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나비 책읽기

 


  노랑나비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노랑나비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막상 노랑나비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는데, 이제 드디어 찍는다. 하양나비도 노랑나비도 참 바지런히 날갯짓을 하며 다닌다. 다른 나비는 꽃송이에 살그마니 내려앉아 차분히 꿀이나 꽃가루 빨아먹는데, 왜 노랑나비는 이다지도 날갯짓만 많이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랑나비와 하양나비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을 무섭다고 여겨 퍽 멀리 떨어진 데에서도 알아차리고는 내빼려고 날갯짓을 할 테지. 사람들은 노랑나비와 하양나비가 애벌레일 적에 푸성귀 잎사귀를 짓궂게 갉아먹는다고 몹시 싫어하잖은가. 이 기운을 나비가 된 뒤에도 몸으로 느껴 사람 앞에서 사진 찍히기를 꺼리는 셈 아닌가 하고 느낀다.


  노랑나비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풀밭은 너희가 홀가분하게 자라는 터전이잖아. 우리 집 풀밭에서 어느 풀이든 너희 마음껏 갉아먹으며 애벌레로 자랐잖니. 우리 집 풀밭에서 흐드러지는 온갖 들꽃에 너희가 사뿐사뿐 내려앉아 꿀이랑 꽃가루 배불리 먹을 수 있잖니. 그래도 사진으로 찍히기 싫니?


  그래, 너희가 바라지 않는다면 찍히지 않아도 돼. 나는 너희들을 날마다 마주하고 언제나 지켜보니까. 내 눈과 마음에 너희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단다. 가을철에도 따스하고 아늑한 시골마을 실컷 누리렴.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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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찌의 육아일기 - 대한민국에서 할아버지로 사는 즐거움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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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1

 


육아관찰 푸념일기
―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글
 터치아트 펴냄, 2013.5.20. 13000원

 


  이레 즈음 목과 코가 몹시 아팠습니다. 콧물이 멈추지 않고,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그렇지만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과 마실을 다닙니다. 밤에 아이들 자리에 눕혀 자장노래 부르려 하는데, 코와 목이 아프면서 콧물이 안 그치고 또 코로 숨을 쉬기 어렵다 보니, 겨우 몸을 추슬러 노래 한 가락 부른 뒤 밖으로 나와 코를 풀고 목을 추스르고는, 다시 들어와서 노래 한 가락 부른 뒤 밖으로 나와 코를 풀고 목을 추스릅니다.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몸을 느낄까요. 느낄 테지요.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아버지처럼 코로 제대로 숨을 못 쉬어서 날이면 날마다 코로 소금물 넣으며 뚫어 주었어요. 이제 큰아이는 아버지처럼 코로 숨을 못 쉬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맺히도록 뛰노니, 아이들은 코도 목도 몸도 천천히 튼튼해지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저녁에 코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던 며칠 앞서, 깊은 밤에 마당으로 나와 별바라기를 하며 코를 풀다가 별똥을 보았어요. 이듬날 밤에도 또 코가 막혀 괴롭게 재채기를 하다가 별똥을 보았어요. 별똥이 사라지기 앞서 마음속으로 꿈을 하나 빌라 했지만, 그럴 겨를은 없어, 별꼬리 가늘게 사라지는 모습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부디 이 코로 맑은 숨 걱정없이 쉬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노래부를 수 있는 삶 찾게 해 주소서, 하고 생각합니다. 밤하늘 그득 채운 별을 바라보면서 기지개를 켜고, 너희 아버지 새로 기운을 차려 밥도 한결 맛나게 차리고, 노래도 더 신나게 부르마 하고 다짐합니다.


  엊저녁 드디어 코가 조금 뚫립니다. 코가 뚫리니 코로 숨을 쉴 수 있고,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목떨림 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보드랍고 차분하게 부르는 아버지 노래를 듣는 두 아이는 한두 가락 같이 따라 부르는가 싶더니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이불깃 여미고 토닥토닥하면서 노래를 몇 가락 더 부르고는 나도 눈을 감습니다.


