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책집마실


창작과비평사 (2022.12.7.)

― 광주 〈유림서점〉


 

  지난날에는 누구나 하루에 한 발짝씩 스스로 나아가는 살림이었다면, ‘배움터(학교)를 오래 다니는 사람이 늘수’록 스스로 하루에 한 발짝씩 나아가려는 살림을 잊으면서 잃는 분이 부쩍 늘어나는구나 싶어요. 우리가 ‘하루 한 발짝 나아가는 살림빛’을 잊거나 잃었다면 ‘하루 한 뼘씩 나아가는 살림길’부터 천천히 새롭게 헤아리면 될 텐데 싶어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햇살은 한 뼘보다도 더디게 스며들면서 온누리를 고루 따뜻하게 덥혀 줍니다. 우리 스스로 햇살이요 별빛이며 빗물인 줄 느끼면 스스로 빛납니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햇살일까요? 우리는 해를 쬐거든요. 우리가 먹는 쌀밥이란, 해를 듬뿍 머금은 나락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별빛일까요? 모든 열매에 낟알은 밤새 별빛을 받습니다. 온누리를 별빛으로 잠들면서 새로 꿈꿉니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빗물일까요? 비오는 날 혀를 낼름하면서 바로 마시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 빗물은 흙으로 스미고 풀꽃나무가 마시고 모든 목숨붙이가 받아들입니다. 바닷물은 빗물이고, 빗물은 냇물이고, 냇물은 바닷물이에요.


  글을 쓰는 분이라면 스스로 쓰는 글을 맨 먼저 스스로 되읽고 자꾸 읽습니다. 스스로 쓰는 글에 맞추어 스스로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깨어납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글을 쓸 만합니다. 쓰는 이야기 그대로 ‘나’를 이뤄요. 그런데 아무 이야기나 쓴다든지, ‘사랑 없는 미움’을 이야기로 쓸 적에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멍들고 찌들고 시든 몸으로 구릅니다.


  책을 읽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랑을 짓는 이야기를 읽나요? 서울(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면서 다투고 싸우고 아프고 찌르고 밟고 울고 고단한 줄거리를 읽나요?


  광주에서 여러 책집을 돌고서 〈유림서점〉에 마지막으로 깃듭니다. 한 곳을 더 돌아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유림서점〉은 바로 옆에 쉼터가 나란히 있습니다. 책집지기 따님이 꾸리는 쉼터입니다. 다리를 쉬고 등허리를 펴면서 잎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책더미를 새로 묶습니다. 일찌감치 길손채에 가서 씻고 빨래하고 드러누워야겠습니다.


  오늘은 《創作과 批評》을 여럿 장만했습니다. 열여덟 살 무렵에 인천 배다리 헌책집을 다니면서 다 읽은 묵은책이지만, 서른 해 만에 되읽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일찌감치 빛난 넋을 밝힌 글어른이랑, 이때부터 썩은 글줄을 휘갈긴 꼰대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나저나 ‘창비’는 이제 ‘뭇빛(다양성)’을 잊고 잃었습니다.


ㅅㄴㄹ


《氷點 6 運命》(三浦綾子/맹사빈 옮김, 양우당, 1983.9.1.)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굴렁쇠, 2005.10.25.)

《나무의 일기》(김용석, 태양사, 1987.8.25.)

《創作과 批評 28, 1973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3.6.25.)

《創作과 批評 44, 1977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7.6.5.)

《創作과 批評 48, 1978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8.6.5.)

《創作과 批評 54, 1979 겨울》(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9.12.5.)

《創作과 批評 56, 1980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80.6.5.)

《金大中 演說總覽 1960∼1990 思想과 能辯》(김대중 말, 박석무 엮음, 제민각, 1990.12.30.)

《譯註·原文 三國遺事 修正版》(일연/이병도 옮김, 명문당, 1956.첫/1986.)

《完譯·原文 三國史記 改正版》(김부식/김종권 옮김, 명문당, 1960.9.30.첫/1986.)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1.20.)

