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마음


 이 옷을 누가 입는가 헤아리며 손빨래를 한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사는 터전은 어떠해야 좋을까 곱씹으며 비빔질을 한다. 빨래할 때뿐 아니라 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밥을 누가 먹는가 생각한다. 이 밥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면 좋은가 돌아본다. 내가 쓰는 글은 누가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되뇌어 본다. 내 어줍잖은 글 하나를 읽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어떤 생각으로 펼쳐 나가면 좋은가를 가만히 톺아본다. 빨래하는 마음은 밥하는 마음이고, 밥하는 마음은 걸레질하는 마음이며, 걸레질하는 마음은 아이를 안고 동네마실을 하는 마음이요, 아기수레 아닌 어버이 품으로 아이를 보듬는 마음은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이다.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은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이고,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은 호미질 하는 마음이다. 호미질 하는 마음은 바느질 하는 마음이고, 바느질 하는 마음은 설거지를 하고 내 어버이 등과 허리를 부드러이 주무르는 마음이다. (4343.5.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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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와 글쓰기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만화책 가운데 《도자기》가 있다. 이 만화를 그린 이는 ‘호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지난 2009년 봄에 몸이 무척 아팠는가 보다(아마 예전부터 몸이 나빴겠지). 호연 님이 몸이며 살림이며 너무 어려운 나머지 당신 블로그에서 어찌어찌 도움을 바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를 두 군데 신문에서 기사로 내보냈는가 보다. 《미녀는 못 말려》 만화책을 보던 옆지기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뒤적뒤적해 보니 〈한겨레〉 기사가 뜬다. 〈세계일보〉에도 같은 기사가 이틀 앞서 나왔다는 댓글은 읽었으나 〈세계일보〉 기사까지는 찾지 못했다. 줄거리는 〈한겨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런데, 이 기사를 놓고 여러 누리사랑방(블로그)이나 누리모임(카페)에서 뒷말이 많다. 나로서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호연 님 만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남긴 뒷말인데, 호연 님은 당신 몸이 아파서 도움을 바라는 글을 올렸던 이야기를 자꾸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덥석 기사로 띄운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띄운 〈세계일보〉도 그렇지만, 이렇게 기사가 된 이야기를 새삼 다시 기사로 띄운 〈한겨레〉는 무얼까? 이렇게나마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돕고자 했기 때문일까?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한겨레〉 기자들이라 한다면, 〈한겨레〉가 그토록 손가락질하는 〈조선일보〉 매무새하고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다. 나는 〈한겨레〉 ㄱ기자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겨레〉 ㄱ기자가 나를 취재하겠다며 연락을 해 온다면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아십니까?” 하고 넌지시 여쭌 다음에,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지면을 빌어 공개사과를 한 적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여쭈고,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저를 취재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마무리말을 한 다음 내가 먼저 전화를 뚝 끊으려 한다. (4343.1.15.쇠.ㅎㄲㅅㄱ)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47436.html#opinion1

http://cafe.naver.com/swallowedbir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159
 


 

2009년 4월에 있던 일을 이제서야 

알아서, 뒤늦게 가슴을 치면서 

뒷통수 치는 글을 끄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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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란, 삶이란, 책읽기란, 글쓰기란
 ― 나는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 1 -

 전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습니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따로 하지 않았으나, 고등학교를 다니며 늘 새벽과 밤으로 사십 분에서 한 시간쯤 보내야 하는 버스길에 올라야 하다 보니, 이 시간에 책이라도 읽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창밖으로 펼쳐진 모습을 보고, 버스에 탄 다른 사람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 모습이나 사람 구경은 시들해졌고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았고,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가운데에도 아랑곳 않고 책에 빠진 모습에 저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버스를 타며 무얼 했나 싶어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이때부터 버스에서나 전철에서나, 또 어쩌다 자가용을 얻어타게 되나 책을 펼쳤습니다. 버스에서 책을 펼치니 버스 기사 매무새가 가끔 달라지곤 했습니다. 새벽밤에는 으레 불을 꺼 놓고 다니셨는데, 고등학생 아이 하나가 책을 꺼내어 읽으니, 제가 서거나 앉은 자리 쪽에는 불을 켜 주곤 했으며, 책을 읽는 데에 덜 흔들리게 하려고 덜 거칠게 몰거나 퍽 부드러이 몰곤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불켜짐과 돌돌돌 굴러가는 바퀴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으로 고맙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했으나 언제나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은 한쪽 구석에 내려놓습니다. 등허리를 펴고 한손을 번갈아 등뼈를 주무릅니다. 몸이 조금 풀렸다 싶을 때 책을 꺼내어 펼칩니다. 선 채로 한참 읽는데 속에서 불끈불끈 무엇인가 솟아오릅니다. 1500년대를 살다 간 서양사람 하나가 적어 놓은 이야기 《노예 근성에 대하여》(무림사,1980)를 읽는데, 자그마치 오백 해를 지난 묵은 이야기임에도 2000년대 오늘날과 맞대어 헤아려도 거의 달라지거나 어긋난 대목이 없습니다. 이 느낌은 무엇이고 이 말은 무엇인가 하면서 갈비뼈가 뻑적지근해집니다. 가슴이 시립니다. 책 한 귀퉁이에 아무 말이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합니다. 책을 덮고 뒤쪽 빈자리에 또박또박 글을 적어내립니다.


