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54. 아직, 그대로, 내내, 자꾸, 동동동



  우리가 그리지 못할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건사하고 쓰고 누리는 삶이자 살림이라면 모두 말로 담아낼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말로 깔끔하고 알맞고 사랑스럽게 이름을 붙이든, 우리말로 미처 못 붙이고서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영어 이름을 그냥 쓰든, 모든 삶과 살림을 ‘말’로 나타냅니다.


  일본말이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중국말이란, 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영어란, 영어를 쓰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우리말(한국말)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지은 이름이에요.


  경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기에 경상말이고,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서 전라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고장하고 고을하고 마을하고 집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기에 외워서 쓰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살림하고 사랑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에서 피어나 즐겁게 생각하면서 지은 말이거든요.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스스로 사랑으로 살림을 가꾸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살림을 ‘우리말(전라말이든 경상말이든 서울말이든 충청말이든 제주말이든)’로 짓기 마련입니다. 즐거움도 사랑도 잊거나 등돌린 채 스스로 살림을 가꾸거나 지으려는 생각을 안 한다면, 우리는 예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우리말을 스스로 짓는 눈빛하고 넋’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한자말 ‘계속(繼續)’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 → 지난 이야기와 잇닿는다

 계속 쏟아지는 폭우 → 쉬잖고 쏟아지는 비 / 줄기차게 퍼붓는 비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 → 열흘 동안 열렸다 / 열흘 내리 열렸다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 나날이 줄어든다 / 자꾸 준다


  여느 낱말책은 ‘계속(繼續)’을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3. 끊이지 않고 잇따라”로 풀이합니다. 이는 “끊이지 않고”나 ‘잇따라’로 고쳐서 쓰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밖에 어떻게 다루면 즐겁고 알맞을는지 차곡차곡 펼쳐 볼게요.


 꾸준하다·줄기차다·죽·쭉·줄곧·줄잇다·줄줄이

 자꾸·내리·내처·내내·내·내도록·그동안·동안


  어제도 오늘도 꾸준합니다. 안 지치는지 줄기찹니다. 죽 해왔고 쭉쭉 뻗습니다. 줄을 잇듯이, 줄줄이 흐르듯, 줄곧 했는걸요. 했는데 자꾸 합니다. 아침부터 내리 합니다. 저녁까지 내처 했어요. 오늘도 하루 내내 하는데, 냇물처럼 내 하는군요. 밤새도록 하듯 내도록 하고, 그동안 했어요.


 밤낮·밤낮없다·낮밤·낮밤으로

 꼬박꼬박·곰비임비·걸어가다·거침없이·막힘없이


  밤이며 낮이며 없이 합니다. 밤낮으로 또는 낮밤으로 하고, 밤낮없이 또는 낮밤없이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꼬박꼬박 할까요. 곰비임비 하더니 잘 걸어갑니다. 거침없는 너울 같고, 막힘없는 바람 같아요.


 그냥·그렇게·곧게·곧바로·고스란히

 늘·언제나·노상·언제까지나


  그냥, 그냥그냥 하는군요. 그렇게 하다 보니 곧게 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고스란히 합니다. 안 하는 때가 없으니 늘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언제나 합니다. 말려도 안 듣고 노상 하니, 멈출 때를 알 길이 없이 언제까지나 합니다.


 끊임없다·끈덕지다·끈질기다·끝없다·가없다

 질질·지며리·좔좔·꼬리를 물다·술술·철철


  끊이지 않네요. 끈덕지군요. 아니, 끈질길까요. 끊이지 않으니 끝이 없어요. 가없는 하늘마냥 하네요. 그러나 질질 끄는 듯하네요. 다시 가다듬어 지며리 하고, 물결처럼 좔좔 흐르듯 해요. 꼬리를 물듯 하고, 가루가 솨르르 쏟아지듯 술술 하고, 샘물이 솟듯 철철 터져나오듯이 합니다.


 퍼붓다·빗발치다·쏟아지다·넘치다

 그대로·이대로·있는 그대로·저대로


  함박비가 퍼붓듯 합니다. 빗발이 치는데 끊어질 틈이 없어요. 한꺼번에 쏟아지듯 하고, 찰랑찰랑 넘치는 하루입니다. 여태 했으니 그대로 갈까요. 이제껏 했으니 이대로 가지요. 있는 그대로 둡니다. 저대로 잘 가겠지요.


 사뭇·여태·이제껏·새록새록·아직·씩씩하다

 더·좀더·또·또다시·-다가·다시


  사뭇 새삼스럽게 하고, 여태 해요. 이제껏 두고두고 했으며, 오늘은 새록새록 떠올리며 합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아직 하네요.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씩씩하게 가네요. 더 해볼까요. 좀더 하면 어떤가요. 또 하고 또다시 한다면, 하다가 지치지 말고 다시 하면 새롭습니다.


