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짊어지는 (2022.3.21.)

― 서울 〈하우스서울〉



  날마다 여러 낱말을 짓습니다. 하루라도 새말을 안 짓는 날이 없습니다. 말꽃지기(사전편찬자)가 새로 여미는 낱말이란 씨앗입니다. 말꽃지기부터 이 삶을 푸르게 돌보는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마음이요, 이웃이며 동무 누구나 스스로 생각날개를 펴면서 사랑으로 피어나기를 그리는 꿈입니다.


  한자말 ‘외국’을 거의 모든 곳에서 ‘이웃’으로 바꾸면 무척 어울립니다. 어느 날 문득 느꼈어요. ‘이웃말(외국어)’, ‘이웃마실(외국여행)’, ‘이웃·이웃사람(외국인), ‘이웃일꾼(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처럼 말예요.


  서울 송파에 있는 〈하우스서울〉을 찾아가면서 이름을 곱씹습니다. 지난날 글바치는 중국말로 이름을 지었고,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온 뒤로는 일본 한자말로 이름을 지었고, 사슬에서 풀려나고서는 영어로 이름을 짓는 물결입니다.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눈빛이나 손빛이 조금씩 씨앗을 뿌리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멉니다.


  우리는 왜 우리 넋을 우리 손길로 다스리면서 우리 말글로 여미는 살림하고 등질까요? 마음을 알고 읽어서 그린다면 생각이 자라나겠지요. 마음을 안 알고 안 읽으며 그릴 적에는 아무래도 생각이 안 자라게 마련입니다.


  모두 아름다이 빛나는 글꽃으로 깃들 적에 숨결도 살아나지 싶습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헤아리기에 어른스럽습니다. 시골하고 서울이 손을 맞잡는 길을 말씨앗으로 풀어낼 줄 알기에 어른답습니다.


  천천히 깊고 넓게 푸른빛을 이웃나라에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름다운 이웃나라 그림책은 하나같이 이웃나라 숲을 푸르게 담았다고 느껴요. 이제는 우리가 잊거나 잃기도 했으나 아직 고이 건사한 우리 들숲바다 이야기를 이웃나라한테 푸르게 들려줄 노릇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책도 마찬가지예요.


  어린이가 머리를 기르든 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 하고픈 대로 하면 됩니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묶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묶으라고 하면서 그저 지켜보면 됩니다. 이렇게 묶어 보고 저렇게 묶어 보다가 나중에 알아서 잘 묶어요. 둘레에서 아이 머리카락이 왜 저러느냐 하고 핀잔을 하든 뭐라 하든 말든, 늘 아이가 하고픈 대로 다른 소리를 물리치며 아이를 지키면 될 뿐이다. 아이 곁에 서는 어버이는 아이를 보면 됩니다. 다른 샛소리를 들을 까닭이 없어요.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를 담는 말이고, 마음소리인 말을 옮기는 글입니다. 굳이 손을 놀려 글을 적는 사이에 생각이 새록새록 자라서 꿈으로 뻗습니다. 말글 한 자락이란, 어제를 오늘로 이어 모레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예요.


ㅅㄴㄹ


《나는 왜 시골을 돌아다녔는가?》(김동영 글, 도시총각, 2020.10.28.)

《늘 봄일 순 없지만》(권냥이 글·그림, 권냥이, 2022.3.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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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잎샘 (2022.3.18.)

― 광주 〈유림서점〉



  봄볕하고 가을볕은 닮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거나 썰렁하되, 낮에는 따끈따끈한 봄가을입니다. 봄이 깊을수록 아침저녁이 길고, 가을이 깊을수록 아침저녁이 짧아요. 봄이 깊을수록 들숲이 푸릇푸릇 일어나고, 가을이 깊을수록 숲들은 누릇누릇 가라앉습니다.


  봄은 천천히 오기에 봄이지 싶어요. 가을은 천천히 가기에 가을이지 싶습니다. 봉긋봉긋 마치 말없이 돋아나는 듯한 봄입니다. 울긋불긋 온누리 빛깔마다 차분히 노래하는 듯한 가을입니다.


  살며시 광주에 들릅니다. 〈유림서점〉에 찾아가서 책빛을 헤아립니다. 손길을 많이 타는 책이 있고, 좀처럼 손길을 탈 새가 없는 책이 있습니다. 무척 팔리다가 잊히는 책이 있고, 거의 안 팔렸으나 반짝이는 책이 있습니다. 책물결을 바라보다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쓰고 왜 읽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물려주나요?


