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2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

 J.벤딕·R.벤딕 글

 윤상해 옮김

 음향문화연구회·신문관

 1962.3.30.



  우리 아버지나 이웃 아저씨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맞추어 집에 보임틀(텔레비전)을 들이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나라에서는 큰 놀이판(스포츠)을 자랑해야 한다면서 작은 살림집끼리 어깨를 맞댄 골목마을을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밀었고, 커다란 가림담(차단벽)을 세워 큰길에서 안 보이도록 했어요.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는 ‘우리나라 방송국’이 열고서 온날(100일)이 되는 때를 기려서 나옵니다. 1962년이라면 보임틀을 생각조차 못 하던 사람들이 훨씬 많고, 집전화조차 들이기 힘들었어요. 손으로 짓고, 몸으로 일하고, 다리로 걷고, 눈으로 마주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살림인 나날입니다. ‘지음머리(인공지능·AI)’ 같은 말은 우스개로 여겼어요. 2020년대에 태어난 아이는 194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꿈조차 못 꾸던 모습을 스스럼없이 만납니다. 앞으로 2300년에 태어날 아이는 어떤 새길을 스스럼없이 만날까요? 1962년에는 ‘보임틀을 풀이하는 책’이 따로 나와도 몰라보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나 2023년에는 ‘지음머리를 풀이하는 책이 굳이 없어’도 스스럼없이 알아보거나 알아차릴 텐데, 2300년 즈음에는 새길을 새롭게 밝히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새기는 아름누리일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우리나라에 텔레비죤이 들어온것은 8년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으로된 분격적인 텔레비죤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된것은 인제 겨우 백날밖에 되지 않읍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텔레비죤은 이미 우리 국민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고 있는것이지만 아직도 우리네의 살림이 생활과학에 밝지 못한지라 일반적으로 텔레비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깊지 못한터에 이번에 ‘음영문화연구회’ 동지들의 수고로 ‘벤딕크’ 씨의 자미있는 그림과 알기쉬운 풀이로 엮어진 이책을 부드러운 우리말로 옮겨서 까다로운 것으로 생각되기 쉬운 텔레비죤 이야기를 힘들이지않고 알아볼수있게 해준것은 매우 유익하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아니할수 없읍니다. 그 수고를 치하하며 이책이 널리 읽혀져서 우리 텔레비죤의 시청자는 물론 국민전체가 생활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면서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1962년 4월, 텔레비죤방송국 개국 100일을 기념하는날에, 서울텔레비죤방송국 국장 황기오 (책머리에)


또한 텔레비젼은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존재입니다. 무인비행기, 유도탄에 텔레비전·카메라를 장치하면, 모니터로 감시하여 유도할 수도 있읍니다 … 언젠가는 텔레비젼을 부리어 물건을 사들이기도 하며, 친구를 방문하며, 학교에 다닌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텔레비젼은 우리들의 오늘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 되게 되었읍니다. (62쪽/未來의 텔레비 : 그밖의 텔레비전에 대하여)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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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5.

