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20.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



  사진비평을 하는 분들 가운데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고 외치는 분이 꽤 많다. 이분들이 들려주는 비판을 귀여겨듣고 보면 참으로 그럴 만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는 벌써 오랫동안 불거졌다. 예전에도 이런 목소리는 으레 있었고, 오늘날에도 똑같이 이런 목소리가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이런 목소리는 그대로 있으리라 느낀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면 한 가지를 하면 되리라 본다. 무엇인가 하면, 이런 말을 외치려고 하는 사람 스스로 새로운 사진길을 닦으면 된다.


  다른 작가나 비평가나 출판사나 기획자나 공무원을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지 않아도 된다. 그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그 길이 좋다’고 여겨서 그 길을 갈 뿐이기도 하고, 그 다른 사람들은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모르기’에 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 길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길이 좋다고 하는데 다른 길을 생각할 틈이 없다.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시 말해서, 비판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일은 대단히 쉽다.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고 외치는 일이란 너무 쉬울 뿐 아니라, 이런 말을 외치는 이들은 매체나 언론에 눈길까지 한몸에 그러모을 만하다.


  그냥 조용히 새로운 사진길을 닦으면 된다고 본다. 한국 사진계나 세계 사진계에서 눈길을 끌지 않으면 어떠한가? 서울 한복판에서 사진전시를 못 하면 어떠한가? 이른바 ‘주류 사진계’가 안 되면 어떠한가? 게다가 ‘비주류 사진계’조차 안 되면 어떠한가? 더 나아가서 ‘아무 사진계’마저 없으면 어떠한가?


  학연이나 지연이 너무 뿌리깊어서 얄궂다고 한다면, 돈이 휘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저 그들은 그런 데로 가라 하고, 오늘 이곳에서 작고 수수하면서 활짝 웃는 사랑스러운 사진길을 닦자. ‘비판’ 아닌 ‘창작’이 있으면 된다. 2016.4.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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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9. 그냥 찍기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 하고 묻는 사람한테 늘 “그냥 찍으셔요.” 하고 말한다. 그냥 찍으면서 그냥 즐긴다. 그냥 찍으면서 그냥 나눈다. 그냥 찍으면서 그냥 바라본다. 생각해 보면, 뜨개질도 그냥 해 보면 된다. 밭일도 그냥 해 보면 된다. 밥짓기나 집짓기도 그냥 하면 다 된다. 다만, 하루아침에 되리라 하고 여기면 안 된다. 이것만큼은 안 된다. 하루아침에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얼른 지우고, 그냥 하면 된다.


  그냥 하다가 며칠 만에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 해를 하거나 열 몇 해를 하면서 저절로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냥 즐겁게 하면서 삶을 곱게 지을 수 있다.


  누구한테서 배워야 잘 하지 않는다. 누가 가르쳐 주어야 잘 할 만하지 않다. 곁에 달라붙어서 이렇게 가르치거나 저렇게 이끌어야 비로소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잘 해내지 않는다. 꼬치꼬치 도움말을 들려주어야 밥을 잘 짓지 않는다. 그냥 스스로 맛나게 먹으려는 마음으로 스스럼없이 지으면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할까? 그냥 사랑하면 되지.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그냥 일어난다. 억지로 세우지 않는다. 마음이 맞는 두 사람도 그냥 서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짝꿍이 된다. 어거지로 끌어당길 수 없고, 함부로 잡아당기지 못한다.


  ‘그냥’이라는 말, 참 쉽다. 그리고, 사진도 삶도 살림도 무엇도 그냥 쉽게 하면 된다. 우리는 예술가로 태어나야 하지 않고, 우리는 작품을 꾸며야 하지 않다. 우리는 ‘사진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냥 나’로 있으면 된다. 그저 그대로, 고이 그렇게, 고스란히 그 결로 살아가고 살림하며 노래하는 마음이 될 때에, 어느새 사진이 태어나고 글이 태어나며 그림이 태어난다. 사랑도 꿈도 그냥 포근히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피어난다. 그러니, 첫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하셔요.”라는 말을 할밖에 없다. 네, “그저 그냥 해 보셔요. 그러면 다 됩니다.” 2016.4.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넋/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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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8. 따사로운 노래처럼



  사진책 한 권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긴다. 어떤 목소리를 외치는 사진이 실린 사진책을 보면 어떤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예술을 드러내는 사진이 실린 사진책을 보면 어떤 예술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드높이려고 하는 사진에서는 목소리를 느끼고, 예술을 펼치려고 하는 사진에서는 예술을 느낀다.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을 담은 사진이 실린 사진책을 보면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가시내나 사내를 멋들어지도록 선보이려는 사진이 실린 사진책을 보면 가시내나 사내를 멋들어지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숨결로 찍은 사진에서는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끼고,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려는 사진에서는 멋들어진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손길을 느낀다.


  더 나은 사진이나 덜 나은 사진은 없다고 느낀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고 여겼으니까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려 한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예술을 하고 싶으니까 예술이 출렁이는 사진을 선보이면서 ‘예술가’가 되려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좋아하는 사진이 갈리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어떤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진이 ‘좋은 보도사진’이라고 여긴다. 누군가는 어떤 예술을 드날리는 사진이 ‘좋은 예술사진’이라고 여긴다. 누군가는 가시내나 사내를 멋들어지게 보여주는 사진이 ‘좋은 패션사진’이라고 여긴다.


