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체스네 아이들 - 빈곤의 문화와 어느 멕시코 가족에 관한 인류학적 르포르타주
오스카 루이스 지음, 박현수 옮김 / 이매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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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으로 마주하는 살림

[내 사랑 1000권] 18. 오스카 루이스 《산체스네 아이들》



  멕시코에 ‘산체스’네 식구가 있다고 합니다. 산체스란 매우 흔한 이름이기에 산체스네는 그야말로 곳곳에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 수많은 산체스네 가운데 어느 한 집안을 놓고서 학자 한 사람이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지켜보면서 산체스네 살림을 적바림했고, 이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학자 한 사람은 산체스네를 어깨너머로 구경하지 않습니다. 이웃이나 동무로서 마주하면서 산체스네 살림을 마주했습니다. 학자 한 사람으로서 가난한 산체스네 사람들한테 이웃이나 동무가 되면서, 멕시코를 비롯해서 온누리 어디에나 있는 가난한 숱한 사람들한테 우리가 저마다 이웃이나 동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책으로 엮었어요.


  학자 한 사람이 쓴 책은 사람들 생각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학자 한 사람이 이웃이자 동무로 마주한 사람들 살림살이 이야기는 정치나 사회나 경제를 얼마나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알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다만 오스카 루이스라고 하는 분이 1960년대에 선보이고, 한국에서는 1970∼80년대에 처음 옮긴 뒤에 1990년대와 2010년대에 새로운 옷을 입은 책이 나오는 흐름을 돌아보건대, 작은 이야기 하나는 씨앗으로 심었으리라 생각해요.


  이웃으로 마주하기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동무로 지내기에 책 한 권을 학술·학문 자료로만이 아니라 참말로 이야기 하나로 퍼뜨릴 수 있습니다.


  가난하기에 늘 힘들지 않습니다. 돈이 많기에 안 힘들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즐거움을 빼앗길 적에는 늘 힘들고 맙니다. 사랑이나 즐거움을 나누고 누리며 어깨동무하는 자리에서는 가난이나 부자라는 굴레가 모두 사라집니다.


  영화 〈I am Sam〉에서 누가 즐거운 사람일까요? 이 영화에서 누가 안 즐거운 사람일까요? 이 영화에서 가난과 부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 영화에서 이웃이나 동무란 누구일까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해님은 늘 곱게 온누리를 비춥니다. 2017.8.2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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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8-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은 아직 못읽어보았는데 리뷰가 반갑습니다

숲노래 2017-08-24 11:40   좋아요 0 | URL
같은 분이 옮긴 책인데, 저도 새로 나온 책 번역이 궁금하기도 해요. 그동안 번역책을
읽어 본 바에 비추면, 오래된 책은 수수하거나 투박하면서 맛깔스러운 대목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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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투박하고 씩씩한 사랑

[내 사랑 1000권] 17. 전민조 《섬》



  섬사람이 뭍으로 나옵니다. 뭍사람이 섬으로 갑니다. 섬에서 길어올린 물내음하고 바다내음이 뭍으로 퍼집니다. 뭍에서 흐르던 뭍내음이 섬으로 스며듭니다.


  뭍이라는 자리에서 보자면 섬은 매우 조그마한 삶터일 수 있습니다. 지구라는 자리에서 보자면 뭍은 매우 자그마한 터전일 수 있습니다. 우주라는 자리에서 보자면 지구는 대단히 쪼꼬만 곳일 수 있습니다.


