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극

‘옥탑방 고양이’라고 하는 연속극이 흐른다. 물끄러미 보다가 이제 그만 보려고 다른 칸로 간다. 마무리가 어떻게 되리라는 모습이 보이고, 여기에 나오는 어리석으면서 남을 속이려는 사내가 사람을 얼마나 속터지게 하려 하는가도 뻔히 보인다. 참 짜증스럽게 하는 연속극이네 싶지만, 연속극은 바로 사람들한테 이런 맛을 부추기면서 사랑을 받겠지. 이른바 착한 주인공하고 나쁜 주인공을 맞물려서 사람들 속을 있는대로 박박 긁으면서 즐겁게 끝맺음을 짓는. 이른바 뒤집기에 재미를 베푼다고 하는 얼거리라지만, 이런 줄거리는 하나도 재미없다. 사람을 아주 ‘응어리덩이’로 내몰면서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갈라서도록 다툼질을 부추기니, 이런 재미가 뭐가 좋을까. 더구나 이 연속극뿐 아니라 온갖 연속극은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몸으로 일하는 가시내’를 너무 얕잡아볼 뿐 아니라, 돈에 홀랑 속아넘어가거나 시달리도록 그리기 일쑤이다. 꼭 그래야 하나. 꼭 이래야 재미있나. 무엇보다도 이 연속극을 그리는 이들은 ‘옥탑방’에서 안 살아 본 티가 팍팍 난다. 옥탑방에서 살지도 않고, 살 생각이 없는 채 이름은 그럴듯하게 ‘옥탑방 고양이’라니. 참말로 옥탑방 사람들 눈과 귀를 속이면서 장사를 잘하는, 길들이는 방송이란 이런 얼거리로구나 싶다. 2003.6.2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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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프리챌 커뮤니티’가 이제서야 돈을 안 받겠다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하네. 그렇지만 모임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쓰려면 예전처럼 돈을 내야 해야 한다고. 누리그물에서 모임을 열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판에 돈을 받는 일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광고를 붙이면서 광고삯을 받지 않니? 너희는 회원 가입자 숫자로 광고삯을 받잖아? 그리고 프리챌 너희가 유료화를 하겠다면 사람들한테 제대로 묻고, 길을 찾고서 해야지, 갑작스레 일을 터뜨리면서 ‘돈을 안 내겠으면 얼른 나가사오!’ 했잖아. 돈 안 내는 모임은 모조리 막아 놓아서, 정작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린 사람도 제 글하고 사진을 못 건지게 했잖아. 참 우스운 모습이다. 회원이 엄청나게 떨어져 나가고 광고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이제서야 ‘무료 모임’으로 돌리려는가 본데, 너희가 그 짓을 해대서 모임마다 피눈물 흘리면서 게시물하고 자료 옮기기를 벌써 다 했지. 그런데 이미 떨어져 나온 사람이 다시 돌아가겠니? 너희는 곧 이 판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어. 조흥은행이 파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이분들한테서는 앞날이 하나도 안 보이더군. 파업이 나쁠 일이 없어. 밥그릇을 지키기만 하려는 이들한테는 어떤 빛도 꿈도 읽을 수 없다뿐이야. 그래서 나는 내 오래된 조흥은행 계좌를 끊고 다른 은행으로 갈아탔어. 돈을 보고 돈을 벌려는 길은 나쁘지 않아. 돈만 바라보면서 돈만 긁어모으려고 하면, 돈벌레 곁에는 아무도 깃들 수 없어. 그뿐이야. 2003.6.1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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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마라는 말씀

스승날이었던 어제를 기려, 오늘 5월 16일 여러 곳에서 충북 충주시 무너미마을로 찾아온다. 지난해에 돌아가신 이오덕 어른 무덤을 찾아가 뵙고, 어른 뜻을 기린다고 하면서. 여든쯤 되는 분들이 오셨고, 함께 무덤 앞에 서서 절도 올리고 말씀도 나누었다. 낮밥 때가 되어서 이오덕 어른 아드님이 사는 작은 집과 붙은 모임칸으로 내려온다. 널찍한 모임칸으로 들어와 비빔밥을 먹은 뒤 비디오를 본다. 이오덕 어른이 예전에 찍은 방송 녹화 풀그림이다.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라는 책이 나온 뒤 어느 방송사에서 찍은 풀그림인데, 어른이 하신 말씀을 꽤 길게 보여준다. 아마 1시간을 통틀어서 어른 온삶을 비추었지 싶다. 방송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가운데쯤에 이르러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무척 힘주어 하시네.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말로 가득찬 책을 읽어서 사람들이 쓰는 말까지 물들고 만다며, 또 책에 갇혀서 이 삶을 볼 줄 모르고, 몸으로 움직일 줄도 모른다고,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다시 또다시 자꾸자꾸 되뇌이시네. 우아, 이렇게 힘주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구나. 어른 글만 읽을 적하고 방송 풀그림으로 볼 적은 사뭇 다르네. 이때 퍼뜩 무슨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마침 이날 충주로 오는 버스길에서 읽은 책에서 본 글발이다. 어쩔 수 없이 책에서 읽은 얘기를 곁들이는데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에 다음 두 글발이 또렷하게 가슴에 떠오른다.


