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오래집 (2023.4.25.)

― 인천 〈마쉬〉



  22일에 서울에서 일을 보고서 23일 낮에 고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틀밤을 쉬고서 25일에 인천으로 건너옵니다. 시외버스에서 살짝 눈을 붙이기는 하지만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이럴 적에는 한 손에 붓을 쥐고서 노래를 씁니다. 오늘 만날 이웃님을 그리면, 문득 낱말 하나가 떠오르고, 이 낱말을 징검돌 삼아 열여섯 줄로 이야기를 여밉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내리고서 전철을 갈아탑니다. 엉덩이를 쉬려고 내내 서서 인천으로 옵니다. 도원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언덕마을이 모래언덕으로 바뀌었지만 천천히 풀이 돋는군요. 밀려난 마을에 풀씨가 싹트면서 생채기를 달랩니다. 차라리 잿더미 아닌 ‘언덕쉼터’로 두면 이 고을이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배다리를 오가는 길에 들여다볼 적마다 으레 닫힌 〈마쉬〉인데, 오늘은 활짝 열렸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갑니다. 〈마쉬〉는 오랜 술빚집(양조장) 한켠에 깃들었어요. 2010년에 인천을 떠난 뒤로 술빚집 할머니를 못 뵈었는데 잘 계시려나 궁금합니다. 배다리 한복판에 있는 술빚집은 안쪽도 곱고, 기와지붕도, 나무닫이도 정갈합니다. 나무닫이 한쪽을 보면 ‘수도·정화조·전기’가 처음 들어오며 붙인 쇠딱지가 고스란합니다. 이 술빚집은 이대로 살림숲(박물관)입니다.


  오래집을 살리는 길은 여럿입니다. 그저 그대로 둘 수 있고, 마을책집이 들어와서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징검다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잎물을 머금는 가게가 부쩍 늘어나는데, 그냥 잎물집(카페)보다는 책집으로 펴는 한켠에서 잎물을 머금는 얼거리가 마을을 북돋우는 새길로 이바지하리라 봅니다.


  나무는 ‘사람이 가지치기를 했을 때’에만 줄기가 둘로 갈립니다. 나무는 ‘외줄기’로 곧게 오르면서 ‘옆으로 숱한 가지를 줄줄이 뻗’습니다. 풀도 같아요. 풀줄기도 ‘외줄기’가 바탕이고, 옆으로 줄줄이 뻗어요. ‘사람이 손댄 나무’가 아닌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는 어른은 오늘날 얼마나 될까요? ‘스스럼없이 하늘바라기로 자라는 숲나무’를 늘 마주하는 어른이는 이제 몇이나 있을까요?


  아이도 어른도 마을도 골목도 책집도 매한가지입니다. 태어나면서 품은 숨결을 고이 간직하는 길이 살림길이요 삶길이며 사랑길인 숲길입니다. 꾸미는 글은 덧없어요. 수수하게 삶을 드러내기에 살림글이면서 사랑글이고 숲글입니다.


  오래넋을 떠올려요. ‘기억·추억’이 아닌 ‘그림’을 담아요. 이러면서 ‘생각’을 하고, 되새기고, 곱새기고, 돌아보고, 둘러본다면, 바로 이곳이 푸릅니다.


ㅅㄴㄹ


《무지갯빛 세상》(토네 사토에/엄혜숙 옮김, 봄봄, 2022.7.1.)

《네드는 참 운이 좋아!》(레미 찰립/이덕남 옮김, 비비아이들, 2006.5.25.)

《그레이엄의 빵 심부름》(장 바티스트 드루오/이화연 옮김, 옐로스톤, 2021.2.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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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늦봄 바라봄 (2023.5.31.)

― 수원 〈책 먹는 돼지〉



  어제 인천 배다리에서 우리말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수봉산 기스락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아침에 보낼 글을 매듭짓고서 수원으로 전철을 타고 넘어갑니다. 여름을 앞둔 늦봄 끝자락은 뜨끈뜨끈합니다.