[2012.1.25.] 딸아이의 출산휴가 1년이 마침내 끝났다. 덕분에 요즘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천사를 영접하게 되었다.
[2012.3.5.] 재영이가 밥을 삼키지 않고 입에 물고만 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내고 오더니 나쁜 버릇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고 아내는 걱정했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면 생기는 버릇이란다.
[2012.3.10.] 운동화가 낡아 예쁜 걸로 한 켤레 사고 싶다며 백화점에 갔던 아내가 자기 운동화는 안 사고 외손자 운동화와 원숭이 인형만 달랑 사들고 돌아와서는 자기 물건 산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들풀 뜯어 날푸성귀로 먹기 즐기면, 아이들도 날푸성귀를 즐깁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함께 풀을 뜯습니다. 어버이가 밭에서 돌을 고르고 일구어 씨앗을 심어 돌보면, 아이들도 밭둑에 나란히 쪼그려앉아서 돌을 고르다가는 씨앗도 심고 풀도 뜯습니다. 어버이가 자전거를 타며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면, 아이들도 자전거를 얼른 타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저희끼리 놀 적에도 콧노래 흥얼흥얼 즐겁습니다.


  크레파스를 사고 크레용을 사며 색연필을 삽니다. 종이를 넉넉히 장만합니다. 따로 아이들을 불러서 그림을 함께 그리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스스로 그림을 즐깁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꿈이나 사랑을 이야기 한 타래로 엮어 갈무리하고 싶을 적에 스스럼없이 크레파스나 크레용이나 색연필을 꺼내고 종이를 펼칩니다.


  이렇게 어버이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즐기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버이 곁에 엎드립니다. “나도, 나도, 나도 그림 그릴래!” 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이윽고 어버이가 마음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다 그립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많이 어려 다른 놀이로 갈아타지만, 큰아이는 어느새 그림놀이에 푹 빠집니다.


  아이들이 못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일’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몸을 써서 움직이는 모든 삶을 반깁니다. 아이들은 ‘심부름’이라고도 여기지 않습니다. 몸이 쑥쑥 자라니 즐겁고, 팔과 다리에 힘이 차츰 붙으니 신납니다.


  우리 어른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처음부터 익숙하게 해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 쉰이나 예순이나 일흔부터 새롭게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처음에만 낯설 뿐, 이내 익숙하게 해요. 나이 예순이나 일흔부터 자전거를 타더라도, 차츰 새 힘살이 붙어요. 나이 일흔이나 여든부터 책을 읽더라도 차츰 머리에 새 빛이 감돕니다.


  아이만 배우지 않아요. 어른도 배웁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동안’ 배워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과 숨결(짐승과 푸나무와 벌레들도 함께)은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죽으려 하는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2012.3.22.] 돌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영이가 이 노래를 알아듣거나 따라 부를 수는 없지만,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일인가.
[2012.3.24.] 오늘 아침도 녀석과의 실랑이로 신경이 바짝 곤두선 아내가 나한테 화풀이하듯 나물들을 몇 가지 무쳐 놓았으니 밥은 알아서 좀 먹으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울화통을 터트리며 밥상을 번쩍 들어 마당으로 내던져버렸을 텐데, 요즘은 던질 밥상도 없고 마당도 없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외손자 때문에 마음고생이 너무 심한데다 지금 내 처지가 4순위라는 것.
[2012.4.11.] 지금까지 여당이 해온 짓거리가 하나도 마음에 안 들었고 여당 후보자로 나온 인물은 더욱 혐오스럽지만 눈물을 삼키고 새누리당과 그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여당보다는 야당들이 하는 짓거리가 더 마음에 안 들고 더 혐오스럽기 때문이었다.


