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김구연 (2023.7.21.)

― 인천 〈아벨서점〉



  인천도 서울도 온나라 고을마다 담그림(벽화)이 볼썽사납습니다. 이 나라는 담그림을 아름답게 빚거나 담아내지 못 합니다. 옛날 임금집 둘레에 ‘꽃담’을 쌓던 꽃스러운 손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꽃담은 오백 해를 흘러도 꽃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 담그림은 백 해는커녕 열 해조차 못 버틸 뿐 아니라, 처음부터 마을빛을 깔보거나 골목빛을 얕보면서 마구마구 돈으로 처바르는 붓질입니다.


  골목사람이 담벼락에 작대기 하나를 줄에 받쳐서 옷걸이에 빨래를 꿰어 볕바라기로 말리려고 내놓는 손길이 담그림입니다. 골목사람이 귀퉁이나 빈터에 꽃그릇 하나 놓고서 숲이나 멧골에서 퍼온 흙을 담아서 씨앗 한 톨 묻고서 기르는 남새가 푸르게 밝히는 숨결이 담그림입니다. 해가 하루를 나아가면서 드리우는 빛줄기랑 그림자가 담그림입니다.


  뿌리를 알 길조차 없는, 더구나 누리판(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쁘장하다’거나 ‘멋지다’는 그림이나 무늬를 얼렁뚱땅 옮겨서 그린대서 담그림일 수 없어요. 그러나 숱한 ‘문화예술가’에다가 ‘공무원’이 손을 잡고서 ‘골목하고 마을을 볼썽사납게 망가뜨리는 벽화사업’을 자꾸자꾸 벌입니다.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에서 뻗어나가는 딱한 담그림을 보다가, 얼마 앞서 이슬로 떠난 김구연 님을 떠올립니다. 송월동 골목집에서 달개비 파란꽃을 그윽히 사랑하며 지켜본 김구연 님은 들꽃빛을 담은 글자락을 남겼어요. 손에 힘이 다하여 더는 종이를 넘길 수 없는 날까지 꾸준히 책읽기를 품으면서 넋을 가꾸었어요.


  책을 읽어야 마을이나 골목을 알지 않습니다. 숱한 책을 두루 읽으면서 마음을 일구어야 인천을 속속들이 헤아리면서 담그림을 펼 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다리 책골목이라는 데에 깃들어 ‘문화예술’을 펴려 한다면, 사나흘에 하루쯤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하고, 여러 책집지기님 삶자락에 오래오래 밴 책빛을 듣고 살펴보면서 ‘벼가 익듯’ 고개를 숙이면서 배울 노릇입니다.


  푸른씨(청소년)는 어른씨가 무엇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려 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푸른씨는 어른씨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별처럼 빛나는 씨앗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기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우리 나이가 이미 푸른씨 나이를 훌쩍 넘었더라도, 우리 마음은 누구나 푸르게 일렁입니다. 한해살이 풀꽃도 여러해살이 풀꽃도 해마다 해바람비를 새롭게 맞아들이면서 싱그럽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새롭게 책빛이며 골목빛이며 삶빛이며 사랑빛을 익힐 적에 비로소 사람빛을 펴리라 봅니다.


ㅅㄴㄹ


《文化 속의 數學》(김용운, 현암사, 1976.10.9.)

《獄中記·高原의 사랑》(루이제 린저/김문숙·홍경호 옮김, 범우사, 1975.9.25.첫/1982.8.10.3벌)

《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사, 1997.7.15.)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배상환, 나남, 1988.3.5.첫/1989.1.5.5벌)

《두고 온 시》(고은, 창작과비평사, 2002.1.15.)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E.콘즈/한형조 옮김, 세계사, 1990.3.20.첫/1990.6.30.3벌)

《까치가 감나무에게 들려 준 동화들》(이동렬 글·이영원 그림, 늘푸른, 1991.11.30.첫/1992.11.20.2벌)

《실록연작시 지리산》(이기형, 아침, 1988.12.15.)

《베트남戰爭》(리영희, 두레, 1985.5.5.)

《일송정 푸른솔은》(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엮음, 삼민사, 1988.8.15.)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3》(지두 크리슈나무르티/안정효 옮김, 청하, 1982.11.20.첫/1991.1.25.2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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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2023.7.21.)

