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아름책 2022.6.3.

[내 사랑 1000권] 풀꽃나무하고 속삭이며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청년사, 1979.1.22. (양철북, 2018.2.2.)



  이오덕 님을 큰스승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분이 큰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스스로 새롭게 배우고 아이한테 고개숙일 줄 아는 마음으로 작은 풀꽃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서 흐르는 하늘빛을 읽으면서 보살피는 사람이기에 어른입니다. 아이를 가르치기만 하려고 나선다든지,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무란다든지, 아이를 때리거나 괴롭힌다든지, 아이한테 막말·낮춤말·거친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른이 아닙니다. 아니, 이런 짓을 일삼는다면 그이는 어른은커녕 ‘사람조차’ 아닙니다.


  큰스승으로 일컫는 이오덕 님은 언제나 별바라기처럼 아이를 마주하려 했고, 풀꽃바라기처럼 아이 말을 귀여겨들으려 했습니다. 이런 손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단하고 외로우면서 아픈 멧골마을 아이들 곁에서 마음벗인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바로 아이들 입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를 한 올씩 달래면서 “너희는 크면 사람이 된단다”, “너희는 크면 사랑이 된단다.”, “너희는 크면 숲이 된단다.” 하고 노래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애틋한 책은 1979년에 어렵사리 태어났으나 안타까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처음 펴낸 곳에서 먼저 낸 다른 책 글삯(인세)를 떼어먹을 뿐 아니라 속이고 거짓말을 일삼았거든요. 이오덕 님은 펴냄터 지기한테 “가난해서 돈이 모자라다면 글삯을 안 받을 수 있지만,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짓은 안 된다.”고 하면서 《일하는 아이들》도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도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도 책집에서 거두어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운 책이라면 아름다운 손길로 책집에 펼쳐서 사람들이 아름답게 읽도록 북돋울 적에 빛나는 사랑으로 피어날 테지요. 2018년에 드디어 마흔 해 만에 다시 나오는데, 이오덕 님은 책이름을 ‘농부’ 아닌 ‘농사꾼’으로 고쳐야 한다고 진작에 밝혔습니다. 그런데 새 펴냄터는 이 뜻을 저버려요. 왜 그럴까요.


  멧골아이 마음으로 오늘을 바라보기를 바라요. 멧골아이하고 동무하면서 앉은풀이랑 앉은꽃하고 소꿉을 놀고 속삭이기를 바라요. 멧골아이가 맨발로 뛰노는 숲에 나란히 깃들면서 숲바람을 마시고 숲빛을 품는 숲어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요. 아이들을 억지로 가르치거나 배움터(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멧숲이 없는 곳에 높은집만 잿더미(시멘트)로 올려세운들 아이들은 안 웃어요. 멧새랑 놀기에 밝게 웃는 아이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숲을 되찾는 숲길을 걸을 노릇이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스 - 매와 소년 - 개정판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아름책

[내 사랑 1000권] 사슬터와 살림터 사이


《케스―매와 소년》

 베리 하인즈/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8.8.20.



  아이를 둘 낳아서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배움터(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아니, 온누리 모든 곳을 배움터로 삼고, 풀꽃나무를 동무로 삼으며, 해바람비를 길잡이로 삼습니다. 책으로만 배울 까닭이 없고, 사람한테서만 배워야 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하늘을 읽으면서 날씨를 헤아리는 길을 갑니다. 굳이 날씨알림(일기예보)을 듣고서 날씨를 헤아려야 할까요? 손수 살림짓기를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일구려고 합니다. 따로 글(이론·지식)로 어깨동무(평등·평화)를 익혀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개미를 알려면 개미를 보면 됩니다. 개미를 안 보고서 ‘개미를 다룬 책·도감’을 달달 외운들 개미를 참말로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아요. 새를 알려면 새를 마주하고 동무로 삼아서 함께 놀면 돼요. 새 곁에 깃들어 새가 노래할 적에 나란히 휘파람을 불면 넉넉해요. ‘새를 다룬 책·도감’을 즈믄(1000) 자락 읽거나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들어가야 새를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리송해요.


