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태여 헌책을 찾나요?

 


 어제 낮, 문화방송 어느 풀그림 사회자하고 만나보기를 했다. 이때 받은 물음 가운데 두 가지 대답. 이 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에다가, 시간이 짧아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 물음 1 -
 “새책도 있는데, 왜 헌책을 찾으러 다니시나요?”

 “저는 헌책방만 다니지 않습니다. 새책방도 곧잘 다닙니다. 다만, 헌책방을 좀더 자주 다닌다뿐인데, 이달에 나오고 한 달이 지나면 그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지금 나오는 책들 가운데에는 예전에 나왔다가 다시 나오는 책도 많습니다. 이런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세계고전명작이라고 해서, 또는 한국현대소설전집이라고 해서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리영희 전집이라든지 송건호 전집이라든지, 곧 나올 이오덕 전집이라든지 여러 가지 전집이 있는데, 이런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 보면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있어요. 이런 책은 1999년부터 찍어서 파는 책도 있고 1980년에 나왔는데 여태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책이 있어요. 그래서 교보나 영풍에서는 2006년 12월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고, 헌책방에서는 1999년이나 1985년이나 1989년이나 2004년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는데, 교보에서 만난 책은 새책이고 헌책방에서 만난 책은 헌책일 텐데, 두 가지 책은 왜 이렇게 나누어야 할까요? 또, 책에 적힌 값을 빼놓고 새책과 헌책으로 나눈다는 일이, 책에 담긴 줄거리를 읽고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데에 뭐 달라지거나 영향 끼칠 대목이 있을까요? 저는 그저 책을 읽을 뿐입니다. 그래서 책을 바라보는 눈길, 우리 삶에 참으로 도움이 되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면서 가꾸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책을 찾을 뿐입니다. 그런데 새책과 헌책을 억지로 나누면 책을 제대로 못 보고 말아요. 생각이 치우친달까요. 껍데기가 낡았다고 줄거리가 낡아질까요? 책에 김치국물이 묻었다고 줄거리에도 김치국물이 묻을까요? 책이 반드레하다고 줄거리도 반드레할까요? 책껍데기가 아름답고 멋져 보인다고 줄거리도 아름답고 멋질까요? 책 꾸밈새가 좀 어설프다고 줄거리가 어설플까요?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분이 쓴 책이라고 모두 이름날 만하고 훌륭한 줄거리를 담을까요? 우리한테 낯선 글쟁이가 쓰고 처음 보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고 줄거리가 허접하거나 보잘것없을까요? 이른바 ‘편견’이라는 것,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갖고 싶지 않아서, 제 생각과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세상을 부대끼면서 제 자신을 가꾸고 싶어서 헌책방을 찾고, 헌책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하고 있습니다.”

 

- 물음 2 -
 “책 만드는 일을 하신다고 했는데, 새책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책을 만드는 몸가짐이라고 한다면?”

 “제가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책은 여러 가지인데, 이 가운데 제게 참으로 고맙고 좋은 책은 ‘서른 해 앞서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또한 ‘서른 해 앞서 나왔는데 지금 읽어도 좋고, 앞으로 서른 해 뒤에 읽어도 좋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책은 더욱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새로 펴내는 책이라 한다면, 앞으로 서른 해 뒤에 누군가 찾아서 읽는다고 할 때에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을 엮어내려 합니다. 제가 책을 엮는 마음이라면 이런 것이고, 이런 마음을 고이 간직하면서 이어나가려고 헌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른 해 앞서 나왔는데 지금 읽어도 좋다고 느낄 만한 책을 찾으면서, 제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배운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물음도 몇 가지 더 있었으나 잊어 버렸다. 뭐, 짤막짤막한 신변잡기 같은 물음도 있었고. (4339.12.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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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는다

 


 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또, 이런 헌책방은 제법 장사가 잘되는 듯하고, 아직 ‘고시책 헌책방’ 가운데 문닫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시책을 파는 곳은 새책방도 적잖이 잘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시책이나 수험서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런 책만 다루는 책방이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얼마든지 문을 열 수 있겠지요. 매장으로든 인터넷으로든.

