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81 새책



  책을 조용히 즐기는 길을 가리라 생각하면서 살다가 서른 살을 앞두고 손수 쓴 책을 처음으로 내놓습니다. ‘손수 쓴 꾸러미’는 제법 많습니다만, 따로 책집에 안 넣었어요. 열 해 남짓 혼책(독립출판물)을 즈믄(1000) 가지 즈음 엮어서 둘레에 나누기만 할 뿐 ‘값을 붙인 새책’에는 마음이 없었어요.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선보였는데, 몇 해 동안 여러 펴냄터에서 책을 내자고 다가온 말을 다 뿌리치고서 숲책(생태환경책)을 여미는 작은 펴냄터를 살펴서 내놓았어요. 책을 내며 글삯을 안 받았어요. 되레 책을 잔뜩 사서 나라 곳곳 책집지기님한테 하나씩 건네었어요. 어제를 읽는 헌책은 모레로 가는 새책인 줄 배웠으니, 더 신나게 배우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낱말책을 펴면 ‘신간·신서·근간’ 같은 한자말은 버젓이 싣되, ‘새책’처럼 수수한 우리말은 아직도 안 싣습니다. ‘헌책’은 진작부터 실었어요. 헌책집(헌책방)은 붙여쓰기인데 새책집(새책방)은 ‘새 책집’처럼 띄어쓰기를 해야 할까요? 새내기 같은 새책입니다. 새길을 밝히는 새책집입니다. 오랜 손길을 되새기는 헌책이요, 오래오래 빛날 이야기로 이어가는 길목인 헌책집입니다. 하늘빛을 품고, 하늘바람을 마시면서, 하늘노래를 부르는 책입니다.


새책 : 아직 안 쓴 책. 아직 손길을 안 타고 안 읽혀서 새로운 책. 사람들 손길이 타거나 읽혀서 이야기를 북돋아 주기를 기다리는 책. 오늘 우리가 손길을 새롭게 뻗어서 받아들이고 마음을 빛낼 만한 책. 새책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책이자 낯선 책이자 설레는 책이자, 앞으로 나아가도록 길동무가 될 책. (← 신간, 신간서적, 신서, 근간)


헌책 : 이미 쓴 책. 손길을 타서 읽힌 뒤에 새롭게 읽힐 책. 사람들 손길을 돌고돌면서 새삼스레 읽혀 옛빛에서 새빛을 얻도록 잇는 책. 오늘 우리 손길을 새롭게 받아서 빛나는 오래된 책. 헌책은 만진 책이자 손길을 탄 책이자 읽힌 책이자 하늘빛을 품은 책. (= 손길책·손빛책 ← 고서, 중고서, 중고 도서)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80 뜻글



  한글은 ‘소리글’이라고 하고, 온누리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글·그림·그리다·그릇’은 뜻이 맞물립니다. ‘말·마음·맑다·마을’도 뜻이 맞물려요. 소리는 같되 뜻이 다른 ‘눈(보는눈)·눈(눈송이)·눈(잎눈·꽃눈)’이 있고, ‘배(배꼽)·배(배나무)·배(거룻배)’가 있어요. 이밖에도 소리는 같으면서 뜻이 다른 ‘쓰다·차다·거르다·바르다·고르다’ 같은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나라 한글이 소리글이기만 하다면 “소리는 같되 뜻이 다른 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한글은 소리글이면서 뜻글이라고 느낍니다. ‘ㅏ’하고 ‘ㅓ’도, ‘ㅣ’하고 ‘ㅡ’하고 ‘·’도 소리일 뿐 아니라 뜻이 깃들어요. ‘하늘·한·해·함께·하얗다·하나’도 소리일 뿐 아니라 뜻입니다. 한글은 ‘뜻소리글(뜻글 + 소리글)’이라 해야 올바르리라 봅니다. 그리고 숱한 이웃말(외국어)도 그저 소리만 담는다고 하기 어렵고, 한자도 뜻만 담는다고 하기 어려워요. 한글은 뚜렷하게 뜻소리글이요, 이웃글도 여러모로 뜻글이면서 소리글입니다. 모든 말은 말밑(어원)을 캐노라면 뜻글로만 매기거나 소리글로만 여기기 어려워요. 우리는 마음에 씨앗으로 심을 생각을 담아내려고 말을 했고, 이 말을 그려서 글입니다.


