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5.


《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글·그림/강동욱 옮김, 미우, 2019.5.31.



새로 만나는 만화책을 펼 적마다 ‘이 만화를 아이들하고 볼 만할까?’ 하고 생각한다. 어느 대목 하나라도 부디 끝까지 안 걸리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새로 만나는 그림책이며 동시책을 쥘 적마다 똑같이 생각한다. 그림책이나 동시책은 ‘어린이가 읽도록’ 지은 책이라고들 쉽게 생각하지만, 그냥 어른 손장난이나 그림장난으로 나온 책이 꽤 많다. 마음쓰기가 아닌 장삿속이나 손장난 책을 아이한테 건넬 수 없지. 날마다 태어나는 책은 수두룩하지만, 이 가운데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나눌 책은 얼마나 될까? ‘태어나는 책 부피’가 아닌 ‘어린이 눈빛으로 지은 책인가’를 보아야지 싶다. 《해수의 아이》나 《리틀 포레스트》는 아이들하고 함께 보았다. 《움벨트》는 어떨까? 아슬아슬하게 흐른다 싶더니 ‘아이하고 보기 어렵겠네’ 하고 느낀다. 하기는. 숱한 ‘어른’은 그저 스스로 그리고 싶은 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어린이랑 함께 사랑으로 펼치려고 짓는 마음’인 분은 꽤 드물다. 앞으로는 이러한 어른이 차츰 늘어날까? 늘어날 수 있기를, 참말로 부쩍부쩍 늘기를, 이웃나라에도 이 나라에도 맑은 눈빛 어른이 새롭게 자라나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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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4.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김성은 글, 책과이음, 2020.2.12.



어제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큰아이는 ‘의무교육 유예 지원신청서’란 글을 해마다 써야 하는 일이 매우 성가시면서 싫다. 그래, 이런 글자락을 쓴다면서 아침을 날려야 하니 네가 부루퉁할 만하지. 그렇지만 그 마음을 새롭게 돌리면 어떨까? 누가 우리를 길들이려 한대서 우리가 길들지 않아. 우리 스스로 휩쓸리며 톱니바퀴가 되니까 길들 뿐이야. 서울이나 공장이나 발전소 곁에서 살기에 매캐한 바람을 마시지 않아. 우리 마음이 시커멓게 덮이면 매캐한 바람이 우리한테 와서 숨이 막히고 몸이 아프지. 너희가 초등학교에 가지 않아도 우리 이웃이 다니거나 일하는 곳이니, 사뿐히 마실하듯 다녀오면 어떨까?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을 얼추 보름 남짓 조금씩 읽는다. 단출한 부피라 20분 만에도 다 읽어낼 수 있지만, 동두천 한켠에서 세 해를 넘기며 마을책집으로 하루를 짓는 숨결을 헤아리고 싶어 매우 천천히 읽는다. 책집지기님은 “어느 날 갑자기”란 말로 책이름을 삼았지만, 불쑥 연 책터는 아니지 싶다. 늘 마음 한켠에 ‘숲에서 온 책을 보금자리 곁에서 새롭게 가꾸어 즐겁게 이웃을 만나고픈 꿈’이 씨앗으로 움터서 자랐으니 “이제 바야흐로” 〈코너스툴〉을 여셨겠지. 오늘도 고흥 밤하늘에 미리내가 눈부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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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오늘 읽기 2020.3.3.


《봄 여름 가을 겨울》

 헬렌 아폰시리 글·그림/엄혜숙 옮김, 이마주, 2019.1.25.



큰아이가 태어난 2008년부터 그림책 글손질을 한다. 내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아이한테 읽어 줄 적에는 ‘책에 적힌 대로 안 읽’는다. 얼토당토않은 번역 말씨나 일본 말씨나 얄궂은 말씨를 그자리에서 고쳐서 읽으니까. 할머니나 이웃님이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시는 모습을 보면 다들 ‘책에 적힌 대로만 읽’는다. 책말이 상냥하거나 알맞다면 그냥 읽어도 될 테지만, 거의 모두라 할 옮긴님은 ‘어린이한테 들려줄 한국말’을 아예 모르다시피 한다. 학교랑 사회에 길든 뒤범벅 말씨를 어린이책에 멋모르고 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얼거리나 이야기가 곱다고 느낀다. 그러나 옮김말이 너무 허술하다. 한 줄도 그냥 넘어갈 수 없도록 어린이하고 등진 번역 말씨에 얄궂은 말씨가 흐른다. 한숨을 쉬며 글손질을 하다가 쉬다가 며칠 묵히다가 다시 글손질을 했다. 차마 아이들한테 못 읽히겠다. 우리가 아예 ‘풀잎 그림책’을 새로 쓰자고 생각한다. 이웃나라 그림책을 쓰신 분은 ‘어려운 그 나라 말’을 썼을까, 아니면 가장 쉽고 부드러우며 사랑스러운 그 나라 말을 썼을까. 철마다 빛이 다르듯 사람마다 빛이 달라 고장말·마을말이 있다. 사투리로 옮겨 본다면 얄궂은 말씨가 어린이책이고 어른책에 불거질 일이란 거의 없다. ㅅㄴㄹ














(12쪽) 봄날의 합창. 봄이 왔다는 건 새들에게 딱 한 가지 뜻이에요. 짝을 찾을 때라는 것이지요. 동트기 전, 새들의 노래로 숲은 소란스러워져요 … 새들은 큰 소리로 서로의 짝을 불러냅니다. 

