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어떤 책이건 (2023.5.30.)

― 인천 〈아벨서점〉



  어떤 책이건 스스로 읽어내면 됩니다. 누가 옆에서 거들어도 안 나쁘되, 스스로 읽고 느끼고 알아서 풀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책을 손에 쥐더라도 속내나 줄거리를 모르거나 헤맵니다. ‘책읽기 = 스스로 배우기 + 알기 + 말하기’입니다.


  남이 어느 책을 어떻게 읽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 ‘똑같은 글씨’를 놓고도 다르게 풀어내게 마련입니다. 다만, 모든 말은 태어난 뿌리가 같아요. 모든 말은 마음을 담아요. 다르게 풀어내되 마음을 헤아리면 한뜻을 이루고 한사랑으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저녁나절에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우리 말밑 수다’를 펴기 앞서 책부터 둘러봅니다. 한나절(4시간)쯤 둘러보아야 책밭을 누릴 테지만, 토막틈을 내어 이 책 저 책 얼른 갈무리해서 주섬주섬 쌓습니다. 이야기꽃을 펴고서 잠자리에 깃들기 앞서, 또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갈 시외버스에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이고, 비이고, 구름이고, 바람이고, 무엇보다도 사랑입니다. 모든 말밑은 언제나 한 낱말로 닿습니다. 밑동을 캐고 파고 들추고 찾노라면, 으레 한 낱말에 이르니, ‘나’입니다. ‘나’ 다음에 ‘너’가 나왔고, 이다음으로 ‘가’가 나옵니다. 나는 너한테 가고, 너는 나한테 옵니다. 이러면서 온갖 말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영어로 치면 ‘I’부터 모든 말이 싹텄다고 여길 만합니다.


  지난 2010년에 인천을 떠나던 밤을 떠올립니다.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대구도 광주도 대전도, 무엇보다도 없는 하나는 ‘숲’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거나 달리다가 뒹굴거나 구를 만한 숲이 이 모든 고장에 없습니다. 왜 아기를 안 낳겠어요? 왜 어린이가 고달프겠어요? 어린이가 숨을 돌리며 쉴 곳이 없거든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버젓하거든요. 교육부·교육청을 없애고, 교장·교감 없이, 오롯이 길잡이로서 어린이를 마주해야 이 나라를 새롭게 일구리라 봅니다.


  늘 푸르게 일렁이는 풀과 나물과 나뭇잎처럼, 싱그러이 오늘을 노래로 지을 때에 비로소 책을 책으로 마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에 모를 수 있어요. ‘이미 아는 사람’은 알기에 말을 할 몫이 있어요. ‘이미 아는 사람’이 입을 닫고서 슬그머니 지나가면,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모르는 채 멍하니 휘둘리거나 휩쓸리기 좋습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둘레에서 쓴소리를 하든 말든 ‘아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나하나 풀어내어 ‘아직 모르는 사람’인 이웃한테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함께 알고서 새롭게 나아가는 길’로 첫발을 내딛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떤 책이건 ‘읽어낼’ 눈을 틔울 일입니다.


ㅅㄴㄹ


《한국의 지명유래 1》(김기빈, 지식산업사, 1986.9.15.)

《피네간의 經夜》(제임스 조이스/김종건 옮김, 정음사, 1985.9.20.)

《황병기 17현 가야금 곡집 : 춘설春雪·달하 노피곰》(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5.15.)

《황병기 가야금 곡집 : 밤의 소리》(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0.8.5.)

《황병기 가야금 곡집 : 靈木》(황병기, 수문당, 1979.7.5.)

《새벽 들》(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89.9.15.첫/1004.5.10.3벌)

《우주배꼽》(고진하, 세계사, 1997.3.15.)

《누이》(유안진, 세계사, 1997.3.15.)

《신포동에 가면》(최진자, 시와표현, 2018.10.25.)

《슬램덩크 27》(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2.21.)

《드래곤볼 42》(토리야마 아키라/아이큐점프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5.8.23.)

《독어와 불어딕션》(Dr.Richard G.Cox/전성환 옮김, 수문당, 1985.3.20.)

- 동서음악사. 국내외 음악서적 전문점. 대구시 중구 공평동 21의 1, 중앙국민학교 입구. 46-2500

《濟州島神話》(현용준, 서문당, 1976.4.20.첫/1977.7.30.2벌)

《벼·짚·살림》(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2007.12.18.)