  어제 들려준 여러 낱말을 되새깁니다. ‘굴’을 캐는 바닷가 시골에서는 ‘굴’이라 말하지 않고, 으레 ‘꿀’이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보면, ‘굴’이란 스스로 멈추면 ‘구덩이’요, 스스로 흐르면 ‘구름’이요, 스스로 씨앗으로 삼아서 품으면 바다구슬(진주)을 낳는 ‘꿀’로 갈 테니, ‘굴’이란 ‘꿈’을 품은 바닷빛이지 싶어요. 바다라는 곳은 ‘바탕’을 이루는 ‘바닥’이기에, 모든 꿈도 바로 이곳 바다에서 태어나니, ‘굴’이란 스스로 밤빛(어둠)으로 잠들면서 포근히 쉬면서 새로 깨어날 첫길이라고도 여길 만할 테고요.


  이제 세류동 〈책 먹는 돼지〉에 닿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그림책 《응시》를 기리면서 김휘훈 님이 책수다를 폅니다. 좀 늦게 닿았기에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기다립니다. 그림책 《응시》는 ‘바라봄’을 말없이 들려줍니다. 바다에서 바닥을 바라보고, 새카만 바다밑에서 하늘빛으로 날아오르는 길을 바라봐요.


  우리는 여러 해 앞서, 우두머리 하나를 촛불너울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새로 우두머리에 선 분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나도 안 한 채 자리만 지키다가 떠났어요. 그분은 왜 그랬을까요? 이러면서 ‘전라남도 들숲바다’를 온통 ‘태양광패널더미’로 덮었어요. 그분이 몇 해 동안 나라지기로 있는 동안, 우리나라 햇볕판 43.8%를 전남에 때려박았어요. 그분은 참말 왜 이랬을까요? 전라남도에서는 ‘전기 쓸 일’이 아주 적은데, 또 어마어마하게 목돈을 들여 ‘서해 해저 전력고속도로’를 전남 바닷가부터 인천 앞바다를 거쳐 서울까지 때려짓는다더군요.


  마을책집 앞에서 서성이면서 슬픈 생각만 할 수 없습니다. 미움도 불길도 부아도 짜증도 아닌, 이제부터 새롭게 지을 살림길과 숲길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명박 4대강 삽질’보다 열 곱절을 훨씬 넘긴 돈을 쏟아붓는 ‘해상 태양광·풍력’은 참말로 푸른길일까요, 아니면 더 끔찍한 막삽질일까요?


  푸른두레(환경단체)는 이 일을 놓고서 몇 해째 벙긋조차 안 합니다. ‘해상 국립공원’ 바다에 햇볕판과 바람개비를 박아도 되나요? 또 바다밑으로 끔찍한 ‘특고압 송전선’을 서해에 길다랗게 깔아도 되나요? 왜 아무 말이 없을까요?


  즐거이 펼쳐서 신나게 놀고 노래하는 자리를 하루하루 이어가면 넉넉합니다. 아름답게 사랑하는 하루이기를, 참말로 푸른숲길이 깨어나기를 빕니다.


ㅅㄴㄹ


《응시》(김휘훈, 필무렵, 2023.4.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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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이미 벌써 아직 (2023.6.10.)

― 부산 〈학문서점〉



  이미 읽은 책을 되읽습니다. 예전에는 그무렵까지 살아온 나날을 바탕으로 읽었고, 오늘 읽는 책은 오늘까지 살아낸 숨결을 바탕으로 익히는 살림입니다. 열 살에 읽은 책을 스무 살에 되읽으면 남다르고, 서른이랑 마흔이랑 쉰에 되읽으면 새롭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떻게 느꼈는지 돌아보면서 되읽습니다. 지난날 무엇을 놓쳤는지 짚고, 어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바라보는 대목을 곱씹습니다.