 이어가다·잇다·잇달다·잇닿다·잇대다·잇따라

 쉬잖다·쉴새없다·숨돌릴틈없다·숨쉴틈없다


  이어가는 삶입니다. 잇는 끈입니다. 잇달아 노래하고, 잇닿는 마음이에요. 잇대는 손길이 반갑고, 잇따라 가는 동무가 즐겁습니다. 쉬어도 좋고, 쉬잖고 해도 좋습니다. 쉴새없이 가면 바쁠 테지만, 웃고 노래하면서 한다면 숨돌릴틈이 없어도 기뻐요.


 재잘거리다·조잘거리다·동동거리다·종종거리다·중얼중얼·지저귀다

 한결같다·한꽃같다


  참새마냥 끝없이 재잘재잘 조잘조잘입니다. 내내 동동거리고 내처 종종거리더니 지절지절 지저귀듯이 잇습니다. 그래요. 흩어진 여럿을 가만가만 모두는구나 싶은, 한결같은 마음씨입니다. 한결같이 눈부시니 한꽃같이 곱네요.


  이럭저럭 여러 낱말을 혀에 얹어 봅니다. 이 숱한 우리말은 참으로 오래도록 ‘계속’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두루 쓰던 살림입니다. 한자말이나 바깥말을 쓰기에 나쁠 까닭은 없되, 다 다른 자리에 다 다른 숨결하고 마음을 드러내던 말빛이 자꾸 사그라들어요. ‘사라지다·사그라들다·스러지다·수그러들다’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팽개치면서 서울말에 너무 쏠려 버렸지 싶습니다. 사투리란 삶말이요 살림말이자 사랑말입니다. 투박하면서 투실합니다. 다 다른 삶이란 다 다른 눈빛으로 투박하면서 투실한 오늘을 그리는 튼튼하고 든든한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꾸준히 흐르는 냇물다운 결을 담은 ‘내내·내도록’이란 수수한 말 한 마디야말로 두고두고 찬찬히 우리 넋을 살찌워 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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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3. 수수밥



  요즘에는 거의 들을 일이 없으나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씨 가운데 ‘기술입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좁고 밑감(자원)이 적지만 사람은 많으니 저마다 ‘솜씨·재주·힘’을 키워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면서, 어린배움터에서 뭇 길잡이가 ‘기술입국’을 참 자주 읊었는데, 2020년에 우리말로 나온 어느 일본 만화책에서 이 말씨를 새삼스레 보았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합니다만, 설마 싶은 웬만한 한자말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습니다. ‘기술입국’은 섬나라인 일본이 스스로 서려는 뜻으로 지은 말씨더군요.


  아홉열 살이든 열두어 살이든 아이들이 ‘기술입국’이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까요? 어른이라면 다 알아들을까요? 일본 말씨를 들여오더라도 ‘솜씨나라·재주나라’처럼 옮길 생각은 왜 안 했을까요?


사람들에겐 다양한 특징이 있고

→ 사람들은 다 다르고

→ 사람들은 모두 다른 빛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 사람들은 저마다 빛이 있고


  한자말 ‘특징’을 낱말책에서 뜻을 살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싶습니다만, 이러다 보니 이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특징 :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이고, ‘특별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을 가리킨다는데 ‘구별 : 차이가 남’이요, ‘차이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라지요. 간추리자면 ‘특빙·특별·구별·차이 = 다르다’입니다. 우리말 ‘다르다’를 제대로 가릴 줄 모르면서 애먼 한자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셈이니 “다양한 특징” 같은 겹말을 쓰고도 겹말인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수수하게 ‘다르다’라 하면 되고, ‘남다르다’나 ‘빛다르다’라 할 만하고, ‘도드라지다·두드러지다’나 ‘돋보이다·도두보이다’라 할 만해요. 꾸밈말을 붙여 “모두 다르다·저마다 다르다”나 “참 다르다·무척 다르다”라 해도 될 테지요.


  부치거나 튀길 적에 ‘기름’을 씁니다. 한자로는 ‘유(油)’라 하는데, 기름이 기름인 까닭을 생각하거나 가르치는 어른은 드물어요. ‘기르다’에서 온 ‘기름’인데 말이지요. ‘포도씨기름’이든 ‘콩기름’이든 ‘돌기름(석탄)’이든, 살점이 알뜰히 붙은 열매로 나아가기에 고맙게 얻습니다. 수수한 말씨 하나이지만 어느 말이 어떤 뿌리로 퍼지는가를 짚으면서 알맞게 가려서 쓰고 널리 살려서 쓰는 길을 밝힌다면 누구보다 아이들이 오늘 우리 삶을 슬기롭게 배우기 마련입니다.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소식이었다

→ 하루한끼만 조금 먹었다


  하루에 한끼를 먹는다면 ‘하루한끼’라 하면 됩니다. 이 말씨가 낱말책(국어사전)에 없으면 우리가 먼저 스스로 즐겁게 써서 퍼뜨리면 됩니다. 하루에 두끼를 누리면 ‘하루두끼’로, 하루에 세끼를 누리면 ‘하루세끼’처럼 새말을 알맞게 퍼뜨리면 되어요.


  이 땅에서 삶을 짓기에 이 땅에서 비롯한 말씨를 가만히 추슬러서 말을 짓습니다. 굳이 뛰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애써 훌륭하게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생각하면서 수수하게 말합니다. 투박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투박하게 사랑할 말씨를 가다듬습니다.