― 인천 〈나비날다〉



  어릴 적에는 구월동에 사는 동무나 피붙이를 찾아가는 길에 걸었고, 집으로 돌아가며 걸었습니다. 신흥동하고 구월동은 먼 듯하면서도, 정작 걷고 보면 어느새 집에 닿는 길이었어요. 이웃마을을 느끼고, 옆마을을 새롭게 바라보는 걷기였습니다.


  구월동 한켠을 걸으면서 돌아봅니다. 1995년에 떠나서 2007년에 돌아온 인천에서 날마다 한나절 남짓 골목골목 걸었습니다. 1982∼1993년 사이에 걷던 골목을 다시 바라보았고, 이 골목마을을 엉터리로 찍어서 퀴퀴한 구닥다리처럼 보이도록 깎아내리는 찰칵쟁이(사진가)를 더는 보아줄 수 없어서, 인천내기로서 스스로 이 골목마을 온모습을 온빛으로 천천히 담자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빛꽃(사진)으로든 담으려면, 먼저 보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볼 틈이 없이 휙휙 달리거나 스치면 못 느끼고 안 받아들여요. 골목사람은 서두르지 않아요. 골목밭에 묻은 씨앗 한 톨이 나무 한 그루로 자라기까지 느긋이 기다립니다. 골목빛은 ‘바쁜 서울내기’한테는 하나도 안 보일밖에 없습니다.


  온나라 벼슬아치(대통령부터 9급 공무원까지)가 으레 안 걷습니다. 안 걸어다니면서 이웃을 보거나 느낄 수 있을까요? 안 걸으면서 쓰는 글은 우리 삶을 얼마나 담거나 보이거나 밝힐까요? 이곳에서 저곳 사이를 휙휙 가로지르는 이들이 벌이는 ‘문화·인문·예술’에는 아무런 삶도 사랑도 살림도 없게 마련입니다.


  어느덧 주안동 안쪽 깊이 걷습니다. 어느새 잿더미(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나옵니다. 잿더미 옆길을 뙤약볕을 쬐며 걷다가 멈춥니다. 잿더미 곁에서는 걷고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버스를 타고 배다리로 갑니다. 〈나비날다〉에 깃들어 숨을 돌립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곳, 우리가 사랑하는 님, 우리가 사랑하는 마을, 우리가 사랑하는 별, 우리가 사랑하는 글, 우리가 사랑하는 꽃이랑 숲이랑 나무랑 풀이랑 너랑 나는 무엇인가요?


  ‘사랑받다’라는 말이 있되, ‘사랑주다(사랑을 주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사랑짓다’하고 ‘사랑하다’뿐이거든요. ‘사랑짓다’라 할 적에는, 스스로 모든 눈길과 마음길과 삶길과 하루길과 손길과 발길(발걸음)을 사랑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일으킨다는 뜻이고, ‘사랑하다’라 할 적에는 스스로 둘레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한테나 사랑으로 마주한다는 뜻이에요. “사랑을 주다” 같은 말은, 곰곰이 보면 말이 안 되어요. 사랑은 줄 수 없고 ‘짓고’ ‘할’ 뿐이니까요. 사랑을 짓기에 ‘나눌’ 수는 있고, 스스로 길어올리며 지은 사랑이기에 둘레에서는 이 사랑빛을 문득 ‘나누어 받을(사랑받을)’ 수 있어요.


ㅅㄴㄹ


《후와후와 씨와 뜨개 모자》(히카쓰 도모미/고향옥 옮김, 길벗스쿨, 2018.10.31.)

《식물기》(호시노 도모유키/김석희 옮김, 그물코, 2023.5.30.)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이설야와 일곱 사람, 다인아트, 2023.5.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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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2022.9.29.)

― 서울 〈테레사 그림책방〉



  엊저녁부터 의정부 한켠에서 보냈습니다. 아침에 서울 수유나루로 건너왔고, 햇볕을 쬐며 걷습니다. 첫가을 해바라기를 하며 다니는 사람은 드물고, 그늘로 오가거나 입가리개를 합니다.


  봉우리나 고개는, 헐떡이면서 넘는 맛으로 천천히 다가서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해를 듬뿍 머금고, 겨울에는 포근히 감싸는 해를 한아름 품습니다. 봄에는 푸르게 돋는 해를 춤추며 맞이하고, 가을에는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해를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어느새 〈테레사 그림책방〉 앞에 섭니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서 오기는 했으나, 책집지기님은 오늘 바깥일을 보시는 듯합니다. 스무 해쯤 앞서 서울 수유에는 책집이 꽤 있었습니다. 지난날에는 골목마을 한켠이나 어린배움터 곁에 으레 책집이 여럿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지면서 새로 작은 마을책집으로 태어납니다.