《아르센 뤼팽 전집 3 기암성》(모리스 르블랑/성귀수 옮김, 까치, 2002.4.5.)

《저항과 명상》(윤공희 대주교 외, 5·18기념재단, 1989.5.18.첫/2017.12.29.)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1》(전유성, 가서원, 1997.4.15.첫/1997.5.25.10벌)

《中國古典選 11 老子 下》(福永光司, 朝日新聞社, 1978.10.20.)

《リ-ダ-ズダイジェスト 第38卷4號》(편집부, 日本リ-ダ-ズダイジェスト社, 1983.4.1.)

《ロ-バ-リング ッウ サクセス》(ベ-デン ペウエル/편집부 옮김, ボ-イスカウト日本連盟, 1967.8.1.첫/1978.5.1.5벌)

《綜合敎育技術 4月號 特別付錄 '90年度版 敎師の便利帳》(中野早苗 엮음, 小學館, 1990.4.1.)

《マレ-戰車隊》(島田豊作, 河出書房, 1967.11.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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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가을잎 (2022.12.7.)

― 광주 〈백화서점〉


 

  철눈(절기)으로 보면 큰눈(대설)이라는 12월 7일에 광주책집을 오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전남 장흥에 가서 그곳 푸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오래 쓴 등짐이 새삼스레 끈이 나달나달하기에 갈 수 있는지 묻기도 해야 합니다. 80들이(80리터) 등짐은 어깨끈을 갈기 힘들다고 합니다. 새로 샀습니다.


  달종이로 치면 겨울이되, 전라남도는 노랗게 물든 가을잎이 길바닥을 덮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한 길이 아닌 푸릇푸릇 애벌레가 기어다니는 흙바닥에 내려앉은 가을잎이라면 매우 그윽하리라 생각합니다. 잎 하나에도 온누리가 깃듭니다.


  계림동 〈백화서점〉 앞에 섭니다. 이 둘레를 걸어다니는 젊은이나 어르신은 드뭅니다. 옷집도 찻집도 술집도 밥집도 없는 곳이라 휑뎅그렁하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계림초등학교하고 광주고등학교 앞 큰길을 따라 헌책집 여럿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서 함께 자랄 이야기밭을 누릴 만한 데예요. 함께 생각하며 함께 크려는 아이어른이라면 가을잎이 드리운 이 길을 거닐다가 책 한 자락 품을 만합니다.


  우리는 손에 무엇을 쥐는 하루인가요? 우리는 발바닥에 어떤 땅바닥이 닿는 터전인가요? 우리는 눈에 어떤 모습을 담는 오늘인가요?


  골마루를 천천히 거니는데 책집으로 스미는 빛줄기가 남다릅니다. 책집지기님한테 여쭈어 찰칵찰칵 담습니다. “뭘 그렇게 찍으시우?” “책시렁으로 들어오는 볕살이 참으로 아름다워서요.”


  나무로 짠 시렁에, 나무한테서 얻은 숨결로 여민 책이 있고, 풀꽃나무를 살찌우는 볕살이 부드럽게 이 겨울을 밝히면서 작은책집으로 들어옵니다. 첫겨울 빛줄기는 책꽂이 나무빛을 환하게 보듬습니다. 찰칵 소리를 내면서 담고, 손으로 햇볕을 살살 쓰다듬다가 손바닥에 담습니다.


  등을 돌리거나 지면, 스스로 안 바라보는 마음이요 몸짓이니, 이때에는 참빛을 스스로 느낄 수 없어서, 어느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느라, 어느새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하는 하루를 살 테지요. 등돌리거나 등지면 그만 스스로 바보라는 굴레에 삶을 가두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해가 나기에 해바라기를 합니다. 큰고장 한복판에서도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풀바라기를 합니다.


  그리고 살짝 틈을 내어 책집마실을 합니다. 저녁에 길손채에 깃들어 읽을 책을 헤아립니다. 이미 읽은 책도, 새로 읽을 책도, 손수 쓸 책도, 오늘 이곳에서 보내는 발걸음을 북돋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럿을 가져갈 수 있다면 잔뜩 짊어질 테지만,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마음을 품고서 가려고 합니다.