  속깊은 책이라면 두고두고 되읽습니다. 얕은 책이라면 몇 쪽 넘기지 않아도 벌써 줄거리가 다 보이고 허전합니다. “나라면 이런 줄거리를 이처럼 안 쓸 텐데.” 하고도 생각하고, “나라면 이 줄거리를 어떻게 살릴 수 있나?” 하고 살핍니다. 굳이 모든 사람이 책을 쓸 까닭이 없지만, “내가 책을 쓴다면 글결을 어떻게 북돋울 만한가?” 하고 톺아보면서 더 깊고 넓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장만합니다. 앞서 읽은 책을 되사더라도 오늘 손에 쥐는 책은 ‘새책’입니다. 새책집에서도 새책을 장만하고, 헌책집에서도 새책을 사들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책은 새책이면서 헌책입니다. 이미 읽었어도 두벌째 읽거나 닷벌째 읽을 적마다 새책입니다. 갓 나온 책이어도 우리 손길이 닿으니 헌책입니다. ‘헌-’이 붙는 ‘헌책·헌옷·헌집’을 묵거나 낡거나 오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우리 손길이 허허들판이나 허허바다처럼 드넓게 닿는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부산 보수동 〈학문서점〉에서 ‘계몽사문고’를 한 꾸러미 품습니다. 이미 산 책도 있지만, 굳이 또 삽니다. 벌써 읽은 책이 있되, 애써 새로 집습니다. 아직 안 읽은 책도 있어요. 어릴 적에 동무네 집에서 슬쩍 구경한 책을 오늘 비로소 두 손으로 만지작거립니다.


  사람도 책도 나이를 먹을 수 있어요. 사람도 책도 언제까지나 빛날 수 있어요. 삶이라는 길에서 사랑으로 이룰 길 하나만 바라보면, 어느새 다른 모든 것은 눈녹듯이 사라집니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사랑으로 마주보면, 어느덧 우리 둘레를 봄꽃처럼 맑게 달래면서 환하게 일으킵니다.


  다릿심을 들여 걷는 사람이 마을을 읽습니다. 손품을 들여 찾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우리 다리는 이웃을 만나러 떠나는 이음목입니다. 우리 손은 동무랑 어깨를 겯는 길목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림(유튜브·영상·영화)’ 탓에 책을 덜 읽는다고 읊습니다만, 제가 보기로는 ‘쇳덩이(자가용)’를 끌어안느라 책을 안 읽지 싶습니다. 생각해 봐요. 손잡이를 쥔 손이란, 책을 쥘 틈이 없이 바쁘고 힘겹고 가난합니다.


ㅅㄴㄹ


《표준전과, 보수동책방골목 안내서》(편집부,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2015.12.30.)

《새들의 비밀》(서정화, 예림당, 2001.7.15.첫/2005.3.10.11벌)

《빛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엘케 크라스니 글, 쥐빌레 하인·모이디 크레치만 그림/정계화·박진희 올김, 웅진주니어, 2006.6.30.첫/2007.3.8.2벌)

《0심이》(배금택, 대흥, 1990.7.25.첫/1990.9.30.4벌)

- 구덕서림. (구)부산여고 앞. 257-5806

《日本語讀本 中級》(편집부, ESS외국어학원, ?)

《ベルサイユのばら 4》(池田理代子, フェアベル, 2004.11.18.)

《계몽사문고 42 다리 긴 아저씨》(웹스터/신지식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14.중판)

《계몽사문고 47 우주 항로》(한낙원, 계몽사, 1977.2.10.첫/1988.5.14.중판)

《계몽사문고 51 충성 이야기》(조풍연, 계몽사, 1977.2.10.첫/1988.5.14.중판)

《계몽사문고 52 효도의 길》(조풍연, 계몽사, 1977.2.10.첫/1988.5.14.중판)

《계몽사문고 75 긴 겨울》(와일더/오정환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76 먼 나라의 눈》(이희성,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90 난파선》(베르느/석용원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91 우리 말글 이야기》(정재도,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02 나는 둘》(최요안,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07 우주 전쟁》(웰즈/김재관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11 임진왜란》(유현종,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13 글짓기와 독서》(이병호·최현섭,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16 나의 소년 시절》(신일철 엮음,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18 조디와 아기사슴 1》(로울링즈/유경환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계몽사문고 119 조디와 아기사슴 2》(로울링즈/유경환 옮김, 계몽사, 1977.2.10.첫/1988.5.28.중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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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어떤 책이건 (2023.5.30.)

