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책하루, 책과 사귀다 189 고르는



  마을책집으로 책마실을 자주 나서지만, ‘고르기’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책을 골라서 사지 않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서 삽니다. 어느 마을책집으로 가든, 늘 이 마을책집에 있는 책을 살펴서 장만했을 뿐입니다. 저는 책집에 미리 여쭈어 어느 책을 갖다 놓아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문득 어느 책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그 책이 마을책집에 있으면 그자리에서 장만하고, 없으면 잊거나 다른 마을책집에 가서 장만합니다. 책집마실을 할 적에 ‘고르기(선택)·시키기(주문)’를 아예 안 하는데요, 책집마실은 “두고두고 되읽을 책을 찾아서 품으려는 길”입니다. 책집에 서서 읽고서 마음을 울리면 ‘글쓴이가 못마땅하건 말건 따질 일이 없’습니다. 마음을 안 울리는 책이라면 ‘글쓴이를 좋아했고 꾸준히 챙겨 읽었’어도 굳이 장만하지 않아요. 손수 사랑을 담기에 한결 즐거이 우리 몸에 들어올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밥도 바람도 물도 책도 글도 이야기도 매한가지입니다. 누가 “그런 책을 왜 읽어?” 하고 따지면 “후줄그레한 책을 읽어서 잘못했습니다. 다만 저는 낱말책을 쓰는 터라, 모든 사람들이 쓰는 온갖 말을 살피려면 모든 책을 사랑해야 해서요.” 하고 절을 합니다. 고르고 싶지 않아요. 읽고 새기고 새길을 지을 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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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10.27. 마누라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우리말 ‘마누라’를 다룬 국립국어원 낱말책 뜻풀이는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낱말책만 탓할 수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두루두루 쓰던 말씨를 아무렇게나 팽개친 우리 모두가 이런 엉터리 낱말책을 일군 씨앗입니다. 우리말 ‘마·머·모·무’가 어떻게 얽히면서 숱한 말빛과 말씨를 이루었는지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실마리조차 못 찾게 마련입니다.


  우리말 ‘마누라’는 낮춤말도 깎음말도 아닙니다. ‘마누라’하고 ‘아가씨’는 높임말입니다만, 우리는 두 우리말을 높임말처럼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기울었고, 높임말인 줄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말밑도 말뜻도 말빛도 제대로 안 살펴요. 그러나 두 낱말만 제대로 모르지 않아요. 거의 모두라 할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고 안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말을 안 들여다보거나 엉터리로 쓸까요? 다들 바쁘거든요. 바쁘면서 힘들거든요. 바쁘면서 힘든 탓에, 조금 짬이 나면 ‘그림(유튜브·영화·연속극)’을 쳐다보거나 ‘노닥(게임)’에 빠집니다. 머리를 제대로 쓸 마음이 사라진 우리 민낯입니다. 머리를 어질고 슬기롭게 펼 마음도 사라진 우리 모습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잊다가 잃기에, 외우는 한자말과 영어에 기울어요.


  이러구러 ‘마누라’ 밑말(어원)을 갈무리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침에 조금 추스릅니다. 아침맞이 집안일을 마저 하고서, 말밑찾기도 매듭을 지으려고 합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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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10.23. 여수로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고흥에서 이레마다 편 노래꽃수다(시창작교실)를 곧 마칩니다. 이제 이 노래꽃수다를 책으로 신나게 여미려고 합니다. 서울 어린이하고 누린 노래꽃수다도 차곡차곡 여미려고 하는데, 지난달부터 여수를 오가는 일을 하면서 짬을 좀처럼 못 냅니다. 푹 쉬고 몸을 달랜달까요.


  글 한 자락을 쓰거나 여밀 적이든, 밥 한 그릇을 차리려고 부엌일을 하든, 풀내음을 누리면서 낫이나 호미를 손에 쥐든, 바깥일을 보려고 먼길을 걷거나 두바퀴를 달리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지 바라보고 생각하고 돌아볼 노릇이에요.


  오늘은 여수 어린이한테 들려줄 꽃글(동화) 한 자락을 시외버스에서 써 볼까 싶어요. 어떤 꽃글을 쓸는지는 달포쯤 앞서부터 머릿속으로 줄거리를 짰습니다. 글이 샘솟을 날을 기다려 왔고, 오늘 이른아침 시외버스에서 즐겁게 글빛을 펴도록 쉬엄쉬엄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나씩 하면 하늘빛처럼 이룬다고 느껴요.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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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10.20. 시린 무릎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새벽에 택시를 불러서 고흥읍에 갔고, 06:20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갔습니다. 아침 9시에 여수 성산초등학교에서 글읽눈(문해력 증진 수업)을 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서 다시 택시를 타기까지 30분 즈음 걸었습니다. 여수 이마트에 가 보았습니다. 이마트에 가면 ‘무늬도 글씨도 없고, 폴리를 안 섞은 옷’을 팝니다. 누리가게에서도 이런 옷을 찾을 수 있지만 꽤 어려워요. 왜 옷에 설익은 무늬나 글씨를 새길까요? 왜 옷에 어떤 그림(캐릭터)을 집어넣고서 값을 몇 곱씩 부풀려야 할까요?