 - 2 -

 글다운 글을 읽어 보지 못한 가슴은, 글다운 글 앞에서 가슴이 뭉클뭉클 움직이지 못합니다. 가슴이 움직여 본 적이 없으니, 그 뛰는 가슴으로 제 삶을 바로잡거나 일으켜세워 새로 태어나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스스로 글을 쓰게 되어도 무엇이 글인 줄 모릅니다. 글이란 어떻게 쓰며, 누구한테 읽히는가, 글을 읽는 사람한테 어떤 씨앗이 뿌려져 그이 삶이 거듭나는가를 조금도 모릅니다. 알아보려고도 못합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마음그릇에서 사랑이 샘솟기를 바라기 어렵습니다. 참사랑을 모르고 겉사랑만 아는 이들이 읊는 거짓사랑이 참사랑이라도 되는 줄 생각하는 사람한테도 우리들 참사랑을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인 줄 모를 뿐더러, 저희들한테 쓰레기를 준다고 여기면서 싫어하는데요.

 굳어진 삶을 말랑말랑 동글동글 손질하기란 어렵습니다. 어쩌면 손질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일, 이루지 못할 듯한 일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달프고 외롭습니다. 다만, 몸은 고되고 외로워도, 마음은 가없이 가뿐하고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저는 자유 민주 평화 평등 통일을 제 삶자락에 고이 담아낸다고 느끼니까요. 그리고, 이웃을 억지로 끌어당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로지 제 삶에 따라 서로 어깨동무할 뿐입니다. 저는 씨뿌리고 가꾸는 사람이지, 밥상을 차려 숟가락에 밥을 퍼서 떠먹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비록 철부지 길을 걷는 사람들한테도 읽힐 글을 쓴다고 하여도, 떠먹이는 글이 아니라, 농사지어 갈무리하여 나눠 주는 글일 뿐입니다.

 저는 제 글에 오로지 셋을 담습니다. 사랑, 믿음, 나눔. 그리고 세 가지 길을 걷습니다. 땀방울, 다리품, 마음쓰기.

 읽어 주는 이가 많으면 좋습니까? 기쁩니까? 읽어 주는 이가 없거나 적으면 나쁩니까? 슬픕니까? 대꾸가 없으면 서운합니까? 대꾸가 많으면 흐뭇합니까? 글쓰기란 기다림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내 모든 삶을 실어서, 오늘 이 자리부터, 내가 글 한 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갈 뒷날까지, 나 스스로한테 보람있으면서, 내 마음 읽어 줄 사람을 꿈꾸고 바라는 기다림을 담는 일입니다.

 손목이 저리고 팔꿈치가 쑤셔도 볼펜 든 손을 놓지 못합니다.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를 옮겨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옮겨적기를 끝마칠 때까지 저리고 쑤시고 아파도 참습니다. 글이 저절로 터져나올 때까지는 저 스스로 기다립니다. 먼저 책상 앞에 앉지 않습니다. 오래오래 길에 섭니다. 길을 거닐고 뛰고 자전거를 몹니다. 그런 시간을 길디길게, 아니, 이제 속으로 멈추라는 소리가 터져나올 때까지 견디고 버티며 땀을 쏟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일을 그치고 볼펜을 듭니다. 밥도 잠도 사랑놀이도 그칩니다. 오직 한 가지, 마음속 터져나오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고 펼쳐 보이는 데에 바짝바짝 귀를 곤두세웁니다.

 제 손을 떠나면 제 글이 아니라고 하는데, 제 손으로 끄적여지는 모든 글은, 처음 쓰여질 때부터 제 글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살아가도록 이끌고 도운 온갖 사람들 넋이 담겨 있어서, 모든 넋이 다 함께 이룬 글입니다. 이리하여, 책은 ‘내 것’이며 ‘모두 것’입니다. 오늘과 어제와 앞날 언제나 찬찬히 이어가는 팔딱거리는 핏덩이입니다.