 

 그러고 보면, 사진책이나 그림책(미술―디자인까지)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인문사회과학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시모음이나 소설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전집이 아닌 낱권 어린이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만화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들은 문을 열 수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책을 꾸준하게 찾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또, 이런 책을 꾸준하게 펴내는 출판사도 적고요.

 

 〈한겨레21〉에서 “2006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별책부록을 내서 잡지를 사는 사람한테 덤으로 줍니다. ‘예스24’와 함께 기획해서 낸 별책부록인데, 이 책에 이름을 올린 “2006 올해의 책”을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 눈높이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기자들이 알아보는 책, 평론가들이 책소개를 쓴다며 다루는 책이 무엇인가도 가만히 짚어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이 없음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4339.12.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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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2 강풀 순정만화 5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순정만화(1ㆍ2) - 강풀  2006.10.31 10:13

- 책이름 : 순정만화(1ㆍ2)
- 글/그림 : 강풀
- 펴낸곳 : 문학세계사(2004.2.∼2004.5.)
- 책값 : 한 권에 12000원씩


 인터넷만화를 그리는 이 가운데 나라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다는 강풀(강도영) 님. 손이 아닌 셈틀로 그리는 만화를 썩 내켜하지 않기에 이분 만화는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터넷만화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손쉽게 그리려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계로 꾸민 빛깔이 제 눈에는 아주 따갑고 낯설고 사람냄새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온갖 빛깔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셈틀입니다. 하지만 온갖 빛깔을 다 나타낼 수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냄새,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가 없는걸요. 이렇게 따지면 요즘 물감도 자연에서 얻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뒤섞어 만드니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나마 질감이라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 너무 손쉽게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인터넷만화는 ‘누구나 배워서 그릴 수도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뭐, ‘누구나 배워 쉽게 그린다’고 해도 아무나 대충 그릴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애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다만 손그림 만화보다 품이 적게 들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면 손그림을 긁어서 인터넷에 띄우나, 처음부터 셈틀로 그려서 띄우나 마찬가지일 테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셈틀로 그리는 편이 보기에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손그림 만화는 종이에 찍어서 맨눈으로 보아야 제맛이고, 셈틀그림 만화는 인터넷으로 보아야 제맛이니까요. 강풀 님 《순정만화》도 어느 만큼은 ‘종이보다 인터넷 화면’이 더 보기에 낫습니다.

 강풀 님이 그리는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언제나 세상살이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들한테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요. 자기가 겪고 느끼고 본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머리로 꾸미거나 지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를 자기 입이나 동무들 입을 거쳐서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분 만화에는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싱싱합니다.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습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다른 인터넷만화와는 달리,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 기운, 느낌이 서려 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인연을 쌓다가 자기 삶이 차츰 바뀌고, 어느 결엔가 서로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정만화》입니다. 사내 셋, 계집도 셋, 이들을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이 하나씩 엉키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면서 사랑이든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미움이든 멀리 있지도 않으나 바로 옆에 있기만 하지도 않음을 가만히 느끼도록 합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사람 사귐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참 흔한 이야기입니다. 뻔한 줄거리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로서로 좋게좋게 끝내는’ ‘순정만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잘 그리네요. 뭐랄까,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림 그린 이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렸으니, 그림 보는 우리들도 눈에 힘을 빼고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요 놀이라 하겠으나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들한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어떠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까를 넌지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문득, 만화쟁이 강풀 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대로’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다른 만화쟁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누구나 다 모르는 줄’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고, ‘누구나 다 모를 만한 이야기를 억지로 찾으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마음을 적시고 즐거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만화대사로 쓰는 말을 좀더 다듬고 걸러낼 수 있으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책값을 지나치게 비싸게 붙였고, 책도 지나치게 겉멋들여서 꾸몄습니다. 그린이와 줄거리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부풀린 꾸밈새 때문에, 지난 이태 동안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찾아서 보았습니다. (4339.10.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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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지음, 작은 우주 옮김 / 달팽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환경]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2006.11.27 02:11