  나는 이 사진도 저 사진도 함께 놓고 바라보다가 어느 사진책 하나를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왜 어느 사진책 하나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는가 하면, 이 사진을 빚은 사람은 이녁 곁에 있는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숨결로 한 장 두 장 알뜰히 찍어서 그러모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오래도록 지켜보고 보살피면서 찍은 사진이기에, 이러한 사진을 보는 나도 오래도록 사랑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결같이 따사로운 노래처럼 흐르는 사진을 볼 적에는 참말 ‘따사로운 노래’가 이 사진 한 장에 깃들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면 넉넉하다. 2016.3.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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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진비평 없는 사진잡지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는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은 뒤 덮는다. 두 달째 사진비평이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이런 사진잡지를 구태여 정기구독을 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이제 우리 사진책도서관에서는 구독을 끊어야겠다.


  ‘사진비평’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비평하는 일이 사진비평이고, ‘비평’이란 ‘말하기’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말하는 이야기”가 없는 사진잡지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진잡지는 무엇을 다루었는가? 전시회 소식을 다루었고, 전시회에 걸린 작품을 다루었으며, 전시회를 연 사람들을 만난 전문가 생각을 다루었다.


  전시회를 다루는 일은 사진비평인가, 아닌가? 전시회 다루기는 ‘전시비평’이다. 그리고, 전시회라고 해서 모두 ‘사진전시’를 하지 않는다. 설치예술 전시도 하고, ‘사진 매체를 빌어서 예술을 그리려고 하는’ ‘예술작품 전시’도 한다. 그러니까, 사진을 사진으로서 마주한 사진을 다루는 이야기는 빼놓고서, ‘전시’하고 ‘예술’을 다루는 이야기만 흐르고 마는 오늘날 사진잡지라고 하겠다. 이달치 그 사진잡지를 보니, 여기에 ‘디자인’을 더 다룬다. 그래서 ‘설치작품 전시 + 예술 + 디자인’, 이렇게 세 가지를 다루는 사진잡지가 되는 셈이다.


  왜 사진잡지에서 사진을 다루지 않을까? 오늘날 전문가하고 작가는 ‘사진가’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손에 사진기를 쥐었’어도 ‘아트’나 ‘예술’을 하고, 사진기를 빌어서 ‘설치예술 기록’을 하거나 ‘설치예술 표현’을 한다. 이러면서 사진비평가였던 이들조차 ‘사진비평’은 그만두고 ‘전시비평’하고 ‘예술비평’으로 돌아선다.


  문학잡지에서 문학을 비평하지 않으면 문학잡지가 될까? 문학잡지도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얼마든지 비평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잡지는 ‘창작하는 문학’하고 ‘비평하는 문학’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잡지는 ‘창작하는 사진’이나 ‘비평하는 사진’이 아니라 ‘예술하는 몸짓’하고 ‘예술하는 비평’만 흘러넘친다. 434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비평/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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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사진말

16. 입체예술인가 설치예술인가



  ‘사진기’로는 사진만 찍을 수 있지 않다.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온갖 놀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기로로 하는 온갖 놀이라면 ‘사진놀이’가 된다. 사진기를 빌어 입체예술을 할 수 있고, 설치예술을 할 수 있다. 이때에 우리가 잘 알아야 할 대목은 사진을 빌어서 예술을 한다면, 이때에는 ‘사진이 아닌 예술’이다. 예술을 하면서 이를 예술이 아닌 ‘사진’이라 할 수 없다.


  사진잡지 《포토닷》 2016년 1월호를 보니, 지난 한 해에 걸쳐서 어떤 사진전시가 있었는가를 죽 돌아보는 데에 자리를 무척 많이 썼다. 《포토닷》에서 갈무리한 사진전시를 죽 살피니 이러한 전시가 ‘사진전시’라는 이름을 걸었을는지 모르나, 아무래도 거의 모든 전시는 ‘사진’전시가 아니라 ‘예술’전시라고 해야 옳은 노릇이리라 본다. 이른바 입체예술이나 설치예술을 하는데, 이를 놓고 어떻게 ‘사진’이라 할 수 있을까? 사진을 찍어서 하는 전시가 아닌데, 왜 사진잡지에서 이런 전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할까?


  사진하고 동영상은 다르다. 사진하고 영화는 다르다. 사진하고 그림은 다르다. 사진하고 미술은 다르다. 사진하고 예술은 다르다. 어느 한쪽이 더 높지도 낮지도 않다. 그저 다른 갈래일 뿐이다. 예술가이기를 바라면서 손에 사진가를 들었으면, 이이는 사진가 아닌 예술가이다. 연필을 들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연필을 들고 만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연필로 얼마든지 예술을 할 만하다. 연필로도 멋지게 입체예술이나 설치예술을 할 수 있다.


  사진을 말하거나 다루는 잡지라면 이런 대목을 똑똑히 갈라서 짚어야 할 노릇이라고 본다. 사진비평을 하는 사람도 ‘사진을 비평’할 노릇일 뿐, ‘입체예술 비평’이나 ‘설치예술 비평’은 제발 그만둘 노릇이라고 본다. 예술비평을 하면서 이러한 비평에 ‘사진비평’이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니, 젊은 작가도 스스로 사진가인지 예술가인지 헷갈리다가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자리에서 어설픈 입체품이나 설치품을 빚느라 바쁘다. 사진가는 사진가이지 ‘프로그래머’나 ‘포토샵 전문가’가 아니다. 4349.1.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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