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오는 날 (도서관일기 2013.10.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태풍 오는 날,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으로 쓰는 건물은 ‘빌려서 쓰는 건물’이지만 ‘우리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래저래 손질을 하지 못하고, 비가 새는 곳을 고치지도 못한다. 언제쯤 이 폐교 건물을 우리 것으로 사들여서 건물 지붕과 비 새는 데를 모두 고칠 수 있으려나.


  비옷을 입고 도서관으로 간다.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간다. 낮 세 시까지는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비가 오는 김에 빗물을 받아서 골마루에 쌓인 먼지를 닦는다. 교실 넉 칸과 골마루를 혼자서 물걸레질을 하자니 등허리와 팔다리가 저리다. 꽤 넓은 자리를 혼자서 걸레질을 했구나.


  이럭저럭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낮 네 시 무렵, 빗줄기는 굵어지고, 맨 오른쪽 교실 벽을 타고 빗물이 스민다. 이제부터 빗물이 스미는구나. 밤새 얼마나 스미려나. 큰 밀걸레와 작은 밀걸레를 빗물이 스며 고이는 바닥에 댄다. 다음에는 헌옷을 가져와서 빗물이 책꽂이까지 흐르지 않도록 막아야겠다. 하루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와서 바닥에 고인 빗물을 치워야겠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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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모르는 사람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을 먹던 겨레라 풀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 가운데 이름 안 붙은 풀이란 없어요. 먼먼 옛날부터 고장에 따라 마을에 따라 풀이름을 다 다르게 붙였습니다.


  풀이란 흙에서 자라나는 푸른 숨결입니다. 벼와 보리도 풀입니다. 밀과 서숙도 풀입니다. 콩과 팥도 풀이지요. 사람들은 풀포기가 맺는 열매를 먹고, 풀포기로 바구니를 엮거나 신을 삼거나 지붕을 이었습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즐겁게 먹는 풀을 알아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 먹는 풀을 알아야 하며, 다친 곳에 바르는 풀을 알아야 합니다. 한겨레는 풀을 즐겨먹으면서 나뭇잎도 하나둘 익혀요. 못 먹거나 못 쓰는 풀이 없듯이 못 먹거나 못 쓰는 나뭇잎이 없어요. 갓 돋은 나뭇잎은 바로바로 따서 먹는 한편, 굵고 단단하며 큼지막하게 자란 나뭇잎은 썰어서 말리고 덖으면서 찻잎으로 삼았어요.


  소도 돼지도 닭도 풀을 먹습니다. 토끼도 풀을 먹고, 다람쥐와 곰도 풀을 먹습니다. 이들은 잎사귀도 먹고 열매도 먹습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지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어요. 풀잎으로 둥구미도 엮고 모자고 짭니다. 멧방석을 짜고 돗자리를 엮습니다.


  아, 풀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뜯고 뜯어도 다시 돋는 풀이란 우리 겨레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북돋았는가요.


  풀은 따로 씨를 받아서 뿌리지 않아도 이듬해 봄부터 가을까지 씩씩하게 돋습니다. 풀은 풀내음을 베풀고 풀바람을 일으킵니다. 풀노래를 들려주고 풀빛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이끕니다.


  풀을 즐긴 한겨레는 풀과 같이 살아갑니다. 어떤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 같은 이들이 우쭐거리며 짓밟으려 해도 풀포기처럼 가만히 눕다가 뾰로롱 다시 일어서요. 끝내 뽑히거나 뜯기더라도 그동안 흙에 떨군 씨앗이 새롭게 자라요. 아무리 뽑고 뽑아도 다시 돋는 풀처럼, 우리 겨레 수수한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옛날 함석헌 님은 ‘들사람’을 떠올리며 ‘들넋’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려 ‘풀사람’을 돌아보고 ‘풀넋’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일노래와 옛이야기는 모두 풀을 먹고 풀을 나누며 풀을 돌보던 한겨레 삶이 깃든 노래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책들은 바로 이 풀뿌리에서 비롯합니다. 비록 서양 문물과 문화를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서양 철학과 사상과 문학을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책에는 풀숨이 가득합니다.


  풀숨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아요. 풀숨은 늘 우리 곁에서 감돕니다. 풀숨이 지구별 곳곳 살살 어루만지면서 사람들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풀빛이 지구별 골골샅샅 가만히 보듬으니, 지구별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보면 “푸른 빛이 아름답다!” 하고 절로 말한다지요.


