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씨앗을 이렇게 심어요
[삶을 읽는 눈] 보금자리를 일구는 작은 손길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겨우내 이 봄날을 기다렸습니다. 즐겁게 우리 보금자리에 심을 씨앗을 헤아렸어요. 추위가 가시고, 땅이 녹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볕이 따스한 봄날을 기다렸어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밭을 가꾸는 분이라면 누구나 씨앗을 심어요.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결에 맞추어 씨앗을 심을 테지요.

  우리 보금자리에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마당하고 뒤꼍이 있어요. 이 가운데 어제 하루 뒤꼍에 옥수수 씨앗을 심습니다. 그제는 비트 씨앗을 심었는데, 곧 다른 씨앗도 차곡차곡 심으려고 생각해요.

  저희는 서두를 마음이 없이 씨앗을 심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어른 혼자서 심지 않아요. 먼저 어른이 호미질하고 낫질을 보여준 뒤에 아이들도 함께 호미질을 합니다. 다만 낫질은 아직 안 시키지만, 큰아이가 열 살이니 이제 큰아이도 곧 낫질을 익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먼저 저희 보금자리에서 씨앗을 심는 몸짓을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ㄱ. 날씨를 살핀다. 날씨를 살펴서 씨앗을 언제 심어야 잘 자랄는가를 헤아린다.

 ㄴ. 땅을 살핀다. 어느 자리에 씨앗을 심으면 우리 보금자리에 한결 싱그러운 바람이 불는지 헤아린다.

 ㄷ. 씨앗을 고른다. 한 가지 씨앗만 잔뜩 심지 않는다. 작은 땅뙈기여도 여러 씨앗을 골고루 심는다. 알맞춤하게 심고, 한꺼번에 심지 않는다. 며칠 사이를 두고 나누어 심는다. 옥수수를 보기로 든다면, 서른 알을 심었으면 사나흘이나 너덧새 뒤에 다시 서른 알을 심고, 또 사나흘하고 너덧새 사이를 두고서 서른 알을 심는다. 한꺼번에 거두지 않게끔, 다시 말하자면 옥수수를 거둘 적에 늘 그때그때 가장 싱그러운 열매를 얻어서 먹도록 며칠씩 사이를 두어 심는다.

 ㄹ. 땅을 갈지 않는다. 씨앗을 심을 자리만 호미로 쫀다. 씨앗 자리에 풀뿌리가 깊으면 이때에만 풀뿌리를 뽑는다. 다른 풀은 그대로 둔다.

 ㅁ. 씨앗을 심고서 물을 안 준다. 씨앗을 심은 뒤에는 씨앗 자리 둘레에서 자란 풀을 낫으로 베어 빙 두르듯이 덮어 준다.

 ㅂ. 씨앗을 심기 앞서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몇 분쯤 햇볕을 쬐어 주며 씨앗한테 말을 건다. 이 씨앗이 우리 보금자리에 기쁘게 깃들어 새롭게 깨어나서 우리 식구 몸을 아름답게 살찌워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마음으로 속삭인다.

 ㅅ. 씨앗한테 우리 마음을 속삭였으면, 이 씨앗을 입에 머금는다. 다른 곳에서는 씨앗을 물에 불린다든지, 젖은 천이나 솜에 두어 싹이 트도록 할 텐데, 우리는 우리 몸에 있는 침으로 씨앗이 깨어나도록 북돋아 준다. 씨앗을 심을 적에는 ‘입에 머금은 씨앗’을 한 톨씩 뱉아서 심는다.


  먹을거리를 얻겠다는 뜻으로 씨앗을 심어요. 다만 먹을거리를 그냥 얻을 마음은 아니에요. 더 많이 얻으려는 뜻이 아닌, 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씨앗을 심어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땅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습니다. 비늘을 씌우지도 않습니다. 밥찌꺼기하고 똥오줌을 땅한테 돌려줄 뿐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을 더 주지 않으나, 저희가 우리 밭뙈기하고 씨앗한테 주는 것은 따로 있어요. 바로 우리 사랑을 주어요. 아이들은 밭뙈기이며 마당이며 신나게 넘낟들면서 뛰어노는 동안 웃음하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씨앗한테 베풀어 줍니다. 저는 마당이나 뒤꼍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씨앗하고 함께 있습니다. 씨앗을 심은 자리 둘레로 풀이 우거지려 하면 알맞게 낫으로 베어 땅에 덮어 줍니다.