  조금 먹으니 “조금 먹는다”고 말해요. 구태여 ‘소식’이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많이 먹으니 “많이 먹는다”고 말합니다. 굳이 ‘대식’이란 한자말은 안 써도 됩니다. 밥을 많이 먹으니 ‘밥보·밥꾼·밥꾸러기’입니다. ‘밥돌이·밥순이’라 해도 어울려요. 때로는 ‘밥고래·밥깨비’처럼 재미나게 쓸 만합니다.


  그리고 여느 사람이 먹는 여느 밥자리란 ‘한식’도 ‘가정식’도 아닌 ‘수수밥’이나 ‘조촐밥’일 테지요. ‘단출밥’이나 ‘단촐밥’이라 해도 되어요. 한글로는 ‘소식’이라 적으나 한자가 다른 ‘소식(消息)’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이 한자말은 그냥 쓰는 길이 낫다고 하지만, ‘알리다·알려주다·알림’이나 ‘알림글’로 풀어낼 만합니다. ‘다른일·딴일·새일’이나 ‘목소리·말·말씀·얘기·이야기’로 풀어내어도 돼요. 자리를 살피고 때를 헤아리면 자리랑 때에 맞는 말씨가 하나둘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말이 없기에 “말이 없다”고 해요. ‘무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으니 ‘조용하다’고 하지요. 조용하니까 잘 지내나 보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닙니다. 말이 없기에 걱정이 없고, 조용하니까 잘 있습니다.


 귀신 같은 솜씨 → 빼어나다 . 솜씨있다


  언제부터인가 퍼진 “귀신 같은 솜씨”는 얼마나 알맞을까요. 왜 ‘귀신’ 같다고 할까요. 눈에 안 보일 만하도록 무엇을 한다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나 어느새 한다는, 이러한 결이라면 ‘감쪽같다’라 했습니다. “감쪽같이 해낸다”고 하지요. 감쪽같이 해내는데 보기에 좋다면 ‘빼어나다·훌륭하다’요 ‘솜씨있다·재주있다’입니다.


  여기에서도 생각해 봐요. ‘솜씨있다·재주있다’를 얼마든지 새말로 삼아서 쓸 만합니다. ‘멋있다·값있다·뜻있다’처럼 어떤 모습이나 몸짓이나 몸놀림이 남다르다고 여기면서 새말을 짓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꿈있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어른이라면 언제나 ‘사랑있는’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 한 마디를 살리는 길은 매우 쉽습니다. 스스로 살림길을 아름다이 다스리고 즐겁게 가꾸려는 마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새삼스레 말을 짓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이 즐겁지 않다면 옆사람 살림을 훔치거나 빼앗으려 들어요. 또는 남을 쳐다보면서 흉내를 내거나 따라합니다. 일본사람이 쓰던 ‘기술입국’ 같은 말씨를 고스란히 흉내낸 이 나라 어른이 바로 안 즐거운 마음을 낱낱이 드러낸 셈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홀로서기(독립)를 할 노릇입니다. 혼자서 서기에 홀로서기라면, 즐겁게 사랑으로 살림을 세운다면 ‘사랑서기’입니다. 누구한테 기대지 않으려고 애쓴다면 ‘스스로서기’일 텐데, 서울바라기를 하지 않으려는 눈빛이라면 ‘마을세우기’를 하겠지요. 마을세우기 곁에는 ‘마을짓기’가 있을 테고, 마을짓기 둘레에는 ‘마을가꾸기’에 ‘마을나눔’이 있기 마련입니다.


 수수살림 ← 미니멀라이프 . 간소한 생활


  수수하게 누리는 밥처럼 수수하게 짓는 살림입니다. 영어나 한자말이 아니어도 우리 살림을 너끈히 펼칠 만합니다. ‘수수살림’을 짓고, ‘작은살림’을 돌보고, ‘조촐살림’을 꾸립니다. ‘들꽃살림’을 품고, ‘푸른살림’을 펴며, ‘마을살림’을 일구지요.


  수수하게 쓰는 말이니 ‘수수말’입니다. ‘일상용어’나 ‘생활용어’가 아닌 ‘수수말’이요 ‘여느말’입니다. ‘들꽃말’이자 ‘삶말’이고요. 우리는 누구나 들꽃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피고 지는 들꽃 한 송이입니다. 똑같은 들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르익는 봄날에 나무 곁에 서 볼까요? 나무 한 그루에 돋는 나뭇잎 가운데 똑같은 무늬나 빛깔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핏 수수하게 보여도 다 다르면서 빛나는 들꽃이요 나뭇잎이듯, 우리가 늘 혀에 얹는 말 한 마디는 새록새록 수수하면서 빛나는 넋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골 할매가 말을 꾸밀 일이 없고, 시골 할배가 억지스레 말을 치레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시골말을 쓰는 곳에 아름드리숲이 무럭무럭 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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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숲에서 짓는 글살림

52. 도꼬마리



  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들다가 슬슬 잎샘바람이 부는 어느 날 ‘도꼬마리’가 불쑥 떠오릅니다. 아, 아, 도꼬마리. 요새는 이 들꽃을 아예 못 보다시피 합니다. 제가 어린 나날을 보내던 1980년대에는 큰고장 한켠에 빈터나 골목이 어김없이 있었어요. 배움터 꽃밭에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들꽃이 많았어요. 새마을바람이 한창이던 때에도 나라 곳곳 어디에나 빈터나 풀밭은 꼭 있었는데요, 씽씽이(자동차)가 부쩍 늘어난 1990년대를 지나니 바야흐로 빈터도 풀밭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러면서 그토록 흔하던 들풀이며 들꽃이 자취를 감추어요.