ㅅㄴㄹ


《20 현금출납장》(기아자동차주식회사, ?)

《아주르와 아스마르》(미셸 오슬로/김주열 옮김, 웅진주니어, 2007.9.20.)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안철수, 비전, 1995.2.10.)

《고요한 바다》(예룬 판 헤얼러/이병진 옮김, 세용출판, 2007.12.31.첫/2009.3.25.2벌)

《모모》(미카엘 엔데/차경아 옮김, 청람, 1977.첫/1993.10.13.2판 9벌)

《TRUMP : The Art of the Deal》(Donald Trump, Random House, 1987.첫/Mass Market Edition 2005.1.첫)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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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갯길은 노랗게 (2022.12.7.)

― 광주 〈문학서점〉



  아름다운 책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오늘 하루를 아름살림으로 가꾸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예전에 지은 아름책부터 사라지고 우리 이웃이 새록새록 아름다이 짓는 책이 나란히 사라집니다.


  사라지고 난 아름다운 책을 뒤늦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이 아닌 내가 아름답지 않게 살아가느라 잊거나 잃은 아름책을 새롭게 보듬어서 여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책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자꾸자꾸 ‘얕은책’에 얽매일 수 있습니다. 둘레에서 많이 읽으니까 따라서 읽을 수 있고, 종이(졸업장·자격증)를 거머쥐려고 아름책 아닌 얕은책을 달달 외울 수 있어요.


  우리가 오늘 맞이하는 이 나라는 바로 우리가 스스로 일군 모습입니다. 남이 이렇게 일구지 않습니다. 우리가 손수 일군 모습이 나라요 마을이요 보금자리입니다. 우리가 온하루를 오롯이 사랑으로 지을 적에 사랑 아닌 티끌이나 먼지가 태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사랑을 등진 채 돈벌이·이름벌이·힘벌이에 마음을 쏟은 터라 온나라가 얄궂은 모습으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광주로 나온 길에 한참 걷다가 〈문학서점〉 앞을 스칩니다. 여기에도 책집이 있구나 하고 느끼며 지나치다가 돌아옵니다. 다른 책집을 들르려다가 만났으나, 이곳을 먼저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아름빛을 바라본다면 아름빛을 품을 길을 헤아립니다. 아름빛을 안 본다면 아름빛이 아닌 얕은길이나 허튼길에 휩쓸립니다. 사랑빛을 마주한다면 사랑빛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그려요. 사랑빛을 안 보기에 사랑빛이 아닌 굴레나 수렁에 스스로 잠기고 맙니다.


  숲을 사랑하면 ‘숲사랑’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열 만합니다. 또는 ‘숲을’이나 ‘숲으로’나 ‘숲에서’나 ‘숲은’이나 ‘숲이’나 ‘숲답게’나 ‘숲처럼’이나 ‘숲같이’처럼 말끝을 찬찬히 살리는 길을 펴도 어울려요. 숲을 보고, 숲을 담고, 숲을 펴는 하루를 열면서 마음을 보고 담고 펴는 삶을 누리는 첫길입니다.


  숲을 사랑한다면서 ‘숲’이나 ‘사랑’이란 낱말을 안 쓰면 허울이더군요. 눈속임이에요. 책읽기란, 글씨에 담을 마음씨를 새기면서 이 푸른별에 꽃씨를 심는 솜씨를 가꾸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아무 말이나 안 하고, 아무 글이나 안 읽는 몸짓이어야 책읽기입니다. 사랑할 말을 펴고, 사랑스레 글을 읽을 줄 아는 ‘나(참나)’로 살아가기에 비로소 아름길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오래오래 가면서 찬찬히 스미겠지요. 어떻게 쓰든 안 나쁩니다. 즐겁게 쓰면 될 일입니다.


ㅅㄴㄹ


《人間敎育の最重點 環境敎育論》(松永嘉一, 玉川學園出版部, 1931.5.3.)