  뿌리를 뽑지 않아요. 풀뿌리를 뽑으면 그만 흙이 갈 곳이나 힘을 잃거든요. 풀이 뽑힌 자리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흙이 쓸려요. 풀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위쪽 줄기를 베어서 덮으면 비가 아무리 드세게 내려도 흙이 안 쓸립니다.

  풀뿌리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 우리가 심은 씨앗은 다른 풀뿌리를 붙잡고 더욱 튼튼히 자랍니다. 다른 풀줄기를 잘 베어 땅바닥에 덮으면 햇볕이 아무리 뜨겁게 내리쬐어도 밭뙈기 흙이 안 말라요. 풀줄기는 마르면서 흙으로 돌아갈 뿐 아니라, 흙이 늘 촉촉하고 기름짇도록 북돋아요.

  저희가 그리 넓지 않다 싶은 땅뙈기를 이렇게 건사한다고 볼 수 있어요. 넓은 땅뙈기라면, 이른바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라면 저희처럼 건사하기 어렵겠지요. 저희는 저희 먹을거리만 얻으려 하니 알맞춤하게 작은 밭자락을 이렇게 건사할 만합니다.

  땅뙈기 한쪽은 나무가 자라서 시원스레 그늘을 베풀면 여름 내내 시원하면서, 이 둘레에서는 풀이 그리 높이 못 자랍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나무 열매를 베풀어 주고요. 다른 자리는 우리가 심은 씨앗으로 남새를 얻으면 이대로 즐거우면서 틈틈이 낫질을 해서 풀을 다룰 수 있고, 남새도 잘 돌볼 만합니다.

  차근차근 함께 심고, 조금씩 함께 돌보며, 즐겁게 함께 거둡니다. 봄날은 신나는 마당살림을 짓는 하루입니다.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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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 가고 책만 읽어도 됩니다
― 대학 졸업장과 책읽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책읽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그림그리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춤추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노래하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하지 않아요. 졸업장을 거머쥐고는 이 종잇조각으로 돈을 더 잘 버는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아요. 돈을 잘 버는 자리를 찾으려고 하면, 그만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놓치고 말아요.

  흔히들 ‘대학교도 경험’이요,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으로 오래도록 좋은 길을 열 수 있다고도 합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에요. 그러나 이는 ‘졸업장을 거머쥐어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자’고 하는 마음하고 이어져요.

  생각해 봐요. 좋은 경험은 대학교에만 있을까요? 대학교 바깥에는 좋은 경험이 없을까요? 사람은 대학교에서만 만날 수 있을까요?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 이른바 ‘학연’이라고 하는 줄을 붙잡아야 ‘성공’을 할까요?

  대학 교육에 들이는 돈하고 시간하고 품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그 돈하고 시간학고 품을 ‘남들하고 똑같이’ 학과수업에 과제에 선후배 어울리기에 영어 점수에 들이지 말고, 네 해 동안 세계여행을 누려 봐요. ‘졸업장 아닌 세계여행 경험’을 쌓아 봐요. 굳이 대학교 틀에 얽매여 ‘시험점수(토익·토플)를 따려는 영어 공부’는 내려놓고서, ‘온몸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며 영어를 배워서 써’ 봐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이른바 ‘미대(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배워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다르게 해 볼 수 있어요. 대학등록금이나 교수 지도에 이끌리지 말고, 스스소 붓 하나 쥐고서 네 해 동안 온누리를 골골샅샅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천천히 그림을 그려 봐요. 구태여 세계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골골샅샅 누벼 봐요. 자전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네 해 동안 붓하고 종이하고 물감만 챙겨서 온 나라 구석구석 다니며 그림을 그려 봐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꼭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나 사진학과에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이름난 교수나 스승을 찾지 말고, 스스로 모두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 봐요. 네 해라는 시간을 들여서 이 땅을 교수로 삼고, 여러 마을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숲과 들과 바다와 골짜기를 교수로 삼고,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꽃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대학교 다닐 네 해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는 세 해, 여기에 중학교를 다니는 세 해도 생각해 봐요. 모두 열 해라는 나날인데요, 이 나라 중·고등학교 여섯 해는 ‘대학바라기 입시지옥’이에요. 아이들을 여섯 해 동안 입시지옥에 몰아넣지 말고, 또 푸름이 스스로 입시지옥에 뛰어들지 말고, 저마다 씩씩하고 당차게 ‘학교 밖’으로 나와 봐요. 3 + 3 + 4, 이렇게 열 해 동안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아침에는 땅을 일구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 봐요. 열네 살 푸름이가 열 해 동안 아침 낮 저녁을 모두 손수 짓고 배우며 부대끼는 살림으로 보낼 수 있다면, 이때에 우리는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다울 만한가 하고 생각해 봐요.

