 하던 학자가 붙인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시골에서는 안 씁니다. 시골사람은 ‘코딱지나물’이라고 가리킵니다. 서울 표준말로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부추·쇠뜨기·미나리라 일컫지만, 시골마다 이들 풀을 가리키는 이름은 모두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고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삶터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 말이 다릅니다.


  시골마을마다 말이 다를 뿐 아니라 물맛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들이 다르고 숲이 다르며 골짝이 달라요. 마을마다 나무가 다르고 풀이 다르며, 숲과 들에 깃드는 새와 벌레가 달라요. 이러한 결에 따라 바람맛도 다릅니다.


  이 마을은 이 마을대로 예쁩니다. 저 마을은 저 마을대로 곱습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 마을대로 사랑스럽고 이웃 여러 마을은 이웃한 마을대로 살갑습니다.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들어요. 우리 집에서는 우리 이야기가 소근소근 자랍니다. 이웃에서는 이웃 이야기가 조롱조롱 자랍니다. 서로서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거운 날에는 잔치를 엽니다. 함께 노래하고 같이 춤을 추어요. 맛난 밥을 함께 차려서 즐기고, 밭고랑에 나란히 쪼그려앉아 지난날 겪고 들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눕니다.


.. 어릴 적 때묻지 않은 우리들의 고향은 언제나 꿈과 마음 속에만 살아 있을 뿐,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는 고향은 두루미가 날고 꽃사슴이 뛰놀고, 머언 옛날에나 있었다는 ..

 

 


  이한우 님 그림에 원동은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재미마주,2011)을 봅니다. 유화를 그리는 이한우 님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신다고 해요. 그래, 이 그림책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구태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원수 님 동요 〈고향의 봄〉 첫마디를 애써 따서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원수 님은 이녁 동요 〈고향의 봄〉 첫머리를 “나의 살던 고향은”이 아닌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녁이 이렇게 고쳐써야 하는 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서, 사람들이 온통 ‘나의’로 익숙하니 참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이한우 님 그림은 아이들이 보도록 그린 그림은 아닙니다. 재미마주 출판사에서 원동은 님 글과 함께 엮으며 그림책을 빚기에,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새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일이에요. 어른들한테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말마디가 익숙할 테지만, 아이들은 아직 몰라요. 아이들은 이제 막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즐기려 합니다. 이 아이들 앞에 선물처럼 내놓으며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때에 곱게 빛날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어떤 ‘말’과 ‘그림’을 물려받으면서 날마다 신나게 놀고 새롭게 놀며 씩씩하게 놀 적에 튼튼하게 자랄까요.


  한참 《나의 살던 고향은》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에 나오는 논밭이 너무 ‘경지정리 잘 된 모습’이라서 살짝 아쉽습니다. 풀로 지붕을 잇던 지난날에는 논과 밭이 이렇게 반듯반듯하지 않았을 텐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뚜렷한 우리 나라를 헤아린다면, 우리 시골마을 들빛과 숲빛과 마을빛이 알록달록 노르스름 불그스름한 빛깔뿐 아니라 짙푸른 빛깔, 새하얀 빛깔, 누르스름한 사이사이 푸르게 새잎 돋는 빛깔 골고루 있으면 더 나을 텐데요. 이 그림책에는 봄도 여름도 겨울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을만 있구나 싶어요.


  그러나, 가을만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할 수 있지요. 가을빛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냇물과 골짝과 바다와 들판을 춤출 수 있어요. 이야기가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진 채 구경하는 그림이 아닌, 아이들이 바로 오늘 기쁘게 뛰노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은 시골마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이든 어른들이 그리는 예전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 시골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밝게 노래하는 예쁜 삶터를 새롭게 그리면 됩니다. 오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오늘 도시에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둥실둥실 춤추고 맑게 노래하는 고운 동네를 싱그럽게 그리면 됩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마을이 바로 고향입니다. 태어난 곳만 고향이 아니라, 사랑과 꿈을 심으며 살아가는 곳이 어디나 고향이 됩니다. 아이들이 눈망울을 빛내고 가벼운 몸짓으로 날갯짓을 하듯 춤추며 노는 곳이라면 어디나 고향입니다.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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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묶은 책

 


  옛날에 나온 책은 실로 묶었다. 옛날에 나온 책은 오래되어도 종이가 쉬 삭지 않는다. 옛날에 나온 책은 그리 두툼하지 않아도 부피가 있으면서 무겁지 않았으며, 손에 쥐면 느낌이 보드랍다. 참말 나무에서 얻은 종이로 만든 책인 줄 느낄 수 있는 옛책이다.