ㅅㄴㄹ


뜻글 (뜻 + 글) : 뜻을 그대로 담거나 옮기거나 나타내려는 모습이나 무늬인 글. (= 뜻글씨. ← 표의문자, 표의자)


소리글 (소리 + 글) : 소리를 그대로 담거나 옮기거나 나타내는 글. (= 소리글씨. ← 표음문자, 표음자)


뜻소리글 : 뜻을 그대로 담거나 옮기거나 나타내려는 모습이나 무늬이면서, 소리까지 그대로 담거나 옮기거나 나타내는 글. (= 뜻소리글씨. ← 표의표음문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79 노래그림꽃



  저는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바보였습니다. 이른바 ‘가락바보·노래바보·소리바보’였어요. 요즈음에는 이 바보굴레를 얼마나 씻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락을 못 맞추고 노래가 엉성하고 소리를 못 가누곤 했어요. 하도 바보스럽다고 놀림을 받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벙긋하지 못 하기 일쑤였지만, 남몰래 가락을 익히고 노래를 가다듬고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았어요. 혼자서 살아갈 적에는 바보스러움을 꽁꽁 숨기기 쉬웠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숨길 수 없어요. 둘레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고 함께 춤춥니다. “이봐, 이녁 아이들이 자네 가락바보·노래바보를 배우겠어!” 하고 끌탕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데, “사랑스럽네요. 어버이가 노래를 못 불러도 아이들은 노래를 잘 부르기도 하더군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을 물려받더군요.” 하고 들려주는 사람이 곧잘 있어요. 아이들한테 입으로 노래를 불러 주다가, 이제는 손으로 노래(시)를 써서 건넵니다. 이러면 아이들은 어버이 노래에 그림을 척척 붙여요. 우리는 함께 지은 ‘노래그림’으로 이따금 ‘노래그림꽃’을 엽니다. 노래는 그림으로 녹아들고, 그림은 노래로 스며들어요.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마당입니다.


ㅅㄴㄹ


노래그림꽃 (노래 + 그림 + 꽃) : 노래·시·글하고 그림을 나란히, 또는 노래·시·글 곁에 그림을 나란히 담아서 보이거나 펴거나 나누는 자리. (= 노래그림빛·노래그림마당·노래그림잔치·글그림꽃·글그림빛·글그림마당·글그림잔치 ← 시화전詩畵展)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말넋/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2022.11.3.

곁말 78 포근뜰



  남녘에서는 ‘뜰’만 맞춤길에 맞다고 여기고, 북녘에서는 ‘뜨락’만 맞춤길에 맞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뜰·뜨락’을 나란히 우리말로 사랑하면서 돌볼 적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집 곁에 가볍게 ‘뜸(틈)’을 두어 풀꽃나무를 가꾸는 자리가 ‘뜰·뜨락’이에요. 처음은 수수하게 뜰이거나 뜨락입니다. 어느새 꽃뜰·꽃뜨락으로 피어납니다. 이윽고 들꽃뜰·뜰꽃뜨락으로 자라나더니, 바야흐로 풀꽃뜰·풀꽃뜨락을 이룹니다. 누구나 푸른뜰을 누릴 적에 삶이 빛날 테지요. 저마다 푸른뜨락에서 햇볕을 머금고 바람을 마시고 빗방울하고 춤출 적에 하루가 신날 테고요. 우리 삶터가 포근뜰이라면 서로 아끼는 눈빛이 짙다는 뜻입니다. 우리 터전이 포근뜨락이라면 스스로 사랑하면서 부드러이 어울린다는 소리입니다. 풀씨는 흙 한 줌이면 푸릇푸릇 깃들어요. 꽃씨도 흙 한 줌이면 방긋방긋 돋지요. 나무씨는 흙을 조금 넉넉히 품을 수 있으면 무럭무럭 오릅니다. 개구리가 보금자리 곁에서 살며 노래를 들려줍니다. 풀벌레가 풀잎에 앉아 그윽하게 노래합니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새벽을 알리고 밤을 아늑하게 맞이하도록 속삭입니다. 앞뜰은 들꽃한테 내어주고 뒤뜰은 나무를 품어 볼까요. 옆뜰은 나물밭으로 삼으면 되겠지요.