《이씨네 집 이야기 1》(황미나, 서울문화사, 1999.5.31.)

《이씨네 집 이야기 2》(황미나, 서울문화사, 1999.12.15.)

《이씨네 집 이야기 3》(황미나, 서울문화사, 2000.10.20.)

《이씨네 집 이야기 4》(황미나, 서울문화사, 2001.3.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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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2023.5.30.)

― 인천 〈시와 예술〉



  ‘변두리(邊-)’란 외마디 한자말을 쓰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변두리 작가” 같은 이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스스로 낮추는(겸손) 말씨라고 여겼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변두리 작가”라는 말씨를 가볍게 나무라면서 “‘변두리’라는 말이 나쁘지는 않으나, 지구 어디에도 변두리란 없기 때문에, 그런 말로 겸손한 뜻을 나타내려 하면 자기학대뿐 아니라 자기 고향을 깎아내리는 짓이 됩니다.” 하고 짚은 이웃어른이 있어요. 스무 해가 훨씬 지난 예전 일인데, 이 말씀을 한참 생각해 보니 부끄럽더군요. 우리는 스스로 낮출 까닭이 없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사랑하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즐거울’ 뿐입니다.


  낮춤(겸손·겸양)은 스스로 구석(변두리)이라 여기는 말씨에서 비롯하지 않아요. 낮춤이란, 조그마한 들꽃하고 눈을 맞출 줄 아는 몸짓에서 비롯합니다. 작은 말씨 하나로 여기며 지나치기 쉽지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려는 어른일 적에 스스로 빛나고 어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늘 작은 말씨 하나를 사랑으로 가다듬어서 펴는 길을 스스로 새롭게 열 수 있기를 바라요.


  꼭 어느 말을 써야 한다면 요사이는 ‘가장자리’나 ‘가생이’를 씁니다. 인천에서 태어났다가 전남 고흥에 뿌리를 내려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가장자리 글바치”나 “가생이 글잡이”로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가-’로 여는 우리말은 ‘가다’하고 맞물려요. ‘나아가’는 길이지요. ‘나 스스로 알아가는 길’이기에 ‘나아가다’입니다.


  그리고 ‘가장 + 자리’라서, ‘-자리’를 덜면 ‘가장’이요, ‘가운데’라는 낱말도 ‘가-’로 열어요. 둥그스름한 푸른별에는 딱히 귀퉁이나 구석이나 가장자리가 없이 모든 곳이 가운데입니다.


  인천역에서 내려 〈시와 예술〉까지 걷습니다. 마을은 마을대로 두고, 골목은 골목대로 놓으면 될 텐데, 인천시·돈바치는 이곳에 뭘 씌우거나 잿더미(아파트)를 쌓으려 합니다. 사람들이 왜 일본에 많이 놀러가고, 에스파냐·프랑스를 그처럼 좋아하는지 모르는 듯싶습니다. 한빛(K-·한류)은 거의 허울입니다. ‘우리 마을’하고 ‘우리 골목’하고 ‘우리 집’이 밑동이어야 한물결(한류)도 있습니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이 있어요. ‘씨나락’은 ‘씨 + 나락’입니다. “이듬해에 심을 씨로 삼는 나락”입니다. 겨울하고 봄에 굶더라도 씨나락은 안 건드리지요.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이듬해 볍씨를 까먹자는 터무니없는 소리”인데, 웃대가리를 차지한 이들뿐 아니라 여느 벼슬아치(공무원)도 우리도 똑같습니다.


ㅅㄴㄹ


《The Little Book of Joy》(Joanne Ruelos Diaz 글·Anneliesdraws 그림, Magic Cat Publishing, 2021.)

《주민등록》(하일, 민음사, 1985.4.15.)

《소리의 거처》(류인채, 황금알, 2014.10.31.)

《아라리》(박진성,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4.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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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턱 (2023.5.30.)

― 인천 〈문학소매점〉



  사람들이 우리말을 곱거나 바르게 쓰기를 바랄 수 있지만, 이보다는 스스로 마음이 있는 사람들부터 늘 곱거나 바르게 생각을 빛내는 우리말을 살펴서 쓰면 된다고 느낍니다. 들불처럼 일어나서 말빛을 살려도 안 나쁠 테지만, 하루아침에 바꾼다거나 밀물이나 회오리처럼 바꾸려 하다가는, 느림벗한테는 너무 벅찹니다.