  오늘날에 나오는 책은 본드를 바른다. 산성종이를 쓴다. 쉬 빛이 바래며, 쉬 누렇게 뜬다. 오늘날에 나오는 책은 앞으로 서른 해나 쉰 해쯤 지나고 나면, 종이가 바스라지거나 부스러질는지 모른다.

 

  책은 껍데기 아닌 알맹이를 읽는다. 제아무리 아름다우며 좋은 종이를 써서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이 아름다우며 좋은 종이에 얼토당토않거나 어수룩한 이야기를 실으면, 책이 책답지 못하다. 껍데기는 책 꼴이라 하더라도 속살은 책하고 동떨어질 수 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책이라 하더라도, 그러니까 비록 본드로 바르고 디자인이나 제본이 좀 어수룩하더라도, 속에 담은 이야기가 알차며 아름답다면, 책 꼴은 아쉽지만 그예 책다운 책이라 말할 만하다. 겉보기로 살피면 오늘날 책으로는 나무결이나 나무내음 맡기 어렵다 하지만, 속살을 살피면서 ‘그래, 책은 참 책이로구나. 책은 나무에서 왔구나.’ 하고 헤아릴 만하다.


  겉과 속이 모두 알차다면 가장 훌륭하면서 아름답겠지. 그런데, 겉모습까지 아름답게 꾸미려는 책은 십만 권이나 백만 권 한꺼번에 만들지 못한다. 백 권 천 권 천천히 만들어 천천히 읽히고 천천히 나눌 수 있기에 훌륭하면서 아름다운 책이다.


  아름드리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나날이 걸리는가. 아름드리나무처럼 ‘아름드리책’이 되자면, 하루이틀 아닌 한 해 두 해 아닌 열 해 스무 해 아닌, 백 해나 이백 해를 헤아려야지 싶다. 백 해를 내다보며 쓴 글과 이백 해를 아우르며 그린 그림과 삼백 해를 돌아보며 찍은 사진으로 빚은 책일 때에, 더없이 아름다운 책이로구나 하고 말할 만하리라 느낀다.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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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66) 파국적 1 : 파국적으로 파괴되었을

 

내가 염려하고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수증기폭발이 일어나서 압력용기와 격납용기 모두 파국적으로 파괴되었을 경우
《고이데 히로아키/고노 다이스케-원자력의 거짓말》(녹색평론사,2012) 71쪽

 

  “염려(念慮)하고 있는”은 “걱정하는”으로 다듬고, “최악(最惡)의 시나리오(scenario)인”은 “가장 나쁜 일인”이나 “가장 끔찍한 일인”으로 다듬습니다. “수증기폭발(-暴發)이 일어나서”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수증기가 터져서”로 손보면 한결 나아요. “파괴(破壞)되었을 경우(境遇)”는 “부서졌을 때”나 “망가졌을 때”로 손질합니다.


  ‘파국적(破局的)’은 “일이나 사태가 잘못되어 결딴이 나는 판국의 성격을 띤”을 뜻하는 한자말이고, “파국적 상황을 맞다”나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파국적인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같은 보기글이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그런데 한자말 ‘파국·파국적’을 풀이하면서 한국말 ‘결딴’을 씁니다. 한국말 ‘결딴’은 “(1) 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게 된 상태 (2) 살림이 망하여 거덜 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해요. 그러니까, ‘파국’뿐 아니라 ‘파탄(破綻)’이나 ‘파산(破産)’ 같은 한자말도 ‘결딴’이라는 한국말로 가리킬 만합니다. 아니,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결딴’이라는 한국말로 ‘파국·파탄·파산’을 가리키며 살아왔겠지요.

 

 파국적으로 파괴되었을 경우
→ 결딴났을 때
→ 끔찍하게 부서졌을 때
→ 손 쓸 수 없도록 망가졌을 때
→ 돌이킬 수 없도록 부서졌을 때
→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졌을 때
 …

 

  국어사전에 실린 한자말 풀이를 살피다가 한국말을 배우곤 합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한자말이란 지식인과 권력자와 공무원이 쓰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한자말 뜻풀이에 나오는 한국말이란 지식인도 권력자도 공무원도 아닌 여느 시골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사랑스레 쓰면서 즐겁게 주고받을 말은 어떠한 모습일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들이 이웃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나눌 말은 어떠한 빛과 결일 적에 아름다울까요. 학문하며 쓰는 말이나 전문가들 쓰는 말이 여느 사람 눈높이와 삶자리로 다가올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0.7.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ㄱ. 내가 걱정하는 가장 나쁜 일인 수증기가 터져 압력용기와 격납용기 모두 결딴났을 때
ㄴ. 끔찍하게도 수증기가 터져 압력용기와 격납용기 모두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졌을 때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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