수다꽃, 내멋대로 41 꾸중돌이



  어릴 적에 내 하루는 꾸중으로 열어 꾸중으로 닫았다. 이른바 나로서는 “하루라도 꾸중을 듣지 않거나,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히나?” 하고 돌아보던 나날이라고 여길 만했다. 뭔가 입을 벙긋하면서 말을 할라치면 말을 더듬거나 소리가 새는 혀짤배기였고, 하루 세끼 밥자리에 둘러앉으면 김치를 비롯해 못 먹는 곁밥이 잔뜩 있으니 깨작질을 한다고 꾸지람에 꿀밤을 맞아야 했고,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 뭔가 줄을 세워서 시킬 적에 ‘이미 다 알거나 할 수 있거나 풀 수 있는 일’이어도 더듬더듬하거나 쭈뼛쭈뼛하면서 그르치거나 미처 못 하거나 틀리기 일쑤라, 하루에 적어도 열∼스물은 꾸중에 꿀밤에 매에 회초리에 주먹질에 깎음말을 흠씬 맞아들이곤 했다. 이런 하루가 고단하고 괴로워 “어떡해야 빨리 죽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날마다 숱하게 했다. 날마다 하도 여러 사람, 그러니까 어버이랑 길잡이(교사)하고 또래나 언니한테 얻어맞다 보니까 ‘맞을 적에 어떻게 고개를 살짝 돌리거나 엉덩이나 허벅지나 종아리를 씰룩하면 덜 아프거나 견딜 만한가’ 하고 살피기도 했다. 날마다 숱하게 얻어맞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때에 ‘맞을 적에 숨을 안 쉬면 아픈 줄 못 느끼고 지나간다’고 깨달았다. 저놈(어른이건 언니이건 또래이건)이 나를 때릴 적에 ‘내 몸은 여기에 있을는지 몰라도 내 넋은 다른 데에 있으니, 넋이 없이 빈 몸뚱이를 아무리 두들겨패더라도 난 아픈 줄 못 느껴’ 하고 여기기 일쑤였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나 커서 알았는데, 얻어맞을 적마다 ‘몸벗기(유체이탈)’를 했다. 그들은 날 두들겨패지만, 나는 몸을 밑에 내려놓고 넋은 위로 올라와서 빤히 지켜본다. 얻어맞는 몸을 지켜보는 넋은 혼잣말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 저렇게 두들겨패면 사람 죽겠는걸?” 얻어터지는 자리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이는 맞는이(피해자)가 어떤 삶이고 마음인지 하나도 알 수 없다. 아프거나 앓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아파하거나 아픈 이웃을 알 길이 있겠는가? 하나도 없다. 목숨을 내려놓자는 생각은 하루에도 끝없이 했다. 꾸중을 들으며, 김치도 못 먹고 저 밥도 못 먹어서 “넌 한국사람이 아니야!”란 말을 날마다 적어도 석 판은 들으며 살아도, 스스로죽음(자살)을 그리지는 않았다. 스스로 숨을 끊는 길이 이 수렁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르거나 나은 길일까 하고 날마다 헤아리기는 했으나,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울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구나! 아니, 어머니는 하루쯤 울어 주실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자, 더더욱 스스로죽음(자살)은 안 하기로 다짐했다. 얻어맞으면서 빙그레 웃고, 얻어터지면서 다시 일어서서 “그래, 더 때려 봐?” 하고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한 마디를 얹고서 더 얻어터지는 하루를 보냈다. 덩치도 키도 힘도 훨씬 큰 또래나 언니나 어른이 흠씬 두들겨팰 적에는 그야말로 넋이 나갈 노릇이었지만 악착같이 견디었다. 열다섯 살 즈음 이르러, 우리 언니가 집어넣은 ‘특전무술 도장’에 들어가서 ‘여태 얻어맞은 주먹질보다 더 얻어맞으면’서 버틴 뒤로는, 스물한 살에 들어간 싸움터(군대)에서 얻어맞을 때까지 더 얻어맞을 일은 사라졌다. 그들(어버이·길잡이·또래·언니)은 왜 나를 두들겨패거나 꾸중했을까? 왜 그들은 날마다 그 짓을 되풀이했을까? 나는 왜 날마다 얻어맞으면서 여덟∼열다섯 살을 살아냈고, 싸움터에서 스물하나∼스물두 살에 죽음벼랑에 내몰려야 했을까? 때리고 밟고 막말을 일삼는 그들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 누구한테서도 ‘반짝이는 별빛’이나 ‘따뜻한 사랑’이 안 보였다. 얻어맞거나 꾸중을 들으며 늘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들은 사랑을 받은 적도, 사랑을 배운 적도, 스스로 사랑을 그리거나 생각한 적도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나도 나이를 먹으면 동생을 때려야 하나? 아니면,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철이 들면서 참된 어른이 되어 사랑을 느끼고 찾고 배우고 맞아들이고 온몸으로 녹여내어 둘레에 빙그레 웃음짓으로 보여주면 될까? 그나저나 날마다 얻어터지는 내가 사랑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어느새 쉰 살이란 나이에 이르고서 돌아보자니,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철이 들었’는지, ‘사랑을 보거나 아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한테 심은 씨앗은 언제나 하나 ‘사랑’인 줄 안다. 꾸중돌이는 사랑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품으려고 웅크리면서 모든 발길질과 주먹질과 깎음말을 흠씬 맞아들이는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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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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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0.

