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
다시마 세이조 지음, 고향옥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4.21.

그림책시렁 1391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

 다시마 세이조

 고향옥 옮김

 우리교육

 2007.5.10.



  지난해인 2023년만 해도 비바람이 지나가면 이틀쯤 하늘빛이 맑았습니다. 올해인 2024년은 비바람이 씽씽 휘몰고 지나가도 이튿날조차 하늘빛이 안 맑습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하늘을 보다가 깜짝 놀라는 나날입니다. “왜 이럴까? 무슨 일일까?” 하고 갸웃하면서 하늘바라기를 하던 어느 날, 문득 하늘소리가 마음으로 스밉니다. “얘야, 보렴. 서울(도시)은 서울대로 길바닥을 까맣게 덮고 잿더미(아파트)가 끝없이 솟느라 흙이 사라졌어. 서울을 비바람으로 씻어도 먼지가 돌아갈 흙이 없으니, 먼지는 다시 하늘로 퍼진단다. 시골은 예전에 흙과 풀밭으로 논둑이고 빈터가 흔했다면, 요새 시골은 논둑에 고샅에 도랑마저 잿빛으로 덮고서 다들 부릉부릉 모는구나. 이제는 시골에서도 먼지가 돌아갈 흙이 확 줄어드니, 너희가 사는 곳은 먼지투성이일밖에 없단다.”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을 물끄러미 넘기다가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펴는 어린이는 풀밭이나 풀숲에서 맨발로 뛰어 본 하루가 있으려나요? 풀이름을 다 알아야 하지 않고, 꽃이름을 모두 외워야 하지 않습니다. 풀놀이를 하고 풀노래를 부르면 즐겁습니다. 놀고 노래하는 사이에 스스럼없이 마음으로 스며서 이름을 붙입니다. 통통 튀는 공이 돌아다닐 풀밭이 왜 사라지는지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는 뭘 해야 할까요?


ㅅㄴㄹ


#田島征三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다시마 세이조/고향옥 옮김, 우리교육, 2007)


풀숲에 커다란 꽃이 활짝 피어 있어

→ 풀숲에 꽃이 크게 활짝 피었어

24


덩굴들이 나를 붙잡으려고 해

→ 덩굴이 나를 붙잡으려고 해

29


어느새 내 마음은 친구들로 가득 찼어

→ 어느새 마음은 동무로 가득 찼어

3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O 마오 16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4.20.

책으로 삶읽기 924


《마오 16》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3.10.25.



《마오 16》(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3)을 읽는다. 두 아이 ‘마오’하고 ‘나노카’ 사이에 이따금 피어나는 마음은, 둘을 비롯해 둘레에서 피어나는 마음하고 매한가지이다. 둘이 스스로 ‘남 아닌 나’로서 어떤 마음인지 또렷하게 읽고 밝힐 수 있을 때라야, 둘뿐 아니라 모두 앙금을 풀면서 굴레를 벗어나리라 본다. 그러나 둘은 아직 마음을 감추거나 가린다. 또는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내 마음’부터 읽지 않는데, ‘남 마음’을 어찌 읽을 수 있을까? 나부터 스스로 마음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면, 둘레에서 누가 마음을 털어놓을까? 다만 둘은 아직 머나먼 어느 곳으로 가야 한다. 이 삶도 보고 저 살림도 마주하면서 천천히 자라나려고 한다. 자라려니 아직 마음을 덜 드러낼 만하고, 느긋이 모든 바람을 마실 수 있다.


ㅅㄴㄹ


‘다이고 님은 도망치려던 두 사람을 도우려 했구나. 빈껍데기인데도, 사나 님과 함께 도망치려 한 자신을, 기억하고 있던 게 아닐까?’ (28쪽)


이 돌의 불길이 오오토리 가의 술사에게 힘을 내려준다. 즉 사용하는 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것은 구원의 불길도, 지옥의 불길도 될 수 있다. (117쪽)


“저기, 그 사람들 햣카의 진짜 친척인 거지?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아?” “뭐? 내가 어떻게 나서라고. 하즈키는 두 번 다시 나 같은 놈과 엮여선 안 돼. 평범하게 살아가고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족해.” (188쪽)


#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MAO


+


나에게 다이고는 기분 나쁜 존재였다

→ 나는 다이고가 싫었다

→ 나는 다이고가 못마땅했다

24쪽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지?

→ 무슨 짓을 꾸미지?

→ 뭘 꾸미지?