  전남 광주는 고을이름을 우리말로 풀어서 ‘빛고을’이라 일컫는데, 두 손에 책내음이 피어나지 않는 빛이란 없겠지요. 다만, 어느 책이건 마음으로 짓고 읽고 새기고 나누면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마음이 스미지 않거나 부풀리거나 꾸미거나 치레한다면 덧없습니다.


  잎샘바람이 붑니다. 계림동 책골목은 스산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오래도록 책골목일 수 있도록 작은 헌책집이 드문드문 자리를 잇습니다. 그저 이분들이 마지막 일손을 내려놓는다면 계림동도 광주도 빛을 잃으리라 느낍니다. 딱히 글을 쓰거나 책을 쓴 적이 없는 조그마한 헌책집지기는 늘 말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남기고 새겼어요. 책먼지를 닦고, 묵은책을 되살리면서 책씨앗을 심었습니다.


  비껴갈 수 없다면 느긋이 누릴 노릇이에요. 앙금도 멍에도 수렁도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면서 한 발짝 두 발짝 내딛습니다. 말끔히 털어낼 수 있어도 즐겁고, 어쩐지 안 털려도 즐겁습니다. 어떤 하루여도 활짝 웃음꽃으로 일어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다르게 빛이거든요.


  마음닦기(명상)란, 마음을 시원하게 틔우는 빛줄기를 품는 길일 테지요. 책읽기란, 눈빛을 환하게 틔우는 빛살을 펴는 길일 테고요. 살림짓기란, 우리 손발로 하루를 새롭게 틔우는 빛꽃으로 나아가는 길이리라 여겨요.


  온누리 아이들이 맞이할 열여섯 살이며 스무 살을 기다리면서 제 열여섯 살이며 스무 살을 떠올립니다. 이무렵은 가장 눈부신 나이는 아니되 새롭게 바라볼 나이라고 느낍니다. 서른 살도 쉰 살도 가장 눈부시지는 않더라도 참으로 반짝이는 때예요.


ㅅㄴㄹ


《車窓으로 본 유럽》(장한기, 우성문화사, 1980.10.5.)

《파브르의 작은 정원》(마거릿 J.앤더슨 글·마리 르 그라탱 키스 그림/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3.7.10.)

《사랑으로 가는 길》(홍명희, 혜화당, 1990.12.20.)

《뫼비우스의 띠와》(안희두, 온누리, 1988.5.20.)

《바다 언덕을 넘어서》(김한성, 호도애, 1992.7.20.)

《겨울에 내리는 비》(안태경, 글방, 1986.12.15.)

《가난한 행복》(조철규, 참깨, 1988.12.20.)

《성공과 좌절》(노무현, 학고재, 2009.9.25.)

《닥치고 정치》(김어준, 푸른숲, 2011.10.5.첫벌/2011.10.29.23벌)

《불교에서 본 마음과 최면 전생》(현오, 논장, 2001.6.10.)

《회보 319호》(편집부, 전라남도 교육위원회, 1985.11.25.)

《엄마하고 나하고》(박경종, 백록출판사, 1981.11.10.)

《한국곤충명집》(한국곤충학회·한국응용곤충학회 엮음,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4.5.28.)

《한국식물도감 화훼류 1》(리휘재, 문교부·삼화출판사, 1964.10.30.)

《한국동식물도감 7 동물편(포유류)》(원병휘, 문교부·삼화출판사, 1967.10.20.)

《세계의 명장 진창현》(진창현, 혜림커뮤니케이션, 2002.7.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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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2022.11.21.)

― 서울 〈서을책보고〉



  봄부터 서울 〈서을책보고〉에서 ‘우리나라 헌책집’을 다달이 두 곳씩 알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분 즈음 들려주는 이야기는 꼬박꼬박 그림(유튜브 영상)으로 올랐다는데, 저는 제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쓴 글도 거의 잊어버립니다. 글 한 자락을 마무리해서 셈틀에 건사하고 누리집에 올릴 때까지 웬만하면 스물∼서른 벌쯤 되읽고 손질을 합니다만, 때로는 쉰∼온 벌쯤 되읽고 손질하기까지도 합니다만, 정작 다 쓴 글을 누리집에 올리고 나서는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요.


  끝을 볼 때까지는 신나게 마음을 쏟되, 끝을 보았으면 ‘이제는 내 몫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품으며 돌볼 적에는 온마음을 담되, 끝을 냈으면 ‘누구나 누리며 즐기는 몫’이라고 여겨요. 날마다 새말을 여미거나 짓지만, 여태껏 어느 낱말을 얼마나 여미거나 지었는지 다 잊어버립니다. 스스로 여미거나 지은 낱말을 안 잊어버리면 새말을 못 여미고 못 지어요.