ㅅㄴㄹ


포근뜰 (포근하다 + 뜰) : 풀꽃나무를 심거나 가꾸어 포근하게 이루거나 돌보거나 누리는 뜰. 살림이나 어떤 일을 포근하게 이루거나 하거나 펴는 자리. (= 꽃뜰·들꽃뜰·풀꽃뜰·푸른뜰. ← 화원(花宛), 정원(庭園), 별세계, 별천지)


뜰(뜨락) : 1. 집에 함께 있는 반반한 땅. 풀꽃나무를 심어서 가꾼다. 2. 살림이나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거나 펴는 자리.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2022.10.29.

곁말 77 깨비잔치



  우리가 누리는 잔치는 예부터 시골에서 마을을 이루면서 오순도순 지내는 사이에 하나둘 마련했습니다. 설이나 한가위를 비롯해 다달이 여러 잔치가 있고, 철눈(절기)마다 철빛을 헤아리면서 마음결이나 몸짓을 가다듬었어요. 시나브로 시골사람이 줄고 시골마을이 사라지기까지 하면서 ‘잔치’를 마련하거나 나누는 뜻이 잊힙니다. 오늘날 설이나 한가위는 ‘서울에서 시골까지 북새통인 길을 뚫고 겨우 찾아가서 얼굴을 슬쩍 보고는 다시 서울로 북새통을 가로지르며 돌아가는 날’쯤으로 여깁니다. 설놀이나 한가위놀이를 하는 사람은 드물고 모두 잊어버렸구나 싶어요. 겨울에 날개(연)를 띄운다거나 얼음을 지친다거나 눈을 뭉치는 놀이를 마을에서 안 해요. 봄에 멧자락으로 나물하고 봄꽃을 훑으러 바구니를 끼고서 노래하며 마실하는 살림도 이제는 없다시피 해요. 섣달에 ‘섣달잔치(크리스마스파티)’를 하고, 한가을에 ‘깨비잔치(핼러윈파티)’를 하고, 새해첫날 쇠북(종)을 울리기는 한다는데, 우리 살림살이를 이루는 풀꽃나무하고 숲을 기리려고 고요히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마음하고는 사뭇 멀어요. 서울·큰고장 한복판에서 으레 술잔치로 사람물결을 이루는 노닥판으로 바뀌었지요? 깨비를 쫓으려는 깨비잔치라는 하늬잔치(서양축제)인데요.


ㅅㄴㄹ


깨비잔치 (깨비 + 잔치) : 깨비 같은 차림새를 하고서 하루를 고요하면서 즐겁게 보내는 잔치. 옛 아일랜드인 켈트(Celt) 사람들이 한가을로 접어드는 11월 1일을 ‘하늘에 있는 모든 거룩한 사람’을 기리려는 뜻으로 여는 잔치(Samhain)를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 넋은 산 사람 몸에 한 해 동안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기에, 산 사람 몸에 죽은 사람 넋이 못 들어오도록 이날으 맞이해서 깨비 차림을 하면서 궂은땜을 해왔다고 한다. (= 깨비날·깨비마당·깨비놀이. ← 핼러윈데이, 핼러윈축제, 할로윈데이)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목숨을 잃은 젊은넋을 고이 기립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아늑히 쉬소서.
마을빛도 숲빛도 잃은 서울나라로 치닫도록
모든 나이든(어른이 아닌) 사람이 잘못한 탓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