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빨래

백날을 맞이하는 기저귀 빨래는 오늘까지 삼천 자락. 어느덧 백날을 넘겼으니 삼천 몇 백 자락에 이른다. 머잖아 돌을 맞이할 텐데, 돌 때까지는 만 자락이 되겠네. 아기가 언제쯤 똥오줌을 가릴는지 모른다만, 앞으로 몇 만 자락 기저귀를 빨아야 아기는 제 아비 어미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이 땅에 튼튼히 두 발을 디디는 어린이가 될 테지. 2008.12.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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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란 사람들은 왜

우리 큰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몇 가지 글로 써서 누리신문에 띄워 놓았더니, ‘독특하게 키우는 육아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얘기가 몇 군데에서 온다. 내 글을 읽었으면 틀림없이 ‘세이레가 되기까지 아기 사진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다’고 적었으니, 취재하고 싶다는 말을 넣을 수 없을 터인데, 사진기도 아닌 촬영기를 들이밀려고 하는 마음을 어떻게 품는지 아리송하다. 아니, 아찔하다. 오늘날 이 삶터는 방송을 타면 대단한 자랑으로 알 뿐더러, 방송을 타려고 너나없이 나서는 판이라 한다만, 나는 우리 아이가 먼저요 곁님이 먼저이고, 방송을 헤아릴 까닭이 없다. 더구나 내가 글에 밝힌 이야기를 제대로 안 읽고서 찾아오겠다는 이라면 죄다 손사래칠 생각이다. 그나저나 방송작가란 그분들이 내 손전화 번호를 어떻게들 용하게 알아내는지 놀랍다. 손전화 번호를 알아내는 그 마음씀과 손놀림만큼이라도, 아니 작은 부스러기나 토막만큼이라도, 그대들이 만나고 싶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며 어떤 삶이며 어떤 매무새인지를, 몇 자락 적어 놓은 글을 천천히 읽고서 곱씹을 수 있으면 고맙겠다. 2008.9.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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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나무

큰나무를 보면, 나무가 이만큼 크게 자랄 수 있구나 싶어 놀랍고 반갑고 흐뭇하면서, 나도 저렇게 자라야지 하고 생각한다. 큰나무를 보면, 나무가 이만큼 크게 자라고서 얼마나 너른 이웃한테 그늘이며 새숨을 베푸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나도 저렇게 싱그러운 그늘하고 새숨을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작은나무를 보면, 아직 씨앗을 보면, 머잖아 우람하게 자랄 이 작은나무하고 씨앗은 크기를 떠나 얼마나 새롭고 알찬가 하고 돌아본다. 이러면서 오늘 나는 얼마나 작은나무답거나 씨앗답게 하루를 짓는지 되새긴다. 큰나무를 안는다. 작은나무 곁에 쪼그려앉는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 눈을 감는다. 2009.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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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통 털기

부평역 계단. 동냥하느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아저씨를 본다. 종이잔 하나 내어놓고 손을 벌린다. 저러면, 저렇게 작은 종이잔이라면, 저곳에 천 원짜리 한 닢 넣기도 어렵겠네. 앞짐을 열고 쇠돈 담은 필름통을 꺼낸다. 뚜껑을 연다 동냥하는 아저씨가 내민 종이잔에 쇠돈을 그대로 쏟아붓는다. 촤르르르. 꽤 묵직하게 여러 통 모았으니 소리도 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뭔가 돈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조그마한 종이잔을 내밀고 시멘트 바닥에 엎드린 동냥꾼 아저씨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종이잔에 10원 한 닢이나마 보태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필름통에 가득 담긴 쇠돈을 모두 쏟아부은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다. 모쪼록 따순 밥 한 그릇이라도 자시길. 술은 조금만. 오른손이 왼손보다 갑절은 큰 동냥꾼 아저씨야. 무겁던 앞짐이 무척 가볍다. 2008..9.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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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면

우리 스스로 책을 읽으려면, ‘똑같은 아파트’를 버리고 ‘다 다른 골목집’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려면, ‘똑같은 자가용’을 버리고 ‘다 다른 자전거와 두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을 사랑하자면, ‘똑같은 바깥밥’을 버리고 ‘다 다른 집밥’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마다 담긴 고운 빛줄기를 가슴으로 껴안으려면 ‘똑같은 돈’을 버리고 ‘다 다른 눈물과 웃음’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2008.12.1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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