  책집 앞으로 볕이 들지는 않으나 등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쓰다가 만 노래꽃 ‘풀벌레’를 매듭짓습니다. 그림판에 옮겨적습니다. 책집 손잡이에 슬쩍 걸칩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아이들 주전부리를 장만할까?


  등짐을 짊어집니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버스길에 글을 쓸 생각입니다. 버스나루에 일찍 가서 눈을 살짝 붙이려고 합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느긋이 쉬면, 무엇이든 즐겁게 이룬다고 느껴요. 부릉부릉 매캐한 서울이어도 골목 귀퉁이에서 돋는 풀꽃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풀벌레가 사르륵사르륵 나즈막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쫑긋합니다. 문득 파다닥 날갯짓하는 새를 말끄러미 봅니다.


  곰곰이 보면 긴 나날도 짧은 나날도 아닙니다. 모든 하루는 새롭게 반짝이며 즐거운 걸음걸이입니다. 포근히 쉬면 바람을 쐬고, 느긋이 가면 해를 머금습니다.


  요즈막(2022년) 서울 곳곳 골목길 바닥에 ‘여성안심귀갓길’ 같은 글씨가 큼직하게 있더군요. “안심할 사람”은 순이뿐 아니라 돌이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또 시골사람도 매한가지인데,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기에 ‘여성안심귀갓길’ 같은 글씨를 큼직하게 새긴다고 느껴요. 이렇게 갈라놓으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어른으로 자랄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안심귀갓길’이면 넉넉할 텐데요.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새롭게 담아낸 만화영화 〈My Father’s Dragon〉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하고 함께 보면서 수다꽃을 피우려 합니다. 오랜만에(?) 돌이가 만화영화 꽃님(주인공)으로 나왔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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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한다면 (2022.9.28.)

― 서울 〈숨어있는 책〉



  사랑을 보려고 하면 언제나 사랑을 보고, 사랑을 들으려고 하면 늘 사랑을 듣고, 사랑을 말하려고 하면 노상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한결같이 사랑을 이야기하는구나 싶어요.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을 못 보고 못 듣고 못 말하고 못 이야기할 테고요. 스스로 사랑이라면 스스럼없이 알아보면서 나누기에 사랑이로구나 싶어요.


  나무를 동무로 여긴다면, 나무줄기나 나뭇가지에는 아무것도 안 걸거나 안 매답니다. 사람들이 나무한테 거는 끈은 거의 다 비닐끈(화학약품 끈)인데, 커다란 걸개천을 나무줄기에 묶어 놓으면 나무줄기는 끈 탓에 ‘끈에 묶인 자리가 움푹 패이고 숨이 막힙’니다. 둘레길을 알리는 댕기 탓에 나뭇가지가 말라죽어요.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씨앗입니다. 아무 말이나 한다면, 아무렇게나 씨앗을 뿌린다는 뜻입니다. 차근차근 고르고 가려서 말을 한다면, 차근차근 씨앗을 심으면서 마음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책을 사랑한다면, 아무 책이나 읽지 않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고, 스스로 눈을 밝히고, 스스로 생각을 틔워서, 언제나 눈부시게 사랑스러울 책 한 자락을 손에 쥘 노릇이에요.


  어떡하면 아름책을 알아볼까요? 스스로 사랑을 보려고 할 적에 사랑을 볼 수 있듯, “난 아름책을 찾을래.” 하고 마음에 말씨앗을 심는 날부터 ‘아무 책’이 아닌 ‘마음에 둘 책’을 헤아립니다. 아름책도 ‘아무 책’도 누가 알려줄 수 있지 않아요. 스스로 눈빛을 틔울 적에 알아봅니다.


  〈숨어있는 책〉으로 찾아와서 여러 책을 돌아봅니다. 책집지기는 온갖 책을 매만지면서 ‘오늘도 새롭게 마주하는 재미나고 놀랍고 대단한 책’을 차곡차곡 건사합니다. ‘오늘도 새삼스레 다시 만나는 반갑고 유난하고 즐거운 책’을 찬찬히 손질합니다. 책손은 책집지기가 어루만진 손길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집지기는 다 다른 책손이 다 다르게 고르는 매무새를 느끼면서 ‘새로 들일 책’을 추스릅니다.