→ 봄노래. 봄이란 새한테 이런 뜻이에요. 짝을 찾을 때랍니다. 동트기 앞서, 새가 부르는 노래로 숲은 시끌시끌해요 … 새는 큰 소리로 서로 짝을 불러냅니다.


(13쪽) 사랑의 보금자리. 따뜻한 봄날, 짝을 찾은 새들은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로 분주해져요.

→ 사랑스런 보금자리. 따뜻한 봄날, 짝을 찾은 새는 새로운 아이를 맞으려고 바빠요.


(14쪽) 나무들의 변신. 긴 겨울이 끝나면 나무들은 변신을 시작합니다 … 구불구불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면, 작은 잎들이 한 줄로 드러나지요.

→ 달라지는 나무. 긴 겨울이 끝나면 나무는 달라집니다 … 구불구불한 소용돌이를 지으면, 작은 잎이 한 줄로 드러나지요.


(15쪽) 뿌리를 내리고 초록 싹을 밀어 올려요. 곤충들의 한살이로 시작되지요. 봄의 곤충 나비가 이제 막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려 하고 있어요.

→ 뿌리를 내리고 푸른 싹을 밀어 올려요. 이제부터 풀벌레 한살이예요. 봄에 깬 나비가 이제 막 새로운 한 해를 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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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


《새들의 밥상》

 이우만 글·그림, 보리, 2019.9.25.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틈틈이 우리 집 마당이며 뒤꼍을 걷는다. 이른아침에 뒤꼍에 올라 아직 조그맣게 돋는 흰민들레를 가만히 쓰다듬는데 코앞에서 동박새 암수 두 마리가 엄청나게 빠른 소리로 노래하면서 이리 날고 저리 날더라. 동박새가 석류나무에도 앉네? 동박새가 매나무(매화나무)에도 앉네? 동박새가 모과나무에도 앉네? 아니, 동박새가 유자나무에도 찔레나무에도, 그러고 보니 이 나무 저 나무에 다 앉네? 우리 집에서뿐 아니라 어디에 가서도 스스로 바위가 되어 얌전히 앉으면 온갖 새가 코앞에서 날거나 뽕뽕뽕 가볍게 뜀박질을 하면서 지나가거나 나를 마주본다. “무슨 일이니?” “오늘은 어떤 노래를?” “날면서 뭘 봤어?” 마음으로 웃으면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는다. 《새들의 밥상》은 새를 동무나 이웃으로 여기면서 오래오래 지켜본 손길이 흐르는 책이지 싶다. 그런데 ‘-의 밥상’ 같은 흔하면서 아쉬운 일본 말씨는 그야말로 섭섭하다. “새밥”이나 “새가 먹다”처럼 수수하게 가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젖는데 두 아이가 달려오며 노래한다. “아버지, 동박새가 갓 핀 매화를 먹어요. 직박구리도 꽃송이를 쪼고요.” 그래그래, 동박새가 동백꽃만 먹겠니. 모든 꽃을 사랑하겠지. 꽃을 먹고 노래꽃일 테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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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1.


《파워북》

 클레어 손더스와 네 사람 글·조엘 아벨리노·데이비드 브로드벤트 그림/노지양 옮김, 천개의바람, 2020.1.28.



영어를 쓴다고 해서 나쁘다고 여기지 않으나, 어린이하고 읽을 책에 영어를 섣불리 쓰면 손이 안 간다. 《파워북》이란 책에 붙은 ‘파워 + 북’은 쉽고 흔한 영어라 하지만, 쉽고 흔할수록 더 섣불리 안 쓸 노릇이라고 본다. 쉽고 흔한 한국말 ‘힘 + 책’을 쓰면 된다. “힘내는 책”이라든지 “힘찬 책”이라든지 “힘이 되는 책”이라든지 “힘있는 책”처럼 말멋을 살려 보아도 된다. 책겉을 보면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하고 한 줄이 붙는데, ‘힘을 가지다’는 번역 말씨이다. 한국말은 ‘힘이 있다’이다. 영어 ‘have·get’을 제발 ‘가지다’로 함부로 옮기지 말자. 그 영어는 그 말씨로 옮기지 않는다. 이 책 《파워북》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꽤 어수선하다. 좀 차분하게, 무엇보다도 이만 한 이야기는 외국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한국사람 손으로 찬찬하게 새로 쓰면 좋겠다.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이런저런 사람들 목소리를 그러모은 ‘현대 시사상식’ 같은 책이 아니라, 마을에서 집에서 곁에서 차분히 돌아볼 만한 이야기를 여미면 좋겠다. ‘인권·정의·사회’ 같은 일본 한자말을 어른들은 그냥그냥 쓰지만, 이런 말씨를 훨씬 쉽고 부드러이 풀어내어 이야기를 여밀 수는 없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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