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헌책집이 품는다 (2023.12.22.)

― 광주 〈광일서점〉



  우리나라는 작은 듯해도 넓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녘하고 높녘 날씨가 확 다릅니다. 더욱이 시골은 한여름에 아무리 펄펄 끓어도 별이 돋는 밤이면 서늘하고, 한겨울에 아무리 얼어도 해가 나는 낮이면 사르르 녹아요. 겨울이 깊어가는 해끝에 광주마실을 갑니다. 먼저 계림동 쪽으로 거닐어 〈광일서점〉에 닿습니다.


  책집 할배는 오늘도 잘 계십니다. 작은 새책집은 꾸준히 늘지만, 작은 헌책집은 꾸준히 사라집니다. 책이란 돌고돌게 마련인데, 돌고돌 책길을 잇는 끝자락인 바다 노릇을 하는 헌책집을 눈여겨보는 젊은 이웃이 너무 적어요.


  한 사람이 한 벌을 읽고서 사라져야 할 책이 아니라면, 책숲에서 빌리는 사람이 없어서 치워야 하는 책이 아니라면, 손길을 새롭게 받기를 기다리는 책이 깃들 쉼터인 헌책집을 눈여겨보겠지요. 어느 나라이건 버림받는 책이나 잊히는 책이 멧더미입니다. 퍽 오래 손길을 못 받은 책이더라도 읽힐 값이 없지 않아요. 읽힐 값이 깊고 넓지만 오히려 손길을 못 받고 스러지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오늘 〈광일서점〉에 여러 겹으로 쌓인 ‘새 헌책’은 광주 어느 열린배움터에서 우리말글을 가르치던 분한테서 잔뜩 흘러나왔습니다. 배움지기 한 분이 흙으로 떠난 듯싶어요. 이 배움지기는 일본 어느 열린배움터 배움지기하고 책을 주고받은 듯합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책을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책을 일본으로 보내어 서로 배움길을 열었구나 싶군요.


  마지막으로 알아볼 손길이 이 책꾸러미를 품었고, 고맙게 하나하나 쓰다듬습니다. 이름으로만 들은 ‘가나자와 쇼자부로’ 책을 구경합니다. 일본도 처음부터 ‘국어(國語)’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으나, 어느새 ‘국어’란 이름을 썼고, 어리석은 싸움판이 끝장나고서 한참 지나고 난 뒤부터 ‘국어’란 이름을 ‘일본어’로 바꾼 이웃나라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국어’를 바보처럼 붙듭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려 하기에 배웁니다. 생각에 생각을 나누려 하기에 살림을 짓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마음에 심기에 사랑이 싹틉니다. 모든 생각은 말 한 마디에서 태어납니다. 말을 허투루 지나치면 마음이 낡습니다. 말을 알뜰히 돌보면 마음이 환합니다. 말을 업신여기면 마음이 찌듭니다. 말을 곱게 살리면 마음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우리는 ‘길’을 갈 뿐입니다. ‘-즘·주의·노선·방향·정책’이 아닌 ‘길’을 갈 일입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길을 가면서 ‘길듭’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라면, 길을 가며 기운이 나고 꿈을 기르고 슬기가 깊습니다.


ㅅㄴㄹ


《남영동》(김근태, 중원문화, 1987.9.30.첫/1988.6.20.4벌)

《학교와 사회》(W.파인버그·J.F.솔티스/고형일·이두휴 옮김, 풀빛, 1990.9.30.)

《내 고장 전통 가꾸기》(편찬위원회 엮음, 완도군, 1981.12.30.)

《江戶語の辭典》(前田勇 엮음, 講談社, 1979.10.10.첫/1995.8.22.15벌)

《문맥서평 제2호》(출판편집자협의회 문맥회, 미래사, 1988.7.4.)

《敬語法の硏究 訂正版》(山田孝雄, 寶文館, 1924.6.20.첫/1931.6.20.고침)

- 巖松堂書店. 東京 神田

《國語學通論》(金澤庄三郞, 早稻田大學出版部, 1923.)

- 가나자와 쇼자부로 1872∼1967

《新修 國語學史》(東條操, 星野書店, 1948.5.20.)

- 一九四八年 六月 三十日, 京都女專 國文科 

《防災科學 震災》(岩波茂雄 엮음, 岩波書店, 1935.4.15.)

- 朝鮮總督府 氣象臺

- 觀測所 光州出張所 14.9.7.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유하·하재봉·함민복·함성호·김정란, 세계사, 1992.1.1.첫/1992.1.30.2벌)

《에코스파즘(발작적 경제위기)》(앨빈 토플러/이희구 옮김, 한마음사, 1982.9.20.)