  아니, 쫓겨납니다. 아니, 짓밟힙니다. 아니, 잿빛덩이(시멘트)에 옴팡 파묻힙니다.


  2021년 새해에 열네 살이 된 큰아이 곁에서 ‘도꼬마리’가 그립다고 노래를 하니 “도꼬…… 뭐요? 그게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응? 그렇지? 넌 아직 도꼬마리를 못 봤구나. 우리 집에는 아주까리는 많아도 도꼬마리는 없어!” “도꼬마리? 도꼬마리도 풀이에요?” “그럼, 얼마나 멋지고 재미난 풀인데. 그냥 풀로 있을 적에는 잘 눈여겨보지 않지만,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그러니까 씨앗이 영글 적에는 동무들하고 도꼬마리씨를 찾으려고 뻔질나게 빈터랑 풀밭을 뒤졌어.” “왜? 그걸로 뭐하는데?” “응. 도꼬마리씨를 서로 몸에다 던지며 놀았거든. 도꼬마리씨는 갈퀴가 안으로 굽어서 말야, 털옷이나 솜옷에 척 붙어서 안 떨어지거든.”


도꼬마리 ← 창이(蒼耳)

도꼬마리씨·도꼬마리 열매 ← 창이자(蒼耳子)


  큰아이 곁에서 작은아이도 도꼬마리가 궁금합니다. 새해에는 도꼬마리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도꼬마리씨를 몇 톨 얻어서 우리 집 뒤꼍이며 책숲에 살살 뿌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들 곁에서 어버이로 살지만, 저 스스로 이 아이들마냥 어린이로 지내던 지난날, 들꽃으로 어떻게 놀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들꽃놀이를 하면서 들꽃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도꼬마리는 도꼬마리일 뿐 ‘창이’가 아니거든요. 도꼬마리씨도 도꼬마리씨일 뿐 ‘창이자’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삽질바람에 같이 휘말리면서 빈터하고 풀밭을 씽씽이랑 찻길이랑 가게한테 모조리 내주면서 우리 들꽃이며 들풀뿐 아니라, 들꽃말하고 들풀말까지 잊거나 잃는구나 싶습니다. 들꽃하고 들풀을 잊거나 잃기 때문에 수수하면서 쉽고 상그레한 말을 어느새 잊거나 잃지 싶어요.


  싱그러운 들꽃을 보면서 싱글싱글 웃지요. 상그러운 들풀을 쓰다듬으면서 상글상글 노래합니다.


원추리 ← 황화채(黃花菜), 훤초(萱草), 망우초(忘憂草)


  원추리를 아무렇지 않게 훑어서 나물로 삼던 사람은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아저씨나 아줌마라는 이름인 분들이라면 원추리 나물쯤 가뜬히 누리고 나눈 살림이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원추리꽃빛’을 맑게 떠올릴 만하겠지요.


  꽃다지꽃빛하고 개나리꽃빛하고 원추리꽃빛이 다릅니다. 진달래꽃빛하고 모과꽃빛하고 배롱꽃빛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꽃빛은 서로 얽히고 어울려요. 우리는 먼먼 옛날부터 꽃을 바라보면서 빛깔을 익혔고, 꽃노래를 부르면서 말빛을 가락으로 영글어서 즐겼습니다.


  생각해 봐요. 원추리는 원추리일 뿐, ‘황화채’도 ‘황초’도 ‘망우초’도 아닙니다.


봉긋꽃 ← 튤립


  이 땅에 없던 꽃이 꽤 많이 들어왔고, 새로 들어오며, 앞으로도 들어오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 없던 꽃이니까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이나 여러 바깥말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만, 이 땅에서 아끼고 싶은 꽃마음을 담아서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즐겁습니다.


  이웃님이 문득 건네준 ‘튤립’ 여러 송이를 받고서 한참 생각에 잠겼어요. 이윽고 말꼬가 터졌습니다. “이 봉긋봉긋 꽃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가!” 가녀리다 싶은 꽃대(줄기)에 꽃송이가 소담스럽지요. 그래요, 그 어느 꽃보다 봉긋봉긋 올라오는 꽃송이가 아름차니, ‘봉긋꽃’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사랑바람꽃·사랑물결꽃·사랑해꽃 ← 카네이션


  사랑해 마지 않는 마음을 새빨간, 아주 빨갛디빨간 꽃으로 나타낸다고 해요.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거리마다 이 붉은꽃으로 물결칩니다. 흔히 ‘카네이션’이라 합니다만, 이 꽃송이를 가슴에 달면서, 또 이 꽃송이를 건네면서, 서로서로 “사랑해!” 하고 노래합니다.


