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낮을 먹는 낯 (2021.10.1.)

― 여수 〈낯 가리는 책방〉



  고흥하고 여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지만, 부릉이가 있는 사람이 다니기에 좋을 뿐입니다. 두 고장 사이를 잇는 다리에는 시외버스나 시골버스가 안 다닙니다. 시외버스로 한참 돌아 두 시간 만에 여수에 닿고,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골목을 걷습니다. 가을볕이 후끈합니다. 곳곳에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있어 나뭇잎을 살랑이는 바람이 햇살을 튕기면서 눈부시고 시원합니다.


  아침 11시에 여는 〈낯 가리는 책방〉인데 30분쯤 일찍 닿습니다. 책집 옆에는 새뜸나름터(신문사지국)가 있고, 바깥마루(평상)가 있어요. 이곳에 등짐을 내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맞은켠 가게 앞에도 바깥마루가 있습니다. 가만 보면 골목을 이룬 마을 한켠에는 바깥마루가 곳곳에 있어요. 가게지기나 손님이 쉬며 수다를 나누면서 나그네도 쉬는 자리입니다.


  햇볕도 햇빛도 듬뿍 들어오는 〈낯 가리는 책방〉입니다. 한여름에는 제법 더울는지 모르나 바람이 훅 끼치면서 싱그러이 감쌀 만하지 싶어요. 겨울에는 여닫이만 닫아 놓아도 포근한 기운이 두루 퍼질 테고요.


  해는 마을을 고루 비춥니다. 바람은 마을을 두루 어루만집니다. 해는 골목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바람은 골목에서 돋는 들풀을 빙긋빙긋 쓰다듬습니다. 책집 걸상에 앉아 햇살을 누려도 좋을 테고, 이웃가게 바깥마루에 슬쩍 앉아 햇살을 누려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이란 모름지기 어울림이니까요.


  햇볕을 듬뿍 머금는 풀꽃나무는 튼튼하고 푸릅니다. 햇볕을 못 머금는 풀꽃나무는 시들시들합니다. 사람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온몸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누리면서 온마음으로 네철을 고루 헤아릴 적에 온빛으로 가득한 숨결로 살아갈 테지요.


  오늘은 진주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대구로 건너갈 생각입니다. 순천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낯 가리는 책방〉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이다음에는 느긋이 머물기로 하고 기차나루로 걸어갑니다. 박람회를 열었던 집이 커다랗습니다. 이런 커다란 집으로 구경손(관광객)을 모으겠다며 여러 고장이 큰돈을 들이는데, 앞으로는 큰돈·큰집이 아닌 살림돈·마을살림을 바라보는 길을 살피기를 바라요.


  골목이 골목스럽게 해를 나누고, 마을이 마을답게 풀꽃나무를 품을 적에, 어느 골목하고 마을이든 사람들 스스로 조곤조곤 살림을 가꾸리라 생각합니다. 몇몇 주머니로 들어가는 큰돈이 아닌, 누구나 누리는 살림돈일 적에 삶터가 눈부십니다. 밑살림돈(기본소득)이란 어깨동무를 하는 길이에요. 고르게 마을삶빛을 일군다면 검은돈도 뒷돈도 사라지면서 다같이 환한 낯빛으로 노래하리라 봅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홍칼리, 위즈덤하우스, 2001.8.28.)

《파도수집노트》(이우일, 비채, 2021.9.17.)

《급식드라이빙》(조교, 인디펍, 2021.8.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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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에 깃든 〈한평책빵〉에서 일하는 분한테 띄우는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마을책집이라는 살림빛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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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2021.10.14.

