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노래 6 한가을 텃밭에



  가을을 앞두고 강냉이를 심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심어 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따스한 고장인 고흥이다 보니, 한가을에도 강냉이가 익을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노릇이기에, 잘 마른 강냉이에서 스무 알쯤 훑어서 새한테 예닐곱 알을 준 뒤에 나머지를 텃밭에 옮겨심었지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 주었고, 어느새 수꽃도 암꽃도 흐드러지면서 열매가 차츰 굵습니다. 씨앗은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고, 이 작은 씨앗처럼 우리 아이들도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랄 뿐 아니라,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 작고 어여쁜 씨앗이었구나 하고 새롭게 배웁니다.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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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5 걷고 또 걷는 길


  책순이가 마음에 드는 만화책을 두 손에 쥔 채 걷는 모습을 봅니다. 길에서 이처럼 책을 보며 함부로 걷지 말 노릇이지만,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우리 마을 큰길은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동차 걱정을 하는 길이 아닌 하늘을 보고 숲을 느낄 수 있는 길을 누리고 싶어서 시골살이를 합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숲에서 베푸는 냄새를 맡으며, 흙을 밟는 삶을 짓고 싶어서 시골에서 삽니다. 만화책이 더없이 재미있다는 책순이한테, 얘야 책은 집에서 보기로 하고 이 길을 걸을 적에는 하늘이랑 바람이랑 구름을 보아야 하지 않겠니, 하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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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4 달 밝은 밤길에 우리는



  아이들은 걷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다른 놀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걸어도 좋고, 마냥 걸으며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해가 기울어 달이 차츰 밝는 저녁에 아이들이랑 논둑길을 걷다가 아스라하게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도 이런 달밤에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마을길을 천천히 거닐 적에 무척 좋고 기뻤다는 대목이 떠오릅니다. 아무 말이 없어도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과자를 사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함께 걷고, 함께 바람을 마시고, 함께 별빛을 맞아들일 수 있는 나들이가 무척 즐거웠어요. 우리 집 두 아이도 아버지하고 천천히 달 밝은 밤길을 거닐면서 가슴속에 기쁜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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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3 고무신



  나는 2004년 무렵부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그무렵 고무신을 처음 신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새는 고무신 한 켤레에 오천 원인데, 그무렵에는 삼천 원이었고, 몹시 가벼우면서 말랑거릴 뿐 아니라, 틈틈이 빨고 곧 말려서 싱그럽게 신기에 훌륭했어요. 고무신 한 켤레를 열한 달쯤 신으면 닳아서 새 고무신을 샀는데, 다른 어느 신보다 이보다 값이 적게 들지 않는다고 느껴요. 아버지를 따라 두 아이도 고무신 꿰기를 즐깁니다. 아이들도 알 테지요. 고무신이 얼마나 꿰기 쉽고 땅바닥을 깊이 느끼도록 이끌며 빨아서 발을 말리기에도 좋은가를. 우리는 어디에서나 고무신 차림으로 신나게 뛰어놀고 흙을 밟으며 풀내음을 맡습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살림노래/삶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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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노래 2 아이들 목소리로


  언젠가 이 고샅이, 이 마을 어귀가, 아이들 목소리로 가득 울릴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우리 네 식구가 이 마을에 깃든 지 네 해가 되는 동안 이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우리 두 아이만 있고, 이웃 여러 마을에도 아이들 목소리란 명절 언저리나 바쁜 봄가을 일철이 아니고는 없습니다. 이 시골자락에서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이랑 겨울을 두루 누리는 아이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끔 며칠 반짝 찾아왔다가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골바람을 쐬며 시골노래를 부를 싱그러운 아이들 목소리를 꿈꿉니다. 풀을 밟고 나무를 안으며 숲을 가꾸는 아이들 손길을 꿈꿉니다. 4348.10.2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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