  다만 문득문득 느껴요. “어, 저 말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꽤 어울리는걸.” “여보셔요. 그대(숲노래)가 지은 말이잖아요.” “어라? 제가 지었던가요? 음, 그러고 보니 좀 낯익네. 제가 지은 말인가 보군요.”


  흙지기는 해마다 씨앗을 심되, 지난해 씨앗에 얽매여 올해 씨앗을 놓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뿐 아니라 지지난해나 열 해 앞서나 쉰 해 앞서 심은 씨앗을 가만히 되새길 수 있습니다. 나무도 풀꽃도 매한가지예요. 모든 숨붙이는 오늘을 바라보고 헤아립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랑을 펴고 짓고 나누는 길을 걸어가자면, 늘 오늘을 그리고 품으면서 보살필 일이라고 여겨요.


  나비를 생각해 봅니다. 애벌레를 벗은 나비로 거듭나고서야 짝찾기를 합니다. 애벌레일 적에는 바지런히 잎을 갉을 노릇이고, 스스로 꿈을 그린 뒤에는 조용히 잠들고서 옛몸을 모두 물로 녹여내어 새몸으로 깨어날 때까지 담금질할 일입니다. 이 길을 천천히 느긋이 아늑히 즐거이 거친다면, 누구나 나비로 피어나요. 스스로 사랑이어야 짝지도 스스로 사랑입니다.


  짝꿍을 찾아나서는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다만, 스스로 마음 가득 사랑하는 숨결로 피어나지 않은 채 허둥지둥 짝찾기에 나선다면 여기서 채이고 저기서 넘어지면서 아프겠지요. 짝을 찾자면, 짝한테 어울리는 나로 서는 길보다, 스스로 빛나는 홀가분한 눈망울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봅니다. ‘남 눈에 맞추는 나’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나’일 적에, 서로 다르면서 하나인 숨빛으로 매듭을 지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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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마음 (2023.6.17.)

― 서울 〈악어책방〉



  1995년 11월에 논산으로 가는 칙폭길에 오르면서 설마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싸울아비(군인)로 지낼 줄 몰랐습니다. 1996년 2월에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며 총을 쥐고 오들오들 떨 적에 옆에서 병장 씨가 “얌마, 저게 금강산 4대 봉우리다. 앞으로 실컷 봐라. 난 곧 사회로 돌아간다. 히히!” 하고 이기죽거릴 적에, 저도 삶터로 돌아갈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1997년 12월에 ‘각티슈’에 흰종이를 바르고 겉에 ‘투표함’이라 적고는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를 할 줄 몰랐습니다. 눈밭에 쌓인 도솔산을 드디어 떠나던 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그만둘 줄 몰랐습니다. 새뜸나름이를 그만두고서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힐 줄 몰랐고,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할 줄 몰랐고, 2003년 8월 25일에 쓴 글자락이 징검돌이 되어 ‘이오덕 어른 유고정리’를 맡을 줄 몰랐어요. 한 해 동안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서울로 이레마다 두바퀴(자전거)로 150킬로미터 길을 오갈 줄 모르기도 했고, 2007년 2월까지 읽고 건사한 책으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 줄 모르기도 했지만, 짝을 만나 아이를 둘 낳을 줄 모르기도 했고, 어머니 뱃속에서 먼저 떠난 핏덩이 둘을 나무 곁에 묻을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 서울 〈악어책방〉에서 서울 어린이랑 노래꽃수다(시창작교실)를 꾸릴 줄 까맣게 몰랐어요. 그러나 이 모든 발걸음은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였고, 새롭게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밑거름입니다. 이른바 ‘금강산 관광’은 엄두도 못 냈으나, 1996∼97년 이태에 걸쳐 날마다 금강산을 보았어요. 해병대 사람들이 ‘도솔산’을 그렇게 기리는지는, 나중에 서울 홍대 앞 〈온고당〉 책지기를 만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두 아이를 천기저귀로 똥오줌을 가리는 동안, 아기수레를 안 쓰고 안고 업으면서 돌보는 동안, 큰고장을 떠나 두멧시골 고흥에서 보금숲을 천천히 짓는 동안, ‘모든 말은 숲에서 비롯한’ 줄 느슨히 깨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숲사람이었고, 오늘도 숲빛을 머금은 숨결입니다. 비록 이제는 숲사람 아닌 서울사람(도시인·시민)이라 여기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만, 해바람비를 머금어야 목숨을 잇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에는 햇빛에 바람빛에 비빛이 서립니다. 숲빛으로 푸르게 일렁이는 말 한 마디가 생각씨앗 한 톨을 살찌우는 바탕입니다. 아무 말이나 하기에 ‘아무나’이지만, 마음을 고르고 생각을 가눌 적에는 ‘누구나’로 피어나요. 그리는 마음이 자라 ‘글’이 태어난걸요.