〈한평책빵〉하고 마을책집



  저는 낱말책(사전)을 짓는 길을 갑니다. 낱말책을 짓자면 모든 낱말을 처음부터 새로 살펴야 하고, 찬찬히 짚은 낱말도 늘 다시 들추면서 헤아려야 합니다. 말이 태어난 길을 살피고, 말을 지은 살림을 들여다보아야 하지요. 이때에는 손수 살림을 지을 적에 가장 빠르게 알아차리거나 익힐 만하고, 이다음으로는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다 다른 살림새를 눈여겨보는 길이 있으며, 나라 곳곳 마을책집에서 그 고장에서 일군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이 있습니다.


  낱말책을 짓는 길을 가며 나라 곳곳 책집을 늘 꾸준히 돌아다닙니다. 마지막으로 접는 책집을 만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책집을 마주합니다. 서울 한켠에 〈한평책빵〉이 태어날 즈음 이야기를 들었고, 언제쯤 찾아가 볼 만할까 어림하면서 이태쯤 보냈습니다. 이러다가 서울 강서 쪽으로 다녀올 일이 있어, 〈호수책장〉을 거쳐 〈한평책빵〉을 처음으로 찾아갔습니다. 2021년 5월 12일이로군요. 이름과 누리글집 이야기로만 만나던 책집을 몸으로 마주하면서 책을 살피고 장만할 적에는 사뭇 다릅니다.


  책을 더 많이 갖춘 곳을 굳이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오직 그 책집답게 스스로 눈빛을 밝혀서 갖추는 책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책을 더 많이 갖추는 곳은 어느 고장을 가나 갖춤새가 엇비슷합니다. 이와 달리 책집지기 나름대로 눈빛을 밝히는 곳은 100자락이나 200자락 책만 갖춘다고 하더라도 오직 그곳에서 새롭게 만날 만한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집을 드나드는 손님은 여러 모습입니다. 첫째로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에서 살며 가볍게 자주 드나들어요. 둘째로는 책집이 있는 마을에 바깥일이 있어서 찾아왔다가 들러요. 셋째로는 그 책집을 바라보고서 일부러 찾아가서 책집하고 마을을 두루 누리려 합니다.


  책집지기라면 이처럼 다른 손님을 다르게 맞아들인다고 할 만합니다. 자주 찾거나 늘 찾는 손님하고 나누는 책이 있고, 문득 책집바라기가 되어 발걸음을 하는 손님한테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책을 나누거나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마을책집으로서 마을에서 스스로 가꾸거나 짓거나 노래하려고 고른 책에 어떤 숨결하고 이야기를 담았나 하고 들려줍니다.


  책집마실을 하는 손님은 ‘다른 책’만 장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장만한 책이어도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거나 보았으면, 예전에 장만한 책을 새롭게 장만하’지요. 겉보기로는 똑같다 하지만, 속내로는 다른 두 책입니다. 우리는 책을 ‘종이에 찍힌 글씨’로만 읽지 않아요. ‘종이에 찍힌 글씨에 서린 숨결과 이야기’를 만나려고 책을 쥡니다.


  누리책(전자책)이 나오고 널리 읽힌다 하더라도, 애써 종이책을 찾아서 돈을 치르는 사람은 ‘숨결과 이야기’를 누리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에서 마을살림이라는 길이 ‘숨결과 이야기’라는 대목을 눈여겨보는 쉼터이자 샘터이며 이음터이자 이야기터라고 봅니다. 그냥 놓기만 해도 날개돋히듯 팔리는 책이 있을 테지만, 구태여 이런 잘팔리는 책보다는 ‘숨결과 이야기를 품은 책’을 한결 마음을 들여서 알리고 건네면서 팔려고 하는 마을책집입니다.


  마을책집이 걸어왔고 걸어가며 걸어갈 길을 헤아리는 분이라면, 누리책집에서도 이따금 책을 사되, 즐거이 사뿐사뿐 마을길을 거닐면서 마을책집을 드나들리라 봅니다. 마을책집하고 누리책집은 싸울 사이가 아닙니다. 서로 몫이 다릅니다. 큰책집하고 누리책집이 어떻게 나아가든, 마을책집은 마을이라는 길과 숲을 읽고서 천천히 씨앗을 심으면 넉넉합니다.