  그래요. 사랑한다고 노래하면서 주고받는 꽃,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가슴에 다는 꽃, 사랑하는 사이를 더욱 짙게 물들이는 꽃, 오월 한 달을 온통 붉게 물들여 서로서로 사랑으로 물결치는 꽃, 사랑이라는 바람을 훅 끼치면서 포근히 어루만지는 꽃, 이 꽃한테는 ‘사랑바람꽃’이나 ‘사랑해꽃’처럼 고스란하게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해바라기 ← 규곽(葵藿), 향일화(向日花)


  튤립이며 카네이션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느 이웃님이 시큰둥히 한소리를 합니다. “자네는 식물학자도 꽃 전문가도 아닐 텐데, 꽃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붙여서야 되나?” 시큰둥꾸러기 이웃님을 바라보면서 봉긋웃음을 짓습니다. “‘찔레’를 전라말로 ‘찔구’라 하는 줄 아시지요?” “그걸 모르면 전라사람인감?” “‘찔구’란 이름은 누가 함부로 지었나요?” “아니, 함부로 짓다니, 구수한 사투리 아녀?” “네, 구수한 사투리는 누가 짓나요? 식물학자나 꽃 전문가가 짓나요?” “아, 아니, 그렇지만서도, 이름을 새로 짓는데, 전문가 생각을 들어야 하지 않것나?” “사투리는 여느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어요. 그리고 어린이가 지어요. 사투리란, 그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이 언제나 즐거이 노래하면서 지어요. ‘해바라기’가 이 나라에서 안 자라던 꽃인 줄 아시나요? 그런데 누가 ‘해바라기’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무도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들이 이 꽃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마음에서 샘솟은 이름이거든요. 우리가 곁에 두고 사랑하고 돌보려는 꽃이라면, 우리가 즐겁게 노래하면서 이름을 지으면 돼요. 구태여 학술이름에 안 매여도 되잖아요? 우리가 사랑할 이름을 붙여서 나누면 넉넉하지요.”


들풀·들꽃·풀·풀꽃 ← 무명초(無名草), 무명화(無名花), 잡꽃, 잡종, 잡초, 잡화(雜花), 방초(芳草), 야생초, 허브, 약초, 약풀, 초본(草本)


  ‘이름없는 풀꽃(무명초·무명화)’이란 없습니다. 이름을 지으려는 사랑을 마음에 일으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름모를 풀꽃’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되는데, 식물학자나 전문가라는 손길을 기다리니, 우리는 스스로 생각날개를 잊고 말빛을 잃습니다.


  들꽃이요 풀꽃입니다. 들사람이며 들넋입니다. 들길이고 들살림이에요.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투리를 오늘도 새롭게 지으면 좋겠습니다. 머나먼 옛날 옛적에 쓰던 말에만 기대지 말고,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짓는 말을 마주하고 품으면 좋겠습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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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51. 참



  요새는 듣기가 쉽지 않으나 1990년 무렵까지 둘레 어른은 곧잘 “참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어진 사람”이란 말도 으레 들었습니다. 요새는 ‘참하다’보다는 한자말로 ‘신사적·정숙·품위·품격·인품·신실·성인군자·지성·모범·귀감·온화·정직·성실·예의·예절·양반·민주·평화’를 쓰는구나 싶어요. 여러 가지 한자말을 들었습니다만, 우리말 ‘참하다’는 이런 여러 결을 아우르는 깊고 너른 말씨입니다.


  예전 어른이 흔히 읊던 ‘어질다’를 놓고는 요사이에 ‘지혜·인성·지성·현명·자애·명철·명석·도덕적·덕·총명·이지·선견지명’ 같은 한자말을 쓰는구나 싶어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말 ‘어질다’는 이런 숱한 결을 품는 깊숙하면서 넉넉한 낱말이에요.


  때랑 곳에 따라 말이 바뀐다고 하지만, 이보다는 우리 스스로 삶이나 살림을 바꾸기에 말을 바꾼다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날이 “참한 사람”이나 “어진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어느 한 가지만 솜씨가 있는 사람이 아닌, 두루 깊으면서 너른 사람이 자취를 감춘다는 소리이지 싶습니다. 어느 하나만 뛰어나지 않고, 고루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뒤로 밀리거나 파묻히는 흐름인 터라, ‘참하다·어질다’를 우리가 혀에 얹거나 손으로 옮길 일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셈이라고 느껴요.


 그 덕에 → 그래서 / 그 탓에 / 그 때문에

 이웃님 덕에 → 이웃님이 도와 / 이웃님이 있어 / 이웃님 힘으로

 덕이 높다 → 그릇이 깊다 / 마음이 높다 / 숨결이 높다

 아름다운 덕이다 → 아름다운 빛이다 / 아름답다


  한자말을 쓰기에 나쁘지 않습니다만, 한자말은 ‘누구나’ 쓰던 낱말이 아닌, 나라지기·벼슬아치·우두머리 곁에서 조아리던 몇몇 붓쟁이가 쓰던 낱말입니다. 흙을 사랑하고 아이를 돌보고 숲을 가꾸고 살림을 빛내고 마을을 짓던 수수한 사람들, 이른바 ‘흙지기·여름지기(농부)’는 한자말을 안 썼고, 한자말을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에서 길어올린 낱말을 두레처럼 썼고, 흙에서 얻은 낱말을 어깨동무로 썼으며, 흙으로 지은 낱말을 함박웃음으로 썼어요.


