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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5. 사진기만 배우니 사진기만 다룬다



  사진을 배우는 사람은 사진을 읽거나 찍는다. 사진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진을 못 읽거나 못 찍는다. 사진을 배우더라도 마음을 기울여서 배우지 않는다면 사진을 제대로 못 읽거나 못 찍는다. 사진을 배우지 못했더라도 마음을 기울여서 둘레를 살필 줄 안다면 사진을 즐겁게 읽거나 찍는다.


  사진기를 배우는 사람은 사진기를 안다. 사진기를 꾸준히 배우는 사람은 사진기를 꾸준히 잘 다룬다. 사진기를 배웠기에 사진을 알지 않는다. 사진기를 꾸준히 다루어서 사진기를 솜씨 좋게 다룬대서 사진을 잘 읽거나 찍지 않는다. 다만, 사진기를 잘 다루든 못 다루든, 마음을 기울여서 이웃을 헤아리거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사랑스레 읽거나 찍는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는 사진을 배우지 않는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는 사진을 배우기 앞서 사진기부터 배운다. 그런데, 지난날에도 이 흐름은 비슷했다. 지난날에도 사진 교육을 하는 자리에서 으레 사진기와 필름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대목부터 가르치기 일쑤였다. 흑백필름에서 존 시스템이 무엇인지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데에 크게 마음을 쏟기는 했어도, 막상 흑백필름으로든 칼라필름으로든 슬라이드필름이로든 대형필름으로든 ‘사진에 무엇을 담는지’라고 하는 대목은 가볍게 지나치기 일쑤였다.


  사진에는 삶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사랑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사람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꿈을 담을 수 있다. 사진에는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단함과 짜증과 울부짖음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고서 사진기부터 배우거나 다룬다면, 젊은 사진가나 늙은 사진가 모두 ‘사진으로 무엇을 할 만한가’를 깨닫기까지 대단히 오래 걸리거나 아예 못 깨닫기 마련이다. ‘사진기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사진으로 무엇을 하느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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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진가 한영수 님 사진책



  사진가 한영수 님 따님인 한선정 님이 이녁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차근차근 추슬러서 사진책을 선보이신다. 올해까지 두 권 나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펴내신다고 한다. 셋째 권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넷째 권이나 다섯째 권은 또 어떤 이야기가 될까? 지구별에서 멀디먼 여러 나라를 찍은 사진이 책으로 나와도 재미있으나, 바로 이곳에서 늘 마주하는 이웃을 담은 사진이 책으로 나올 수 있으면 한결 재미있다. 꼭 멀리 나가야만 사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써 멀리 찾아가야만 사진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모던 타임즈》(2014)는 사진가 한영수 님 스스로 이녁 사진에서 큰 자리로 아로새기려고 했던 이야기라고 한다면, 《꿈결 같은 세상》(2015)은 한영수 님 따님이 이녁 아버지 사진을 갈무리하면서 손수 챙기고 나누어서 빚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른’ 사진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쓰려고 여러 달을 가만히 마음속으로 삭힌다. 2014년에 나온 사진책은 가볍게 느낌글을 하나 썼고, 2015년에 나온 사진책을 이제 곧 새롭게 바라보는 느낌글을 쓰려 한다.


  책상맡에 여러 달 얹은 뒤 틈틈이 다시 읽고 들여다보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1950∼60년대를 가로지르는 어린이 모습이라 할 사진인데, 이 사진에 나온 어린이는 이제 늘그막에 접어든 할매와 할배가 되었을 테지만, 나도 1980년대에 이 사진에 나오듯이 놀았고, 우리 집 곁님도 1990년대에 이 사진에 나오듯이 놀았다. 1980∼90년대로 접어들어 이 모습이 가뭇없이 사라진 고장이나 마을도 있을 테지만, 그무렵에도 이 사진에 나온 모습이 고스란히 흐르던 고장이나 마을이 있다. 더군다나 재미있는 대목을 하나 더 말한다면, 우리 식구가 오늘 살림을 꾸리는 전남 고흥 시골집은 1980년대 끝무렵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오랫동안 비었던 집을 장만해서 들어온 뒤 전기를 새로 끌어들이며 한전 사무소에 갔더니 ‘전기 사용 이력’에 그리 나오더라. 그러니까, 사진은 어디에 있겠는가? 언제나 바로 오늘 이곳에 있다. 다른 어디에서 찾아보려고 하면 사진은 없다. 4348.9.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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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3. 콘트라스트