31쪽


실은 1년쯤 전에 일하던 중에 나는 사나운 개에 쫓기고 있었어

→ 그런데 한 해쯤 앞서 일하다가 사나운 개한테 쫓겼어

66쪽


이 불초한 것들을 태워 죽여버리십시오

→ 이 못난이를 태워 죽여버리십시오

→ 이 멍청이를 태워 죽여버리십시오

74쪽


오오토리 가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은 불의 술사

→ 오오토리 집안 피를 짙게 이어받은 불잡이

→ 오오토리 집 피를 굳게 이어받은 불지기

75쪽


신고할 턱이 있나요

→ 알릴 턱이 있나요

→ 말할 턱이 있나요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일 1새 방구석 탐조기 - 오늘은 괜찮은 날이라고 새가 말해주었습니다
방윤희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4.19.

다듬읽기 203


《1일 1새 방구석 탐조기》

 방윤희

 생각정원

 2023.11.24.



  《1일 1새 방구석 탐조기》(방윤희, 생각정원, 2023)는 하루에 한 가지 새를 눈여겨보는 살림을 들려줍니다. 일본말씨를 따서 ‘일일일새’로 적었으나, ‘하루한새’처럼 우리말로 적을 만하고, “하루 한새 집구석 살피기”나 “하루 한새 집구석 이웃”이나 “날마다 집구석 새바라기”나 “하루하루 집구석 새구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곁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마음이니 ‘새’롭습니다. 새한테 모이를 준다면 ‘모이주기’입니다. 글님은 ‘-지다’ 같은 옮김말씨를 매우 자주 쓰는데, 새를 보는 마음뿐 아니라, 새가 노래하듯 마음을 노래하는 말결을 조금 더 살필 수 있기를 바라요. ‘꾸미기’가 아닌 ‘꾸리는’ 하루를 누리는 새처럼, 사람으로서 하루를 가꾸면서 생각을 일구는 길이라면, 새길도 말길도 삶길도 사랑으로 포근히 추스르리라 봅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새는 하늘을 보게 하죠

→ 그러니까 쌔 때문에 하늘을 보죠

→ 그러니까 새가 있어 하늘을 보죠

7쪽


새를 보는 일에 시큰둥해졌습니다

→ 새보기가 시큰둥했습니다

→ 새바라기가 시큰둥했습니다

10쪽


나라는 존재를 잠시 잊게 되어요

→ 나를 한동안 잊어요

→ 나를 가만히 잊어요

→ 나를 문득 잊어요

26쪽


동정(관찰)하는 법

→ 보는 길

→ 바라보는 길

→ 살펴보는 길

34쪽


나도 버드피딩(Bird Feeding) 해볼까

→ 나도 새밥주기 해볼까

→ 나도 모이주기 해볼까

→ 나도 먹이주기 해볼까

35쪽


최소 세 마리다. 느낌적(?) 느낌으로는 다섯 마리쯤 되는 듯하다

→ 적어도 셋이다. 아마 다섯 마리쯤 되는 듯하다

→ 적어도 셋, 얼추 다섯 마리쯤 되는 듯하다

41쪽


깃털은 탄성이 있어서

→ 깃털은 탱탱해서

→ 깃털은 통통해서

42쪽


접힌 상태의 날개깃에서 푸른색 줄무늬가

→ 접한 갈개깃에서 푸른줄무늬가

44쪽


참새는 주로 인간 곁에 서식한다

→ 참새는 으레 사람 곁에 깃든다

→ 참새는 흔히 사람 곁에서 산다

51쪽


참새가 없는 곳엔 인간도 살 수 없지 않을까

→ 참새가 없는 곳엔 사람도 살 수 없지 않을까

51쪽


오늘이 바로 참새의 날이다

→ 오늘이 바로 참새날이다

51쪽


갑자기 두 눈의 동공과 코 평수가 넓어졌다

→ 갑자기 두 눈망울과 콧구멍을 키운다

→ 갑자가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을 벌린다

55쪽


스토킹을 해보니 새들의 생태에 관해 잘 모르는 게 아쉽기만 했다

→ 구경만 하니 새를 잘 몰라 아쉽기만 하다

→ 보기만 하니 새를 너무 몰라 아쉽다

61쪽


새들에 대해 좀더 알아야 할, 어떤 책임감이 생겼다. 새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 새를 좀더 알아야겠다고 여겼다. 새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