 - 3 -

 아침 일찍 깨어난 아기를 안고 방과 마루를 이리저리 오가면서 어르다가, 때가 되어 옆지기한테 맡기어 젖을 물리는데, 아기는 다시 잠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엎어지고 기고 물건 잡아당기고. 아빠 책과 사진기를 붙잡아 입에 넣어 빨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잠깐 혼자 놀라고 놓아 둡니다. 틈틈이 옆을 보고 뒤를 보며 아기가 기어가는 곳을 살핍니다.

 삶을 담아내지 않았다면 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런저런 글자가 낱말을 이루고 낱말이 글월을 이룬다 한들, 껍데기만 글일 뿐, 참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겉글과 거짓글도 글이라고 우기면 글이라 이름붙일 수 있으나, 이와 같은 글은 글을 쓰는 우리 뜻을 넉넉히 나누지 못합니다. 혼자만 좋자고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좋자고 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부터 좋으면서 이웃이 함께 좋자고 쓰는 글입니다. 나 스스로 좋으면서 내 동무가 함께 좋자고 쓰는 글입니다.

 삶을 담아내지 않은 글이란 쓰이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삶이든 더러움에 찌든 삶이든, 글에는 그이 삶이 고스란히 배어들기 마련입니다. 겉멋과 겉치레로 살아가는 사람은 겉보기로는 놀랍거나 대단하게 느껴지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이러한 글은 머잖아 속알맹이가 들통이 납니다. 속멋과 속치레로 살아가는 사람은 겉보기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놀랍고 대단한 글을 쓰기 일쑤입니다. 우리들이 속멋과 속치레를 가꾸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글을 곧바로 알아채면서 품에 꼬옥 껴안습니다. 우리들이 속멋과 속치레를 안 하거나 등돌리거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글을 놓고 ‘이게 글이냐?’ 하면서 비웃거나 따돌리거나 내팽개칩니다.

 살아가는 대로 쓰는 글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쓰는 글입니다. 어울리는 대로 쓰는 글입니다. 품은 꿈대로 쓰는 글입니다. 나누려는 사랑대로 쓰는 글입니다. 함께하려는 믿음대로 쓰는 글입니다. 글 온 구석에서 빈틈이나 모자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면, 이이는 그만큼 제 삶을 알차고 빈틈없이 돌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글 어느 자리에서나 허술하거나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이이는 그만큼 제 삶에 구멍을 내고 어수룩하게 보내면서 세상 흐름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거짓으로 쓰여지는 글이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여지는 글입니다. 참다이 쓰여지는 글만 있습니다. 꾸밈없이 쓰여지는 글입니다. 슬기로움이 담기고 어리석음이 담기는 글입니다. 넉넉함이 담기고 모자람이 담기는 글입니다. 거룩함이 담기고 못남이 담기는 글입니다. 반가움이 담기고 짜증이 담기는 글입니다. 이리하여, 돈을 바라는 사람한테는 돈 냄새 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이름값 높이고픈 이한테는 이름티 내려는 글이 쓰여집니다. 힘으로 남을 억누르는 사람한테는 힘자랑 하는 글이 쓰여집니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가난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말만 예쁘게 빚으려는 사람한테는 말만 예쁜 글이 쓰여집니다. 말이 무엇인지 종잡지 못하는 얼치기한테는 제 말 네 말 가누지 못하는 얼치기 글이 쓰여집니다. 미국을 섬기는 사람한테는 미국 섬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한테는 하느님 섬김이 알뜰히 묻어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과자를 즐겨먹는 사람한테는 과자맛 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누런쌀을 날마다 먹는 사람한테는 흙내 나는 글이 쓰여집니다.


 - 4 -

 쓰고 싶은 글대로 꾸리는 삶입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대로 가꾸는 삶입니다. 쓰고 싶은 글처럼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디는 삶입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처럼 한 사람 두 사람 만나는 삶입니다.

 글에는 거짓이 스며들 수 없기에, 글쓰기는 두려운 일이 되곤 합니다. 글에는 참만 깃들 수 있기에, 글쓰기는 함부로 하기 어려운 일이 되곤 합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듯,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내 밥그릇을 생각한다면 내 삶이며 내 아이 삶이며 내 둘레 사람들 삶이며 내 밥그릇 챙기기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바라보게 되고, 이러한 가운데 쓰는 글은 밥그릇 붙잡기에서 맴돌고 그칩니다. 모둠 밥그릇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밥자리와 밥나눔을 생각한다면, 내 글쓰기 테두리는 사뭇 달라지고 글에 담기는 넋과 얼 또한 크게 달라집니다.