  《사진의 맛》이라는 책을 읽었다. 영화 ‘녹차의 맛’처럼 일본 말투로 지은 이름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이름을 쓴 한국말 이야기책도 있다. 이는 모두 “무엇の味”와 같은 일본 말투를 무늬만 한글로 고친 꼴이다. 일본 말투로 글을 쓰든 영어로 글을 쓰든 대수로울 일은 없다만, 한국말이 아닌 얼거리로 글을 쓴다면, 이러한 글에 어떤 넋을 담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돌아보아야지 싶다.


  《사진의 맛》이라는 책을 읽으면, 온갖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지 않았다. 이를테면, ‘하이키 톤’나 ‘미들 톤’이나 ‘로우키 톤’ 같은 말을 왜 굳이 영어 그대로 써야 할까? 이만 한 말조차 한국말로 한국사람한테 이야기해 줄 수 없을까? 이런 말을 할 줄 알아야 사진을 아는 셈인가? 이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아마추어인가? 사진강의에서는 이런 말을 배워야 하나?


  우리는 서로 사진을 가르치고 배울 뿐, 영어나 외국말이나 전문용어를 가르치거나 배울 까닭이 없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한테는 이 말도 저 말도 똑같이 낯설 테니, 한국말로 하든 영어로 하든 똑같을는지 모르나, 프로 작가이든 아마추어 작가이든 ‘기계를 잘 못 다뤄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얘기나 ‘말을 못 알아들어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


  ‘콘트라스트’란 뭔가? 아직도 이런 낡은(영어가 낡았다는 뜻이 아니다) 말을 써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초등학생한테 이런 말을 쓰면서 사진을 가르칠 생각인가? 청소년한테 이런 말을 써서 사진을 가르칠 생각인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써서 사진을 가르칠 수 있는가?


  이런저런 굴레와 같은 말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작가이든 비평가이든 교수이든 강사이든 전문가이든, 스스로 굴레에 갇힌 채 사진을 마주할 뿐이다.


  빛을 밝게 다룰 수 있고, 어둠을 밝게 다룰 수 있다. 빛을 어둡게 다룰 수 있고, 어둠을 어둡게 다룰 수 있다. 사진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빌어 “빛에 깃든 숨결(빛결)”을 새롭게 바라본다. “빛에 서리는 무늬(빛무늬)”를 보아야 한다.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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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2. 렌즈 값하고 사진책 값



  사진장비를 새로 바꾸는 사람은 많아도, 렌즈 하나를 덜 쓰거나 사진기 하나를 덜 사면서 사진책을 사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이다. 렌즈 하나를 덜 쓰면서, 이 렌즈 값을 사진책 값으로 쓸 수 있으면, 사진을 바라보는 눈썰미를 훨씬 깊이 느낄 만한데,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


  배우지 않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우려는 몸짓이 없이 무엇을 하려는가.


  여러 가지 사진책을 보아야 꼭 ‘배우는’ 모습은 아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보는 까닭은 ‘배워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는다고 한다면, ‘사진을 아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진한테 다가서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고, 사진과 만나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는다. 사진하고 노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으며, 사진으로 삶을 가꾸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는다.


  이름난 작가가 선보인 사진책을 장만해야 하지 않는다. 이름이 있건 없건 참말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그저 ‘사진책’을 장만하면 된다. 사진책을 장만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렌즈와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은 책’이 뜻밖에 그리 ‘이야기 없이 맨숭맨숭하게 잘 찍은 사진을 자랑하려는 얼거리’인 줄 느낄 수 있다. ‘한두 가지 렌즈와 한 가지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은 책’이 더없이 재미난 ‘이야기가 춤추는 얼거리’인 줄 느낄 수 있다.