《소란이 새어들지 않는 곳》(고선영·김금주·박승보·배배·이상오·정세리·허현진, 글을낳는집, 2023.1.16.)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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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마을 (2023.9.15.)

― 인천 〈오월의 제이크〉



  예전에 인천 시외버스나루가 있던 곳은 여러 마을이 맞닿았습니다. 버스나루는 용현1동이라면, 바로 옆은 용현5동이고, 기찻길 옆 사이로 숭의1동에, 길 건너 노란집이 줄지은 데는 숭의2동에, 연탄공장하고 제일제당이 깃들고 제가 살던 집이 있던 데는 신흥동3가였어요. 여기에서 나루 쪽으로 조금 가면 연안동이고, 옥련동하고 학익1동은 걸어서 가깝고, 신광초등학교 앞으로는 선화동인데, 신흥초등학교 쪽으로 건너가면 신흥동2가요, 안쪽은 신흥동1가이고, 인천여상 쪽으로 뻗으면 신생동에 사동으로 잇고, 곧이어 답동과 답동성당이고, 율목동하고 신포동이 큰길로 만나고, 싸리재를 끼고서 유동하고 인현동1가에 인현동2가가 맞물리고, 신포시장 쪽은 내동입니다. 배다리는 경동하고 금곡동하고 창영동하고 송림1동하고 맞닿습니다. 박문여고 쪽으로 가면 송림2동에 송림3동으로 잇다가 송림4동과 송림6동에 도화2동이고, 야구장 쪽으로 금곡동에 창영동에 숭의1동에 송림3동에 도원동이 맞물리고, 이윽고 수봉산 쪽으로 도화2동이고, 이윽고 널따란 주안동으로 이어요.


  이제는 옛골목이 거의 송두리째 헐렸으나, 아직 숭의1동 오랜 동무네 감나무집은 고스란합니다. 이 곁에 마을책집 〈오월의 제이크〉가 깃들었어요. 우리나라 어느 고장이 왁자지껄 허물고 부수고 올려세우지 않았겠느냐만, 인천 중·동·남구가 맞물린 골목마을은 끝없이 물결치는 아픈 마을이에요.


  책집에 깃들어 《제이크 하늘을 날다》라는 그림책을 떠올립니다. 작은책집은 작게 둥지를 틀기에 작게 빛납니다. 큰책집은 크게 터를 잡으며 크게 반짝이겠지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게 책을 만나고 읽고 새기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천천히 즐겁게, 나무가 자라듯, 해마다 풀꽃이 돋아나듯 하루를 노래하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곳에 담벼락(카르텔)이 섭니다만, 어떤 담도 사랑을 가두지 못 해요. 사랑을 담는다면 담벼락이 아닌 보금자리일 테지요. 눈먼 담벼락을 스스럼없이 치울 줄 알면서, ‘담벼락 글밭(카르텔 문단)’을 살랑살랑 거스른다면, 아니, “하늘을 나는 제이크”처럼 홀가분히 바람을 마시고 들숲을 노래한다면, 온나라에 마을책집이 골목빛에 푸른빛으로 어우러지리라 생각합니다.


  다쳐서 아픈 데는 해바람비에 풀꽃나무를 품으면서 시나브로 낫습니다. 들을 밀고 숲을 밟고 바다를 등지니 온나라가 아파요. 이제는 잿집을 허물고 부릉길을 걷어내어, 누구나 맨발로 뛰놀고 쉴 숲마을을 열어야지 싶습니다. 푸른살림을 들려주는 책을 손에 쥐면서, 푸른말로 속삭이는 마음을 가꾸어야지 싶어요. 책꾸러미를 지고서, 어릴 적에 걷던 길을 따라 용현동부터 배다리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2023.3.3.첫/2023.5.25.3벌)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사울 레이터/조동섭 옮김, 윌북, 2018.5.30.첫/2022.4.30.고침)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19.1.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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