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 농사 2023.7.21.



봄에 베는 보리이고

여름에 여는 열매에

가을에 갈무리 마쳐

겨울에 겹겹 꿈꾸지


봄이면 봄새랑 일하고

여름이면 바람에 식히고

가을이면 해님을 머금어

겨울이면 눈보라로 재워


새하늬마높에 하늘 읽고

풀꽃나무에 숲을 잇고

논밭살림 조촐히 일구고

해바람비 그득히 있어


말이 씨가 되고

씨앗이 싹이 트고

새싹에 줄기 올라

흙을 짓고 살림 빚지


ㅅㄴㄹ


땅을 갈아서 씨앗을 심는 곳을 논하고 밭이라 이릅니다. 새나 벌레는 땅갈이를 따로 안 하고서 씨앗을 땅에 톡 떨구어요. 사람이 따로 낟알이나 열매를 얻으려고 논밭을 갈고 가꾸고 일구고 짓습니다. 이러한 살림을 ‘논일·밭일’이라 하고, ‘논밭일’이라 하며, ‘흙일’이면서 ‘땅짓기·흙짓기’이고, ‘땅살림·흙살림’에 ‘들살림·들일’이라 합니다. 한자말로는 ‘농사(農事)’로 옮겨요. 수수하게 ‘짓다·짓기’나 ‘가꾸다’라 하고, ‘흙일’이라고도 합니다. 논을 갈거나 가꾸어서 벼를 심고 베어 볍씨를 얻는 길이라면 ‘벼짓기·벼살림’이라 할 만합니다. 철을 헤아려 땅을 돌보는 길입니다. 날하고 때를 살피고, 해랑 바람이랑 비를 고스란히 품으면서 푸른별을 돌아보는 길이에요. 사람도 살고 뭇목숨도 어우러지는 흙빛에 들빛을 사랑하는 길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씨앗 한 톨로 밥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빗대어, 우리가 주고받는 말도 ‘말씨(말씨앗)’이라 합니다. 말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기에 ‘마음씨’라 하지요. 말하고 마음을 가꾸듯 글살림을 보듬는 ‘글씨’예요. 우리는 어떤 씨를 심는 하루인가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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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베풀지만 2023.12.28.나무.



베풀면서 자랑하지 않아. 베풀지 않기에 자랑한단다. 베푸는 사람은 기꺼이 다 내주면서 정갈하고 가볍게 날갯짓을 해. 베풀 줄 모르기에 자꾸 티내려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이름을 내세우더라. 열매를 베푸는 나무가 뽐내는 꼴을 본 적 있니? 꽃을 베푸는 푸나무는 우쭐거리지 않아. 벌나비한테 꽃꿀가루를 베풀지만 어느 하루도 콧대를 세운 적이 없어. 날마다 찾아와서 따뜻하게 베푸는 해도 잘난척하지 않아. 땅을 씻고 촉촉히 적시는 비는 언제나 싱그러이 베풀지만, 하늘을 틔울 뿐, 조용히 가지. 베풀 수 있으려면 오직 사랑이어야 해. 사랑일 적에는 베풀지만, 사랑이 아닐 적에는 “베푸는 시늉”일 뿐인 ‘자랑’이나 ‘꾸미기’란다.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베풀어. 아기는 어버이한테 웃음을 베풀어. 아버지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베풀어. 아이는 엄마아빠한테 생각을 베풀어. 할머니는 아이한테 노래를 베풀어. 아이는 할머니한테 놀이를 베풀어.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살림짓는 손길을 베풀어. 아이는 할아버지한테 초롱초롱 눈빛을 베푼단다. 너는 무엇을 베푸니? 네 둘레에서는 너한테 무엇을 베푸니? 너는 바다가 무엇을 베푸는지 느끼니? 냇물이 무엇을 베풀고, 새는 무엇을 베풀지? 모래알은 무엇을 베풀고, 지렁이는 무엇을 베풀까? 네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베푸는 숨결은 무엇일까? 하나씩 곰곰이 짚어 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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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전광판 2023.12.29.쇠.