  풀을 모르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는 산 사람일는지 모르나, 마음과 넋과 얼은 죽은 사람입니다. 풀을 아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도 마음도 넋도 얼도 모두 산 사람입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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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 겨레 전통 도감 5
조현 지음, 홍영우 그림 / 보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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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2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
― 탈춤
 토박이 기획
 홍영우 그림
 조현 글
 보리 펴냄, 2010.4.8. 35000원

 


  우리 겨레한테 탈춤은 오랜 놀이요 잔치였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우리 겨레는 누구나 탈춤을 즐겼습니다. 재주꾼만 탈춤을 할 수 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만 탈춤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만 탈춤을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손쉽게 탈을 만듭니다. 스스럼없이 춤을 춥니다. 탈을 만들어서 써도 춤을 추고, 탈이 없어도 춤을 춥니다.


  내 어릴 적 탈을 문득 떠올립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안 만들었고, 국민학생 적에만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만들었습니다. 탈을 만든다며 집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씩 가져와서 구멍을 뚫었어요. 제가 도시내기 아닌 시골내기였으면 플라스틱 바가지 아닌, 하얗게 꽃을 피우며 큼지막하게 열매 맺는 박을 토막내어 만든 ‘싯누런 바가지’를 썼겠지요. 물을 푸고 쌀을 풀 적에 쓰는 바가지를 학교에서 탈 만든다며 가져가려 하면 어머니는 적잖이 못마땅해 하셨을 테지요. 원, 무슨 학교에서 바가지를 가져오라 하느냐면서. 그러나 그 바가지로 탈을 만든다고 하면 싫어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해요. 그렇구나, 바가지로 탈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


  그러고 보면,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국민학생 적에 ‘플라스틱 바가지’로 탈을 만들면서, 바가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만 있는 줄 알았어요. ‘뿔바가지(플라스틱 바가지)’란 참말 박꽃 피는 그 풀씨가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박덩어리를 자르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 모양을 빗대어 공장에서 척척 찍은 것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제대로 모른 채 살았어요.


  예전에는 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예전에도 바가지로 탈을 만들었을까요. 바가지를 얻기까지 봄 여름 지나고 가을을 기다리면서 둥그렇고 소담스러운 박덩이 언제 맺히나 하고 한참 손꼽았을까요.


  맨 처음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우리 겨레는 언제부터 탈을 만들었을까요. 탈은 우리 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에도 있어요. 우리 겨레와 이웃 겨레는 저마다 언제부터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들어 춤을 추면서 삶을 누렸을까요. 왜 굳이 탈을 쓰면서 잔치마당을 열고 노래와 춤을 즐겼을까요.


  어릴 적 학교에서 미술 수업으로 탈을 만들 적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시험문제에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 교사도 이런 이야기는 모르리라 느껴요. 그저 점수를 매기려고 탈 만드는 실기수업을 했으리라 느껴요.


  탈을 만들었으면 탈춤을 출 노릇이요, 탈춤을 추려면 정규수업을 뒤로 젖혀야 합니다. 탈춤을 추면서 학생과 교사 사이 울타리를 걷을 노릇입니다. 몽둥이와 주먹다짐으로 윽박지르는 교사 앞에서 학생 누구나 스스럼없이 제발 학교에서 우리(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나무라는 말 섞으며 춤놀이 즐길 노릇입니다. 고운 이야기 길어올리며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춤사위 흐드러질 노릇입니다. 실기수업 점수 때문에 만드는 탈이 아니라, 어깨를 들썩이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춤 한 판 맛깔나게 누리고 싶어 만드는 탈입니다.


.. 우리 탈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 탈이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6쪽)

 

 

 