《語錄 民族의 소리》(홍선희 엮음, 태극출판사, 1978.11.25.)

《민족사의 불기둥 1》(이은상, 청년저축조합·횃불사, 1971.11.30.)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바다출판사, 2019.4.8.첫/2019.5.15.2벌)

《번역어 성립 사정》(야나부 아키라/서혜영 옮김, 일빛, 2003.4.1.)

- #飜譯語成立事情 #柳父章 1982년

《역사속의 민중과 민속》(한국역사민속학회 엮음, 이론과실천, 1990.9.25.)

《노동하는 인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교황 요한 바오로 2세/범선배 옮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3.12.1.첫/1983.12.31.재판)

《註解 新約聖書》(黑崎幸吉, 明和書院, 1930.12.10.첫/1953.3.29.10벌)

《月刊牧會 별책부록 : 敎會學校 프로그램과 壯年의 責任》(칼드웰/오소운 옮김, 월간목회사, 1978.3.1.)

《月刊牧會 별책부록 : 韓景職 牧師의 牧會論》(이동섭, 월간목회사, 1978.4.1.)

《꼬마 니콜라 4 니콜라의 멋진 추억》(L.고시니·장 자크 상페/민희식 옮김, 거암, 1986.11.30.)

《동녘문고 3 여성과 노동》(이명희 엮음, 동녘, 1985.5.15.)

《산업신서 13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편집부 편역, 광민사, 1981.6.22.)

《백산문고 5 노동조합의 조사연구입문》(편집부 엮음, 백산서당, 1984.5.30.)

《大說 ‘南’》(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12.25.첫/1984.10.20.3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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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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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불굿싸움 (2018.12.8.)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어릴 적부터 이 땅에서 마주하는 낯설고 새로운 모두가 궁금해서, 쉬잖고 둘레 어른이나 동무나 언니한테 물었습니다. “철은 뭐예요? 겨울은 왜 겨울이에요? 이 나무는 이름이 뭐예요? 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새는 이름이 뭐예요? 저 구름은 뭐라고 해요? 이 꽃은 먹어도 돼요? 왜 쉬운말을 안 쓰고 어렵게 말해요?” 같은.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 어머니를 빼고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이 대꾸를 안 했고, 꿀밤을 먹였습니다. 박정희는 스러졌지만 전두환이 서슬퍼렇던 무렵이라, 나이든 사람은 나어린 사람을 쉽게 때린 지난날이에요. 이를테면 마흔 살짜리는 서른 살짜리를 때리고서 돈을 뺏습니다. 서른 살짜리는 스무 살짜리를 때리고서 돈을 뺏습니다. 스무 살짜리나 대학생은 고등학생을 때리고서 돈을 뺏는데, 고 3·고 2·고 1로 또 벌어지고, 중 3·중 2·중 1뿐 아니라, 국 6부터 국 2까지 때리고서 돈을 뺏는 얼개였어요. 국 1은 예닐곱 살 아이를 때리고서 돈을 뺏더군요.


  이 바보스런 나라 한복판을 지켜보다가 열네 살 무렵부터 맞서기로 했습니다. 열세 살 봄부터 열네 살 봄까지 싸움솜씨를 익혔어요. 저는 으레 얻어맞고 돈을 빼앗긴 채 울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우리 언니가 이 여린 동생을 보다 못해서 1988년 봄에 ‘특전무술 도장’에 억지로 집어넣었어요.


  그때에 싸움솜씨를 익혔지만, 여태 몸싸움을 한 일은 없습니다. 몸싸움을 할 뜻으로 싸움솜씨를 익히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내 몸을 지키려고 익히지도 않았습니다. 중 2 때부터 고 3에 이르기까지, 또 싸움판(군대)을 거치는 동안에도, 나이로 동생이나 또래를 억누르는 얼뜬 바보 앞에 서서 “그딴 바보짓 그만해! 넌 스스로 안 창피하냐?” 하고 따졌습니다. 그때에 주먹무리는 갖은 막말로 “니가 뭔데?” 하고 으르렁댔고, 저는 똑같이 “넌 뭔데? 넌 뭐길래 쟤 돈을 뺏으려고 해?” 하고 가로막았어요.


  겨울이 깊어가는 섣달에 순천으로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들러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을 건넵니다. 오늘날 이 나라는 온통 싸움불굿입니다. 아이들은 배움불굿이고, 어른들은 서울불굿입니다. 서울을 즐겁게 떠나서 시골살림을 짓는 길로 거듭날 이웃은 어디 있을까요? 부릉부릉 쇳덩이는 그만 몰고서, 사뿐히 마당을 거닐고 풀꽃나무를 품는 이웃은 어디 있나요?