- 책이름 :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 글쓴이 :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 옮긴이 : 작은우주
- 펴낸곳 : 달팽이(2004.7.21.)
- 책값 : 12000원


.. 그는 해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 들판을 돌아다녔다. 학교를 빼먹고 숲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  〈43쪽〉


 아침마다 작은 새들이 저를 깨웁니다. 새들은 창가에서 파닥거리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내거든요. 요즘은 딱새 몇 마리 구경하는 일로 아침 한때가 즐겁습니다. 딱새는 하늘에 뜬 채로 몇 초 동안 가만히 있기도 하는데(쉼없이 날갯짓을 하며), 저 작은 몸에, 날개에, 저렇게 빠른 날갯짓으로 참 잘 나는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박새와 콩새도 자주 보이는 새 가운데 하나. 요 작은 새들은 아주 조금만 먹어도(사람과 견주어) 되겠지요. 조금만 먹어도 얼마든지 자연 삶터에서 잘 어우러지는 목숨붙이일 테지요.


.. 세상의 압박받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 (알도 레오폴드/편지) 〈63쪽〉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많았고, 날이 퍽 포근했습니다. 예전 겨울이었다면 눈이 왔을 날씨인데, 요즘 겨울은 퍽 따뜻하기 때문에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눈구름이 아닌 비구름임을 느끼는 이 드뭅니다. 이 눈(아닌 비였지만)이 따뜻하게 온 세상을 덮으면서 크고작은 날벌레들을 모두 죽여서 땅에 묻히게 하여 이듬해에 흙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흐름은 차츰차츰 깨지는데, 이를 느끼는 이도 드뭅니다. 아직까지 모기가 다 죽지 않았음을 느끼기는 해도, 왜 모기가 안 죽었는지 깊이 생각하며 자기 삶을 돌이켜보고 바꾸려하는 이도 드뭅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맘때에는 몹시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는데(올해와 견주면), 올해는 그다지 안 춥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보다 지지난해가 덜 추웠고, 지지난해보다 지지지난해가 덜 추웠습니다. 0도 아래로 10도쯤 떨어지는 날씨는 아무것도 아닌 지난날이었지만, 이제는 0도 아래로 1도만 내려가도 강추위가 온 듯이 느끼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몸은 몸대로 여려빠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곪아버렸달까요.


.. 생물학자들 대부분이 개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오폴드 교수님은 개체군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 개체군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때, 교수님은 생태계와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 교수님은 자연의 보존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  〈246쪽〉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또 서울에서 시골로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자동차와 부대낍니다. 이 자동차들을 가만히 보면, 다른 자동차한테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도 보이지만, 다른 자동차를 윽박지르듯이 다니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와 자동차끼리도 싸우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사람들이, 자동차와 자전거였을 때, 또 자동차와 사람이었을 때, 또 자전거와 사람이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경주하는 자동차는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찻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도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자전거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무기는 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무기를 많이 만들어 가진 나라치고 힘여린 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은 나라란 없는 지구 역사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고 맨 먼저’라고 외치면서 ‘자연은 사람들 목적에 알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치고 ‘자연에서 먹을거리-입을거리-쓸거리-잠잘곳’을 안 얻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4339.11.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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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문학]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2006.12.24 00:13

- 책이름 : 유모아 극장
- 글쓴이 : 엔도 슈사쿠
- 옮긴이 : 김석중
- 펴낸곳 : 서커스(2006.11.4.)
- 책값 : 8800원


 지난달 끝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동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퍽 예전부터 알고 지낸 분을 만나 낮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날이 제법 쌀쌀해 술 한 잔도 곁들였습니다. 술 한 잔 걸치니 몸이 좀 녹더군요. 자전거를 타고 오며 길을 헤매느라 찬바람을 많이 맞았는데, 한결 나았습니다.