《인문계 고등학교 표준 역사 부도》(김성근·손상렬, 교육출판사, 1967.10.첫/1977.1.10.재판)

《자연출산법》(甲田光雄/김기준 옮김, 홍익재, 1998.5.30.)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박근혜, 남송, 1993.10.30.첫/1994.8.6.7벌)

《동아 어린이 문고 100 전우치전》(장수철 엮음, 동아출판사, 1990.7.5.)

《충청남도 민담》(최운식 엮음, 집문당, 1980.10.30.)

《성악인을 위한 독일어 딕션》(조상현·조길자 엮음, 수문당, 1980.11.25.)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고종석, 개마고원, 2007.7.16.첫/2007.12.5.3벌)

《문자 이야기》(앤드류 로빈슨/박재욱 옮김, 사계절, 2003.10.29.)

《韓國 書誌學》(천혜봉, 민음사, 1991.9.14.첫/1995.11.10.)

《女苑 '79年 6月號 別冊附錄 2 全身 요가》(김재원 엮음, 전병희·장명희 모델, 고명진 사진, 여원문화사, 1979.6.1.)

《STAR TREK book one NEW FRONTIER》(Peter David, Poket Books, 1997.)

《오월길 컬러링북》(5·18기념재단, 2017.1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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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 (2021.12.20.)

― 순천 〈형설서점〉



  어떤 분은 “나방(나비)한테는 의지도 의도도 없다”고 말을 합니다. 오직 사람한테만 ‘뜻(의지·의도)’이 있다고 여기는 분이 뜻밖에 참 많습니다. 풀벌레나 모기한테 뜻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모든 숨결한테는 뜻이 있되, 오히려 사람이 스스로 자꾸 뜻을 잃고 길을 헤맵니다. 뜻이 있기에 허울에 속지 않고, 치레를 안 합니다. 뜻이 없기에 허울을 씌우고 치레를 하고 말아요.


  아직 철들지 않아 삶을 바라보는 눈이 없다면, ‘나비(나방)는 어떻게 스스로 뜻을 품으면서 깨어났는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비로소 철들어 삶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나비(나방)는 눈코귀 없이 잎갉이만 할 수 있는 토실토실한 애벌레 몸을 스스로 끝내기로 하면서, 제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틀어, 보름에 걸쳐 깊이 잠드는 꿈나라로 나아가고, 이동안 오롯이 꿈·뜻을 하나로 품고 짓고 그려서 바라보기에, 마침내 애벌레란 몸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녹여서, 이제부터 눈코귀 있고 더듬이에 날개까지 있는, 새길로 나아가는 새빛을 스스로 일군 삶뜻(의지·의도)이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쪽에 서건 저쪽에 서건 그쪽에 서건, ‘주의자(이즘·사상)’가 되면 ‘나만 옳고 맞으니, 너는 틀리고 나빠서, 넌 손가락질(욕설·비난)을 받아야 하고, 나한테는 손가락질을 하면 안 돼!’ 같은 마음에 사로잡힙니다. 오늘날 ‘뉴스’란 이름이 붙어서 나오는 모든 부스러기(정보)는 ‘새것(news)’이 아닌 ‘사람들을 낡은틀에 가두어 길들이는 허깨비’라고 느껴요. ‘뉴스를 보면 볼수록 속으로 불길(화)을 쌓도록 북돋아서, 사람들 스스로 삶을 생각하는 마음을 잊도록 넌지시 꾀어낸다’고 할까요? 우리는 ‘새것이 아니면서 새것인 척하는 뉴스’는 몽땅 걷어치우고서, 스스로 우리 삶을 사랑으로 짓는 길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그들이건 저들이건 ‘하는 짓만 다를 뿐’ 다 한통속이에요. 우리 뜻과 길을 봐야지요.