  가만 보면, ‘캐릭터나 상표를 박고 비싸게 파는 옷’은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하고 닮습니다. 이름을 앞세우는 옷이나 책은 비쌉니다만 허술하게 마련입니다. 이름을 뒤세우고서 알맹이나 줄거리를 드러내는 옷이나 책은 안 비싸면서 알차게 마련입니다.


  여수에서 고흥으로 건너오는 시외버스는 순천에서 손님을 잔뜩 태웁니다. 여수에서 떠난 버스는 널널했으나, 어느새 비좁습니다. 독일에서 온 마실손이 제 옆에 앉습니다. “This is free?” “Yes.” 독일사람도 ‘콩글리시’ 비슷한 ‘도글리시’를 쓰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영어를 안 쓰는 나라라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요?


  고흥에는 14시 57분에 내립니다. 14시 40분에 마을로 들어가는 시골버스가 있는데 17분 늦습니다. 이다음 시골버스는 16시 40분입니다. 택시를 타고 다리를 쉴까 하다가, 15시 30분에 옆마을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옆마을에 내려서 들길을 거닐다가 아프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시골에 웬 울음소리인가 하고 갸우뚱하며 걷다가 길바닥에 널브러진 개를 한 마리 봅니다.


  곱상하게 생겼고, 목띠가 있고, 털도 반듯하게 고른, 아마 우리 마을이나 이웃 어느 마을에서 기르는 개일 텐데, 목줄은 없습니다. 적잖은 시골집은 개한테 목줄을 안 해서 낮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짖기도 합니다. 이 아이도 낮마실을 다닌 듯싶은데 그만 길에서 치였군요.


  이웃 봉서마을에서 들길을 걸어서 우리 마을 쪽으로 올 적에 제 곁을 스친 쇳덩이(자동차)는 둘입니다. 하나는 사납게 빨리, 하나는 어쩐지 느리게 달리더군요. 아, 그렇구나! 아파서 끙끙끙 울부짖는 개 입에서 나오는 시뻘건 피가 길바닥에 퍼지는 결을 보니, 치인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누가 치고 갔는지 알겠더군요.


  길에서 치여죽는 개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야, 많이 아프겠구나. 너무 아프고 슬프고 어이없어서 외마디소리만 겨우 내는구나. 이제 네 몸을 내려놓으렴. 이다음에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기를 바라. 또는 너를 치고 간 바보스러운 사람이 아닌, 숲빛을 품으면서 어질게 꿈을 그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렴.”


  우리나라 길바닥에서 하루에 치여죽는 들짐승이나 집짐승이나 마을짐승이 몇이나 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대로 ‘통계’가 없거든요. 다만, 하루에 1만에 이르는 숨결이 쇳덩이에 치여죽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을 뺀 이웃이 날마다 1만씩 길에서 쇳덩이한테 치여서 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나 그림은 거의 못 봅니다. 다들 서울(도시)에서 살잖아요? 다들 아주 바쁘잖아요? 다들 너무 바빠서, 할 일도 많아서, 돈도 많이 벌어야 해서, 또 스스로 잿집(아파트)에 갇힌 채 안 걸어다니니까, 길죽음을 볼 일도 없겠지요. 이리하여 다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는 길하고도 한참 멀어요.


  집에 닿아 느즈막이 오늘 첫 끼니를 먹습니다. 발을 씻고, 빨래를 담가 놓자니 기운이 쪽 빠집니다. 드러눕습니다. 밤새 무릎을 앓습니다. 무릎이 시큰합니다. 치여죽은 개는 온몸이 다 아팠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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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10.11. 은하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이나 광주나 대전에서도 별을 가까스로 찾아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첫쨋별이나 둘쨋별뿐 아니라 다섯쨋별이며 여섯쨋별을 보고 싶습니다. 온별이 어우러지는 미리내를 마주하고 싶어요.


  어제 새벽바람으로 여수에 건너갔습니다. 어제오늘 여수에서 글읽눈(문해력 증진 수업)을 폈습니다. 오늘 낮에 고흥으로 돌아와서 읍내 한켠 나무 곁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저녁에 포두면으로 건너가서 ‘마을살림(마을교육연구회의)’ 자리에 함께하고서 집으로 갔습니다. 이틀을 꼬박 바깥에서 보내는 동안 바람소리나 새소리나 풀벌레소리를 거의 못 듣고, 별도 거의 못 봤습니다. 여수는 부릉부릉 소리가 넘쳤고, 하늘을 찌르려는 잿집(아파트)도 참 많더군요. 고흥읍도 포두면도 별바라기나 숲바라기하고는 꽤 멉니다.


  등짐을 풀고, 발을 씻고, 물을 마시고, 기지개를 켜면서 밤하늘을 우리 보금자리에서 다시 헤아리니 별이 쏟아집니다. 별내요, 미리내입니다. 시골에서 사는 이웃한테 ‘별내’나 ‘미리내’ 같은 말을 들려주면, 요새는 하나같이 못 알아듣습니다. 서울이며 큰고장 이웃도 ‘별내·미리내’란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은하수’라고 하면 조금 알아차리되, 막상 맨눈으로 우리나라에서 별잔치를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제가 왜 “밤하늘 별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적에 스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고 속삭이는지 까맣게 모른다고 느껴요.


  별밤을 모르니 마음이 까맣습니다. 별밤을 그리지 않으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별밤을 품는 마을과 보금자리를 바라지 않으니 이 나라 앞길도 컴컴구렁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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