  대학 교육 네 해에 들일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면, 거의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어요. 엄청나답니다.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스스로 책방에 가서 책을 골라서 읽고, 이렇게 읽어서 모은 책으로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지요. 네 해에 걸쳐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으로 책을 읽어서 모아 두었으면, 앞으로 이 책으로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을 열 수 있기도 해요. 마을도서관도 열 수 있지만, 스물네 살 젊은이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나게 멋진 책방을 열 만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아직 이 나라에 마땅한 ‘교육개혁 정책’이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고달프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정치꾼이나 공무원이 엄청나거나 대단하거나 놀라운 정책을 내놓아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스스로 다 함께 ‘대학바라기를 그만둔다’면 하루아침에 대학입시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얼거리도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굳이 대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아가 씩씩하게 ‘대학입시를 안 치른다’면, 또 대학입시를 안 치를 생각이 단단할 적에는 아예 중·고등학교조차 굳이 안 다닐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다면, 바보스러운 교과서나 학교폭력 같은 말썽거리도 하루아침에 풀릴 만하지 싶어요.

  너무 빠듯하고 메마르게 치고박으면서 밟고 일어서서 1등이 되려는 다툼판이 되다 보니 대학교도 중·고등학교도, 게다가 초등학교마저도 뒤틀리지 싶어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씩 새롭게 해 보면 좋겠어요. 이래저래 여러 가지 길을 우리 나름대로 내 볼 수 있어요.

ㄱ. 대학 교육에 드는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 이렇게 네 해 동안 책을 사서 읽어서 모인 책으로 마을책방이나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다. 저절로 일자리를 스스로 지을 뿐 아니라, 마을살림을 북돋우는 멋진 길이 됩니다.

ㄴ. 대학 교육에 들일 돈이나 시간이나 품으로 시골에서 흙을 짓고 살림을 배우며 산다. 저절로 자급자족을 이루고, 밥이며 옷을 손수 지으니 대량생산하고 맞물리는 소비를 안 할 수 있다. 생태나 유기농 같은 이름이 없이도 아름답게 잘 살 수 있다.

ㄷ. 대학 교육에 바칠 돈이나 시간으로 세계여행을 한다. 네 해 동안 맨몸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새로운 말을 익힐 뿐 아니라, 새로운 살림(문화)을 겪어내면서 눈이 트이고 말과 마음 모두 활짝 여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당찬 마음과 몸이 되어 우리 앞길을 스스로 뚫을 수 있어요.

ㄹ. 대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나라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깊고 너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러는 동안 저절로 작품이 예술로 태어날 테니, 교수 연줄이나 학벌이 없어도 얼마든지 세계에 기쁨을 나누어 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다 한다고 우리까지 해야 하지 않아요. 남들이 하건 말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해야지 싶어요. 남들 하는 대로 좇는다면,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이 살아남도록 내몬다면, 또 우리 스스로 입시지옥이나 취업지옥에서 ‘혼자 살아남기’를 하려고 악을 쓴다면, 사회는 앞으로도 늘 그대로이리라 느껴요.

  졸업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껍데기를 안 쓸 수 있다면, 삶을 스스로 짓고 살림을 손수 가꾸는 길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다 함께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2017.4.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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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우거진 나무를 타며 놀자

[시골 살림 도감] 나무



  시골살림에서 손꼽는 즐거움으로 나무를 으레 꼽아요. 시골살림에서는 흙도 물도 바람도 돌도 풀도 좋아요. 이 가운데 나무는 우리 살림집을 이루어 줍니다. 살아가는 바탕에 나무가 크게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만해요.


  나무가 있어 추운 겨울에 불을 지피며 따뜻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으면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으니 마루를 깔고 평상을 짜며 책걸상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 주니 종이랑 연필을 얻어 우리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갈무리해서 책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동안 온누리에 싱그러운 숨결이 가득하여 맑은 바람을 언제나 즐거이 쐴 수 있습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살아도 나무를 널리 누릴 수 있어요. 아파트가 아니라면 나무로 지은 오래된 골목집을 찾아 깃들 수 있고, 마당 있는 작은 골목집 한쪽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집안 살림살이를 나무그릇으로 바꿀 수 있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나무에서 살림을 얻어요. 나무 곁에서 하루를 누려요.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어 주는 나무요, 겨울에는 땔감으로 따스한 불길을 나누어 주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꽃을 주고 가을에는 열매를 주며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는 나무예요.