→ 새를 좀더 알자고 생각했다. 새가 잘 사는지 궁금하다

61쪽


동백이의 사생활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공개된 듯한 느낌이었다

→ 동백이 삶이 거머리한테 찍혀 드러난 듯하였다

→ 내가 동백이를 괴롭혀서 하루를 밝힌 듯하였다

63쪽


안 그래도 심란한데

→ 안 그래도 싱숭생숭

→ 안 그래도 어수선

70쪽


야생동물이 우리 인간들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환경에 맞춰 열심히 살아간다

→ 우리 사람들 때문에 들짐승이 이만저만 괴롭지 않지만, 다들 제 나름대로 터전에 맞춰 힘껏 살아간다

→ 우리 사람들 때문에 멧짐승이 이만저만 힘겹지 않지만, 모두 제 나름대로 터에 맞춰 애써 살아간다

82쪽


근처에도 대벌레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어서

→ 둘레에도 대벌레가 군데군데 있어서

→ 둘레에도 대벌레가 군데군데 도사려서

110쪽


확인하니 푸른빛이 보인다. 파랑새다

→ 살펴보니 파랑이 보인다. 파랑새다

114쪽


더위 탓인지 새들의 방문이 줄었다

→ 더위 탓인지 새가 덜 찾는다

→ 더위 탓인지 새가 뜸하다

150쪽


참새 똥도 씻겨져 반들거렸다

→ 참새똥도 씻겨 반들거린다

158쪽


폭우가 내린 지 사흘이 지났지만

→ 소낙비 내린 지 사흘이지만

→ 큰비가 내린 지 사흘이지만

159쪽


상주하던 새들은 어디로 피했는지

→ 머물던 새는 어디로 갔는지

→ 깃들던 새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159쪽


새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 새가 새삼 고맙다고 느끼며

→ 새가 새삼 고맙고

187쪽


오늘은 다행히 온전한 상태였다

→ 오늘은 그나마 멀쩡하다

→ 오늘은 좀 곱상하다

203쪽


특별히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 더 들여다보지 않았다

→ 딱히 쳐다보지 않았다

→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

224쪽


시무룩해져서 걷는데 바위 위에 새처럼 보이는 물체가 낙엽에 반쯤 가려진 게 보였다

→ 시무룩해서 걷는데 바위에 새 같은 무엇이 가랑잎 사이로 살짝 보인다

→ 시무룩하게 걷는데 바위에 떨어진 잎 사이로 언뜻 새가 보이는 듯하다

2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만난 하나님 - 개정판
김승옥 지음 / 작가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4.18.

인문책시렁 330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작가

 2004.5.3.



  《내가 만난 하나님》(김승옥, 작가, 2004)을 반갑게 읽고서 한참 삭입니다. 글님이 전남 순천에서 어린날을 보냈을 뿐 아니라, 글님 어머님이 전남 순천에서 나고자랐다는 대목을 읽고서 새삼스럽습니다. 이 책이 나온 2004년 무렵에는 이런 얼거리를 모르기도 했고 딱히 눈길이 가지 않았으나, 이제는 순천 곁 고흥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지난날 고흥과 옆고을이 어떤 숨결이었을는지 천천히 곱씹습니다.


  순천·벌교(보성)·고흥·장흥은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맞닿고, 바다를 나란히 품습니다. 네 고을 가운데 고흥은 마치 섬처럼 동떨어진 터라면, 순천·벌교(보성)·장흥은 뭍으로 트인 터입니다. 다만, 길이 아무리 새로 나더라도, 지난날에는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숲정이나 고개가 있습니다. 고을하고 고을 사이에는 재가 있습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는 멧줄기가 있어요. 가까우면서 먼 사이요, 먼 듯해도 가까운 이웃입니다.


  김승옥 님은 어느 날 눈앞에서 하느님(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깜짝 놀랐다지요. 설마 싶은 일을 겪었고, 남들은 거의 안 겪을 만한데, 왜 이녁한테 이런 빛이 찾아오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숱한 님을 만납니다. 눈을 감아도 만나고, 눈을 떠도 만납니다. 우리는 ‘몸눈’으로만 보지 않아요. 몸눈으로는 아주 조그마한 데만 볼 뿐이에요. ‘마음눈’을 뜨면서 둘레를 볼 적에는 눈앞을 환하게 틔웁니다. 겉으로 입은 몸이란 그저 옷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우리가 가꿀 오늘이란 ‘겉몸을 배불리 먹이는 길’이 아니라 ‘속마음을 넉넉히 살리는 길’인 줄 느낄 만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굳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서, ‘몸눈’으로 둘레를 ‘좁게’ 보는 까닭이 있겠지요. 이 뜻과 길과 까닭을 찾아나서는 하루가 바로 ‘삶’이요, 이 삶을 안팎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기에 ‘살림’이며, 이 살림을 어떻게 다스리고 북돋우느냐 하고 생각하기에 ‘사랑’으로 나아가서, 어느덧 ‘숲’한테 안기는 ‘사람’으로 섭니다.


