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71 글눈



  가난하거나 못 배운 사람을 나무라거나 깎아내리거나 비아냥대거나 놀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탓에 누가 돈을 조금 쥐어 주면 헤벌레 넋이 나간다고 지청구를 하는데, 돈이 많은 이들은 돈냄새를 맡고서 쉽게 휘둘리는 터라 사람빛이 없다고 지청구를 할 만할 텐데요? 못 배운 탓에 누가 옆에서 무어라 쑤석거리면 쉽게 춤춘다고 꾸짖는데, 많이 배운 터라 슬슬 빌붙을 뿐 아니라 얄궂게 구멍을 내어 빠져나가거나 뒷짓을 일삼기 일쑤 아닐까요? 가난해서 나쁘거나 가멸차서 나쁘지 않습니다. 못 배워서 모자라거나 많이 배워서 모자라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가난하거나 못 배웠어도 마음을 곧게 세운 사람은 한결같이 푸르고 아름다워요. 가멸차거나 많이 배웠어도 마음을 시커멓게 먹은 사람은 노상 지저분하고 사납지요. 우리가 어진 눈빛이라면, 가난하거나 가멸찬 겉모습으로 사람을 안 따집니다. 우리가 슬기로운 눈망울이라면, 못 배웠건 많이 배웠건 이런 허울로 사람을 안 가릅니다. 글을 많이 읽기에 글눈을 틔우지 않습니다. 마음을 틔우고 생각을 가꾸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글 한 줄이나 책 한 자락 안 읽었어도 온누리를 올바로 일구는 아름다운 손길로 살림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글눈 (글 + 눈) : 글을 읽거나 쓰거나 다루거나 헤아리거나 알거나 살피거나 다듬거나 돌보는·돌볼 줄 아는·돌보려는 눈, 또는 글로 그리거나 나타내거나 밝히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주는·알릴 줄 아는·알리려는 눈. (= 글눈길·글눈빛 ← 문장력, 문재, 글재간, 언어력, 언어능력, 표현력, 독해력,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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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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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70 바다빗질



  어릴 적 살던 인천에서는 바닷가를 보기가 만만하지 않았어요. 쇠가시울타리가 높고 길게 뻗었거든요. 개구멍을 내어 드나들었고, 가까운 영종섬으로 배를 타고 갔습니다. 뻘바다는 모래밭이 적으니 먼곳에서 물결에 쓸려온 살림을 구경하는 일은 드뭅니다. 모래밭이 넓은 곳에서는 물결 따라 쓸린 살림이 많아요. 때로는 빈병이, 조개껍데기가, 돌이, 쓰레기가 쓸려옵니다. 어느 나라부터 물결을 타고 머나먼 길을 흘렀을까요. 우리나라부터 흘러갈 살림이나 쓰레기는 어느 이웃나라 바닷가까지 나들이를 갈까요. 바닷가 사람들은 으레 줍습니다. 살림이라면 되살리도록 줍고, 쓰레기라면 치우려고 줍습니다. ‘해변정화’ 같은 어려운 말은 몰라도 바닷가를 빗질을 하듯 찬찬히 거닐면서 물결노래를 듣는 하루를 건사합니다.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빗질을 하며 가지런하고 티끌을 떨어냅니다. 바닷가를 다독다독 어루만지면서 깔끔하며 싱그러이 보듬습니다. ‘바다빗질’을 하듯 ‘숲빗질’이나 ‘하늘빗질’을 할 만합니다. 빗을 놀리니 빗질이고, 비(빗자루)를 놀리면 비질입니다. 스웨덴이란 먼나라에서는 ‘플로깅’을 한다면, 우리는 ‘골목빗질·마을빗질’을 할 만해요. 들도 냇물도 찬찬히 빗질하고, 마음이며 생각도 천천히 빗질해요.