  숲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누리책집이나 큰책집은 하루아침에 큰돈을 들여서 번쩍거리는 ‘큰숲터(대형 생태공원)’을 올려세울는지 모르나, 마을책집은 사람을 마음에 사랑과 꿈이라는 씨앗을 심어서 차근차근 짙푸르면서 고루 노래하는 마을숲을 돌보는 징검다리입니다. 나무를 하루아침에 우람하게 키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큰돈 들여 사들여서 척 박아 놓아야 멋스러울까요? 마을을 아우르는 오래나무는 삼백 해 오백 해 즈믄 해라는 나날을 천천히 가지를 뻗고 잎을 내면서 푸르게 우거지기 마련입니다. 갓 태어나는 마을책집도 오래오래 이은 마을책집도 똑같이 ‘마을나무’입니다. 아이더러 빨리 어른이 되라고 닦달할 까닭이 없듯, 마을책집은 늘 나무숨빛으로 느긋이 터를 잡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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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마을마실 (2021.3.2.)

― 서울 〈메종인디아 트래블앤북스〉



  누가 시키는 대로 한다면, 아무리 착하구나 싶더라도 판박이입니다. 우러나와서 할 적에는 매우 조그맣더라도 눈부시고 새롭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심부름을 합니다. 어른이 시키기에 하는 심부름인데, 심부름을 맡기는 어른은 아이들이 스스로 소꿉을 찾아내어 살림으로 나아가도록 살살 마음을 이끌 줄 알아야지 싶어요.


  심부름만 하는 아이는 철바보가 되기 좋아요. 심부름이 아닌 일을 찾는 아이는 철빛이 영글어요. ‘일’이란 ‘일다·일어서다·일어나다’를 품는 낱말입니다. 누가 시킬 적에는 심부름일 뿐,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물결이나 너울처럼 일으키면서 하기에 일이라고 해요.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펴기에 비로소 일입니다.


  한자말 ‘직업’은 우리말 ‘일’하고는 썩 안 어울려요. ‘직업’이란 ‘돈벌이·밥벌이’인걸요. 돈이나 밥을 벌되 스스로 즐겁게 눈망울을 반짝이고 노래하면서 할 적이 아니라면 일이라 하지 않아요, 곰곰이 보면 오늘날 이 나라 터전·배움터는 아이들한테 ‘직업교육·직업훈련’을 시킵니다. “밥벌이·돈벌이로 나아가도록 시킴질”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길에 너울너울 일어날 일거리를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마을책집 〈메종인디아〉에 깃들어 한낮을 가만히 보냅니다. 마을에 있기에 마을책집이고, 마을사람이 가벼이 들르기에 마을찻집입니다. 마을이 나아갈 길을 책을 곁에 두면서 새삼스레 들려주기에 마을책터이고, 이웃마을이 궁금해서 찾아오는 나그네를 포근히 안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마을샘터입니다.


  예부터 말하는 ‘마실’이란 ‘마을’을 가리킵니다. “마실을 간다”는 “마을을 간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이 아닌, 이웃이 살아가는 마을로 가기에 마실을 가요. 우리가 짓는 마을에서 누리는 살림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마실을 가고, 이웃이 지은 살림을 우리도 둘러보면서 맞아들이려고 마실을 갑니다.


  한자말 ‘여행’이나 영어 ‘투어·트래블’도 이 말이 태어난 곳에서 주고받던 살림이 흐르리라 생각해요. 우리말 ‘마실’에는 우리가 손수 가꾸고 돌보면서 넉넉히 펴던 숨결이 흐릅니다. 우리 마을에서 이웃을 바라보며 마실을 가는 길을 그려 볼까요? 이웃이 우리 마을을 마주하며 마실을 올 나날을 그려 보겠어요?