  순천 〈형설서점〉으로 찾아갑니다. 작은아이하고 책집마실을 합니다. 저는 골마루를 거닐며 책을 살피고, 작은아이는 너른터를 달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책이 끝없기에 어느 책집이건 책시렁을 찬찬히 다스리기란 만만찮습니다. 모든 책집은 쉬잖고 빛나고 물결치는 바다라 할 만합니다. 책손은 이따금 책바다에 마실을 하면서 가볍게 바람빛에 바다빛을 머금고서 숨을 돌려요.


  오늘 보는 책은 오늘 배우는 새길입니다. 오늘 만지는 책은 오늘부터 틈틈이 새삼스레 들추면서 삶을 되새기는 길동무입니다. 오늘 장만한 책은 오늘까지 걸어온 길을 살포시 내려놓고서 꿈으로 나아가려는 디딤돌입니다.


ㅅㄴㄹ


《周時經傳》(김세한, 정음사, 1974.9.30.)

《의문·해설 한글강좌》(정인승, 신구문화사, 1960.7.1.고침)

《우편번호부》(체성회 엮음, 체신부, 1971.3.1.)

《솔직히 말하자》(김남주, 풀빛, 1989.1.25.)

《마음의 양식 제1·2·3집》(전윤수 엮음, 국방부, 1983.7.)

《情熱의 詩人과 貴婦人》(빠이론/김소영 옮김, 성화문화사, 1958.12.20.)

《무릎 의자》(김동억 글·김천정 그림, 아침마중, 2017.7.1.)

《아 白頭山》(진태하, 교보문고, 1986.2.15.)

《고흥 주교 2호》(임영천 엮음, 개혁 고흥지방주일학교연합회, 1986.7.14.)

《고흥 주교 4호》(김봉배·박형래·임규상 엮음, 개혁 고흥지방주일학교연합회, 1990.7.7.)

《고흥 주교 5호》(김봉배·임규상·정종철 엮음, 개혁 고흥지방주일학교연합회, 1991.7.7.)

《고흥 주교 6호》(임규상·박형래 엮음, 개혁 고흥지방주일학교연합회, 1992.7.13.)

《기독교 교리 예화강해》(W.헛셀포드/박천일 옮김, 크리스찬비젼하우스, 1980.10.15.)

《교회일군 훈련특강》(W.헛셀포드/박천일 옮김, 크리스찬비젼하우스, 1980.10.15.)

《4月革命紀念詩全集》(신경림 엮음, 학민사, 1983.5.15.)

《글쓰기, 이 좋은 공부》(이오덕, 지식산업사, 1986./1990.5.25.3벌)

《강강술래》(최덕원, 전남매일출판국, 1978.5.25.)

《미니건강문고 134 충치예방과 불소》(최유진, 종근당, 1987.5.30.)

《미니건강문고 170 여드름의 예방과 치료》(김중환, 종근당, 1991.6.25.)

《국정 교과서를 따른 漢字한글 펜글씨 공부, 중Ⅲ학년》(김중각, 성문사, 1965.2.20.)

《한국의 하늘》(조지훈, 자유문학사, 1987.10.5.)

《어둠散考》(전재수, 신라출판사, 1976.3.20.)

《빠알간 피이터》(추송웅, 기린원, 1981.4.25.두벌)

《주일학교 교사의 벗 167호》(임승원 엮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0.5.1.)

《주일학교 교사의 벗 191호》(임승원 엮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2.7.1.)

《ヒルテイ叢書 第一篇 我ら何をなすべきか》(ヒルテイ/山田幸三郞 옮김, 向山堂書房, 1936.10.30.)

《빛깔있는 책들 16 전통 상례》(임재해 글, 김수남 사진, 대원사, 1990.8.30.)

《빛깔있는 책들 59 미륵불》(김삼룡 글, 송봉화 사진, 대원사, 1991.2.25.)

《빛깔있는 책들 136 만다라》(홍윤식 글, 홍윤식·윤열수 사진, 대원사, 1992.12.15.)

《빛깔있는 책들 136 석등》(정명호 글, 정명호·안장헌 사진, 대원사, 1992.12.15.)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숲노래 밑틀,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7.7.12.)

《인도의 옛이야기》(촤우다리 엮음/하숙희 옮김, 범우사,1988.9.20.)