  마당에 나무 한 그루 크게 서니 ‘우리 집’을 쉽게 알아봅니다. 마당에 선 나무 한 그루는 철 따라 해가 어떻게 움직이며 달라지는가를 잘 알려줍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온갖 멧새가 찾아들어 노래를 부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나비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깨어나요. 애벌레는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번데기를 틀고는 새로운 나비로 깨어나지요. 새는 애벌레를 찾아 나무로 찾아들고, 애벌레는 새한테서 벗어나려고 요리조리 숨듯이 자라다가 나비로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동안 여러 삶을 지켜봅니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 몸이며 키가 자라요. 갓난쟁이 무렵에는 나무 둘레에서 기더니, 어느덧 나무를 타고 오르려 하고, 나무를 타고 오를 만한 나이에는 나무한테 귀를 살며시 대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습니다.


  마실길에 만나는 나무한테 다가섭니다. 나무를 온몸으로 붙잡고 올라 보려 합니다. 숲이나 골짜기나 바닷가에서 만나는 나무가 반가워서 큰 소리로 부릅니다.


  사람은 살림을 지으려고 나무를 알맞게 벱니다. 그러나 나무가 몽땅 없어지도록 베지 않아요. 나무를 몽땅 베어서 숲을 밀다가는 그만 보금자리도 마을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언제나 푸르게 우거진 숲일 적에 사람살이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밥도 집도 주는 나무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는 나무요, 모든 목숨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예요.


  나뭇가지는 장난감 구실을 합니다. 나뭇가지는 바지랑대 노릇을 합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은 널은 징검다리 같은 놀잇감이 되어 줍니다. 나무를 만지는 손에 나뭇결이 스밉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망울에 나뭇빛이 어립니다. 나무하고 함께 노는 몸에 나무내음이 번집니다.


  이리하여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루를 그린 뒤에 나무한테 찾아가서 속삭입니다. 잘 잤니, 오늘은 날이 어떨 듯하니, 오늘도 기쁘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렴, 하고 말을 겁니다. 나무 밑을 걷고, 나무줄기를 쓰다듬습니다. 겨울을 씩씩히 나고 새봄에 터지려는 움을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얼마 앞서 파뿌리를 마당 한쪽에 심다가 어린 유자나무를 만났어요. 지난해일는지 지지난해일는지 유자차를 담고서 유자씨를 밭 한쪽에 뿌렸는데 이 가운데 하나에 싹이 텄나 봐요. 작은 씨에서 깨어난 작은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날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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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일터·쉼터·모임터가 되는 이곳

[시골 살림 도감] 마당



  저희는 도시에서 사는 동안 늘 ‘숲’을 그렸어요. 시골 아닌 도시에 살 적에 숲을 그렸다니 참 바보스러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숲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짙푸르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숲내음을 마시면서 싱그럽고 즐거웁고 튼튼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리라 여겼어요.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그냥 시골’이 아닌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로 즐거운 시골’을 꿈꾸었는데요, 이다음으로 그린 한 가지는 ‘마당’이에요. 우리 집이 숲이 되고, 우리 집에 너른 마당이 있으면 참으로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가만히 그려요. 누구나 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숲바람이 불고, 너른 마당에서 어른은 일하고 아이는 놀면서 살림을 짓는 모습을 그려요. 우리가 어디에서나 이처럼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하루가 되겠지요.


  우리 집 나무는 고이 자랍니다. 고이 자라며 우거지는 나무는 여름에 그늘을 시원하게 베풀고, 겨울에 찬바람을 막아 주어요. 마당에서 나무를 누리면서 햇빛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 여름해와 겨울해가 어떻게 다른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어요. 달력에 적힌 날짜나 절기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하루가 돼요.


  해가 뜨고 지는 자리를 헤아리면서 마당살림을 가꿉니다. 그늘하고 볕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늘 새로운 살림을 북돋아요. 저희 집 마당은 마을에서 그리 안 넓지만 우리 깜냥껏 이 마당을 여러모로 씁니다. 아이한테는 놀이터요, 어른한테는 일터이고, 다 같이 쉼터이면서, 손님이 들면 모임터예요. 밤에는 봄가을 여름겨울 언제나 별을 보는 ‘별터’가 되고, 철마다 향긋한 ‘꽃터’를 이루며, 맛깔스러운 ‘나물터’로 거듭나요.