  바람이 골골샅샅 흐르듯, 사람이 고루고루 흐릅니다. 바람이고 물이고 사람이고 고이면 썩습니다. 바람은 이 숲에서 저 숲으로 흐르고, 물은 하늘에서 바다를 지나고 들을 거치고 숲을 가르지르며 흘러요. 사람은 어느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고서 바람처럼 물처럼 별처럼 흐르는 숨빛으로 오늘을 짓는 넋일까요?


《Do!》(Gita Wolf·Rameshe Hengadi·Shantaram Dhadpe, tarabooks, 2019.)

《an Indian beach》(Joelle Jolivet, tarabooks, 201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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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풀피리 풀씨 (2021.7.15.)

― 제주 〈제주풀무질〉



  제주에는 바다를 보러 오지 않습니다. 제주에 오는 뜻은 언제나 ‘제주책집’을 누리려는 마음입니다. 제주책집을 오가는 길에 바다가 있으면 “그래, 지나가는 길목에 있으니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주책집 사이에 오름이 있으면 “그래 책집 틈새에 오름이 있네.” 하고 바라봅니다.


  어느 고장을 가든 그곳에 어떤 책집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하고 어림합니다. 마을책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이라면 푸르면서 아름답습니다. 마을책집이 피어나지 못한 채 곁배움책(참고서)하고 잘난책(베스트셀러)만 덩그러니 있는 책집뿐이라면 어쩐지 시들시들할 뿐 아니라 매캐합니다.


  잘난책이 나쁠 일은 없되, 잘난책을 보러 굳이 마을책집에 갈 마음이 없어요. 잘난책은 많이 읽힌다고 하되, 마을빛이나 마을길이나 마을살림하고는 동떨어지거든요. 수수한 순이돌이가 저마다 즐거이 보금자리를 짓는 곳이기에 마을이 태어납니다. 마을에서는 수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살갑게 돌보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어른으로 자라요. 책집지기이자 마을지기인 책집일꾼이 눈빛을 밝혀 하나둘 갖춘 ‘마을책’을 만나는 보람으로 책집마실이 즐겁습니다.


  아침 일찍 제주시에서 자전거를 몰아 조천에서 다리를 쉬었습니다. 등짐은 책을 더해서 한결 묵직합니다. 고개를 넘어 들길을 지나 세화로 달립니다. 한참 달리니 땀방울이 빗방울처럼 듣습니다.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지 않고 혼자 등짐을 메고서 달리기에 홀가분하되 무척 조용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릴 적에는 늘 노래를 불렀어요.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하며 늘 노래랑 바람을 누렸지요.


  땀을 들일 만한 나무그늘을 찾아서 앉아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개미랑 수다를 떨다가 다시 달립니다. 이윽고 땡볕인 바닷가 풀밭에 자전거를 눕히고 새삼스레 노래꽃을 씁니다. 다시 기운을 내어 〈제주풀무질〉에 이릅니다.낯을 씻고 또 씻어도 땀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신나게 잘 달린 한여름 자전거입니다.


  오래도록 서울 한복판에서 풀피리를 불던 책집은 제주 오른켠에서 풀바다를 이루어 풀씨를 심는 길로 접어드는구나 싶습니다. 풀밭은 풀벌레가 풀잎을 갉으며 풀노래를 부르기에 푸릅니다. 풀벌레가 없다면 들숲은 모두 말라죽어요. 벌나비랑 새가 있기에 들숲하고 마을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짓고 어떤 집을 세우고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책을 나누는 사람일까요? 제주에는 놀거리·누릴거리·먹을거리·볼거리가 많습니다만, 저는 이 여럿에 마음이 안 갑니다. 바다 곁에 풀밭이 드넓기를 바라고, 오름 곁에 책밭과 책숲과 책벌레가 있으면 넉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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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주의를 말한다》(우네 유타카/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3.12.)