― 인천 〈아벨서점〉



  어떤 책이건 스스로 읽어내면 됩니다. 누가 옆에서 거들어도 안 나쁘되, 스스로 읽고 느끼고 알아서 풀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책을 손에 쥐더라도 속내나 줄거리를 모르거나 헤맵니다. ‘책읽기 = 스스로 배우기 + 알기 + 말하기’입니다.


  남이 어느 책을 어떻게 읽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 ‘똑같은 글씨’를 놓고도 다르게 풀어내게 마련입니다. 다만, 모든 말은 태어난 뿌리가 같아요. 모든 말은 마음을 담아요. 다르게 풀어내되 마음을 헤아리면 한뜻을 이루고 한사랑으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저녁나절에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우리 말밑 수다’를 펴기 앞서 책부터 둘러봅니다. 한나절(4시간)쯤 둘러보아야 책밭을 누릴 테지만, 토막틈을 내어 이 책 저 책 얼른 갈무리해서 주섬주섬 쌓습니다. 이야기꽃을 펴고서 잠자리에 깃들기 앞서, 또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갈 시외버스에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이고, 비이고, 구름이고, 바람이고, 무엇보다도 사랑입니다. 모든 말밑은 언제나 한 낱말로 닿습니다. 밑동을 캐고 파고 들추고 찾노라면, 으레 한 낱말에 이르니, ‘나’입니다. ‘나’ 다음에 ‘너’가 나왔고, 이다음으로 ‘가’가 나옵니다. 나는 너한테 가고, 너는 나한테 옵니다. 이러면서 온갖 말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영어로 치면 ‘I’부터 모든 말이 싹텄다고 여길 만합니다.


  지난 2010년에 인천을 떠나던 밤을 떠올립니다.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대구도 광주도 대전도, 무엇보다도 없는 하나는 ‘숲’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거나 달리다가 뒹굴거나 구를 만한 숲이 이 모든 고장에 없습니다. 왜 아기를 안 낳겠어요? 왜 어린이가 고달프겠어요? 어린이가 숨을 돌리며 쉴 곳이 없거든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버젓하거든요. 교육부·교육청을 없애고, 교장·교감 없이, 오롯이 길잡이로서 어린이를 마주해야 이 나라를 새롭게 일구리라 봅니다.


  늘 푸르게 일렁이는 풀과 나물과 나뭇잎처럼, 싱그러이 오늘을 노래로 지을 때에 비로소 책을 책으로 마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에 모를 수 있어요. ‘이미 아는 사람’은 알기에 말을 할 몫이 있어요. ‘이미 아는 사람’이 입을 닫고서 슬그머니 지나가면,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모르는 채 멍하니 휘둘리거나 휩쓸리기 좋습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둘레에서 쓴소리를 하든 말든 ‘아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나하나 풀어내어 ‘아직 모르는 사람’인 이웃한테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함께 알고서 새롭게 나아가는 길’로 첫발을 내딛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어떤 책이건 ‘읽어낼’ 눈을 틔울 일입니다.


ㅅㄴㄹ


《한국의 지명유래 1》(김기빈, 지식산업사, 1986.9.15.)

《피네간의 經夜》(제임스 조이스/김종건 옮김, 정음사, 1985.9.20.)

《황병기 17현 가야금 곡집 : 춘설春雪·달하 노피곰》(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5.15.)

《황병기 가야금 곡집 : 밤의 소리》(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0.8.5.)

《황병기 가야금 곡집 : 靈木》(황병기, 수문당, 1979.7.5.)

《새벽 들》(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89.9.15.첫/1004.5.10.3벌)

《우주배꼽》(고진하, 세계사, 1997.3.15.)

《누이》(유안진, 세계사, 1997.3.15.)

《신포동에 가면》(최진자, 시와표현, 2018.10.25.)

《슬램덩크 27》(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2.21.)

《드래곤볼 42》(토리야마 아키라/아이큐점프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5.8.23.)

《독어와 불어딕션》(Dr.Richard G.Cox/전성환 옮김, 수문당, 1985.3.20.)