  공항이 되고 만 영종섬을 한 바퀴 걸어서 돈 적이 있어요.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작은 섬 작은 분교에서 분교장을 할 적에 작은 섬에서 함께 한 달을 묵으며 섬살이를 새삼스레 느낀 적이 있어요. 제주섬을 자전거로 나흘에 걸쳐서 천천히 달려 본 적이 있어요. 다리가 놓이면서 섬 아닌 섬이 된 거금섬을 자동차로 훌쩍 돌아 본 적이 있어요.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배를 뭇고, 나무로 장작을 삼고, 나무로 연장을 깎은 사람들 살림을 그려 봅니다.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모두 알뜰히 건사하던 지난 시골살림을 그려 봅니다. 샘물도 빗물도 모두 살뜰히 다루던 오랜 시골살림을 그려 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삶을 가꾸면서 어떤 살림을 지으려는 하루일까요. 꼭지만 틀면 아무 데에서나 얼마든지 물을 쓸 수 있는 하루인가요? 돈을 치르면 아무 데에서나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는 하루인가요?


  섬사람한테 옷 한 벌이란, 수저 한 벌이란, 그릇이나 접시 하나란, 낫이나 호미 한 자루란, 그냥 하나라 할 수 없어요. 뭍사람한테도 지구사람한테도 연장이나 살림이란 그냥 하나가 될 수 없어요. 투박하며 수수하지만 스스로 짓고 스스로 누리는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삶과 살림을 담은 사진책 《섬》은 이제 이 사진책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작게 가꾸면서 나눈 삶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조촐히 지으면서 도란도란 나눈 살림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어깨동무하는 자리에서 곱다시 피어나는 야무지고 씩씩한 사랑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2017.7.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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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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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노래 풀노래

[내 사랑 1000권] 16. 이오덕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오늘날 우리는 신문을 한 줄도 안 읽거나 방송을 한 번도 안 본 어른을 만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과서를 한 줄도 안 읽거나 방송을 한 번도 안 본 어린이를 만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버이한테서 말을 익히고 어버이한테서 살림을 물려받아서 어버이랑 함께 삶을 가꾸는 어린이를 만나기란 거의 없다고 할 만하기까지 합니다.


  시골말을 마음껏 쓸 줄 아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서울에서 시골말을 신나게 쓰는 어른도 눈에 띄게 사라집니다. 방송에 나와서 시골말을 스스럼없이 쓰는 시골지기는 거의 없어요. 시골말로 행정을 맡거나 시골말로 글을 쓰는 사람도 거의 없지요.


  광주에서 교사를 할 적에 광주말을 왜 안 쓰고 안 가르치며 안 배울까요? 대구에서 교사를 할 적에 대구말을 왜 안 쓰고 안 가르치며 안 배울까요? 고장말을 가르치지 못할 적에는 고장살림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골말을 나누지 못할 적에는 시골살림을 나누지 못합니다. 말로 우리 삶을 나타냅니다. 말에 우리 생각이 흐릅니다. 어떠한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 이야기가 달라져요.


  어린이문학에서 시골말을 즐겁게 쓴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만한 분이 권태응이라고 해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어린이문학은 거의 모조리 서울말로만 한대요. 어린이문학을 하는 어른들은 시골 아닌 서울서 살며 서울말로만 서울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요. 이오덕 님이 쓴 문학비평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는 시골 아이하고 살아가는 수수한 삶을 수수한 말씨로 담아낸 권태응 문학이 얼마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들려줍니다. 이론을 따지지 않는 문학비평이에요. 문학비평이라면 넓고 깊게 살림을 헤아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해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란 ‘시골노래’입니다. 시골노래란 풀노래입니다. 나무노래요 꽃노래요 숲노래요 바람노래입니다. 냇물노래요 멧노래요 들노래요 일노래요 놀이노래요, 동무노래에 흙노래입니다. 2017.7.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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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웅진 세계그림책 102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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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니까 못 날아요

[내 사랑 1000권] 15. 볼프 에를브루흐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걱정해서 되는 일이란 없답니다. 그렇지만 걱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더구나 학교에 다니거나 회상에 다니거나 사회에 몸을 담글 적에는 으레 걱정을 들엉야 해요.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이 안 나온다고 해서 걱정해야 해요. 회사에서는 일을 잘 해내거나 돈을 잘 벌어야 한다면서 걱정해야 하지요. 사회에서는 이것에 맞추거나 저것에 들어맞도록 걱정을 해야 합니다.