  놀이터인 앞마당을 아이들은 맨몸으로 빙글빙글 달립니다. 아버지더러 손을 달라 하면서 저희를 꽉 잡고 뱅글놀이를 하자고 부릅니다. 목말을 태워 달라 하면서 아이 손에 안 닿는 높은 나뭇가지를 만지고 싶습니다. 동백꽃이 피면 높다란 곳에 핀 동백꽃을 목말을 타고 보려 해요.


  아이들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소꿉놀이를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돕니다. 작대기를 들고 휘휘 하늘을 젓습니다. 공을 차거나 던집니다. 뒤꼍에서 흙을 퍼서 마당으로 옮긴 뒤 흙놀이를 합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바람개비랑 달려요. 이불을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이불 사이로 살며시 숨는 이불놀이를 해요.


  마당이란 그야말로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춤추거나 노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는 아이나 어른 모두 마음껏 못 걸어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녀야지요. 길에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살피느라 어지러워요. 아이들이 이모나 할머니나 큰아버지를 보고 싶다 해서 도시로 마실을 가면 처음에는 버스도 타고 반가운 얼굴도 봐서 좋아해요. 이러다가 뛰지 말라고, 목소리도 낮추라 하면 아이들이 몹시 힘들어 해요. “얘들아, 여기는 우리 집 마당이 아니란다. 아랫집 사람 옆집 사람이 다들 싫어해.” 하고 타이르면 “노래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해요.


  그러고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목청껏 떠들며 노는 까닭을 알 만해요. ‘마당이 그립기’ 때문일 테지요. 좁은 도시에 갇히듯이 사니까, 그나마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떠들면서 달리고 싶겠지요.


  시골집 마당은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그저 신나게 놀 수 있어요. 그예 느긋하게 일할 수 있어요. 모깃불을 태우고, 나무를 살며시 안으며 속삭여요. 밤에는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해요. 어디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돼요. 마당에서 모두 다 누려요. 어느 모로 보면 우리는 ‘마당겨레’인지 모르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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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림도감'을 새롭게 씁니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쓰려고 생각했으나, 지난해에는 틀하고 차례만 짜 놓았고, 글은 2017년 1월 1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씁니다. 왜 '시골살림도감'을 쓰는가 하는 머리글을 조분조분 적어 봅니다.


+ + +


  《시골살림도감》이라 하니 뭔가 대단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네, 뭔가 대단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는 도시를 씩씩하게 떠나서 시골에서 즐겁게 뿌리를 내리거든요.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으니 2017년에 일곱 해째입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2011년에 태어났으니 일곱 해를 오롯이 시골돌이로 자라요. 큰아이는 2008년에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일곱 해째 시골에서 자라며 어느덧 시골에서 더 오랜 나날을 누리는 시골순이가 됩니다.


  시골살이 일곱 해란 길 수 있고 짧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한테는 아무것이 아닌 나날일 테고, 도시에서만 지낸 분한테는 퍽 긴 나날일 만해요. 저희는 시골살림을 썩 야무지게 한다고 여기지 않으나, 저희 나름대로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새롭게 내딛자고 생각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설프고 투박하고 굼뜨고 못 미덥고 어수룩하고 어리숙하고 얼뜬 살림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살림을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저희 보금자리를 가꾸려고 해요.


  이러면서 시골 이웃님이나 도시 이웃님한테 나즈막하게 이야기를 걸어 보자는 뜻으로 《시골살림도감》을 엮습니다.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을 만하지만, 아주 작거나 수수한 것에서 ‘시골에 뿌리를 내리며 아이들하고 새 하루를 노래하는 숲을 꿈꾸는 배움마당을 짓는 몸짓’을 갈무리하려 해요. ‘귀농·귀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시골에서 즐겁게 살림을 지으며 삶을 배우는 사랑을 어떻게 누려 볼까’라는 마음을 적어 보려 합니다.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만, 참말로 대단한 것이 없기에 시골살림이 아기자기할 만하지 싶어요. 대수로운 것이 없습니다만, 참으로 대수로운 것이 없기에 시골살림이 앙증맞구나 싶어요. 시골 할매나 할배처럼 구수하거나 살갑거나 알뜰하거나 멋스럽거나 포근한 살림이 되자면 저희가 앞으로 이 보금자리에서 ‘할매 할배’ 나이가 되어야 할 테지요? 아장걸음으로 시골살림을 노래해 보려 합니다. ‘일곱살박이 시골 아재’ 이야기를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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