수다꽃, 내멋대로 40 모르는 책



  책집에 가면 ‘모르는 책’을 살펴서 읽고 산다. ‘아는 책’이나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사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예전에 읽어서 안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책’이라 여기면서 바라본다. 책숲마실(책집마실)이란, 모르는 책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만나면서, 새록새록 새기려는 꿈으로 읽고서, 싱글벙글 웃음꽃으로 살림을 스스로 짓는 매무새를 가다듬는 나들잇길이라고 느낀다. 책시렁을 돌아볼 적에는 ‘읽을 책’이나 ‘건사할 책’을 찾는다고 할 텐데, “찾는 책을 찾을 마음”이 아니라 “책집에 있는 책을 집어들어 읽을 마음”이다. 어느 책집에서나 책집지기하고 책손 사이에서는 “뭐 ‘찾는 책’ 있으셔요?” “네, 이런저런 책 있나요?”라든지 “사장님, 그런저런 책 있나요?” “네, 그런 책은 있고, 저런 책은 없습니다.” 같은 말이 자주 오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책집에 가든 “책 좀 보러 왔습니다.” 하고 짧게 말하고는 책시렁만 쳐다본다. 책집에 가면 ‘그곳에 있는 책’을 보려는 마음이다. ‘그 책집 그 책집지기가 여태 건사하고 추스르고 갈무리하고 품은 책’을 돌아보면서 ‘그 책집이 깃든 마을과 고을과 고장에 흐르는 숨결’을 느끼면서 읽는다. 더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바라거나 찾은 적이 없다. 그 책집에 있는 책을 문득 읽다가 장만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어 보는데 참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책이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고 보니 어쩐지 얄궂거나 허술하거나 모자라구나 싶다고 느끼는 책도 꽤 있다. 아직 모르던 책을 처음으로 만나거나 새삼스레 만나서 아름답다고 느낄 적이든, 이미 알든 여태 몰랐든 읽고 되읽는 사이에 허접하다고 느낄 적이든, 이 푸른별에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바라보고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하고 돌아본다. 저마다 뜻이 있으니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여민다. 저마다 하루를 살아가니 저마다 다른 눈길로 오늘을 바라본다. 낯익은 이름(글쓴이·펴냄터)에 매이면 눈썰미가 흐리게 마련이다. 낯선 이름으로 한 발짝 다가서면 눈망울이 빛나게 마련이다. 조각(지식·정보)을 외우려고 옆에 놓는 책이 아니다. 슬기(어진 눈빛·넋)를 북돋우면서 깨우려고 곁에 두는 책이다. 열 벌을 읽었든, 쉰 벌을 되읽었든, 다시 들출 적마다 ‘모르는 책’이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짚고 새길 줄 안다면,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가꾸면서 꽃으로 피어난다.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든지 ‘큰보람(큰상)을 받은 책’을 물결에 휩쓸리듯 빌리거나 장만해서 읽는다면 ‘내 눈(우리 눈)’을 스스로 잊다가 잃으면서, 틀에 박힌 굴레에 잠겨들면서도 굴레를 못 느끼기 일쑤이다. 한집에서 살아가는 아이어른 사이는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지만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어우러지는 사이로 살기에 서로 반갑고 포근하고 아늑하다. 누가 어제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고 이 일을 내내 들먹인다면 한집안이 아니다. 밤마다 고요히 잠들면서 꿈을 그리고, 아침마다 새로 깨어나면서 새마음에 새몸으로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다. 어제 읽은 책이어도 오늘 읽을 적에는 다르다. 지난해에 읽은 책도 올해 읽으면 다르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해마다 다르지. 해마다 다를 뿐일까? 날마다 다르다. 어느 하루라도 똑같은 모습이거나 숨결인 나무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를 자꾸 가지치기를 한다. 모든 나무가 날마다 철마다 해마다 다른데, 늘 다르게 자라는 숨결을 ‘가지치기’란 이름으로 싹둑 쳐낸다. 서울(도시)에서는 나무가 나무스럽지 않다. 꽃도 꽃스럽지 않다. 책도 책스럽지 않다고 할 만하다. 줄기가 곧고 길게 뻗으면서 가지가 숱하게 자라는 나무에 끝없이 돋는 새잎이 찰랑찰랑 춤추는 빛살을 느낄 적에 비로소 ‘나무를 조금 보았다’고 여길 만하다. 나무마다 깃드는 나비는 다 다르다. 나무마다 어떤 나비가 찾아드는지 살피고, 나무 한 그루에 새가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볼 수 있다면, ‘나무를 조금 더 보았다’고 느낄 만하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책을 읽고 마음을 가꾼다. 앞으로 얼마나 클는지 모르지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책집에서 책시렁을 돌아본다. 우리는 ‘모르는 줄 알기’에 배운다. ‘모르는 줄 모른다’면 배우지 않아 늙고 만다. ‘모르는 줄 아는 눈빛’으로 ‘아직 모르는 책’을 찾아서 새삼스레 한 발짝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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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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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29.