- 동서음악사. 국내외 음악서적 전문점. 대구시 중구 공평동 21의 1, 중앙국민학교 입구. 46-2500

《濟州島神話》(현용준, 서문당, 1976.4.20.첫/1977.7.30.2벌)

《벼·짚·살림》(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2007.12.18.)

《이씨네 집 이야기 1》(황미나, 서울문화사, 1999.5.31.)

《이씨네 집 이야기 2》(황미나, 서울문화사, 1999.12.15.)

《이씨네 집 이야기 3》(황미나, 서울문화사, 2000.10.20.)

《이씨네 집 이야기 4》(황미나, 서울문화사, 2001.3.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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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2023.5.30.)

― 인천 〈시와 예술〉



  ‘변두리(邊-)’란 외마디 한자말을 쓰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변두리 작가” 같은 이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스스로 낮추는(겸손) 말씨라고 여겼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변두리 작가”라는 말씨를 가볍게 나무라면서 “‘변두리’라는 말이 나쁘지는 않으나, 지구 어디에도 변두리란 없기 때문에, 그런 말로 겸손한 뜻을 나타내려 하면 자기학대뿐 아니라 자기 고향을 깎아내리는 짓이 됩니다.” 하고 짚은 이웃어른이 있어요. 스무 해가 훨씬 지난 예전 일인데, 이 말씀을 한참 생각해 보니 부끄럽더군요. 우리는 스스로 낮출 까닭이 없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사랑하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즐거울’ 뿐입니다.


  낮춤(겸손·겸양)은 스스로 구석(변두리)이라 여기는 말씨에서 비롯하지 않아요. 낮춤이란, 조그마한 들꽃하고 눈을 맞출 줄 아는 몸짓에서 비롯합니다. 작은 말씨 하나로 여기며 지나치기 쉽지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려는 어른일 적에 스스로 빛나고 어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늘 작은 말씨 하나를 사랑으로 가다듬어서 펴는 길을 스스로 새롭게 열 수 있기를 바라요.


  꼭 어느 말을 써야 한다면 요사이는 ‘가장자리’나 ‘가생이’를 씁니다. 인천에서 태어났다가 전남 고흥에 뿌리를 내려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가장자리 글바치”나 “가생이 글잡이”로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가-’로 여는 우리말은 ‘가다’하고 맞물려요. ‘나아가’는 길이지요. ‘나 스스로 알아가는 길’이기에 ‘나아가다’입니다.


  그리고 ‘가장 + 자리’라서, ‘-자리’를 덜면 ‘가장’이요, ‘가운데’라는 낱말도 ‘가-’로 열어요. 둥그스름한 푸른별에는 딱히 귀퉁이나 구석이나 가장자리가 없이 모든 곳이 가운데입니다.


  인천역에서 내려 〈시와 예술〉까지 걷습니다. 마을은 마을대로 두고, 골목은 골목대로 놓으면 될 텐데, 인천시·돈바치는 이곳에 뭘 씌우거나 잿더미(아파트)를 쌓으려 합니다. 사람들이 왜 일본에 많이 놀러가고, 에스파냐·프랑스를 그처럼 좋아하는지 모르는 듯싶습니다. 한빛(K-·한류)은 거의 허울입니다. ‘우리 마을’하고 ‘우리 골목’하고 ‘우리 집’이 밑동이어야 한물결(한류)도 있습니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이 있어요. ‘씨나락’은 ‘씨 + 나락’입니다. “이듬해에 심을 씨로 삼는 나락”입니다. 겨울하고 봄에 굶더라도 씨나락은 안 건드리지요.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이듬해 볍씨를 까먹자는 터무니없는 소리”인데, 웃대가리를 차지한 이들뿐 아니라 여느 벼슬아치(공무원)도 우리도 똑같습니다.


ㅅㄴㄹ


《The Little Book of Joy》(Joanne Ruelos Diaz 글·Anneliesdraws 그림, Magic Cat Publishing, 2021.)

《주민등록》(하일, 민음사, 1985.4.15.)

《소리의 거처》(류인채, 황금알, 2014.10.31.)

《아라리》(박진성,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4.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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