  겨울이기에 봄을 그립니다. 새봄빛을 꽃노래로 누리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겹겹 품고 돌보는 겨울이니, 빛나는 그림으로 겨울을 녹여 봄이 오는 이야기를 펴는 꿈씨앗을 헤아립니다. 쇳덩이에서 내려야 비로소 둘레를 알고 책을 읽습니다.


ㅅㄴㄹ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편집부, 브로드컬리, 2018)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일리아 그린/임제다 옮김, 책속물고기, 2013)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필리포스 만딜라리스(글)·엘레니 트삼브라(그림)/정영수 옮김, 책속물고기, 2015)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이반 일리치/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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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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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책숲마실 (2020.9.5.)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새로 여민 책을 들고서 순천마실을 갑니다. 어릴 적부터 ‘책숲마실’을 해왔고, 이 삶을 고스란히 《책숲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도 숲이고, 책을 빌려서 읽는 데도 숲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책이 있을 텐데, 뭇책이 어우러지기에 책숲입니다.


  사람은 숲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사람답습니다. 숲을 품지 않고서 살아간다면 사람빛을 잊다가 잃습니다. 몸짓에 마음이 드러나고, 말씨에 마음이 나타납니다. 글줄에 마음이 퍼지고, 눈망울에 마음이 흘러요.


  책이 태어나려면 먼저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스스로 그려서 일구는 삶이 있기에, 이 삶을 누리는 하루를 마음에 담습니다. 삶을 마음에 담으니 날마다 천천히 가꾸고 돌봐요. 가만히 자라나는 마음에서 말이 피어납니다. 삶이 있기에 마음에서 말이 샘솟고, 삶이 없으면 마음에서 아무런 말이 안 나옵니다.


  고흥 시골집부터 순천책집을 오가는 길은 서울 오가는 길 못지않게 품과 돈이 듭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또렷이 느낍니다. 서울에서야 인천이나 연천이나 남양주나 안산쯤 가볍게 오갈 만하고, 천안까지도 슥 다녀온다지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이웃 고장을 다녀오는 길이 드물고 비싸고 까다롭습니다.


  요즈막은 웬만한 사람들 누구나 부릉부릉 몰기에, 여느길(대중교통)이 어떤지 모르는 분이 수두룩하더군요. 걷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안 사귀거나 겉치레로 사귑니다. 두바퀴로 느긋느긋 오가지 않는 사람은 동무를 모르거나 겉훑기로 스칩니다.


  〈도그책방〉에 《책숲마실》을 한 자락 드립니다. 시골버스랑 시외버스에서 새로 쓴 노래꽃도 드립니다. 버스로 오래오래 돌고도는 길에 아이를 토닥이고 도시락을 챙겨 줍니다. 이러고서 생각을 추슬러 붓을 쥡니다. 움직이는 길에 책을 두어 자락 읽고, 글도 몇 자락 씁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책을 너덧 자락 읽고, 잠든 아이를 어깨에 기대라 하고 토닥이고는, 글을 몇 자락 천천히 여밉니다.


  모든 책은 처음 태어난 무렵에 어떤 삶이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눈으로 읽고서, 다시 다른 눈으로 풀어냅니다.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실마리가 말 한 마디이면서 책 하나입니다. 여러 갈래 삶을 여러 눈망울로 돌아보기에 여러 목소리를 나누면서 깊고 넓게 마음을 북돋울 만합니다.


  갓 태어난 책조차 며칠 지나면 “묵은 책”입니다. 새책도 하루 뒤에는 이미 ‘헌책’입니다. ‘헌’이 ‘허허·하늘’하고 맞닿은 줄 알아채는 분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새책’이란 ‘사잇책’이고, ‘헌책’이란 ‘하늘책’입니다.


ㅅㄴㄹ


《꽃밥》(정현숙 글·김동성 그림, 논장, 2020)

《이 세상 최고의 딸기》(하야시 기린 글·소노 나오코 그림/고향옥 옮김, 길벗스쿨, 201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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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하늘이란 하나인 마음 (2023.5.19.)

― 부산 〈비온후〉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부터 〈비온후〉까지 걸어갑니다. 마을을 알려면 마을에 깃들어서 하루를 누리고, 해를 보내고, 철을 돌아보면 됩니다. 마을을 사랑하려면 보금자리에 나무를 심고서 새를 부르고 풀벌레랑 동무하면 됩니다. 마을을 가꾸려면 아이를 낳거나 품어서 아이한테 슬기로이 살림짓는 하루를 물려주면 돼요.


