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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 눈과 기저귀와 빨래



  전남 고흥은 무척 포근한 고장입니다. 겨울에 눈을 구경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주 드물게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날이 있는데, 아기 기저귀를 빨아서 너는 겨울날, 눈 오는 소리를 미처 못 들은 탓에 기저귀가 눈을 맞으면서 얼어붙습니다. 아차 싶지요. 얼어붙은 빨래를 으짜노, 하고 생각하다가 ‘언 빨래는 언 빨래’라고 여기면서 사진 한 장 찍자고 마음을 바꿉니다. 언 빨래를 집안으로 들여서 녹이기 앞서, ‘눈 맞는 기저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삶을 노래해 보라는 하늘나라 뜻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4348.6.2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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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 논그림자, 아니 논그림



  이웃마을 논에 느티나무 그림자가 생깁니다. 아니, 그림자라기보다는 그림이 생깁니다. 찰랑찰랑 물이 가득 찬 논에 느티나무 그림이 드러납니다. 숲정이가 자취를 감추더라도 마을에 한 그루쯤 큰나무가 남으면, 이 나무는 이럭저럭 살아남아서 그늘을 베풀고 길잡이 구실을 합니다. 논에 드리우는 느티나무 그림은 저물녘 보드라운 햇살이 그립니다. 고요히 잠든 바람도 함께 그리고, 논물에서 함께 사는 조그마한 벌레가 다 같이 그립니다. 때에 따라 바뀌고 날마다 달라지는 그림에 푸른 냄새가 가득 흐릅니다. 4348.6.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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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3. 입에 들어가는 밥



  곁님이 빚은 빵을 먹습니다. 한손으로 쥐어 입에 쏙 놓으면 냠냠짭짭 아 맛있네 하고 즐겁습니다. 빵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언제나 맛나게 먹습니다. 즐겁게 먹으면서 몸을 살찌웁니다. 날마다 새롭게 밥을 짓고, 언제나 새롭게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오늘은 뭘 먹었고 어제는 뭘 먹었는가 하는 대목을 굳이 적어 놓지 않습니다. 따로 적어 놓지 않아도 몸은 이를 다 알고, 마음은 이를 다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몸에는 즐거운 기운이 감돌고 마음에는 기쁜 숨결이 흐릅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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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2. 네 손에는 늘 장난감 자동차



  작은아이 손에는 늘 장난감 자동차가 들립니다. 아버지 손에는 늘 사진기하고 연필이 들립니다. 큰아이 손에는 으레 연필이 들립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짓고 싶은 삶에 따라 손에 연장을 쥡니다. 때로는 맨손으로 삶을 짓기도 할 테지요. 어느 날은 호미를 쥐느라 사진기를 내려놓고, 어느 날은 부엌칼이랑 도마를 쥐느라 연필을 내려놓습니다. 어느 날은 빨래비누를 쥐느라 사진기를 내려놓고, 어느 날은 공을 쥐고 아이들하고 노느라 연필을 내려놓습니다. 아무튼, 작은아이는 한손에 장난감 자동차를 쥐고 웃습니다. 노래하지요. 사랑스레.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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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 도랑에 안 처박힌 사진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마실을 하던 어느 저물녘입니다. 옛날에는 작은 도랑이었을 테지만, 시멘트로 크게 발라서 시냇물처럼 된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데, 저물녘 햇살이 우리 자전거를 비추면서 둑길 건너편에 그림자를 빚습니다. 문득 이 그림자를 알아채고는 사진으로 찍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 안 넓은 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저물녘 그림자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다가 도랑(또는 시냇물)으로 굴러떨어질 뻔했습니다. 아차차. 사진 한 장 찍으려다가 아이들하고 도랑에 처박힐 뻔해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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