  외마디 한자말인 ‘덕(德)’이 치고 들어온 자리를 하나하나 짚다가 돌아봅니다. 우리는 요새 ‘때문·탓·영문·터문·터·턱·까닭’ 같은 낱말을 얼마나 가려서 알맞게 쓸 줄 알까요? 오늘날 어른은 이러한 말씨를 어린이한테 얼마나 제대로 짚어내면서 물려주는가요?


 다시 원상복귀되었다 → 다시 바로잡았다 / 돌려놓았다

 원상복귀를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 돌리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원상복귀를 요구하는 의견이 다수이다 → 되돌리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낱말책에 ‘원상복귀’가 없으나, 이런 말을 쓰는 분이 꽤 됩니다. 이와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원상복구’가 있어요. 둘 다 낱말책에 없는데, 적잖은 어른은 두 말씨 ‘원상복귀·원상복구’를 헷갈려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어린이는 두 말씨를 놓고 머리가 지끈거릴 뿐 아니라,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아버지 손에 의해 원상복구가 되다 → 아버지 손으로 바로잡다

 원상복구를 완료하다 → 예전대로 해놓다 / 처음대로 해놓다

 어디까지 원상복구를 해야 하는가 → 어디까지 돌려놓아야 하는가


  나이를 먹었기에 어른이 되지 않아요. 나이만 먹는 사람은 ‘늙은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늙은이’라는 낱말이 자칫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을 깎아내릴까 걱정스럽다면서 ‘어르신’으로 고쳐서 쓰자고들 합니다.


  자, 생각해야지요.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나 어르신이 아닌 늙은이입니다. 늙은 말씨는 낡은 말씨입니다.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추스르거나 바로잡을 말씨입니다.

  우리가 왜 ‘어른·어르신’하고 ‘늙은이’라는 낱말을 갈라서 쓰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나이가 아닌 철이 들어서 슬기롭고 어질며 참한 사람으로 서기에 비로소 어른이요 어르신입니다.


  슬기롭지 않고, 어질지 않으며, 참하지 않다면, 이때에는 그저 나이만 먹는 터라 늙은이라는 모습이 됩니다. 어린이 곁에서 어떤 모습이나 몸짓으로 서렵니까? 어린이한테 어떤 말씨를 물려주는 마음, 그러니까 슬기로운 말이나 어진 말이나 참한 말을 물려주는 눈빛이 되렵니까?


 원상(原狀) : 본디의 형편이나 상태. ≒원태

 복귀(復歸) : 본디의 자리나 상태로 되돌아감

 복구(復舊) : 1. 손실 이전의 상태로 회복함


  우리말로 하자면 ‘처음(←원상)’이요, ‘돌아가다(←복귀)’이며 ‘돌려놓다·고치다(←복구)’입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처음으로 돌아가다”나 “예전대로 해놓다”라 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이렇게 고치자”나 “이처럼 바로잡자”고 말하면 어린이도 어른도 몽땅 알아들어요.


  어떤 말을 어느 자리에 어떤 마음이 되어 쓸 적에 참하거나 어질는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잊는 말씨란, 우리가 스스로 잊는 삶이자 살림이자 사랑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버린 말결이란, 우리가 스스로 버리는 삶이자 살림이요 사랑입니다.


  생각에 날개를 달아야 슬기롭다고 하듯, 말에 날개를 달아야 어질면서 참합니다. 새로 나오는 갖가지 살림살이나 연장을 가리키는 이름을 어떻게 붙이면 즐거우면서 환할까요? 우리한테 우리말이 있다면, 우리말로 하나씩 가다듬도록 마음을 기울일 적에 비로소 어른스러우며 어르신 자리에 설 만합니다.


 참말


  서울내기 말씨를 보면 으레 ‘정말로(正-)’입니다. 시골내기 말결을 보면 흔히 ‘참말로’입니다. ‘참으로’는 서울내기도 시골내기도 두루 쓰더군요. 시골에서 살기에 스스로 깎아내리지는 않는가 돌아보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산다고 스스로 높이지는 않는지 되짚으면 좋겠습니다. 시골에서 서울이나 광주 같은 큰고장으로 ‘올라가지’ 않고 ‘갈’ 뿐이듯, 서울이나 광주 같은 큰고장에서 시골로 ‘내려가지’ 않고 ‘갈’ 뿐이듯, 참말로 말빛을 어질게 바라보기를 바라요. 참으로 말넋을 참하게 가꾸기를 바랍니다.


