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2.20.


예스러운 책이 새롭게 나왔다. 양주동 님이 쓴 《문주반생기》가 오랜 말씨를 요즈음 옷으로 입혀서 태어났다. 한국말하고 한문하고 일본 한자말하고 영어하고 여러모로 뒤죽박죽인 말씨로 쓴 글인데, 어느 모로 본다면 일제강점기하고 해방을 아우르는 나날은 모두 뒤엉키고 뒤틀리고 흔들리면서 아픈 나날이었으니, 그무렵 지식인으로서 이렇게 뒤죽박죽 말씨를 쓸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이런 어정쩡한 말씨를 오늘날 새삼스레 읽을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이런 어정쩡한 말씨 사이사이에서도 ‘난짝’이라든지 ‘광’이라든지 ‘도하(좋아)’라든지 ‘어렵슈’라든지 ‘여린 코’라든지 ‘가로’ 같은 말마디는 요즈음 쓰는 분이 퍽 드물구나 싶어 새삼스레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1900년대 첫무렵에 살던 숱한 사람들 목소리와 낯빛과 몸짓과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마주할 수 있어 반갑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앞서 이장희, 일본에서 술벗으로 지낸 염상섭, 가난 끝에 숨을 거둔 나도향 같은 이름을 《문주반생기》에서 이녁하고 얽힌 이야기로 적바림한 글이란 참으로 애틋하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2.17.


밥을 지어서 다 차려 놓는다. 겨울이기에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국하고 반찬을 새로 마련한다. 손이 더 가지만 손이 더 가는 대로 아이들이 잘 먹고 따뜻하고 배부르다고 말하니 즐겁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도 이러한 보람을 누리셨을 테고, 먼먼 옛날에도 어버이는 아이 곁에서 이 기쁨을 누리면서 기운을 냈으리라.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만화책 《이누야샤》를 본다. 이제 11권째로 접어든다. 예전에는 해적판으로 읽었기에 책숲집에 있는 《이누야샤》도 해적판인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읽히려고, 또는 열여섯이나 열여덟쯤 되는 나이에 읽히려고 생각하니, 그때에는 이 만화책이 더 안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모두 새로 장만하고 싶지는 않다. 한 권씩 찬찬히 새기면서 되읽고, 권마다 달리 흐르는 이야기를 살핀다. 11권을 마치고 12권으로, 또 13권하고 14권까지 읽어내며 생각한다. 그만 하루에 네 권씩이나 읽고 마는데, 첫 권부터 열네 권에 이르도록 가장 크게 흐르는 이야기는 바로 ‘본다’이다. 무엇을 보느냐를 늘 묻는다. 사람을 보느냐, 요괴를 보느냐, 반요를 보느냐. 사랑을 보느냐, 검은 꿍꿍이를 보느냐, 살림을 보느냐. 마을을 보느냐 검은 뱃속을 보느냐, 겉모습을 보느냐. 새로 지을 앞길을 보느냐, 쳇바퀴 같은 수렁을 보느냐, 어깨동무를 보느냐. 늘 ‘본다’를 풀어낸다. 볼 줄 안다면 눈을 감아도 보고, 마음으로 볼 수 있다면 두려움이란 없이 맑은 숨결로 따사로이 피어나는 꽃송이가 된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 탐조일기
김은미.강창완 지음 / 자연과생태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를 사랑한다면 어디에서든 새를 만나고 노래를 나눈다. 구름을 사랑한다면 어디에서나 구름을 마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책을 사랑한다면, 별을 사랑한다면, 숲을 사랑한다면, 참말 어디에서라도 이 모두를 만나면서 기쁘게 노래를 짓겠지. 제주에서 새를 마주하는 기쁨은 얼마나 클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2.16.


11월 끝자락부터 주마다 두세 곳씩 찾아가서 이야기꽃을 펼치다 보니 고흥집에서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마을 빨래터하고 샘터를 치울 틈을 내기도 만만하지 않다. 새로운 주에도 서울하고 순천으로 이야기꽃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날씨가 살짝 풀렸다 싶은 오늘 빨래터를 치우기로 한다. 맨발로 빨래터에 들어가서 이끼를 걷어야 하기에 반바지를 챙겨서 입는다. 이달 첫무렵만 해도 빨래터를 치우며 그리 춥거나 발이 시리다고 못 느꼈으나, 오늘은 발이 많이 시리고 손까지 언다. 몸살이 아직 안 나았나? 마무리까지 하고서 담벼락에 걸터앉는다. 언손을 녹이려고 한참 겨드랑이에 낀다. 손이 좀 녹았구나 싶어서 《겨울정원》을 편다. 겨울을 겨울답도록, 또 겨울에 새롭도록, 그리고 겨울에 아름답도록 뜨락을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도시에서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다른 빛깔이나 빛결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더욱이 요새는 시골에서마저 겨울빛을 보기가 쉽지 않다. 모조리 갈아엎고 자꾸 시멘트를 씌우며 나무를 베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고흥에 깃든 지 몇 해 안 될 무렵, 네 식구가 겨울들마실을 하는데 곁님이 싯누렇게 마른 억새잎을 보더니 이렇게 멋진 ‘시든 풀빛’을 본 적이 없다며 놀란 적이 있다. 어떤 물감으로도 이 ‘시든 풀빛’을 그리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겨울뜨락이란, 겨울마당이란, 겨울뜰이란, 겨울꽃밭이란, 바로 겨울다운 겨울빛을 나누는 아름다운 쉼터이리라.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2.15.


사진을 찍는 길을 걸으면서 글이 한 줄 두 줄 붙고, 사진하고 글을 여민 책을 하나둘 내면서 어느새 흙살림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르는 《감자꽃》을 만난다.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마을살림하고 사진살림을 가꾸다가,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열어서 새로운 마을살림하고 사진살림을 짓는 김지연 님이 일흔 나이에 선보인 이야기책이 《감자꽃》이다. 나는 전라도에서 살기 앞서까지는 ‘이쁘다’라는 말을 안 쓰고 ‘예쁘다’라는 말을 썼으나, 이제는 ‘예쁘다’라 말하는 일이 드물고 으레 ‘이쁘다’라고만 말한다. 인천에서 살 적에는 ‘허물없다’라는 말만 썼다면 전라도에서 살면서 ‘이무롭다’라는 말이 시나브로 감겨든다. ‘천천히’보다는 ‘싸목싸목’을 살피고 ‘거석하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겨우내 시드는 풀잎이 눈부신 흙빛이 되어 곱살한 12월에 《감자꽃》을 읽을 수 있어서 몹시 즐거웠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