  둘레를 보면 ‘마음이 있는’ 사람이 꽤 적거나 드물어요. 다들 ‘몸에 익은 대로’ 말을 하더군요. ‘익숙하다고 여기는 말씨’라면 틀렸건 어긋났건 엉성하건 얄궂건 못 털거나 안 씻더군요. ‘말이 씨가 된다’나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같은 옛말이 무슨 속뜻인지 하나도 모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일은 천천히 할 노릇입니다. 글도 천천히 쓰고, 책도 천천히 읽을 노릇입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아름다운 책을 읽을 일입니다. 미움이란 불씨를 지피는 글이 아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글을 챙겨서 곁에 둘 적에 우리 보금자리부터 깨어나고, 온누리가 꽃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안 쓰면 어설프지만, 쓰면 즐겁습니다. 아름말을 혀에 얹는 사람은 아름말하고 먼 줄거리를 알아채고, 어린이하고 함께 읽으면서 물려줄 글을 알아봅니다.


  엊그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고흥에서 살짝 등허리를 펴다가 이내 인천으로 건너옵니다. 시외버스에서 끙끙했지만, 전철을 타고 덜컹덜컹 건너오면서, 어느새 한켠은 중국빛이고 맞은켠은 일본빛으로 바뀌는 인천 중구 골목을 낯설게 느끼면서 〈문학소매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곳곳이 중국거리에 일본거리로 바뀌는데, 정작 ‘한겨레거리’는 찾아볼 길이 없다시피 합니다. ‘개항문화’라는 허울을 내세워 껍데기만 중국스럽거나 일본스럽게 덧씌우는데, 다 돈 때문입니다.


  돈은 안 나쁘되, 돈바라기로 뒹구니까 ‘나다움’을 등져요. ‘우리다움’하고 등돌리니까, 마음을 담는 말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을 잊은 채 아무 말이나 하거나 쓰거나 읽으며 쳇바퀴에 갇힙니다.


  예전에는 누가 “괜찮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공연찮다(괜찮다)’라는 일본스런 말은 ‘까닭이 없다’는 뜻이라고 토를 달면서 “글쎄요?” 하고 대꾸했지만, 요새는 “다친 데가 낫기까지 두어 달 걸릴 듯하네요.”라든지 “이 바보스런 나라꼴을 보면 일찌감치 시골로 터전을 옮겨 살기를 잘 했네요.” 하고 얘기합니다.


  길턱이 자꾸 생깁니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길바닥에 선 쇳덩이(자동차) 탓에 버거운데, 쇳덩이는 안 줄어듭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서로 느긋이 삶을 지을 마을은 다 어디 갔을까요. 글턱이 높고, 이름턱에 돈턱에 갖은 턱이 곳곳에 생깁니다.


ㅅㄴㄹ


《그때 치마가 빛났다》(안미선, 오월의봄, 2022.10.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페니 플래그/김후자 옮김, 민음사, 2011.1.1.첫/2020.9.15.)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민나리·김주연·최훈진, 오월의봄, 2023.5.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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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메, 내 (2023.11.3.)

― 구례 〈봉서리책방



  00시에 하루를 엽니다. 05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고흥읍으로 갑니다. 06시 20분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가고, 09시부터 여수 어린배움터에서 글읽눈(문해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겉으로 적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읽기 아닌 훑기’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냥 일본말 ‘문해력’을 쓰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글읽기’를 얘기해야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북중미 텃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땅을 빼앗은 이들은 ‘북중미 텃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바치(작가·교사·기자)는 어린이 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를 외우라고 닦달하는 얼거리입니다. 처음부터 어린이하고 푸름이 모두 못 알아들을 얄궂은 말을 쓰면서, 이 얄궂은 말을 억지로 외우라고 내모는 틀이 ‘문해력 교육’인 셈입니다.


  순천을 거쳐 구례로 건너갑니다. 다시 택시를 탑니다. 택시 일꾼은 책집 앞까지 모시겠다고 자꾸 말씀하지만, 저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걸을 마음이기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입니다!” 하고 몇 판이나 따지듯 말합니다. 내린 곳에서 부러 큰길로 돌아갑니다. 천천히 둘레를 헤아리면서 걷습니다. 냇물이 흐르면서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구름이 바람 따라 흐르는 결을 살피고, 어느 멧새가 나는지 지켜보고, 저 멀리 가르는 빠른길(고속도로)을 어림합니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하고 나란히 붙은 〈봉서리책방〉 앞에 서기까지 마을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습니다. 꽤 큰 마을이고, 담하고 미닫이하고 나무하고 지붕마다 오랜 손길이 흐릅니다.