ㄱ. 우리가 흔히 인용하듯이 모든 악의 근원은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사랑’이다. (브루스 바튼)

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디모테오 1서 6장 10절)


아, 그렇구나. ‘책’이 말썽이라기보다는 ‘책을 보는 마음’이 말썽이 되겠구나. 그렇지. 그런데 이오덕 어른은 왜 “책을 멀리하라, 읽지 마라” 같은 말씀을 숱하게 되풀이하셨을까? 찬찬히 헤아려 본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나날이 참된 마음을 잃기에, 또 참마음을 잃으면서 잃는 줄 모르기에, 또 책은 손에 쥐기는 하지만 정작 책을 책대로 즐기거나 나눌 줄을 모르기에, 책을 가려서 볼 줄 아는 눈이나 마음이 차츰차츰 흐릿해지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엉뚱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더럽혀지기 쉽다. 짓궂은 책에 푹 빠져 사람답게 사는 일과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고. 그러나 책이 엉뚱하거나 짓궂기 때문이라기보다, 책을 마주하는 우리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은 탓에 쉽게 휘둘리고, 글에만 빠져서 몸은 못 움직이는 얼개가 되지 싶다. 이오덕 어른은 우리가 스스로 제결을 잃지 않으면서 마음을 가꾸고 일을 하며 오늘 이 삶을 튼튼히 보듬으라는 뜻으로 “책을 읽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지 싶다. 그렇게 마음을 가꾸면 굳이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름답고 올바른 책을 찬찬히 살피고 찾아내어 즐길 수 있고, 책에만 푹 빠진 채 이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 몸을 가꿀 수 있을 테니까. 책 한 자락을 읽어 얻은 모든 것으로 제 삶길하고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보듬는 마음하고 몸짓을 다질 수도 있을 테고. 이오덕 어른은 우리들 갇힌 울타리를 보고, 가장 손쉬운 일, “일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쓸 말다운 말을 잃는다. 말썽 많고 아주 나쁜 말씨나 말밭에 너무 쉽게 길들고 물든다. 그러니 이런 뿌리가 되는 ‘얄궂은 말이 가득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스스로 말다운 말을 잃고 생각마저 비뚤어지지 말기를 바라셨지 싶다. 마지막으로, 이런 여러 가지는 말로 아무리 가르쳐 보아야 쉬 받아들여 배우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지 싶다. “책을 읽는 마음을 먼저 바르게 세우는 일이 참 크”지만, 그 큰자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서 살아갈 만한 뒷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셨지 싶다. 그리고 책을 가까이하는 뒷사람이 “일하는 사람”하고 자꾸 동떨어지면서 엉뚱한 길로 빠지고 마니까,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다고도 본다. 책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니,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깨닫길 바라셨겠지. 책을 읽는 마음을 먼저 제대로 슬기롭게 사랑으로 즐겁게 세워야, 책 한 자락을 읽든 백만 자락을 읽든 하나하나 한결같이 잘 곰삭여서 제 살림꽃으로 삼아 온눌에 다시 펼칠 수 있다고 보신 이오덕 어른이리라. 그렇지만 책을 읽는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길가에 자라는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마구 짓밟거나 꺾을 수 있다. 가난하고 힘든 이를 ‘말로는’ 돕자고 할 수 있으나 정작 제 주머니를 덜어서 나누거나 제 몸을 내맡겨 ‘자원봉사’를 하지는 않기 일쑤이잖은가. 그래서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이 되어, “말보다는 삶”으로 일어서기를 바라셨고, 이렇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몸짓하고 마음이 제대로 서야 ‘책을 읽을 자리’에 스스로 선다고 보셨지 싶다. 2004.5.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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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니까