  오늘날에는 배움터에서 어른이 아이를 두들겨패거나 걷어차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막말을 퍼붓거나 머리통을 후려치거나 밀걸레 작대기로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내리치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앞서까지 이 모든 ‘주먹질’이 배움터에서 버젓이 일어났어요. 예전에는 ‘학교폭력’이란 말이 없었으나 노상 주먹다짐이었고, 늘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덧씌웠어요.


  영국 어린배움터 이야기를 그린 《케스―매와 소년》은 책으로도 영화로도 나왔는데, 1960∼70년 영국 배움터 언저리 민낯을 드러냅니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도 영국 어린이·푸름이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환히 드러내지요. 《케스》에 나오는 또다른 ‘빌리’는 새끼 매를 하늘에 날리고 싶어서 스스로 길을 찾고 숲을 배우는 나날을 보여줍니다. 어린 빌리는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어른이자 길잡이(교사)를 만나서 얘기하는 어느 날, 이 어른한테 “선생님들은 언제나 자기들은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때는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오늘 아침처럼요. 또 정말 지루할 때 안 듣는다고 매를 맞을 때요. 제 말은요, 재미가 없을 때에는 딴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요. 안 그렇겠어요, 선생님?(93쪽)” 하고 말합니다.


  스스로 생각을 밝히며 눈망울을 빛내도록 북돋우는 포근한 곳이 아니라면 모두 사슬터(감옥)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즐거이 사랑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곳이라면 언제나 살림터예요. 우리가 선 곳은 어떤 터인가요? 2022.5.31.불.ㅅㄴㄹ


#BarryHines #Kes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만 알던 거인 분도그림우화 6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9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도 모르던 사랑

[내 사랑 1000권] 31. 오스카 와일드 《저만 알던 거인》



  흔히들 “저만 아는 사람”이라든지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곰곰이 보면 “저도 모르는 사람”이나 “저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저이가 “저만 아는”구나 싶지만, 참말로 저만 안다면, 아니 ‘나’라고 하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안다면, 바보짓을 할 수 없으리라 느껴요. 우리가 바보짓을 하는 까닭은 “저만 알기” 때문이 아니라 “저만 아는 척하지만 정작 저 스스로조차 모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부드러이 이야기가 흐르는 《저만 알던 거인》은 거인이라는 이가 누구보다 저 스스로를 몰랐고, 저를 둘러싼 이웃을 몰랐으며, 제가 사는 집을 몰랐고, 이녁 집을 둘러싼 마을이며 숲을 하나도 몰랐던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얼핏 보기에 거인은 참말 “저만 아는” 삶이었으나, 이보다는 “저 스스로도 모르는”, 아니 “저 스스로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삶이었어요.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사는 보람은 어떻게 찾는지 하나도 모르지요.


  하나도 모르기에 우거진 숲이 있어도 왜 우거진 숲인지 모릅니다. 숲조차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무도 씨앗도 모를 뿐더러, 어떻게 돌보거나 보듬을 적에 아름다운가를 몰라요.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예요.


  그러나 거인은 모르는 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바로 나부터 제대로 바라보면서 알려고 합니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려고 하던 때에 이웃(아이들)을 알아차립니다. 이웃을 알아차리면서 나무이며 꽃이며 풀이며 숲을 알아차립니다. 이윽고 삶을 알아차리고, 사는 뜻이나 보람을 알아차려요. 하나하나 알아차리면서 기쁘고, 살며 늘 기쁘니 언제나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줄 알면서, 배우려 하기에 기쁩니다. 모르는구나 하고 깨달으며 천천히 익히니 기쁩니다.