  골마루를 거닐면서 눈으로 살핍니다. 문득 멈춰서 한 자락을 집습니다. 첫 쪽을 펼치기 앞서 지긋이 눈을 감습니다. 속에 흐르는 기운을 손바닥으로도 느낀 다음에 천천히 눈을 뜨고서 한 쪽씩 넘깁니다. 땅에서 물길을 찾듯 책에서 숨길을 찾습니다. 하늘에서 바람길을 느끼듯 책에서 꿈길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둘러싼 모든 숨빛을 읽어요. 책을 사랑한다면, 책을 둘러싼 모든 삶빛을 읽어요. 책읽기란, 책으로 빚은 살림을 사랑으로 읽는 길입니다.


ㅅㄴㄹ


《호수 속의 오두막집》(이원수, 세종문화사, 1975.10.2.)

《濟州方言硏究 (資料篇)》(박용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12.20.)

《혈(血)의 루(淚)》(이인직, 서림문화사, 1981.10.30.)

《正音文庫 23 世界民話選》(이일철 옮김, 정음사, 1974.7.30.)

《獨立運動史硏究》(박성수, 창작과비평사, 1980.3.11.)

《韓國의 歷史認識 上》(이우성·강만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76.11.10.)

《新華辭典》(편집부, 商務印刷館, 1980.)

《中國語音史》(薰同和, 中華文化出版事業委員會, 1954.2.첫/1958.3벌)

《꼬마마녀》(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백경학 옮김·이오덕 글손질, 길벗어린이, 1996.7.5.)

《增補版 韓國現代詩解說》(김현승, 관동출판사, 1972.4.1.첫/1980.1.5.고침4벌)

《世界戰後文學全集 2 美國 戰後 問題作品集》(양병탁 외 여섯 사람 옮김, 신구문화사, 1963.12.5.)

《어문각 신한국 문학문고 15 삼대 1》(염상섭, 어문각, 1984.11.15.)

《어문각 신한국 문학문고 16 삼대 2, 표본실의 청개구리·두 파산》(염상섭, 어문각, 1984.11.15.)

《韓國硏究叢書 22 서울 住宅地域의 硏究》(노창섭, 한국연구원, 1964.9.20.)

《韓國硏究叢書 26 李朝前期 對日 貿易 硏究》(김병하, 한국연구원, 1969.12.30.)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第二十四號 關西地方巫歌》(임석재·장수근, 문화재관리국, 1966.12.)

《숲이 우거진 그늘 밑에서》(七田和三郞/임유정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66.10.5.)

《音樂通論》(Hans Mersmann/長廣敏雄 옮김, 第一書房, 1939.5.25.첫/1942.9.20.3벌)

《新丘文庫 56 나의 信條》(버트란드 러셀 외/양병탁 옮김, 신구문화사, 1975.3.15.)

《다다愛書 7 學位論文作成法》(이종린, 언어문화사, 1976.10.25.)

《改正版 和聲學》(나운영, 민중서관, 1956.9.1.첫/1965.10.20.고침)

《新式 實用算術敎科書》(林鶴一, 東京開成館, 1913.1.21.첫/1938.11.8.고침11벌)

《The Daily Coyote》(Shreve Stockton, Simon & Schuster, 2008.)

《Beardsley》(Stanley Weintraub/高儀進 옮김, 美術出版社, 1969.6.1.)

《東亞 마스타 國語辭典》(편집국, 동아출판사, 1979.11.15.첫/1988.1.10.10벌)

《世界陶磁全集 18 高麗》(相賀徹夫·崔淳雨·長谷部樂爾, 小學館, 1978.7.25.첫/1987.8.1.5벌)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유하·하재봉·함민복·함성호·김정란, 세계사, 1992.1.1.첫/1992.1.30.2벌)

《월간 시인동네 86호》(고봉준 엮음, 문학의전당, 2020.6.5.)

《비정규노동 144호》(강인수·문종찬 엮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20.9.1.)

《예술로서의 사진》(카나마루 시게루/한정식 옮김, 해뜸, 1988.6.20.첫/1995.1.1.4벌)

《대한민국 독서대전 운영 매뉴얼》(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

《世界音樂家全集 리스트》(편찬위원회·김주석 엮음, 태림출판사, 1978.2.10.)

《民族의 審判, 事件實話 要人暗殺指令》(최철상 엮음, ?, 1975.3.)