  번역 일을 하는 이창식 님이 이녁 딸아이가 시집가서 낳은 아이를 옆지기(외할머니)와 함께 돌보는 이야기를 갈무리한 《하찌의 육아일기》(터치아트,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창식 님은 ‘육아일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늦깎이에 어린 아이하고 삶을 함께 보내니, 이 이야기를 일기로 남기면서 어느새 ‘육아일기’가 되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하찌의 육아일기》를 읽다 보면, 할아버지(하찌) 이창식 님이 외손자를 돌보거나 보살피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종이기저귀 갈아 주고 밑을 씻기는 일, 플라스틱 자동차에 태워 몇 바퀴 돌리다가 자장노래 불러 주는 일, 가끔 놀이터로 데려가 한 시간 즈음 지켜보는 일, 이 세 가지를 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외손자하고 놀이터도 자주 다니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아이(외손자)한테 밥을 먹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밥을 차릴 줄 모릅니다. 아마 설거지도 못 할 테지요. 설거지 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글로 안 썼으니, 설거지를 모른다고 해야 옳다고 느껴요. 《하찌의 육아일기》를 보면, ‘마누라 밥상 차리는 꼴이 못마땅해서 밥상을 뒤엎고 싶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적습니다. 아마 이녁이 젊을 적에는 참말 밥상을 뒤엎으며 거친 말을 내뱉았으리라 봅니다. 나이가 들어 이렇게 못 할 뿐이라는 푸념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2012.5.8.] 아내가 나더러 요리 학원엘 다니란다. 자기는 외손자 녀석 먹거리 장만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진이 빠져 남편 먹을 것까지 챙겨 줄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자기가 날 먹여 살렸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요리를 배워 자기를 좀 먹여 살려 주면 얼마나 고마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듣기에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막상 생각해 보니 좀 한심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와서 드시라고 해도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면 사양하고 안 갈 판인데,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요리 학원을 다니라고? 차라리 사먹고 말자고 했더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쩜 그렇게도 없느냐고 타박했다. 기가 찼다.
[2012.5.10.] 젓가락으로 인절미를 떼어내어 콩고물에 찍어 입안에 넣자 목구멍이 갑자기 콱 막히며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만년에 이런 푸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져 식탁을 확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2012.5.26.] 저녁에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쉬는 날에 혼자서 재영이를 돌보며 집안 청소와 소소한 일들을 하느라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집사람이 듣고 있다가 “네 새끼 내가 키워 주고, 김치랑 반찬이랑 국이랑 다 제공하고, 재영이 먹을 것까지 다 챙겨 주는데도 힘들다고 푸념하냐?”며 타박했다.


  《하찌의 육아일기》는 참말 ‘할아버지 육아일기’가 맞을까요? 육아일기 아닌 ‘육아관찰일기’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한 걸음 나아가, 육아관찰일기조차 아닌 ‘육아관찰 푸념일기’라고 해야 꼭 들어맞지 않을까요?


  이 책 《하찌의 육아일기》는 할아버지 이창식 님이 이녁 모습과 생각을 거의 안 숨기고 잘 드러냅니다. 이 대목은 훌륭합니다. 밥상을 뒤엎고 싶다는 생각, 또 마누라한테 큰소리를 내며 부부싸움을 한 모습, 예순 넘어서 요리학원 다니라는 말에 성을 벌컥 낸 모습, 이런 이야기와 저런 모습을 감추지 않았기에, 오늘날 남자 지식인과 남자 어른(할아버지) 생각과 삶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왜 ‘여자가 차려 주는 밥’만 먹으려 할까요. 여자(할머니)가 이녁보다 먼저 숨을 거두거나 그만 허리가 다쳐 일어서지 못할 적에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요. 집안에 있는 여자가 몸이 아프거나 다쳐서 꼼짝을 못하면 집안에 있는 여자를 내팽개칠 생각일까요. 스스로 밥도 못 하고 죽도 못 끓인다면, 스스로 살림을 돌보지 않고 여자한테만 도맡긴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가만히 보면, 이창식 님 딸아이는 이런 ‘아버지 모습’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이창식 님 사위도 이와 같은 ‘아버지 모습’으로 아이를 마주할는지 모릅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내고 오더니 나쁜 버릇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고 아내는 걱정했다(3월 5일 일기)” 같은 말을 읽으며 헤아립니다. 외손자는 정작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받는다기보다 외롭게 크는구나 싶기까지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와서 자꾸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지요. 제대로 사랑을 받고 싶어 외손자가 자꾸 앙탈을 부리고 밥을 뱉고 법석을 떨지요.