  빛을 만난 김승옥 님은 더는 글살림을 잇지 않으셨지만, 빛줄기하고 마주한 한때를 고이 마음으로 품고서 이 조그마한 꾸러미로 여미었기에 더없이 고맙다고 여깁니다. 머잖아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삶자락을 포근히 누리시면서, 오늘 하루를 언제나 눈부신 빛살로 일으키고 사랑하는 마음이시기를 바라요.


ㅅㄴㄹ


이렇게 위대한 탄생들인데 왜 인간들은 전쟁을 벌이며 서로 죽이는 것일까? 왜 질투하고 비판하며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것일까? 인간은 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할 고귀한 존재들인데 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것일까? (22쪽)


그날 밤, 아직 배탈난 손자의 배를 쓸어주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내 명치를 천천히 쓸어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나는 도둑인 줄 알고 내 오른손으로 덮치며 “누구야?” 낮게 외치며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내 오른쪽 머리 위 방안 허공에서 들려오던 아주 굵은 남성 음성은 “하느님이다.”는 한국어였다. (39쪽)


전남 순천 출신인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성장하여 여학교를 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한약국집 외딸이었다. 해방되던 1945년에 귀국하여 순천에 정착했으나 1948년도, 내 나이 8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가족의 죽음 때문에 나는 ‘인간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77쪽)


+


무신론자無神論者인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 때문이다

→ 안 믿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손수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 고개젓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몸소 빛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11쪽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말로 하늘 세계의 영원한 법칙이다

→ 가재나 개야말로 하늘나라 오래길이다

→ 나란살이야말로 하늘누리 늘빛이다

→ 한울타리야말로 하늘밭 한길이다

→ 같이 놀기야말로 하늘터 그대로이다

15쪽


훌륭한 건국 신화에 하나님 권위를 갖다붙이는 건 항다반사 아닌가

→ 훌륭한 첫이야기에 하나님 이름을 으레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벽노래에 하나님 이름꽃을 늘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날노래에 하나님 이름씨를 꼭 갖다붙이지 않는가

20쪽


아내는 이젠 나한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 곁님은 이젠 나한테 퍼뜨리려고 한다

→ 짝꿍은 이젠 나를 이끌려고 한다

29쪽


우리 민족이 써온 일종의 표준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 우리 겨레가 써온 두루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 이른바 우리 겨레한테 맞춤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39쪽


물론 성지순례라고 하는 여행의 성격이 특수한 탓도 작용했으리라

→ 다만 거룩마실이라고 하는 길이 남다른 탓도 있으리라

→ 그리고 거룩길이 두드러진 탓도 있으리라

→ 또한 거룩걸음이 유난한 탓도 있으리라

92쪽


사회 생활을 배우기 시작하는 나이인 나에게 여순 사건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경험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 모둠살이를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벼락으로 불거진 겨레싸움은 참으로 끔찍했다

→ 살림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바다로 불거진 피비린내는 참으로 괴로웠다

→ 삶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수렁으로 불거진 한핏줄싸움은 참으로 아팠다

13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4.18.

그림책시렁 1390


《멸치 다듬기》

 이상교 글

 밤코 그림

 문학동네

 2024.2.28.



  어릴 적에 어머니 곁에서 멸치를 다듬는 일은 안 싫었습니다. 비록 ‘국물멸치’는 못 먹을 뿐 아니라, 멸치로 우린 국물은 몸에 안 받기도 했지만, 하루 내내 숱한 집안일로 바쁘면서 고단한 어머니 손을 거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적이나 나이가 들어서나, 우리 아버지는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합니다. 한밤에 집에 술손님을 데려오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어머니하고 둘이서 곁밥으로 땅콩하고 멸치를 손질해서 올려야 했고, 내내 술심부름을 했습니다. 이제 잔멸치는 살짝 먹기는 하지만 그리 쳐다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멸치 다듬기》는 아이랑 아버지가 집일을 조금 거드는 듯한 줄거리를 들려주는 듯싶습니다. 이런 얼거리는 안 나쁩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살림길을 헤아려 본다면, ‘멸치 다듬기’는 ‘딸과 어머니’가 하고, ‘밥짓기·빨래하기·쓸고닦기’는 ‘아들과 아버지’가 하는 얼거리로 글그림을 여미면 훨씬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예전에는 어머니 혼자 ‘멸치 다듬기’에 집일을 도맡아야 했다면, 요새는 집일을 안 하는 이가 그나마 멸치라도 다듬거든요. 시늉이 아닌 온몸으로 바꾸는 길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