《변방의 사색》(이계삼, 꾸리에, 2011.8.20.첫/2012.4.16.2벌)

《소설 대동여지도 下》(강학태, 한마당, 1991.2.10.첫/1992.6.1.4벌)

《그리스 로마 신화》(유영일 엮음·김석원 그림, 예림당, 1987.11.10.첫/1992.4.20.6벌)

《DOLLS DOLLS DOLLS》(Shirley Glubok 글·Alfred Tamarin 사진, Follett Pub, 1975.)

《日本留學人士名簿 1945∼1992 1992年度》(주대한민국 일본국대사관 광보문화원, 1993.3.)

《African Animals through African Eyes》(Janet & Alex D'Amato, Julian Messner, 1971.)

《China a Visual Adventure》(Carl Mydans·Michael Demarest, Simon & Schuster, 197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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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쓰려고 달리면 (2022.10.12.)

― 진주 〈동훈서점〉



  전북 정읍 마을책집에 들르려고 광주로 건너갔고, 다시 광주로 와서 경남 진주로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숲노래 씨는 길에서 노래(시)를 씁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버스에서 내려 걷거나 다른 탈거리로 옮기는 길에, 으레 붓을 쥐고 슥슥 이야기를 여밉니다.


  더위가 가시면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찾아올 테지요. 겨울이 지나면 다시 움트고 싹트는 봄이 올 테고요. 철은 돌고돕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속빛을 틔울 줄 안다면, 언제나 새롭게 흐르는 철을 알아보면서 생각을 살찌우게 마련입니다.


  시외버스에서 드디어 다 내리고서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제 진주책집 〈동훈서점〉에 이릅니다. 저녁빛을 머금으면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책 한 자락을 사이에 놓은 사람들은 ‘읽는 끈’으로 만납니다. 얼굴을 마주볼 적에도 마음을 읽고, 글씨만 빼곡한 종이꾸러미를 쥘 적에도 마음을 읽습니다.


  글이란, 삶을 옮기면 매우 쉽니다. 문학이건 과학이건 철학이건 어떤 이름을 붙이는 글이건 어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느낌글도 매한가지예요. 책이나 영화를 읽고서 쓰는 느낌글은, ‘몇 벌쯤 되읽고 나서 쓰느냐’에 따라서 깊이랑 너비가 다릅니다. 책느낌글을 쓸 적에 10벌쯤 되읽는가요? 영화느낌글을 쓸 적에 100벌쯤 되읽는지요?


  책 한 자락을 애벌로 읽고서 느낌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만히 누릅니다. 석벌쯤 되읽었어도 며칠이나 이레쯤 누릅니다. 어느 책은 좀 서둘러 느낌글을 써야 하기에 이럭저럭 익히고서 여민다면, 웬만한 책은 달포나 한두 해쯤 가볍게 삭이고서 여밉니다. 그래서 영화느낌글 하나를 써내기까지 100벌 남짓 되읽는 터라, “자, 이제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느낌글이 물처럼 줄줄줄 흘러요.


  집을 빨리 지으려고 서두르면 어찌 될까요? 서둘러 올린 집에서는 몇 해쯤 지낼 만할까요? 서둘러 쓴 책은 몇 벌쯤 되읽을 만할까요? 서둘러 쓴 글은 몇 벌쯤 되읽을 빛씨앗이 감돌까요?


  요즈막 적잖은 책은 ‘되읽기’ 너무 어렵습니다. 둘레에서는 날개 돋힌듯 팔린다고 여기는 책이라지만, 그저 잘난책(베스트셀러)은 알맹이가 없어요. 애써 두어 벌 되읽어도 빈수레만 시끄러운 민낯을 더 낱낱이 느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많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아이들하고 100벌이든 1000벌이든 다시 누릴 영화’를 찾아나설 적에, 우리 눈빛부터 바뀌고 이 나라가 통째로 바뀝니다. 더 많이 안 읽어도 됩니다. 아름책을 읽고, 숲책을 펴고, 사랑책을 쓰면 됩니다.


ㅅㄴㄹ


《한검바른길 첫거름》(정렬모 엮음, 대종교총본사, 1949.5.1.)

《수수께끼별곡》(서정범, 범조사, 1986.3.10.첫/1991.10.15.23벌)

《나나NANA 38∼66호》(전영호 엮음, 예원문화사, 1995∼199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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