 저한테는 책이 있고 사진기가 있으며 볼펜하고 수첩이 있습니다. 여기에 고운 옆지기와 술 한 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여운 아이까지. 이렇게 어우러진 우리가 깃들 방 한 칸 있어, 두 다리 뻗어 함께 자고 밥먹고 놀고 일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습니다. 이밖에 달리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와 함께 마실 다니기? 이쯤? 그쯤? 아이가 볼볼 기어서 아빠 옆으로 옵니다. (4342.3.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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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는 기쁨, 찍은 사진 나누는 기쁨
 [사진은 삶이다 2] 사진을 찍는 당신한테



 아기를 품에 안고 나들이를 다녀도 사진기를 꼭 어깨에 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고 하여도 어깨에는 언제나 사진기를 걸칩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보리술 한 병 사러 나가는 길에도 사진기는 들고 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니더라도 사진기는 목아지에 걸칩니다. 저한테는 사진기 담는 가방이 예닐곱 가지 있지만, 사진기를 가방에 넣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필름사진기만 가슴에 메는 가방에 넣어 두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집 아래층 마당에 사는 길고양이한테 밥을 줄 때에도 사진기를 들고 내려가곤 합니다. 추운 날씨에 길고양이가 밥 달라고 야옹거리는 모습을 가끔 한 장씩 찍어 보곤 합니다. 고양이는 자기랑 놀아 주지 않고 사진만 찍는 저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 



 방바닥에 이불을 두툼하게 깔고 있는 집에서 까르르거리는 아기를 사진으로 찍을 때면, 이 녀석은 꼭 제가 단추를 누를 때까지 잠깐 기다려 줍니다. 아기가 벌써 사진찍기를 알랴 싶습니다만, 어쨌든 한 장 찍혀 주고 노는 품새는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어제 아침에는 성당 나들이를 하다가 골목가게 담벼락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고드름을 보았습니다. 눈 구경도 어렵지만, 고드름 구경도 어려운 오늘날 도시 살림살이인데, 골목마실을 하면서 틈틈이 고드름을 만납니다. 고드름 찍는 사진에 겨울이 함께 담깁니다.

 송림동 구멍가게 앞으로는 해가 잘 들고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이 골목에서는 겨울을 날 만하다고 느끼는데, 우리들 이런 느낌과 마찬가지인지, 이 골목에 사는 분들은 빨래를 골목길에 널어 놓았습니다. 빨래가 얼지 않을까 걱정이기는 했어도, 이 골목에서 한두 해 사신 분도 아닌데, 얼어붙을 줄 안다면 처음부터 널지도 않았을 테지요. 골목길에 빨래를 널어 햇볕에 말리는 집은 사람 살기에 퍽 괜찮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학교 아이들이 했을는지, 고등학교 아이들이 했을는지, 다른 사람 사는 골목집 담벼락에 스프레이를 뿌려서 짓궂은 장난질을 해 놓은 모습을 보다가는, 저 녀석들이 자기 집에도 저렇게 할까 싶어서 씁쓸합니다. 저 녀석들은 누구한테 이런 짓거리를 배웠을까요. 저 녀석들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저 녀석들을 가르친다는 학교 교사들한테서? 저 녀석들 손위사람이라는 선배한테서?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에서? 영화에서?

 우리 동네 성당 신부님이 오늘 마지막 미사를 올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동네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배다리 산업도로’ 막는 일에 힘을 보태는 한편, ‘잘못된 동네 재개발’ 또한 막아내고 싶은 꿈이 있으나, 지역교구장이 보내는 데에 말없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일요일을 맞이해 송별식을 하는 자리에서, 떠나는 인사를 하는데 울먹이시더군요. 떠나는 인사에서도 막개발 삽날 이야기를 다시금 한 마디 하십니다. 누구는 힘이 있는 자리에 있어도 아무런 힘을 안 쓰고 있는데, 누구는 힘이 있는 자리가 아닌 데에 있어도 작은 손길 모아 다부지게 애쓰고 있습니다. 