수다꽃, 내멋대로 39 사전 사진 사람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몸으로 살기란 만만하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날마다 꾸지람이나 놀림을 받았고, 때로는 얻어맞았다. 어릴 적 다닌 배움터(국민학교)는 가난한 마을 아이들이 우글우글 모였고, 똑소리 나는 참한 가시내가 많았는데, 6학년이던 열세 살에, 부반장을 맡은 가시내가 “동무는 놀리지 않아!” 하고 큰소리를 내주어, 이때 뒤로는 더 놀림받는 일은 없었다. 열 살이던 4학년에 마을 할배한테서 천자문을 배우는데, 할배는 즈믄(1000) 글씨를 다 가르치지 못 하고 돌아가셨다. 864 글씨였던가? 아무튼 나머지 한자는 스스로 익혔고, 옥편이랑 국어사전을 뒤지면서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어린이’가 소리내기 힘든 모든 한자말을 ‘누구라도 수월하게 소리를 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말하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익혔다. 이를테면, 배움책에 “늠름한 위인입니다”라 나오면 “씩씩한 분입니다”로 바꾸어 읽었다. “필요한 사항입니다”라면 “그리 해야 합니다”로 바꾸었다. 1975년에 태어난 또래는 1993년에 첫 수능(수학능력시험)을 치르면서 본고사도 나란히 치러야 했는데, 이때에 ‘언어영역 시험공부를 하려면 국어사전을 읽어야 한다’고 알려주기에, 고1∼고3 세 해 동안 틈틈이 국어사전을 읽었다. 두 벌을 통째로 읽은 날 밤에 책상을 쾅 내리치면서 “아, 이렇게 쓸데없는 영어와 일본말이 가득한 국어사전이라면 차라리 내가 쓰지!” 하고 외쳤다. 그런데 말더듬이 혀짤배기인 몸을 다 바로잡지 않았어도 어쩐지 통·번역이란 일을 하고 싶었고, 1994년에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에 들어가지만 정작 그때까지 ‘네한사전(네덜란드·한국말사전)’이 없더라. 1학년이면서 ‘사전원고 입력 자원봉사’를 했다. 어쩜 이 나라는 순 엉터리일까? 말소리가 좀 샌대서 놀리고, 국어사전은 우리말 꾸러미가 아니고, 이웃말(외국말)을 가르친다는 곳에는 이웃말 꾸러미가 아직 없으니 말이다. 통·번역을 하자면 이웃말도 잘 다스려야 할 뿐 아니라, 우리말도 옳게 가누어야 한다. 우리말을 모르는 채 이웃말만 잘 하면, 이웃말을 우리말로 못 옮긴다. 마땅한 노릇이다. 그런데 예나 이제나 우리나라 통역가·번역가는 뜻밖에도 ‘우리말 익히기’에 게으르거나 마음을 잘 안 쓴다. 우리말을 모르면서 어떻게 이웃말을 우리말로 옮길 수 있을까? 나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이란 꾸러미를 쓰는 길을 얼결에 걸었다. 26살에 《보리 국어사전》을 엮는 편집장·자료조사부장을 맡았는데, 21∼23살에 싸움터(군대)에 가서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벌벌 기어야 하던 무렵에는, 뒷내기(후임병)가 ‘싸움말(군대용어)’을 못 알아듣기에, 모든 뒷내기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본말로 된 싸움말을 우리말로 쉽게 손질해서 알리는 일’을 했다. 