  빨리 읽거나 많이 읽을 책이 아닌, 그저 읽고 새기면서 익히고 나눌 적에 아름다운 책입니다. 빨리 걷거나 많이 다닐 길이 아닌, 그저 하늘을 보면서 걷고 나무를 헤아리며 노래하다가 풀빛으로 물들기에 즐거운 길입니다.


  하늘이 왜 ‘하늘’이란 이름인지 어릴 적부터 열일곱 살 무렵까지 어림조차 못 했습니다. 옛말을 처음 배우던 무렵 ‘한울’을 들었으나 이뿐이에요. ‘한’이나 ‘울’이 어떤 숨결을 품는지 짚거나 밝히거나 알려주는 어른을 못 봤습니다. 혼자 책집마실을 다니다가 해묵은 《뿌리깊은 나무》를 하나씩 장만해서 읽던 어느 날, 한창기 님이 남긴 글에 “우리나라 이름은 ‘한국’이 아닌 ‘한나라’여야 옳다”는 대목이 있더군요. 1980년에 이런 목소리를 낸 분이 있어 놀랐고, 우리는 막상 우리말부터 하나도 안 배우거나 엉터리로 흘려넘기는 줄 알아차렸습니다.


  배움불굿이 말썽이고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하지만, 막상 큰책집에서는 곁배움책이 ‘잘 팔립’니다. 마음을 가꾸거나 살림을 익히는 길하고는 동떨어진 우리나라 배움터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스스로 책집마실이나 책숲마실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사람은 살아남으려고 밥을 먹지 않아요. 삶을 짓고 살림을 펴면서 사랑을 나누려고 즐겁게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솜씨나 재주를 키우려고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틀에 갇힙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그리는 마음밭을 누리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쓰고 읽을 적에 아름다워요.


  하나인 마음을 아우르는 하늘처럼, 하늘빛으로 물드는 말 한 마디를 씨앗으로 여미기에 눈길을 틔운다고 느낍니다. 작은책집이란 작은씨앗 같습니다. 아직 잘 안 팔리는 책도 작은씨앗을 닮습니다. 작은씨 한 톨이 깃들어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푸르게 우거집니다.


  빗방울 하나는 크기를 따질 수 없이 조그맣지요. 〈비온후〉에서 펴는 말빛수다 한 자리란, 두런두런 나누는 말 한 자락에 서로 주고받는 마음씨앗이라고 여겨요. ‘둘레’는 ‘두르다’와 ‘두루’가 바탕인 낱말이고, ‘두레’도 말밑이 같답니다. ‘둘’과 ‘두다’하고 나란한 결이고요. 둥글게 하나로 동무입니다.


ㅅㄴㄹ


《고양이 안전사고 예방 안내서》(네코넷코 편집부/전화영 옮김, 책공장더불어, 2023.5.13.)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김남일, 난다, 2018.9.19.)

《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남예지, 갈마바람, 2022.4.25.)

《부산 문화 지리지》(김은영과 여덟 사람, 비온후, 2023.3.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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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기 #일산마실

2024.2.5.


어제 큰아이하고 둘이서

일산 할머니 뵈러

길을 나섰다.


할머니가 마음에 응어리를

안 푼 채 너무

바쁘고 힘들게 일하느라

할아버지가 저승 한켠에서

그만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꿈에서 보았고,

바로 일산에 가 보았다.


이승 저승 모두

좋은 데나 나쁜 데는 없다.

좋고 나쁜 데를 따지면

바로 떠돌깨비로 갇힌다.


사위가 쓴 책을

느긋이 읽을 틈을 내고

시골 사는 손주한테

손글씨 글월을 띄울 짬을

낼 만큼

하루를 차분히 그리고 누리면

응어리도 앙금도

우리 누구나 곧장

사랑으로 녹이고 푼다.


#다산시선


고3이던 1993년에 읽은

정약용 책을

서른 해 만에 다시 편다.


지난날 고3 수험생은

시험공부를 하다가 머리 식히려고

날마다 '그냥 책'을 두세 자락씩

읽었다.


그러다 성적 떨어진다는 핀잔을

늘 들었는데

책조차 안 읽고 성적만 오르면

그런 사람이 언제나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거짓말과 눈속임과 뒷짓을 하니,

나는

착하고 참하고 곱게 살림하는

어른으로 서고자

고3수험생이어도

날마다 두세 자락 책으로

마음밭을 살찌우려 한다고

교사와 또래한테 얘기했다.


#우리말꽃 #말글마음

#숲노래 #최종규 #곳간


하루치기를 마치고

시외버스를 탄다.

눈내리는 서울을 벗어난다.


이제 다시

조용히 곰곰이

시골빛과 숲빛을 노래하러

집으로 간다.

#고흥살이 #시골살이 #밤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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