 ㅁ이라는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두 가지 보내주었습니다. 뜻밖이라고 할 책인데, 제가 쓴 ‘사진 이야기’를 읽고 보내게 되었다는 편지가 책 사이에 꽂혀 있습니다. 두 장에 걸쳐 써 준 편지가 고마워서 꼼꼼하게 사진책을 읽어 나가는데, 한 권은 영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짙게 들어서 덮어 버리고, 다른 책 하나는 부지런히 읽어 끝마칩니다. 그렇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제법 도톰하게 나온 이 사진책, 가만히 따지면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사진 몇 장 곁들인 수필책’인데, 책겉에는 ‘포토에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지만, ‘사진’도 아닌 ‘포토’라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붙여도 될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이 책을 쓴 분은 ‘사진일을 하고’ 있습니다. 퍽 이름난 노래꾼들이 내는 음반에 쓰이는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스튜디오도 꾸리며, 패션화보에도 사진을 싣습니다. 갈래로 나누자면 상업사진인데, 상업사진이라서 마뜩하지 않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상업사진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누구나 찍는 흔한 사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사진가 ○○○ 사진’이라고 할 만한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딱 하나, 놀이공원 허니문카 찍은 사진은, ‘사진가 ○○○ 사진’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포샵질은 거의 안 한다고 하니 그만큼 사진기에 모든 눈과 마음을 쏟는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진을 좇는다’고 하면서, 이이가 찍는 사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사람 움직임과 사람 삶터를 담는지’까지는, 글쎄, 아직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이한테 너무 많이 바라는 셈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앞세워 ‘포토에세이’라고 내놓고자 했다면, 나이 서른이고 스물이고 마흔이고 쉰이고를 떠나서, ‘나는 내 사진을 찍는 ○○○입니다’ 하고 느껴지도록 사진으로 보여주고, 사진에 붙이는 글로 함께 들려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마음결이 되지 못한다면, 지난날 연예인으로 일했던 발자취에다가 요즈음 잘나가는 몇몇 노래꾼 사진을 찍어 주었다는 손자국으로 ‘책 팔아먹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그래도, 이이 수필책을 읽으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찍은 사진을 하나 넣어 주었기에, 책이 아주 밉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토록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즐기던 마음이었다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가장 가까이 있는 식구들부터 사진으로 담아내어 자기 목소리와 생각을 우리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ㅈ’이니 ‘ㅌ’이니 하는 노래꾼들 사진만 수두룩하게 보여주지 말고,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살붙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좀더 골고루 보여줄 때, 자기 지난날과 오늘날이 우리들한테 한결 푸근하고 넉넉히 스며들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ㅁ출판사에서 보내준 다른 책은, 사진은 한 사람이 찍고 글은 문학쟁이 여럿이 돌아가면서 따로따로 썼습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 나라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글과 사진을 함께 묶습니다. 저야 인천에 사는 몸이고,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니, 무엇보다도 인천 이야기를 맨 먼저 펼쳤습니다. 인천 이야기를 쓴 분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기는 했지만, 열 몇 해 앞서부터 서울로 옮겨서 살아가는 분입니다. 이분도 ‘인천에 새 연고지를 얻은 야구단보다, 떠돌이 신세인 야구단’에 한결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이 아닌 서울에 삽니다. 더욱이 인천에서 안 산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이분이 들려주는 ‘인천이라는 도시’ 이야기는 자기로서는 머나먼 옛날, 1970년대와 1980년대 가운데무렵까지 머뭅니다. 오로지 추억을 말하고, 그예 추억만 곱씹습니다.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를 바라보는 인천사람들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로 이어지는 ‘인천이라는 도시’ 흐름과 발자국을 느낄 수 없습니다.

 꼭 글쓴이 탓은 아닐 터이나, 인천이라는 도시를 사진으로 담은 분도 ‘겉핥기 인천’ 사진만 담을 뿐,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다른 곳과 남다르거나 맛깔나거나 새롭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반갑거나 얄궂거나 훌륭하거나 어수룩하거나 한 모습을 잡아채지 못합니다. 그저 풍경입니다. 용산역에서 급행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막바로 택시 잡아타고 월미도에 달려가 놀이기구 몇 가지 타고 바가지 회를 소주 곁들여 몇 점 사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그런 구경꾼들이 바라보는 인천 풍경입니다. 





 책을 덮으면서 ‘제기랄’ 하고 내뱉으려고 하다가 도로 집어넣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넌, 그것도 모르냐, 이 바보야, 이 멍청아, 이 밥통아, 이 머저리야!’ 하고 나무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 당신은 아직 모르시는군요.’ 하면서 일러 줄 수는 있는 노릇이지만, 모르는 사람한테 모름을 깨우쳐 주려 해도, 이이들 스스로 ‘우리가 못 보는 모습을 알려주셔요.’ 하면서 찾아올 때까지는 어떠한 이야기도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항구가 있으면서도 항구도시가 아니고, 프로야구단 두 곳이 인천에 뿌리를 둔다고 하지만 둘 모두 인천에 뿌리를 두었다고 하기 어려운 인천입니다. 나라안에서 맨 먼저 철길이 놓였고 고속도로가 첫 번째로 놓였으며 전화며 기상대며 보통교육기관 또한 맨 먼저 생기고 극장도 맨 먼저 열린 인천입니다. 그러나 방송국 하나 없고(지난해에 비로소 오비에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겼습니다. 그러나 중앙방송사 지역본부는 인천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광역시치고 지역본부가 없는 오직 한 군데이며, 작은 시군에조차 지역본부가 열려도 인천에만큼은 열리지 않습니다), 지역신문사는 지역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데다가, 지역 국회의원이 지역일에는 나 몰라라 합니다. 독재정권한테 사랑받아 무시무시한 재단을 꾸리던 군인한테서 지역교육권을 도로 찾아(선인재단) 시립으로 삼기는 했어도 국립대학이 없는 인천이고, 경기도 권에서 교통카드 ‘환승할인’이 안 되는 딱 한 곳인 인천이며,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나쁜데에도 전국에서 재개발 공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인천입니다. 이런 인천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는 어떤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로 다리품을 팔고 손품을 팔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인천 바닥에서 인천을 사진으로 담는 이들과, 인천 바깥에서 인천을 사진으로 찍는 분들한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무슨 사진이 인천을 말하는 사진입니꺼. 