반딧불이는 밤에 또렷하게 볼 텐데, 낮에도 반딧불이는 반딧불이란다. 별빛은 한밤에 반짝반짝 볼 텐데, 낮에 알아보지 않더라도 별은 늘 별이란다. 밤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새가 있지만, 불을 밝히거나 쏘지 않아. 개구리는 낮에도 놀지만, 밤이 깊어도 모여들어서 신나게 노래해. 고양이는 낮에도 돌아다니지만, 밤에도 사뿐히 걸어다녀. 낮은 햇빛으로 살아가고, 밤은 별빛으로 살아가며 꿈을 바라본단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낮과 밤을 잊었어. 낮에 해를 바라보는 자리에 있지 않더니, 밤에 별을 헤아리지 않더구나. 낮에 햇빛이 드리우는 들숲바다를 품지 않더니, 밤에 별빛잔치를 누리지 않네. 사람들은 밤에 몸을 쉬면서 스스로 넋빛을 돌아보는 때를 보내기보다는, ‘전광판(전기로 밝히는 알림판)’을 잔뜩 세우면서 넋을 잊고 얼을 잃네. 왜 밤에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곳을 드나들거나 오가야 할까? 왜 낮에 하고서 쉬어야 할 일놀이를 밤늦게 붙잡을까? 얼마나 바빠야 하니? 얼마나 스스로 넋을 등져야 하니? 얼마나 몰아쳐야 하니? 얼마나 제빛(스스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넋빛)을 잊은 채 허깨비가 되어 떠돌아야 하니? 전광판이 비추는 곳에 모여들어 우글거리는 사람들과 하루살이는 무엇이 다를까? 한살림을 잊는 마음이라서 하루살이로 스스로 몰아세우지 않니? 네가 네 넋을 늘 바라보아야 삶이야. 남들이 세우는 전광판에 휩쓸리면서 너희 빛씨앗을 갉지 않기를 바라.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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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받아들이면 2023.12.30.흙.



네가 받아들이면 돼. 네가 안 받아들이면 안 돼. 네가 바라보면 돼. 네가 안 바라보면 안 돼. 네가 돌보면 돼. 네가 안 돌보면 안 돼. 네가 하면 돼. 네가 안 하면 안 돼. 네가 말하면 돼. 네가 말을 안 하면 안 돼. 하나씩 새기렴. 새기려면 느긋하고 넉넉히 품을 들여야겠지. 뚝딱 이룰 수 있고, 하나씩 돌아보고 살피고 그리면서 차근차근 이룰 수 있어. 다 이루게 마련인데, 이루는 때와 마음과 길과 뜻이 달라. 어느 때는 가벼우면서 쉽게 보고 느껴서 받아들이지. 어느 때는 영 무겁고 어려워서 등돌리거나 눈감다가 한참 뒤에 조금 받아들여. 어느 때는 싹 끊거나 닫고서 아예 안 받아들여. 너는 기쁨도 받아들이지만, 슬픔도 받아들여. 웃음도 받아들이고 눈물도 받아들여. 노래도 받아들이고 미움도 받아들이지. 무엇이든 받아들여. 다 다른 곳과 때와 삶을 보고 느껴서 마음을 일으키고 싶거든. 바다도 가람도 흐르기에 오르다가 내려앉아. 일어나기에 가라앉고, 축 처지기에 새로 일어선단다. 하루하루 다르게 보고 느끼는 숱한 모습과 몸짓을 네가 너를 어떻게 사랑하고 무엇을 생각하면서 어디로 나아갈 적에 빛나는지 알려주는 빛살이란다. 곰곰이 보렴. 오늘 받아들여도 되고, 앞으로도 안 받아들일 수 있어. 꼭 눈앞에 흐르는 빗방울을 받아서 마셔야 하지 않아. 새벽마다 이슬이 새로 맺고, 샘물도 늘 솟아나. 2023.12.30.흙.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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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학년 2023.12.31.해.



여느 배움터라면, 한 해가 지날 적마다 나이를 한 칸씩 먹는다고 여겨서, 자리도 한 칸씩 올리더라. 칸이 높을수록 배움터를 오래 다녔다는 뜻일 텐데, 6학년이나 12학년이나 30학년이나 50학년이면 가장 깊거나 넓을까? 나이를 먹기에 어질지 않아. 나이를 먹을수록 잘 알거나 옳게 다루지 않아. 나이가 아닌 마음을 다스려서 생각을 빛내고 눈빛을 밝혀서 꿈을 그리고 짓는 사랑으로 푸르게 노래하고 놀 줄 알 때라야, 비로소 즐겁게 알고 새롭게 나누고 기꺼이 베풀면서 깊고 넓단다. 1학년이기에 모르지 않아. 3학년이기에 1학년보다 높지 않아. 나이를 세는 사람은 스스로 늙어서 죽음을 바란다는 뜻이야. 나이를 헤아리니까 철을 안 헤아리지. 나이를 따지니까 철을 못 따져. 나이를 살피니까, 철눈을 살피는 눈길이 없어. ‘배움눈’이란 ‘배움칸(학년)’이 아니란다. 꽃이름·풀이름·나무이름을 하나씩 익히기에 배움눈이 깊어. 새이름·벌레이름·바람이름을 하나씩 읽기에 배움눈이 넓어. ‘이름’은 겉모습이 아닌 ‘속씨’란다. 어떻게 가리키는지만 외울 적에는 아직 “이름을 알지 않는다”고 여겨. 그러면 언제 “이름을 안다”고 여길까? 네가 스스로 읽는 속빛을 네가 이야기를 지어서 스스로 이름을 붙일 적에, 비로소 “이름을 안다”고 여겨. 그러니까, ‘이름짓기 = 이름알기’이고, ‘살림짓기 = 살림알기’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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