  렌즈는 둘이나 셋쯤 있으면 넉넉하다. 렌즈 하나가 망가질 수 있으니, 한둘쯤 넉넉히 있으면 된다. 새를 찍는 사람이라면 아주 커다란 망원렌즈도 있어야 할 테지만, 이런 사진이 아니라면, 내 삶을 즐겁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꽃으로 여미고 싶은 사진이라면, 렌즈는 둘이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 렌즈 하나만 갖고 사진을 찍다가 이 렌즈가 망가지면 새 렌즈를 장만하기까지 사진을 좀 쉬면 된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사진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마음으로 피어오르는 그림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온몸과 온마음으로 삶을 찬찬히 바라보면 싱그러운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기쁨을 새삼스레 노래할 수 있다.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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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01 06:42   좋아요 0 | URL
책 안보는게 아니라 안봐도 너무 안보니 맹탕으로 누르는 셔텨질은 동의 못하겟는걸요.ㅎㅎㅎ총을 조준할 생각도 없이 격발해서 맞추려드는 무모함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게 되죠.카메라 회사들이 아주 좋아하는 유형입니다.ㅎ

숲노래 2015-09-01 06:51   좋아요 1 | URL
사진을 배우려면 사진을 배워야 하지만,
사진이 아닌 사진기만 배우니...
막상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진장비를 높이는(업그레이드) 일밖에 없지 싶어요...

사진강의를 하는 분들도
사진이 아닌 사진기나 사진촬영기술과 사진예술에만
얽매이기 일쑤이고요...
 

사진 없는 사진말

1. 재미난 말 한 마디



  2015년 동강사진축제 워크샵을 어제 마친다. 여러 날에 걸쳐 여러 사진이웃하고 사진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자리에서 여러 사진이웃은 ‘과거 권위에 기대어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란다’면 ‘과거 권위자가 떨어뜨려 주는 떡고물만 받아먹을 수 있다’는 대목을 짚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거나 살피거나 열려고 애쓰면, 언제나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거나 알아차리거나 열어젖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사진기 갖춘 사람이 많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나, 막상 사진책이 안 팔리고 사진밭이 두루 어지럽거나 어설픈 까닭은, 몇몇 ‘우상’을 ‘사진인·사진집단’이 스스로 세워서 이들 언저리에서 떡고물잔치만 벌였기 때문이라까지 말할 만하다고 한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떤 일이든 스스로 바라는 대로 이룬다. 스스로 즐거우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즐겁다. 남이 나를 웃게 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나 책을 자꾸 찾아야 할밖에 없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지을 때에 스스로 새롭다. 대통령이 뭘 해 주거나, 시장이나 군수가 뭘 도와주어야 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도, 내가 스스로 나한테 맞는 책을 살펴서 스스로 읽어야, 내 마음이 살찔 수 있다. 남이 내 책을 알려줄 수 없다. 남이 내 몫을 읽어 줄 수 없다.


  한국 사진밭을 놓고, 나는 한 마디를 보태고 싶다. 한국 사진밭은 ‘내 것’조차 없으면서 ‘네 것’만 쳐다본다. 한국 사진밭은 서양 이론이나 작가나 흐름을 그야말로 종교나 우상처럼 섬기기만 할 뿐, 이녁 스스로 이야기를 일구려 하지 않는다. 롤랑이나 손택은 수많은 ‘글(이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남이 쓴 글에 기대면 내 생각이 자라지 않는다. 남이 쓴 글은 즐겁게 읽고 덮어야 한다. 내가 할 말을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존 버거라든지 필립 퍼키스 같은 분들도 몹시 훌륭하다고 여길 만하기는 한데, 이분들도 수많은 글(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이름을 내려놓고 내 넋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4348.7.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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