  홍영우 님 그림과 조현 님 글이 어우러진 도감 《탈춤》(보리,2010)을 읽습니다. 탈과 얽힌 여러 이야기를 엿볼 수 있고, 탈을 쓰고 즐기는 춤과 얽힌 숱한 이야기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참 많이 늦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제대로 놀지 못하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이 책이 나왔으니 아주 늦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못할 뿐 아니라, 놀이노래조차 스스로 만들어 부르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수많은 골목놀이와 고샅놀이와 마당놀이를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이마에 구슬땀 흘리면서 몇 시간이고 집 바깥에서 뛰놀며 누리는 삶을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탈춤》과 같이 예쁜 책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즐겁게 놀고 싶어서 읽는 책이 아니에요. 즐겁게 탈을 만들어 개구지게 탈춤놀이와 탈춤마당 벌이자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박제가 되고 만 책입니다. 박제로 만들고 만 우리 겨레 놀이를 박물관 유물처럼 그러모은 책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고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이런 책 없어도 되었어요. 지난날에는 미술 교사가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학교 수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어 놀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이런 도감이나 그림책이나 책이 없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옛날부터 물려받은 이야기에 따라 스스로 탈춤놀이 즐길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박제가 되고 만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지식으로 읽을밖에 없는 이야기’인 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이런 책이라도 있어야 우리 겨레 옛놀이와 옛삶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책조차 없다면, 아이들은 우리 겨레 삶과 발자취와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고야 맙니다.


  삶이 제도권에 짓눌리면서 박물관이 생깁니다. 박물관에 들어가는 유물이란 모두 ‘여느 사람들이 살림 일구며 쓰던 것’들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살림살이가 박물관 유물이 됩니다. 박물관 유물 가운데에는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을 울궈내며 가로챈 금은붙이로 만든 씌우개나 노리개가 있고,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허리 졸라내며 빼앗은 도자기에 옷가지가 있습니다. 임금님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양반이나 권력자는 스스로 옷을 지을 줄 모르고 그릇을 구울 줄 모르며 밥을 할 줄 모릅니다. 모든 옷과 밥과 집이란, 또 임금님 머리에 씌우는 것이든 허리에 두르는 것이든 무엇이든, 게다가 한문만 가득 채운 책이든, 하나같이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피땀 흘려 만든 것이에요. 시골사람이 나무를 베어 삶고 끓이고 말리고 하면서 종이를 한 장 두 장 만들어 책이 태어나요. 시골사람이 풀줄기에서 실감을 뽑아 말리고 삶고 되풀이하며 실을 얻고는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밟으며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짓습니다. 바늘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꽃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갓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흙에서 얻은 것들로 시골에서 만들어요.


  ‘임금님이 쓰던 것’이라서 대단한 유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임금님이 쓰던 모든 물건은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시골 숲과 들과 메에서 얻은 것을 시골에서 만들어 바친 것’입니다.


  도감 《탈춤》을 읽으며, 탈과 얽혀 우리 겨레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어떻게 흘렀는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도감 《탈춤》을 덮으며, 우리 겨레 구수하고 투박한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얼마나 짓밟히거나 짓눌리면서 모조리 아스라이 사라지고야 마는가를 헤아립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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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2. 저녁빛살과 나란히 (2013.10.4.)

 


  저녁빛살이 드리운다. 가을 저녁빛살은 여름 저녁빛살과 다르다. 봄 저녁빛살하고도 다르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이제 풀밭 걷기에 익숙하다. 풀이 껑충 자라 아이들 키를 넘어서도 씩씩하게 걷고, 까르르 웃으며 헤쳐 나간다. 이 풀빛이 바로 너희들을 푸르게 돌보아 준단다. 이 풀내음이 바로 우리 모두를 먹여살린단다. 이 풀바람이 지구별을 곱게 보듬어 준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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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한글날 앞두고 어느 라디오 방송국 작가한테서 전화 한 통 온다. 한글날에 나한테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은가 보다. 방송작가는 이녁이 생각하는 대로 내가 ‘전화 인터뷰’로 말해 주기를 바라는 낌새이다. 그러나, 나는 ‘꼭둑각시’나 ‘허수아비’가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면 내 생각을 들려주어야지, 방송작가 생각을 읊을 수 없다. 방송작가 생각을 읊어야 한다면, 방송작가 혼자서 각본 쓰고 스스로 해설하고 방송을 이끌 노릇이다.


  방송작가한테 한글날과 얽힌 이야기에다가, 한글이라는 글자 아닌 한국말이라는 속살을 들여다보아야 참답게 한글날을 기릴 뿐 아니라, 한국사람으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녁 방송작가가 어느 때에 갑자기 전화를 끊는다. 내 이야기가 듣기 싫었나? 그래, 잘 되었다. 나도 이런 방송작가하고 전화로 떠들 겨를이 없다. 아이들 얼굴을 보아야 하고, 집살림 거느려야 하며, 서재도서관 손질하는 한편, 내 삶이야기를 글로 써야 한다.


  책상맡에서 취재를 하고 각본을 쓰는 방송작가는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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