하나하나 짚자면, 말더듬이나 혀짤배기가 아니었다면, 새 틀거리(입시제도)가 서지 않았다면, 네한사전 없는 한국외대에 안 들어갔다면, 싸움터에 들어가서 뒹굴지 않았다면, 우리말을 우리말로 바라보는 살림이나 눈길을 스스로 갈고닦자는 마음을 덜 일으켰거나 조금 뒷전으로 미뤘거나 대수롭잖게 여기지 않았으려나 알쏭달쏭하곤 하다. 지나온 날은 하나같이 가시밭이었다고 여길 수 있되, 가시밭길을 꿋꿋하게 헤치면서 ‘살아남자’고 여기던 발걸음이 뜻밖에 스스로 살려주었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이동안 “그냥 살아남고 싶지는 않아. 웃고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남겠어. 아니, 웃고 춤추고 노래하며 살림을 짓고 사랑을 배우고 나누며 살겠어.” 하는 다짐을 곁말로 새기는 나날이었다. 인천·서울에 살던 무렵에는 날마다 두세 군데 헌책집을 돌면서 숱한 책을 곁에 두었고, 아이를 낳고서 시골로 옮긴 뒤로는 틈틈이 꾸러미로 온갖 책을 장만해서 새롭게 익힌다. 그리고 시골에서 풀꽃나무랑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말이 없이 말을 들려주는 이웃숨결’을 헤아려서 낱말을 살핀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주시경도 세종도 아닌,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고장마다 사투리로 스스로 지은 말이다. 밥옷집을 스스로 짓던 시골 순이돌이가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보며 스스럼없이 지은 우리말이다. 이런 얼거리를 책숲마실을 하면서 늘 새롭게 배웠고, 이러다 보니 마을책집을 둘레에 두루 알리고 싶어 ‘책집 사진’을 1998년부터 찍었다. 사전은, 사랑으로 살림을 지은 삶을 사람이 생각을 담아 마음으로 여민 말을 담는다면, 사진은,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과 나란히 흐르는 숲빛을 사람이 생각을 실어 마음으로 여민 꿈을 옮긴다고 할 만하다. 사전을 새로 쓰고, 그동안 나온 아쉬운 사전을 곰곰이 읽는다. 사진을 새로 찍고, 이웃이 찍는 사진을 물끄러미 본다. 우리 사이에 숲바람이 불기를 바라고, 서로서로 푸른별에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마음으로 익힐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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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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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26.