.. “이봐. 이봐. 노상방뇨는 일본의 법률에 벌금형이라는 것을 모르나? 파출소에 가자.” 경관의 말투를 흉내내 큰소리로 꾸짖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는 몸을 이쪽으로 틀면서 돌았다. 그 순간 알았던 것이다. 범인은 글쎄, 내가 가자고 했던 그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젊은 경관이었다. “이, 이, 이거야…… 죄송…… 하게 됐습니다.” 그는 바지의 단추를 채우는 것조차 잊고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분명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솟아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순찰을 돌다가, 그만,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아니, 괜찮아요.” 나는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  〈92쪽〉


 공덕동에서 만난 사람은 한때 ㅎ신문에서 판매부 일을 했고, 어느 날 마음먹은 일이 있어서 신문사를 그만두고 ㅇ이라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부서 한 곳에서 일을 맡았습니다. 때때로 헌책방에서 마주치기도 해서 헌책방 가까이에 있는 맥주집에서 술잔을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 돈-이름을 얻을 수 있는 ㅇ출판사 자리를 떨쳐나오고 1인출판사를 차립니다.


.. “앗, 회충이다. 조심해.” “뭐라고, 회충?” “그래. 장 속에서 자네 여동생의 영양을 빨아먹고 있는 회충이다. 자네는 어떻게 여동생에게 구충제도 먹이지 않은 거야?” “이봐, 지금 그런 말 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 메스로 죽이는 거야. 이 회충을.” 가까이 다가온 회충을 메스로 찔렀다. 하얀 액체가 주위로 흘러나왔다. 회충이 날카로운 입을 벌리고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  〈29쪽〉


 1인출판사를 연 분은 사무실을 따로 낼 돈까지는 없기에, 당신이 아는 제법 큰 출판사 사무실 한켠에 책상 하나 빌려서 전화 한 대 놓고 일을 합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작은 출판사는 더욱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는 판인데, 참 대단한 용기로 일을 벌였습니다.


.. 그때, 나와 쏙 빼닮은 얼굴의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뺨에는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이, 나를 조소하듯이 빙긋이 웃었다. 저것은 나의 분신이었다. 나의 분신이, 매일 전서구처럼 직장을 통근하고, 점심시간에는 카레라이스를 먹고,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아내한테 들키지 않게 가슴을 조마조마하며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  〈167∼168쪽〉


 소설책을 오랜만에 펼쳤습니다. 소설을 쓴 ‘엔도 슈사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일본 소설은 여태 몇 권 읽지 않았으나, 당신이 처음 일을 벌여서(출판사 차리기) 손수 우리 말로 옮기기까지 한 책(첫 번역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런데 웬걸. 생각 밖으로 재미를 느낍니다. 금세 읽히는군요. 소설이란 이런 거였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면서, 이 책 하나 엮어내려고 땀을 흘렸을 분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큼직한 책방에서도 묻히는 책이 얼마나 많을까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가는 책은 얼마나 많으며, 딱 한 번이라도 읽는이 손에 쥐어지지 못하는 책, 평론가들 칭찬이든 깎아내림이든 비판이든 추켜세움이든 한 번이라도 들어 보지 못하고 역사에 묻히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예전에는 ‘판매국 아저씨’라 했다가(그때 그분 나이는 서른도 안 되었을 텐데), ‘편집장 아저씨’라 바꾸었다가, 이제는 ‘사장 아저씨’로 바꾸어 부르는 선배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옵니다(그러고 보니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마구 ‘아저씨’라고 했네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니 참 힘들다고. 그래, 참 힘든 세상입니다. 좋은 책을 내도 좋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 돈을 처바른 책을 내도 돈처바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라는 분은 《유모아 극장》이라는 이야기책을 이런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4339.12.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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