 새벽 네 시 사십오 분부터 들리고 있는 전철 오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깨어 있습니다. 부엌 개수대 물은 간밤에 얼어붙어 녹을 낌새가 없습니다. 그래도 씻는방 물은 얼지 않았습니다. 보일러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집안은 영 도 밑으로 네다섯 걸음쯤 되지 않을까 싶어도 잠자는 방은 그럭저럭 불을 넣어 지낼 만합니다. 한숨을 돌립니다.

 언손을 이불 밑에 넣어 비비면서 어제그제 찍은 사진을 살펴봅니다. 오늘 아침 다시 성당 나들이를 하여, 떠나는 신부님이 올릴 마지막 미사를 사진에 담고 시디로 구워서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찍은 세례하는 모습 사진도 시디로 구워서, 세례받은 분한테 하나씩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앞서 찍은 동네 이웃 아주머니 사진도 종이로 뽑아서 한 장씩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기를 그림으로 그려 준 여든일곱 그림할머님을 틈틈이 찍어 놓았던 사진은 어제 찾아가 뵙고 건네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성에 살고 계신 부모님한테도 아기 사진을 뽑아서 부쳐야겠네요. 사진은 뽑긴 했는데 아직 안 부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성당이며 우체국이며 이웃집이며 들를 곳이 많습니다. 들러서 사진을 하나하나 나누어 드리면서 또다시 새 사진을 찍을 테고, 다음에 다시 사진을 드릴 때면 또다시 새 사진을 찍을 테지요. 다시 한 번 씻는방 물을 틀어서 흐르게 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머리 감고 길을 나서야겠습니다. (4342.1.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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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당신한테
 [사진은 삶이다 1] 사진을 너무 ‘가볍게’ 찍지 않는가?



 서른 해 넘도록 사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ㅂ교수님을 만나뵌 자리에서 사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 한켠으로 여러모로 씁쓸했습니다. ㅂ교수님은 당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힘껏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지만, 그 학교 아이들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살 속 깊숙이 파고들도록 헤아리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배우는’ 아이들이니, 한 해 두 해 익어가는 동안, 열 해 스무 해 무르익는 동안 차츰차츰 거듭나거나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다른 문화와 예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만, 사진은 햇수를 먹지 않고서는 펼칠 수 없습니다. 세월이라는 때를 먹어야만 빛이 나게 되는 사진입니다. 한두 장 반짝하고 빛나는 사진으로 뽐내기도 하고, 신문잡지 1쪽을 채울 사진을 만드느라 발이 닳도록 뛰기도 하고 만들기도 해야 할 터이나, 빈자리 메우기로는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빈자리 메우기도 이 나름대로 남다른 이야기가 되기는 할 터이나, 빈자리를 메우는 이야기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꾸준히 엮어 나가려는 사진쟁이가 이 나라에는 거의 없음을 돌아본다면, 사진기를 앞세운 어르신이나 새내기는 많으나, 정작 ‘사진을 한다’고 할 만한 사람은 몹시 드물지 않느냐 싶어요.

 고향이지만 고향으로 여기지 않고 멀리멀리 떨어진 채 지내던 인천으로 돌아온 지 한 해하고 아홉 달이 지났습니다. 곧 이태가 됩니다. 이 이태라는 시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 해 동안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다니던 때까지 머물던 고향을 몸이며 마음으로 되찾는 때였습니다. 인천사람 스스로 인천에 뿌리를 내리려 하지 않고 서울바라기가 될 뿐더러, 인천 바깥에서도 인천이 고유하고 홀로서지 못하도록 막는 흐름이 보기 싫고 견디기 싫어서 인천을 떠났지만, 이런 못난쟁이 인천으로 돌아와 거의 이태를 지내는 사이, ‘못난쟁이는 못난쟁이이기 때문에 좋다’고 새삼 느낍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대로 좋은 모습이 있을 텐데, 못난 사람도 못난 사람대로 좋은 모습이 있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좋을 테지요. 그러나 가난뱅이는 가난하기에 좋습니다. 돈이 많아서 즐거울 부자들은 바로 돈 때문에 걱정이 큽니다. 돈이 없어서 걱정인 가난뱅이는 바로 돈 때문에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돌이켜보면, 고향을 오래도록 멀리하면서 떠돌이처럼 지내 온 세월이 좋은 스승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때는 또 그대로 좋았던 대목이 있었을 텐데, 고향에 머물지 않고 떠나 보냈던 삶은 또 그런 삶대로 제 마음과 몸을 살찌우거나 키워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가지 사진감만을 붙잡고 죽는 날까지 신나게 사진찍기를 하는’ 저 같은 사진쟁이로서는, 떠돌고 맴돌고 헤매던 나날이 고향땅에서 제대로 사진눈을 트게 해 주는 밑거름이 된다고 느낍니다.