  참말로 ‘참말(참다운 말·참된 말)’을 쓸 어른입니다. 참으로 ‘참글(참다운 글·참된 글)’을 쓸 어르신입니다. 떡고물을 주기에 거짓말이나 거짓글을 내놓는다면 어른이 아닌 늙은이입니다. 자리값이나 이름값을 건사하겠다며 꾸밈말이나 꾸밈글을 편다면 어르신 아닌 늙은네입니다.


  뒤숭숭한 나라일수록 “늙은 사람”이 아닌 “어진 사람”이 슬기롭게 일해야지 싶습니다. 어지러운 판일수록 “낡은 말”이 아닌 “수수한 사람이 흙에서 짓고 숲에서 가꾼 참한 말”을 펴야지 싶습니다.


  한꺼번에 고치거나 되돌리거나 돌려놓거나 바로잡으려고는 안 해도 됩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가다듬으면 됩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입니다. 날마다 한 걸음씩 새로 내딛듯, 우리말을 차곡차곡 추스르는 어른하고 어르신이 이웃님이 되고 동무님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사랑스레 우리말을 새롭게 헤아리면서 혀랑 손에 얹는 분이 저희 보금자리 곁에서 어른이나 어르신으로 있기를 빕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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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


숲에서 짓는 글살림

50.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어느 책을 읽다가 ‘책임 방기’라는 일본 말씨가 나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말씨를 쓰신 분은 일본 말씨인 줄 몰랐을 수 있고, 알면서 쓸 수 있으며, 이 말씨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 방기’는 이 말씨를 아는 사람한테는 뜻이 흐르겠으나, 어린이나 시골사람한테는 뜬금없거나 엉뚱하다 싶기 마련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말은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으로 써야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써야 ‘옳거나 바르다’가 아닙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줄 아는 눈빛이 되고 입술이 되며 손길이 될 적에 다같이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럽다’입니다.


  말길이란 말이 흐르는 길이면서 말을 쓰는 길입니다. 글길이란 글이 흐르는 길이면서 글을 쓰는 길이고요. 어린이가 읽는 모든 책은 어른이 쓰고 엮어요. 어른끼리 읽는 모든 책도 어른이 쓰고 엮습니다. 어린이가 새뜸(신문)을 펴도, 또 어린이가 보임틀(텔레비전)을 켜도, 모든 어른이 쓰고 엮고 지은 말이 흐릅니다. 배움터에서 펴는 배움책(교과서)도 모조리 어른이 쓰고 엮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는 눈빛이요 입술이며 손길인가요? ‘책임 방기’ 같은 일본 한자말을 그냥그냥 쓰는 어른인가요? 아니면, ‘팽개치다’나 ‘내버려두다’나 ‘등돌리다’나 ‘고개돌리다’처럼, 어린이하고 함께 알아듣고 헤아리는 말씨로 추스르는 어른인가요?


  어른들은 한자말 ‘무명(無名)’하고 우리말 ‘이름없다’를 섞어씁니다. 다만, 낱말책에는 아직 ‘이름없다’가 안 실립니다. 이와 맞서는 ‘이름있다’도 낱말책에 아직 없어요. 어른들이 어린이를 헤아린다면 ‘무명·유명’이란 한자말을 ‘이름없다·이름있다’로 손질할 뿐 아니라, 이 두 가지 쉬운 우리말도 낱말책에 실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생각한다면 ‘수수하다·투박하다’나 ‘조용하다·고요하다’ 같은 낱말로 이름없는 모습을 나타낼 만합니다. ‘드날리다·나부끼다·뜨다’나 ‘잘나다·자랑하다·알려지다’ 같은 낱말로 이름있는 모습을 나타낼 만해요. 어린이한테 이런 비슷하면서 다른 여러 말씨를 알려줄 만하겠지요.


  우리말 ‘고요하다’를 놓고 더 헤아려 봅니다. 이 우리말 하나를 한자말 ‘한적, 한가, 소강상태, 무풍지대, 무(無), 선(禪), 선정(禪定), 무아지경, 무아경, 무아, 무념, 무념무상, 편안, 달관, 달관적, 초탈, 묵상(默想), 정적(靜寂), 정적(靜的)’ 같은 자리를 나타내려고 쓰곤 합니다. 거꾸로 본다면 ‘고요하다’는 이렇게 여러 갈래로 쓸 만한 깊고 너른 낱말입니다. 어린이한테 우리 말결을 이렇게 들려주면서 노래한다면, 애써 우리말을 살려쓰거나 바로쓰자고 외치지 않아도, 어린이 스스로 말빛을 한껏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자랄 만하리라 봅니다.


 꽃날·꽃철·아름철·좋은날


  어린이한테 ‘평화’를 가르치려고 애쓰곤 합니다만, 정작 ‘평화’가 어떠한 결이요 길이며 삶인가를 뚜렷하게 못 밝히지 않을까요? 싸우지 않기에 평화가 아니고, 밥을 나누기에 평화이지 않아요. 더 깊고 너른 길이 있습니다.