《해녀리나》(Nika Tchaikovskaya, Tchaikovsky Family Books, 2019.5.16.)

《성주가 평화다》(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대구경북작가회의·성주문학회, 한티재, 2017.1.28.)

《함께 가자 우리》(차주옥, 실천문학사, 1990.5.20.)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한일순 말·한대웅 씀, 페이퍼로드, 202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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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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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숲 사이로 (2021.9.26.)

― 상주 〈오롯서점〉



  상주 시내는 큰고장을 닮았다고 할 만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오롯이 멧숲입니다. 서울내기 눈으로 상주 시내는 조그마할는지 모르나, 시골내기 눈으로 상주 멧숲은 그윽하면서 푸르고 널찍하게 우거집니다.


  지리산 기스락에서 꽃잔치(혼례식)를 연 윗내기(선배)가 있어 일부러 서울부터 자전거를 달려 상주를 거쳐 간 적이 있어요. 그때가 2005년이었지 싶은데, 그 뒤 열여섯 해가 지난 2021년 가을에 작은아이하고 상주 시내를 찾습니다. 이곳에는 마을책집 〈오롯서점〉이 있어요. 우리말 ‘오롯’은 ‘오로지·오직’하고 말밑이 같고, ‘옹글다·영글다’하고 맞물리며, ‘온(온누리)·올(올차다)’이며 ‘알(알맹이)·얼(숨결)’하고 잇닿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말밑으로 얽혀요.


  마음길을 오롯이 그립니다. 마음결을 옹글게 가눕니다. 마음빛을 알뜰히 돌봅니다. 마음밭을 알차게 가꾸고, 마음씨가 영글도록 하루를 노래합니다. 가을은 깊어 가고 햇볕은 뜨끈뜨끈합니다. 밤알이 굵고 첫봄에 피어나는 들꽃이 슬슬 새로 깨어납니다. 골짝물은 매우 시원하고, 숲빛은 조금씩 가을무지개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영 언짢습니다. 상주 화북면 입석 안골로 바로 안 가고 시내에 머무르니 따분합니다. 책집을 빙글빙글 돌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실컷 뛰놀 만한 풀밭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때를 봅니다. 13시 01분인데, 13시 10분에 화북 입석으로 가는 시골버스가 있습니다. ‘달려가면 시골버스를 잡을까?’ 책값을 셈하고 등짐을 질끈 챙기고 끌짐(캐리어)을 쥡니다. “산들보라 씨, 우리 달려 볼래? 버스 타는 데까지 달리자.”


  작은아이는 바람을 가르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도록 달리면서 웃습니다. 활짝 웃는 작은아이는 앞서 달리다가 쉬다가 다시 달리다가 쉬다가 걷습니다. 우리는 6분 만에 시외버스나루에 닿고, 13시 9분에 시골버스에 오릅니다. 시골버스는 한 시간 20분 남짓 상주 멧자락을 굽이굽이 달립니다. 단돈 2000원으로 상주 멧골을 두루 구경하는 시골버스입니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고맙게 얻어 종이를 빚고, 이 종이로 책을 묶습니다. 우리는 나무(붓)를 쥐어 나무(종이)에 우리 삶(이야기)을 새겨서 나무(책)를 펴내어 나누고 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나무하고 숲을 만나는 셈이요, 책을 다루는 지기라면 어느 고장에서나 나무하고 숲을 이웃하고 나누는 길입니다. 상주는 자전거고을로 이름이 높은데, 숲고을로도, 또 조촐히 책고을로도 차근차근 가지를 뻗는 아름터로 어우러지면 좋겠어요.


ㅅㄴㄹ


《나무처럼 살아간다》(리즈 마빈 글·애니 데이비드슨 그림/김현수 옮김, 알피코프, 2020.9.25.)

《섬 위의 주먹》(엘리즈 퐁트나유 글·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정원정·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 2019.4.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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