 떠돌이로 지내다 보니, ‘떠돌이가 모이는 도시’인 인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있는 그대로 동네사람과 만나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게 됩니다. 낮에는 썰렁하다고 할 만큼 고요하며, 저녁에는 일찌감치 길거리 불이 꺼지며 조용해지는 ‘서울하고 이렇게 가까우면서 참 도시 냄새가 안 나기도 하는’ 인천이란 어떤 데인가를 뼈속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삼아서 멋진 작품을 일구어 낸 어르신(김기찬 님)이 계셨지만, 그분 앞으로나 뒤로나 ‘골목길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는 까닭, 그러면서 ‘골목길 사진 어르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사진이 무엇인가 하는 앎, 요즈음 사진쟁이들이 골목 사진을 못 찍는 까닭, ‘골목길 출사’ 나가는 젊은 사진쟁이가 많지만 골목을 골목답게 담아내는 눈길이 보이지 않는 까닭을 하루하루 깨닫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골목 사진을 넘어, ‘한국땅에서 사진 하는 사람 매무새’에서 무엇이 잘못되거나 어긋나 있는가를 알아 갑니다. 여러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삶이 없습니다. 삶이 없으니 사진이 없습니다. 삶이 없으니 글이 없고 삶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으며, 삶이 없으니 사람을 만나도 냄새며 이야기며 자취며 없습니다. 오로지 눈요기가 판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며, 눈속임이 넘칩니다.

 상업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밭에서 거의 따돌림만 받고 있는데, 이분들한테 아쉬움이 있기는 있어도, 이분들한테 배울 대목은 꽤 많습니다. 다른 대목도 참 많이 배워야겠으나, 상업사진 하는 분들은 ‘상업사진판에서 살고’ 있습니다. 연예인을 찍건 배우를 찍건, 이런 연예인이나 배우하고 형 동생 언니 오빠 누나처럼 지냅니다. 살가운 사이입니다. 살갑지 않고서 이런 사진을 찍어내지 못합니다. 말을 트고 지내지 않더라도 늘 지켜보고 가까이하고 들여다봅니다. 한 울타리에 있어요.

 그러나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몸담은 자리에서조차 이웃이나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한두 해 그 동네에서 머문다고 다큐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뜨내기이고 구경꾼이며 길손일 뿐입니다. 대여섯 해 머문다면 시늉은 낼 수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열 해나 스무 해쯤, 때로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함께살기’를 하지 않고서야 다큐사진은 안 나옵니다. 함께살지 않고 찍은 다큐사진은 모두 거짓입니다. 눈가림이나 눈속임입니다. 누가 말해 주느냐? 사진이 말해 줍니다. 사진으로 찍힌 작품이 말해 줍니다. 





 늘 살아야 그곳이건 그이건 그 모습이건 찍을 수 있습니다. 야구장에서 살아야 야구 선수 사진을 찍고, 야구 이야기를 기사로 씁니다. 국회에서 살아야 정치꾼 사진을 찍고 정치 이야기를 기사로 씁니다. 축구장에서 사는 한편, 집에 있어도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축구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습니다. 축구와 혼인하지 않고서 축구 이야기를 우리 눈과 귀에 찰싹 달라붙도록 감칠맛나는 이야기를 엮어내겠습니까. 우리 눈에 짠한 눈물이 흐를 만한 축구 사진을 찍어내겠습니까. 전민조 님은 《이 한 장의 사진》이라는 사진책을 신문사 사진기자일 적에 펴낸 적이 있는데,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까지는, ‘이 한 장 사진과 얽힌 곳에서 살아낸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사진을 보여줍니다. 세월이 녹아나면서 사진으로 이야기가 엮입니다.

 다만, 사진은 즐겨야 찍을 수 있습니다. 즐기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입니다. 괴로운 굴레입니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일이 아니고, 일거리처럼 꾸준히 붙잡을 수 있지 않는 놀이는 놀이가 아닙니다. 일이든 놀이이든 즐겨야 하고, 즐기는 가운데 일은 일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빛이 나고 우리 삶으로 녹아듭니다.