  적잖은 글꾼이나 책꾼은 ‘작품’을 바라기에 그만 허울이나 겉멋에 사로잡힙니다. 그저 글을 쓰고 그림(회화·사진·영상)을 담으면 되어요. 살림빛을 바라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찍을 만하고, 바라볼 만하고, 남길 만하고, 나눌 만합니다.


  크거나 작은 일(사고)은 따로 없어요. 여러 일을 거치면서 무엇을 배우며 살아가는 하루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잘 걷고 잘 쉬면 되어요. 저는 1991년부터 돌봄터(병원)를 안 쳐다보았습니다. 갈 마음도 없고, 몸을 맡길 마음도 없습니다. 보금자리가 돌봄자리이면 되는걸요. 비록 이웃님이 쓴 글과 책을 읽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이야기를 여미어서 쓰려고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내는 길이요 걷는 삶이며 짓는 사랑입니다. 즐겁게 앓으면 즐겁게 낫고, 즐겁게 쓰면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있기에 즐겁게 이을 수 있어요.


ㅅㄴㄹ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리베드 로비엑스키/작은 우주 옮김, 달팽이, 2004.7.21.)

#AldoLeopold #AFierceGreenFire #MarybethLorbiecki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재키 아주아 크레이머 글·신디 더비 그림/박소연 옮김, 달리, 2020.10.20.)

#TheBoyandTheGorilia #JackieAzia Kramer

《제시의 일기》(양우조·최선화 글, 김현주 엮음, 우리나비, 2019.2.28.첫/2020.2.28.2벌)

《우리 안의 친일》(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10.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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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글님 (2023.9.28.)

― 고흥 〈더바구니〉



  고흥 녹동에서 마을 어린이하고 어른이 쉬어가며 책을 벗삼을 수 있는 〈더바구니〉에서 ‘고흥 글님(작가)’이 여민 책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이모저모 추스릅니다. 누가 어떻게 만나서 읽다가 품을는지 모르지만, 사랑스레 쓰다듬으면서 기쁘게 살림빛을 익히는 징검다리로 삼기를 바라며 넉줄꽃(사행시)을 적어 넣습니다.


  이러면서 노래꽃(동시)을 글판에 옮겨적습니다. 시골 마을책집까지 마실하는 분한테 살짝 덤(선물)으로 건네는 글자락입니다. 열다섯 글자락을 옮겨적자니 꽤 품이 듭니다. 책집에 와서 글을 쓰자니 다른 책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은 책마실은 접어놓아야 하는구나 싶어요.


  책집 한켠에는 빛꽃판(사진 전시판)도 세웁니다. 시골숲을 누리는 두 아이 수수한 삶을 담은 빛꽃입니다. 마을에서 차츰 사라지는 빨래터에 골짜기에 여러 푸른살림과 놀이살림을 그때그때 담았어요. 비록 사라지는 살림빛이 자꾸 늘어난다지만, 앞으로 우리 나름대로 새 살림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모든 삶과 말과 넋은 매한가지예요. 바쁘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적에도 겹말이 나올 수 있지만,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니 겹말이 불거져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은 글빛을 여미려는 이웃님이 곁에 두면서 ‘바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차근차근 돌아보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비슷한 낱말 = 닮은 낱말 = 다른 낱말’이란 얼거리를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몸과 마음이되, 숨결이 깃든 빛나는 넋이라는 대목은 같아요. 말씨앗에서도 이 실마리를 느끼기를 바라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썼습니다.


  굳이 어렵게 쓰면 글자랑에 그칩니다. 열 살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어깨동무하는 숲말로 생각을 펼 적에 서로서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런 마음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하고 《쉬운 말이 평화》에 담았어요. 누가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더라도, 스스럼없이 곰곰이 볼 수 있다면, 우리 삶 어디에서나 빛살을 느끼면서 아름다이 살아갑니다. 이런 뜻을 《곁책》하고 《곁말》하고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에 얹었어요.


  둘레에서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집을 올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밭을 일구면 즐겁습니다. 이런 마음을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하고 《우리말 글쓰기 사전》에 담았지요. 마을책집이 마을과 나라를 살리기에 《책숲마실》을 썼고, 어린이도 어른도 늘 노래님(시인)이니 《우리말 동시 사전》하고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썼어요. 우리는 다 다른 빛이자 하늘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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