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105. 유자알, 유자씨



  우리 집 뒤꼍에서 유자알을 땄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땄어요. 이 유자알을 아이들하고 함께 헹구고 나서는 함께 마당에서 평상에 앉아서 유자알을 다듬었지요. 나는 유자알을 다듬고, 두 아이는 내 곁에서 조잘조잘 소꿉놀이를 하면서 놀아요. 두 아이는 마냥 놀기만 하지만, 나는 아이들 놀이짓이랑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새롭게 기운이 나서 유자씨를 살뜰히 훑어서 유자차를 담급니다. 손이 많이 가고 손목이 저리면서 등허리가 결리는 일이지만, 이쁘장한 유자씨를 이쁘게 쳐다보면서 칼을 놀립니다. 이렇게 유자를 썰고 다듬고 씨를 추려서 유리병에 담근 지 두 달 만에 아주 맛나게 ‘우리 집 유자차’를 느긋하게 누립니다. 4349.1.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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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4. 아버지한테 선물



  자전거를 몰고 숲마실을 간 시골순이는 붉나무 잎이 곱다면서 자꾸자꾸 뜯고 또 뜯습니다. 이렇게 붉나무 잎을 한손 가득 뜯은 뒤에 시골순이가 보기에 가장 곱구나 싶은 잎을 건넵니다. “자, 아버지, 선물.” 아이는 저 스스로 가장 곱다고 여기는 것을 선물로 줍니다. 나는 아이한테 가장 곱다고 할 만한 것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 네가 부채처럼 들고 놀아.” 하면서 돌려줍니다. 나로서는 아이한테 마음을 받을 수 있으면 넉넉하고, 나도 아이한테 마음을 줄 수 있으면 기쁩니다. 오늘 이곳에서 함께 짓는 삶이랑 살림이야말로 더없이 고운 선물입니다. 4349.1.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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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3. 맨발로 흙놀이



  흙놀이를 하고 싶은 아이들은 소꿉 그릇을 들고 마을 곳곳을 돌면서 흙을 퍼다 나릅니다. 뒤꼍이나 텃밭에도 흙이 있지만, 가까이 있는 흙보다는 마을 한 바퀴를 빙글빙글 맨발로 돌면서 흙을 조금씩 퍼서 마당 한쪽에 쏟습니다. 그러고는 찬바람이 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맨발에 맨손으로 흙놀이를 합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들처럼 흙놀이를 했고, 나를 낳은 어버이도 틀림없이 오늘 이 아이들처럼 흙놀이를 했겠거니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모두 씩씩하게 흙을 만지면서 자랐을 테고, 이 흙내음을 온몸으로 아로새기면서 흙살림을 짓는 멋지고 씩씩한 시골지기로 살았을 테지요. 434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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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2. 망가진 세발자전거를 타고



  두 아이가 신나게 타고 놀던 세발자전거가 망가져서 더는 굴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는 곧잘 ‘망가진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놉니다. 작은아이는 ‘망가진 세발자전거’에서 손잡이랑 앞바퀴 있는 쪽을 외발수레처럼 밀면서 놀고, 큰아이는 뒷바퀴랑 안장이 붙은 쪽을 타면서 두 발로 바닥을 쿵쿵 찧고 뛰면서 놀아요. 두 아이가 탈 새 자전거를 좀처럼 장만해 주지 못하는데, 두 아이는 망가진 세발자전거로도 씩씩하게 놀아 주니 여러모로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이 멋진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반가우면서 사랑스럽고 재미난 사진님(사진모델)이 되어 줍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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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01. 늦가을비



  겨울에 오는 비는 온 들과 숲을 고요히 잠재웁니다. 봄에 오는 비는 온 들과 숲을 푸릇푸릇 보듬습니다. 여름에 오는 비는 온 들과 숲을 싱그럽게 살찌웁니다. 가을에 오는 비는 온 들과 숲을 어떻게 할까요? 첫가을에는 스산하면서도 아직 보드랍고 따순 비라면, 한가을에는 오들오들 살짝 추우면서도 하늘을 씻고 못을 채우는 비입니다. 그리고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이제 곧 겨울이라는 대목을 알려주면서 온 들하고 숲에서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않은 풀을 꽁꽁 얼리면서 얼른 사그라들라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차디차면서도 싯누렇고 발그레한 빛이 퍼지는 늦가을비 노래입니다. 434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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