《베트남 설날 장대 이야기》(쩐 꾸옥 글·응웬 빅 그림/이구용 옮김, 정인출판사,

《빌라도의 報告書》(도날드 N.리드만/구영재 옮김, 미래문화사, 1977.10.15.2벌)

《문법》(삐에르 기로/송정희·한장수 옮김, 탐구당, 1988.7.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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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누가 가난한가 (2023.4.23.)

― 서울 〈옛따책방〉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가멸찬 사람이 있습니다.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맞는 사람이 있어요. 높다란 자리가 있다면, 나즈막한 자리가 있지요.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나쁜 일자리가 있겠지요. 서울이 있으면 시골이 있을 텐데, ‘숲’이 있으면 곁에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새’가 있으면 둘레에 무엇이 있나요? ‘나비’가 있으면 가까이 무엇이 있는가요?


  저는 열아홉 살에 제금을 난 뒤부터 바람이(선풍기)가 없는 살림을 보냈습니다. 바람이는 없되 부채는 건사했고, 미닫이나 가로닫이를 열고서 햇빛·별빛을 머금은 바람을 쐬는 보금자리를 누렸습니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여름밤에 아이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으면 밤새 쉬잖고 가벼이 부채질을 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등짐을 짊어지고서 걸을 적에도 한 손에는 부채를 쥐고서 아이한테 부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골이건 서울이건 나무 곁을 걷거나, 나무 둘레에서 지낸다면, 부채가 없어도 시원해요. 나무랑 부채는 짙푸른 살림길입니다.


  찬바람이 서늘한 쇳더미(지하철)를 갈아타고서 〈옛따책방〉으로 갑니다. 우리는 왜 바람이(에어컨)를 써야 할까요? 부채를 쓰면 될 뿐 아니라, 들바람이며 숲바람을 맞아들이는 곳에서 일하거나 살아갈 노릇이지 않을까요?


  어떤 분은 “최종규 씨네가 가난하니까 에어컨을 안 쓰겠지. 왜 다른 사람들더러 에어컨을 쓰지 말라고 하시오?” 하고 따집니다. 빙그레 웃고서 “바람이를 쓰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왜 나무를 집과 마을에 그득 두르면서 숲바람을 쐬려는 마음을 쓰지 않느냐고 여쭐 뿐이에요.” 하고 대꾸합니다.


  부채를 쥐는 사람이 읽는 책은 다릅니다. 이 쇳덩이(지하철·버스)도 저 쇳더미(자가용)도 거느리지 않는 사람이 읽는 책은 다릅니다. 아기를 수레에 안 앉히고서 등에 업거나 가슴에 안고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이 읽는 책은 달라요. 나무 곁에 서는 사람이 읽는 책이 다르고, 멧새노래랑 밤별을 누리는 사람이 읽는 책도 언제나 다르게 마련입니다.


  작게 보면 더없이 작고, 크게 보면 언제나 큽니다. 사랑을 보면 늘 사랑을 심어서 일구고, 사랑을 안 보면 으레 ‘시늉’을 심거나 퍼뜨리더군요.


  언제 보아도 이슬방울 같은 빗방울을 마시면 온몸에 기운이 짜르르 오릅니다. 언제 보아도 눈물방울 같은 빗방울로 온몸을 씻으면 온마음에 새숨이 훅 올라요. 바다방울인 물방울입니다. 눈망울을 담은 꽃망울입니다. 주머니가 가벼워 가난한 사람도 있을 테고, 마음에 숲빛이 없어서 허둥대는 가난벗도 있습니다.


ㅅㄴㄹ


《체벌 거부 선언》(아수나로 엮음, 교육공동체벗, 2019.5.5.)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프란시스코 판 더르 호프 보에르스마/박형준 옮김, 마농지, 2020.4.30.첫/2020.7.15.2벌)

《나비》(띳싸니/소대여 옮김, 안녕, 2021.11.15.)

《19672003 구본주를 기억함》(구본주를나르는사람들, 안녕, 2022.11.1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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