  다 까닭이 있어요. 아이는 이렇게 드러낼밖에 없어요. 두 돌도 안 된 갓난쟁이와 같은 아기가 어떻게 제 마음을 밝히겠어요. 어른과 같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이 어린 아기가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제 마음을 보여주겠어요. 도리질을 치고 울고 밥 안 먹고 심통을 부리는 모습으로 말을 합니다. 아이들 말은 ‘어른처럼 입으로 읊는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말’이고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아이 눈높이에 맞출 뿐 아니라 아이 마음결과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 말을 아이 눈높이로 알아채고, 아이 마음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느껴야 합니다.


[2012.12.26.] 무언가 표현은 하고 싶은데 말이 되지 않으니까 외계인 언어를 마구 지껄여대는데, 거의 소움 수준이다. 오늘도 하도 잘난 척 때때거리기에 내가 “오냐 그래, 니 똥 굵다!” 해 버렸더니, 녀석이 그 다음부터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굴따! 굴따! 굴따!” 하며 깔깔거렸다. 듣고 있던 아내가 이제 말 배우기 시작하는 외손자한테 잘 가르친다 하며, “재영아, 하찌랑 같이 놀지 마.”라고 말했다. 녀석이 ‘굵다’는 말의 뜻을 벌써 알아차렸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명색 문학을 한다는 외할아버지가 외손자한테 그런 식의 언어 교육을 한다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야말로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가 아닌가.


  아이가 하는 말은 ‘외계인 말’이 아닙니다. 아이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할아버지가 ‘소음’으로 여긴다면, 아이는 너무 가엾습니다. 아이 마음에 할아버지는 무엇을 그려 넣는가요. 아이 마음에 할아버지뿐 아니라,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는 날마다 무엇을 그려 넣는가요.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가 ‘휴가를 즐기려’고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극장에 영화 보러 가려’고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며, ‘휴일에 집에서 느긋하게 쉬겠다’며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는 이야기가 《하찌의 육아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한테 몹시 궁금합니다. 두 분은 아이를 왜 낳았을까요? 두 분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려는 마음이 있기에 아이를 낳았는가요? 아이한테 모든 것을 바치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어느 만큼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는 아름다운 삶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지 궁금해요.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하찌의 육아일기》 첫머리에 “딸아이의 출산휴가 1년이 마침내 끝났다. 덕분에 요즘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천사를 영접하게 되었다(1월 25일 일기)” 하고 적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녁 외손자를 ‘천사’가 아닌 ‘(할머니) 남편 사랑을 빼앗는 적’으로 여길 뿐 아니라 ‘떼쟁이’와 ‘괘씸이’로 삼다가는, 마지막에 이르러 ‘외계인’으로 바라봅니다.


  이창식 님한테 한 가지 바라고 싶습니다. 이녁 외손자와 함께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알프스 멧자락에서 혼자 살아가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갑작스레 외손자를 떠맡아야 했을 때에 어떻게 스스로 삶을 바꾸었는지를 만화영화로, 또 원작소설로 읽어내시기를 바랍니다.


  밥하기와 빨래하기와 청소하기와 살림하기와 아이돌보기는 ‘여자(어머니·며느리·할머니)’가 도맡아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밥과 빨래와 청소와 살림과 아이는 모두 ‘삶’입니다. 이녁 딸아이도 사위도 스스로 즐겁게 맡아서 함께 할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삶입니다. 진수성찬 받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진수성찬을 차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외손자한테서 사랑받기를 바란다면 참으로 외손자한테 따스하며 너른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이 옆지기한테서 고운 사랑을 받고 싶다면, 먼저 이창식 님 스스로 이녁 옆지기를 곱게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마땅합니다.