어느 출판사이든 이오덕 어른 책을 내고파하는 곳에서는 이오덕 어른 책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 보기로는 이오덕 어른 책을 내도 좋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참 적다. 그 까닭은, 이오덕 어른 책으로 “돈이 될” 수 있고, “팔릴 만”하고, “장사가 되기 때문”인 생각을 넘어서면서 책을 내려는 곳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이오덕 어른이 왜 그렇게 교육자란 한길을 살아오셨고, 교육자로 살면서 이녁 학교 아이들만 가르치려 하지 않았는지, 또 웬 글은 그렇게도 많이 쓰셨는지, 또 아이들한테 왜 그리도 ‘글쓰기’를 시키고 ‘그림그리기’를 시키셨는지, 나아가 그렇게 쓴 글과 그림을 왜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장 알뜰한 사랑으로 여겨서 간직하셨는지를 헤아리는 출판사가 없어 보인다. 이 모두를 헤아릴 수 없는 출판사 사람들하고는 말이 되지 않더라. 말이 안 되니, 그런 사람들이 이오덕 어른 책을 내려고 품는 마음이 깨끗할 수 없겠지. 그분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한다. 올바르다고 말한다. 이오덕 어른 뜻을 따르고 지키고 잇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오덕 어른 뜻 가운데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으려는지는 말하지 않네? ‘따른다·지킨다·잇는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따르고 지키고 이으려는지를 똑부러지게, 똑똑히, 낱낱이, 차근차근 말하거나 밝히면서 이곳 충주 무너미를 찾아오는 출판사 사람은 아직까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오덕 어른 책을 내자면 ‘이오덕’만 알아서는 안 된다. 어른하고 가장 오래고 살가운 동무인 ‘권정생’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권정생’만 알면 되는가? 아니다. 권정생 어른하고 가장 오랜 동무이자 가장 살가운 벗인 이웃사람, 바로 가난하고 힘없고 이름도 없지만 온삶을 이 땅에서 조촐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흙지기랑 아이들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어야지. 이뿐 아니라, 두 어른이 끔찍하게도 아끼고 돌보고 사랑한 풀과 나무와 꽃과 새와 벌레와 하늘과 구름과 물과 해와 모든 목숨붙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테고. 어느 한 가지만 있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모든 숨결이 차근차근 어우러지면서 한동아리로 엮여 나갈 수 있어야 비로소 이오덕 어른 책을 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몸짓이자 마음인 출판사라면 구태여 이오덕 어른 책을 내지 않아도, “이오덕 어른 뜻을 따르고 지키고 이으며” 아름답고 살가운 책일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스스로 아름다우면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 무너미에서 책마을이 돌아가는 모습을 아주 꼼꼼하게 살핀다. 이오덕 어른 책을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 가운데 하나라도 흐트러지거나 어긋나거나 어이없거나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길과는 다른, 비틀린 책을 한 자락이라도 낸 출판사하고는 이오덕 어른 책을 계약해서 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긴다. 좀 지나쳐 보이나? 지나쳐 보여도 좋다. 고갱이는 쉽다. “이오덕 책을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 삶터를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꾸면서, 이 땅을 제대로 돌보고 돌아볼 수 있느냐이다. 이러면서 어린이와 모든 목숨붙이를 사랑할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느냐이다. 이런 마음이 없이 책을 내는 출판사라면 모두 거짓말쟁이. 속임쟁이. 그저 책으로 돈만 벌려는 장사치일 뿐. 2004.6.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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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극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이름난 ㅎ출판사 사장이 오늘 아침 했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책을 만들려고 했는데 뭐가 문제이냐?”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에 실린 글(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월)을 쓴 분들이 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저 ‘좋은 책을 만들려는 마음’에서 알리지도 않고 냈다는 그 사람.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좋을까? 출고를 멈추고 여태까지 판 책도 거둬들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칼에 짜르는 그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 책마을에 참으로 많다. 게다가 그런 분들이 모여 파주에 출판단지를 세웠지.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하지만 속으론 그런 이들이 얼마나 많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뿐인가. 교사는 또 어떠한가. 지식인, 학자, 교수, 기자는 어떠하고.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훌륭하다고 스스로 치켜세우면서 이름을 내세우는 그들, 바로 사기극 아닌가? 2003.11.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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