 즐길 수 있으니 늘 곁에 두고, 늘 곁에 두니 삶입니다. 저절로예요. 억지가 하나도 깃들지 않습니다. 스스럼이 없습니다. 샘솟아 납니다. 철철 솟아나며 흘러넘치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차피 철철 샘솟아 흘러넘쳐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솟아나는 밑물이 될 뿐 아니라, 다시 흙을 거쳐 땅밑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더 싱그럽고 맑고 맛난 물로 거듭나거든요. 그래서 사진 한 장이란, 저절로 찍히는 사진이어야 합니다. 저절로 찍히자면 사진이 제 삶이어야 합니다. 늘 붙잡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리 보아도 사진이고 저리 보아도 사진이어야 합니다. 훌륭한 소설 하나 엮어낸 분이 이리 보아도 소설이고 저리 보아도 소설이듯, 사진쟁이는 이리 보건 저리 보건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값비싼 장비를 어깨에 메고 있다고 사진쟁이입니까? 훌륭한 장비를 비싼 사진가방에 챙겨 놓고 으스댄다고 사진쟁이입디까? 지금으로서는 널리 이름을 날리는 유명인사로 우쭐거린다고 이이가 사진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줄 압니까? 지금은 돈도 벌고 이름도 얻고 사진판에서 힘도 낼 테지요. 그러나 이이 작품은 기껏 한 장조차도 사진 역사에 새겨지지 못합니다. 부스러기입지요. 끄나풀입지요. 알맹이 빼먹은 과자봉지와 같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두 손은 가볍게 봉투는 두툼하게’라고 말하는데, 그예 우스개이긴 하지만, 우스개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겉보기로는 으리으리 보일지 몰라도 속알맹이가 형편없다면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겉보기로는 수수하거나 초라하기까지 하더라도 속알맹이가 야무지거나 다부지다면 더없이 반가워요. 세상 어느 일이든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진찍기에서도 그럴싸하게 보이는 작품을 애써 만들어 내려고 하면 지금 바로 보기에는 참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자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럴싸한 사진을 못 찍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남들 다 찍을 수 있는 그럴싸한 사진을 자기도 한두 장 찍었다고, 내 이름값이 올라가기라도 할까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님처럼 ‘기막힌 모습 하나’를 찍어내는 사진을 수없이 모은들, 이런 사진이 사진으로 값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사진으로 살지 않으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헛것 헛일 헛품 헛사진입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밥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빨래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며 아이키우기를 삶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밥과 빨래와 아이가 새삼스럽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한테 맛난 된장찌개 끓여 주는 어머님들 손맛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밥하기에 있습니다. 그 비싼 세탁기로 보송보송 말린 빨래라 해도 어머님이 손으로 빨아서 말리고 개어 놓은 빨래만큼 느낌이 보드랍지 못합니다.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빨래하기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함을 넘어서 슬기롭고 해맑은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 까닭은, 아이한테 온통 바친 아름다운 어버이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조기교육 때문에 죄다 갖다 바치는 삶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즐거울 어버이 삶을 깨달아 서로서로 돕고 나누는 삶으로 꾸리는 어버이이기에, 아이들이 슬기롭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 한 장이 아름다우려면, 또 우리가 나누려는 사진이 빛나려면,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는 사진이 어설픈 자랑거리나 섣부른 돈지랄이 되지 않도록 하자면, 사진을 삶으로 곰삭여야 합니다.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야 합니다. 곰삭이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녹여내지 않은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흔한 말로 용두질입니다. 거친 말로 술주정입니다. 짜증 섞인 말로 미친 짓입니다. 한 마디로 웃기는 장난입니다.

 사진 한 장 찍어내는 손가락은 아주 가볍게 움직여 살짝살짝 눌러야 합니다. 그러나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만 가벼워야지, 손가락에 힘 살짝 주기까지는 무던히도 땀 빼고 용 쓰고 부대끼는 삶이 밑바닥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땀흘리지 않고 무슨 삶이 있겠으며, 내맡기거나 내던지지 않고 무슨 삶을 이루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귀고 껴안고 어깨동무할 때에도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뜻을 이루는데, 자기 스스로 흐뭇하고 이웃 모두한테도 흐뭇하도록 할 만한 사진을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한테 몸과 마음을 바치듯 사진한테도 바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치지 않고서 기계 장난만 하려고 한다면, 바치지 않고서 뻔한 틀거리로 시늉만 내려고 한다면, 모두모두 쓰레기로 그칩니다. 아니, 사진 쓰레기만 수두룩하게 쌓아 놓고서, 참되게 사진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맙니다. (434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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