  우리는 알려고 태어났지 싶습니다. 우리는 배우려고 태어났지 싶습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워서 사람으로 고이 서려고 태어났지 싶습니다. 2018.3.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보금자리 곁에 둘 한 가지

[내 사랑 1000권] 27.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공항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발전소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군청이나 시청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차역이며 고속도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모두를 알맞게 쓰거나 나누려는 뜻이라면 무엇이든 있을 만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어떻게 두어야 좋을까를 깊이 살펴야지 싶어요. 밀어붙여서 때려짓는 길이 아닌, 두고두고 살펴서 앞으로 오백 해이건 천 해이건 ‘무슨무슨 마을’이 될 수 있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멧골을 끼며 멧마을입니다. 냇물을 끼며 냇마을입니다. 깊이 우거진 숲에 있어 숲마을이고, 바닷가에 바닷마을입니다. 공항마을이든 발전소마을이든 군청마을이나 시청마을도 생길 만합니다. 다만, 어떤 시설이나 공장 때문에 사람들이 밀려나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어우러질 수 있도록, 누릴 수 있도록, 새롭게 지을 수 있도록 기틀을 닦을 노릇입니다.


  모든 것은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로 날아갑니다. 묵직한 것은 땅에 깃들어 땅을 물들입니다. 어느 것은 땅에 깃들며 새로운 흙이 될 테고, 어느 것은 땅심을 빼앗거나 더럽힙니다. 어느 것은 온 하늘에 싱그러운 꽃내음으로 퍼질 테고, 어느 것은 매캐한 바람이 되어 우리 목을 죕니다.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일본 나리타 공항이 들어설 적에 시골마을을 어떻게 괴롭히고 망가뜨리려 했는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이때에 시골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공무원하고 교사하고 대학생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한 마을에 온갖 사람이 살았어요. 착한 사람, 상냥한 사람, 따뜻한 사람, 고운 사람이 있고, 궂은 사람, 차가운 사람, 메마른 사람, 눈먼 사람이 있어요. 우리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마을빛이 바뀝니다. 우리 보금자리에 무엇을 두고, 보금자리 곁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얼마나 헤아리느냐에 따라 마을살림이 바뀝니다. 2018.3.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사노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할머니 산타는 무엇이 다른가

[내 사랑 1000권] 30. 사노 요코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산타클로스는 누구일까요? 산타클로스는 있을까요? 산타클로스가 있다면 어디에 살고, 산타클로스가 없다면 우리가 어느 날 문득 받는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상냥한 말이란 무엇일까요? 눈물이나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돕거나 아끼는 몸짓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미운 마음이나 궂은 마음은 왜 불거질까요?


  어른은 아이더러 착하거나 곱게 크라고 말하기 앞서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거나 곱게 살림을 가꿀 노릇은 아닐까요? 권력자가 전쟁무기를 만들라고 시킨대서 곧이곧대로 따르는 쪽은 바로 어른 아닐까요? 권력자가 학교나 사회나 언론을 내세워 이웃나라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는 쪽도 바로 어른 아닐까요?


  그림책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는 죽음 뒤에 찾아간 곳에서 산타클로스가 된 할머니 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껏 산타클로스는 으레 할아버지만 맡았다는데, 어느 때에 할머니 한 분이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했대요. 그리고 이분은 아이들 마음을 그만 다 ‘알아차리’고 말았답니다.


  스스로 ‘오랫동안 산타클로스 일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바라는 ‘작은 꿈’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어쩌면 이 대목도 훌륭하달 수 있어요. 이승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누구한테나 고른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도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리고 이승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누구한테서나 어떤 마음인가를 읽고 느끼고 살피고 헤아리면서 그때그때 맞춤으로 더욱 수수하거나 투박하지만 한결 따스하면서 즐거운 선물을 내밀 줄 아는 손길도 훌륭해요.


  새로운 물건이어야 선물이지 않습니다. 더 커야 선물이 되지 않습니다. 선물이란 따스한 마음을 담은 사랑입니다. 선물이란 즐거운 꿈을 노래하는 웃음입니다. 산타클로스 할머니는 뛰어나거나 훌륭한 산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고루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어버이 품을 건사하는 산타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