  밥상을 뒤엎는 짓은 자랑이 아닙니다. 밥상을 뒤엎는 짓이란 바보도 안 하는 짓입니다. 외손자 앞에서 밥상을 엎어 보셔요. 얼마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요. 외손자 앞에서 할머니를 마구 꾸짖거나 거친 말을 뱉어 보셔요. 얼마나 재미난 일이 생길까요. 쓸쓸합니다.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읽기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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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별꽃 (2013.10.4.)

 


  빗방울꽃과 나뭇잎꽃에 이어 별꽃을 그린다. 별꽃을 그리며 생각한다. 이 그림 받는 분들 마음속에 별빛이 흐르고 별내음이 감돌며 우리 지구별과 이웃 뭇별 사랑하며 아끼는 넋이 싹튼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꾼다. 이와 함께, 우리 도서관 살림살이 나아지면서 달마다 도서관소식지와 1인잡지를 씩씩하게 내놓아 우체국마실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날까 하고 꿈꾼다. 내 사랑과 꿈을 담뿍 담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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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8 15:12   좋아요 0 | URL
달마다 도서관소식지와 1인잡지 내놓으시고
재미나게 우체국마실, 다니시리라 꼭 믿습니다~!!

파란놀 2013-10-08 17:02   좋아요 0 | URL
네, 모두모두 곧 즐겁게 빚고 엮고 나누면서
자전거마실 홀가분하게 되리라 믿어요~ ^^
 

[시로 읽는 책 60] 나락 익는 냄새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늙은 시인도 어린 아이도
  함께 가을볕 쬐면서 나락 익는 냄새 맡으면.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나락 익는 고소한 냄새 느긋하게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사람은 나날이 나락내음이나 풀내음보다는 농약내음과 비료내음에 길듭니다. 도시사람은 나날이 시골하고 등지면서 나락이 익건 풀에 꽃이 맺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늙어 허리 휘는 시골사람은 힘들다며 비료와 농약만 쓰려 하고, 흙하고 멀리 떨어진 도시사람은 돈벌이에 바쁘다며 길가나 골목 들풀 한 포기조차 바라볼 겨를 없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누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루를 아름답게 맞이하는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요.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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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르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들이 “모기 있어!” 하고 부르는 소리에 바로 잠을 깬다. 코코 잘 자던 아이가 “쪼르르!” 소리를 내며 쉬를 누는 소리에 벌떡 잠을 깬다. 모기를 잡느라 한동안 부시시한 몸으로 모기 소리를 기다린다. 내 몸뚱이에 달라붙으라고 팔다리 뻗어 끌어들여서 철썩 내리쳐서 죽인다. 서른 달로 접어들 작은아이 어디에 쉬를 누었나 살피며 얼른 천기저귀로 평상 바닥을 훔치고, 평상을 까서 방바닥에 고이는 오줌을 닦는다.


  돌이켜보면, 신문사지국에서 먹고자며 신문을 돌리던 1995년부터 바깥소리에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새벽 한 시와 두 시 사이에 신문사지국 앞에 신문덩이 떨어지는 ‘쿵! 쿵!’ 소리에 잠을 깨어 벌떡 일어났다. 신문 갖다 주는 일꾼으로서는 바닥에 쿵 소리 나게 던질밖에 없지만, 한 덩이라도 더 바닥에 패대기쳐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척척 들어서 바닥에 곱게 내려놓으려 했다. 짐차 일꾼이 아무리 겨냥을 잘 해도 신문덩이 한쪽이 망가지기 마련이요, 짐차 일꾼이 바쁜 날에는 아무렇게나 던지곤 하니 바로바로 깨어서 신문덩이를 날라 쌓아야 한다. 이때에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느끼며 잠에서 깨기도 했다. 신문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안 되니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소리에 잠을 확 깨어 벌떡 일어날까. 이제껏 살아오며 돌아보면, “밥 먹자!” 하는 소리에는 시큰둥하고, “과자 먹자!”나 “빵 먹자!” 하는 소리에는 눈을 빛내며, “이야 가자!” 하며 나들이 가자고 하면, 자던 아이들 벌떡벌떡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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