수다꽃, 내멋대로 38 담그림



  둘레에서는 ‘벽화(壁畵)’라는 말을 쓰지만, 나는 ‘담그림’이라는 말을 쓴다. 곰곰이 보면, ‘벽화’라는 이름을 내세워 돈벌이를 하거나 곁들임(재능기부·자원봉사)을 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낙후된 구도심이 밝아 보이도록 벽화 그리기 사업’을 벌인다고 밝힌다. ‘벽화’를 그리는 이들은 들꽃을 안 본다. 골목마을에 치덕치덕 붓질을 하되 골목꽃을 못 알아본다. 더구나 골목마을에서 아예 살지 않을 뿐더러, 골목집 이웃을 사귀지 않고 알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는 터라, 골목마을하고 한참 동떨어진 뜬금없거나 터무니없는 그림을 철벅철벅 발라 놓고는 함찍(단체사진)을 하고서 사라진다. 이 땅에 ‘뒤떨어진 마을(낙후된 구도심)’은 없다. ‘안 뒤떨어졌다고 여기는 잿집(아파트)’에서 먹고자는 이들 눈으로는 두겹(2층)짜리조차 드문 골목집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담을 맞대는 살림집이 어떠한 숨결인지 겪은 적도 본 적도 알려고 나선 적도 없다고 할 만하다. 모름지기 골목집은 조용하다. 골목에는 쇳덩이(자동차)가 함부로 못 들어온다. 골목집에는 오름틀(승강기)을 놓을 일이 없다. 골목집은 씻는칸(욕실)이 조그맣게 한켠에 있을 뿐이라, 옆집에서 누가 씻건 말건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이와 달리 잿집에서는 쇳덩이가 하룻내 들락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오름틀 소리가 끝없고, 위아래에서 물을 쓰거나 씻는 소리까지 퍼진다. 골목집에서는 틈새소리(층간소음)가 없다. 잿집에만 있다. 다만, 골목집이 모인 마을에도 ‘다른 소리’는 있다. 바람이 불 적에 골목꽃이 춤추는 소리, 골목나무가 한들거리는 소리, 골목꽃하고 골목나무를 보러 찾아온 크고작은 새가 들려주는 소리, 이따금 풀개구리까지 나타나 들려주는 소리, 풀꽃나무 곁에 깃드는 풀벌레가 들려주는 소리가 있다. 골목마을에서는 비가 오면 빗소리가 고르게 퍼져 노랫가락을 이룬다. 이제는 골목에서도 잿집 놀이터에서도 어린이가 뛰노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지난날에는 골목 어디에서나 어린이가 우르르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노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란히 있었다. 무엇을 가리켜 ‘낙후(뒤떨어졌다)’라 하는가?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몇 천만 원이라 이르는 돈으로 사고파는 잿더미여야 ‘번쩍거리’는가? 2023년 4월에 인천 배다리책골목 곳곳에 갑자기 나타난, 뜬금없고 어이없는 담그림을 보았다. 그러나 ‘담그림’이라 하기에 창피하다. ‘인천시에서 4000만 원이란 목돈을 들여 만든 벽화예술사업’이라는데, 인천 배다리하고 얽힌 박경리·현덕·주시경·김구·김소월도 아닌 움베르토 에코·모비딕은 뭐고, 인천막걸리도 아닌 스타벅스는 뭔가? 인천이나 배다리 골목집에 피어나는 들꽃이나 수수꽃다리도 아닌 큼지막한 꽃을 칙칙 뿌려대면서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이라 내붙이는구나. 마을에, 골목에, 책집에, 이웃이자 동무로 어우러지려는 마음도 눈빛도 없기에 ‘아트스테이’였네 싶다. 우리말을 모르거나 안 쓰기에 잘못이지는 않다. ‘빛(아트)으로 머문다(스테이)’고는 하되, 정작 무슨 ‘빛듦(빛이 깃듦)’인지 종잡을 수 없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담아 책으로 여민 이들은 하루아침에 글·그림을 쏟아내지 않는다. 기나긴 삶을 숨빛으로 녹여내어 글 한 줄에 그림 한 자락으로 편다. 골목마을에 ‘벽화사업’이 아닌 ‘담그림’을 여미려면, ‘4000만 원 경비지출’이 아닌, 마을사람한테 물어보고서 그림감을 고르고, 마을사람이 스스로 담그림을 빚으며, 배다리책골목 책지기가 사랑하는 ‘인천 글꾼·그림꾼’에 ‘인천 이야기책과 글꽃’을 놓아야 아름답고 사랑스레 오래오래 흘러가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입다물거나 등돌린다. 돈을 노리는 사람이 돈에 군침을 흘린다. 사랑을 바라는 사람이 스스로 사랑을 짓는다. 이름을 거머쥐려는 사람이 이름팔이를 하려고 허수아비로 선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동무로 어울리는 사람이 마을을 가꾼다. 들숲바다를 등진 사람이 막말과 막짓을 일삼는다. 들숲바다를 읽고 헤아리는 사람이 이웃을 포근히 품고 달랜다. 풀꽃나무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 깎아내린다. 풀꽃나무하고 이야기하며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해맑게 피어난다. 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햇볕·햇빛·햇살을 싫어한다. 밤에 별바라기를 하는 사람이 햇볕·햇빛·햇살을 노래한다. 어른스럽지 않기에 아이 곁에 서지 않고, 아이가 못 알아들을 어려운 말을 일삼는다. 어른이 되려 하기에 아이 곁에 서면서, 아이랑 오순도순 즐겁게 우리말꽃을 상냥하게 편다. 볼썽사나운 담그림을 모두 지우기를 빈다. 그저 하얗게 발라 놓자. 마을은 마을사람 손으로 그려야 빛난다. 책이야기는 책집지기와 책꾼이 담아야 태어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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