  다섯 살 눈높이로 생각해 봐요. 일곱 살 눈어림으로 바라봐요. 아홉 살 눈빛으로 ‘평화’를 단출하게 나타내 봐요. 저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서 ‘평화’를 손이나 혀에 안 얹습니다. ‘고요하다’로도 이 결을 나타내고, ‘기쁘다·넉넉하다·따사롭다’라든지 ‘아름답다·사랑스럽다·즐겁다’란 낱말로도 나타내요. 단출하게 ‘꽃날·꽃철’이나 ‘아름날·아름철’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꽃이 되어 살아가는 때이기에 꽃날이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꽃처럼 빛나는 삶이기에 꽃철이라고 말해요. 서로 아름답게 살림을 짓는 때이니 아름날입니다. 다같이 아름답게 사랑으로 노래할 만하니 아름철이지요.


  요새는 어린이한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어른이 무척 많아요. 이렇게 가르치는 일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말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 ‘여성운동·여성해방·페미니즘’이란 말에 머물러야 할까요? 날개를 달지 않고 쓰는 말로는 생각날개를 북돋우지 않는다고 느껴요. 금긋기가 되기 쉽습니다.


  위아래를 가르던 나라에서는 여태껏 어느 한켠을 억누르거나 짓밟거나 들볶는 몸짓이었습니다. 위아래를 가르지 않는 곳에서는 사내도 가시내도 위나 아래에 서지 않아요. 위아래를 가르면서 가시내나 사내 가운데 한켠이 억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들볶이는데요, 이제껏 으레 가시내 쪽이 억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들볶여요.


  이 발자취를 돌아본다면, ‘여성운동·페미니즘’이란 “가시내를 위에 세우는 길”이 아닐 테지요. 서로 어깨동무하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찾자는 물결일 테고, 이제껏 짓밟거나 억누르던 바보길이 아닌, 참다이 아끼고 돌보는 사랑길이지 싶어요. 틀이나 수렁을 걷어치워서 너나들이로 어깨동무하는 참다운 삶길이지 싶습니다. 너나들이로 가기에 아름답지요. 어깨동무를 하기에 위아래 없이 즐거워요. 사랑길을 가기에 오순도순 포근합니다. ‘아름길·아름삶·아름사랑’을 생각합니다.


 오순도순·도란도란·포근·따스함


  어른으로서 어린이한테 들려줄 삶길이라면 ‘사랑길’이어야지 싶습니다. 동무가 없이 나보다 여린 남을 밟고 올라서는 다툼판(입시지옥)이 아닌, 서로 아끼면서 손을 맞잡을 줄 아는 어깨동무인 사랑길을 들려주고 알려주고 가르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어깨동무란 ‘손잡기’이기도 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서 나아가기에 어깨동무예요. 이 길은 참다이 따스합니다. 이 삶은 언제나 포근합니다. 이 하루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입니다. 이때에는 오순도순 어우러집니다.


  어른끼리 아는 어려운 말(거의 모두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영어·옮김 말씨이지요)을 어른 스스로 떨치거나 씻어내거나 버리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어른 스스로 어린이한테 굴레나 사슬을 씌워서 들볶거나 괴롭히는 짓이지 싶어요. 가시내하고 사내가 사이좋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슬기롭고 즐거웁듯, 어린이하고 어른이 상냥하고 손잡거나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가꾸는 사랑을 찾아야 아름다우면서 기쁜 노릇이 된다고 느껴요.


  저는 ‘곁님’이란 낱말을 지어서 쓰는데, 여성해방도 페미니즘도 성평등도 아닌, 그저 어깨동무요 손잡기요 사랑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내’란 낱말은 무늬는 한글이되 일본 한자말 ‘내자(內子)’를 그냥 옮긴 말씨입니다. ‘안사람’도 매한가지예요. 그런데 ‘아내·안사람’은 일본 한자말을 베낀 말씨를 넘어, 사랑스럽게 가꿀 살림하고 동떨어진 이름이에요. 집안일은 두 가시버시가 함께해야지요. 집밖일도 두 가시버시가 같이하고요.


  예부터 우리말은 금을 안 긋습니다. ‘놈·년’처럼 가르는 때는 드뭅니다. ‘동무’란 말은 가시내도 사내도 써요. ‘어린이·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여보’도 그렇지요. 이러한 결을 살펴 “서로 곁에서 돌보고 사랑하는 사이”를 나타낼 ‘곁님’이란 낱말을 지었어요. 페미니즘 아닌 사랑길·아름길을 생각했어요.


 어깨동무·아름사랑


  쉽게 여기면 쉽습니다. 어렵다고 손사래치거나 등돌리거나 고개짓거나 멀리하면 내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자꾸 넘어지다가 다릿심이 붙어 씩씩하게 달리는 모습을 떠올려요. 아이들이 새로 듣는 말씨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말살림을 가꾸는 나날을 그려요. 우리 어른도 얼마든지 사랑으로 부드럽고 쉬우면서 즐겁게 말하는 아름다운 말빛이 될 만합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걷어내기’가 아닙니다. 어린이한테 삶을 슬기롭게 가꾸는 상냥한 노래 같은 말을 즐겁게 들려주도록 우리 어른들 말씨를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아름사랑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시골하고 어깨동무해요. 숲하고 어깨동무해요. 바다하고 어깨동무해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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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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