  다들 안 될까 싶어 걱정하는 사회예요. 다들 안 될는지 모르는데 굳이 해야 하느냐고 걱정하지요.


  왜 그럴까요? 왜 몸으로 부딪혀 보지 않고 걱정부터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이는 일자리를 못 얻는다는 걱정을 왜 해야 하나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스스로 즐겁게 한길을 걸으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그림책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는 걱정투성이 아주머니 이야기를 다루어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 아저씨는 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요. 다만 아주머니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아요. 다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고요히 심어 주지요.


  걱정투성이 아주머니는 걱정에만 사로잡히는데, 어느 날 새끼 새를 보았고, 어미 잃은 새끼 새를 내버릴 수 없어서 온갖 걱정을 품은 채 돌봐 줍니다. 그런데 말예요, 새끼 새는 날아야 하지요. 날지 않고서는 새답게 살 수 없어요.


  걱정투성이 아주머니는 새끼 새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요? 걱정투성이 아주머니는 새끼 새한테 어떻게 날갯짓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새끼 새가 날려면 어미 새(또는 아주머니)가 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이 아주머니는 어떻게 할까요?


  고요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 수 있어요. 걱정이 없으면, 아니 걱정이 없다기보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가만히 품고서 티없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한껏 들이마시면 참말 누구나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날려는 마음을 고요히 품지 않으니 못 날아요. 날지만 못할 뿐 아니라 꿈마저 없겠지요. 2017.7.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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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 머리 소동 풀빛 동화의 아이들
마이클 마르첸코 그림, 로버트 먼치 글, 박무영 옮김 / 풀빛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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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따라하든 말든 좋아

[내 사랑 1000권] 14. 로버트 먼치·마이클 마르첸코 《꽁지머리 소동》



  누가 저를 흉내내면 어쩐지 거북해요. 제가 하는 일을 누가 똑같이 따라하면 때로는 아주 못마땅해요. 저는 그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인데, 둘레에서 이래저래 저를 따라하는 바람에 거꾸로 제가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듯이 잘못 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이없다고 느낄 만하기도 해요.


  이제는 누가 저를 흉내내거나 따라하더라도 거의 아랑곳하지 않아요. 앞으로는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고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가면 되고,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나아가면 되어요.


  저는 말을 다루는 일을 해요. 말을 새롭게 짓는 일을 하지요. 말을 사전이라는 그릇에 담는 일을 한답니다. 이러다 보니 제가 쓰는 말은 으레 이제껏 거의 안 쓰거나 잘 안 쓰거나 아예 안 쓰던 터라 매우 낯설 수 있어요. 때로는 매우 새로울 수 있고요.


  어떤 이는 제가 새로 지은 말을 싫어할 수 있지만, 어떤 이는 제가 지은 말이 매우 반갑다면서 신나게 쓸 수 있어요. 어떤 이는 저한테 묻고서 제가 지은 말을 이곳저곳에 신나게 쓰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저한테 안 묻고서 제가 지은 말을 아무 곳에나 마구 쓰기도 해요.


  그림책 《꽁지머리 소동》을 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누가 누구를 따라하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왜 어떤 사람을 흉내낼까요? 또는 우리는 왜 남을 따라할까요? 우리는 왜 남을 흉내내려 할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꽁지머리를 한 아이는 꽤 오랫동안 거북하고 못마땅하고 싫었으나, 어느 날부터 매우 홀가분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하건 말건 아이 스스로 ‘나는 나’라는 대목을 똑똑히 알아차려요. 더욱 즐겁게 제 모습을 빛내는 길을 깨닫지요.


  요즈음 저는 제가 처음 짓거나 새로 지은 말을 놓고서 매우 기쁘게 바라보면서 다 잊어요. 저 스스로 ‘내가 지은 말이야’ 하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이 새로운 말은 날개를 달고 훨훨 하늘춤을 추네요. 2017.7.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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