바다빗질 (바다 + 비 + ㅅ + 질) : 바닷가를 빗질하는 일. 물결에 밀려서 바닷가에 쌓인 것을 빗질을 하듯이 줍거나 치우는 일. 바닷가에 밀려든 쓰레기를 빗질을 하듯 깔끔하게 줍거나 치우는 일. (← 비치코밍beachcombing, 해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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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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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69 멧채



  멧자락에 호젓하게 살림칸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글우글 모이기를 꺼리고, 북새통을 이루는 커다란 고을보다는 풀꽃나무하고 동무하면서 새랑 숲짐승하고 이웃하려는 매무새로 보금자리를 가꾸려는 마음입니다. 작게 세우는 ‘멧집’에는 멧짐승이 슬몃슬몃 찾아와서 기웃기웃하겠지요.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다리를 쉬고 숨을 돌리는 조그마한 칸이 있습니다. 멧자락에서라면 바위에 걸터앉아도 즐겁고, 그저 흙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도 홀가분합니다. 다만 조금 더 느긋이 머물면서 몸을 달랠 만한 바깥채를 조촐히 꾸려놓는 ‘멧터’이자 ‘멧쉼터’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멧채’를 일구면서 조용히 살아간다면 푸른별은 매우 아늑하면서 따사로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맞게 떨어져서 멧살림을 한다면, 부질없는 총칼(전쟁무기)을 만들 까닭이 없고,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우두머리(권력자)란 태어날 일이 없어요. 벼슬이나 감투를 놓거나 다투거나 뒷돈이 오가는 말썽거리란 싹 사라질 만합니다. 오늘 우리는 멧빛을 스스로 잊으면서 잃기에 무시무시하게 치고받거나 다툴는지 몰라요. 오늘 우리는 서울을 자꾸 키우는 길은 멈추고서, 멧숲을 푸르게 보살피며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 비로소 포근살이를 이루리라 봅니다.


멧채 (메 + ㅅ + 채) : 멧골·멧자락에 짓거나 세운 집. 멧골·멧자락에 짓거나 세워서 지내는 곳. 멧골·멧자락에 짓거나 세워서 사람들이 오가며 쉬는 곳.

(= 멧집·멧터·멧쉼터·멧쉼뜰·멧쉼채 ← 산막山幕, 산가山家, 산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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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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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꽃 2022.7.4.

곁말 66 깃공



  몸을 쓰며 놀기를 즐기다가 글쓰기·그림그리기에 온마음을 쏟는 큰아이요, 의젓하게 몸을 쓰며 놀기를 즐기는 작은아이입니다. 한배에서 나왔어도 다른 두 아이를 바라보던 어느 날 ‘배드민턴’을 우리 집 마당에서 누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하고 언니랑 자주 배드민턴을 했어요. 혼자서 할 수 없으니 “하자, 하자, 같이 하자?” 하고 늘 졸랐어요. 아이들하고 읍내에 가서 ‘채’랑 ‘공’을 장만하는데, 두 아이 모두 처음인 놀이라 ‘배드민턴·셔틀콕’이란 영어를 못 알아듣습니다. “깃털로 엮은 공을 ‘셔틀콕’이라 하고, 셔틀콕을 서로 치고 넘기는 놀이를 ‘배드민턴’이라고 해.” 하고 말할 수 있으나, 뭔가 꺼림합니다. 깃털로 엮은 공을 왜 ‘셔틀콕’이라 해야 할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고서 두 아이한테 “깃털로 엮어서 ‘깃털공’이란다. 영어로는 ‘셔틀콕’이라 하지. 이 깃털공을 서로 채를 한 손에 쥐고서 치고 받으면서 넘기는 놀이라서 ‘깃공놀이’인데, 영어로는 ‘배드민턴’이야.” 하고 얘기합니다. 우리한테 채랑 공을 파는 가게지기님이 옆에서 듣다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이들이 알아듣기 좋겠네요. 저도 그 말 써도 되나요?” 하고 묻습니다. 그럼요, 즐겁게 써 주셔요.


깃공 : 깃털로 엮어서 치고 받을 수 있도록 한 공. (= 깃털공. ← 셔틀콕)

깃공치기 : 깃공(깃털공)을 서로 치고 받으면서 넘기는 놀이. (= 깃털공치기·깃털공놀이·깃공놀이. ← 배드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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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글은 오늘에서야 마무리를 하지만,

이 일은 여러 해 앞서,

아마 2018년 즈음?

고흥 읍내 배드민턴집에 가서

채랑 공을 사며 겪고 느끼고

주고받은 말을 바탕으로

새로 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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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65 마침꽃



  어릴 적에 배움터 길잡이는 늘 ‘종지부(終止符)’란 한자말을 썼습니다. 쉬운말 ‘마침표(-標)’가 있으나 “쉬운말은 쓰지 마. 쉬운말을 쓰면 바보가 돼!” 하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종지부’는 낡은 일본 한자말이라서 더는 안 쓰기로 하겠다고, 아예 나라에서 못박습니다. 참 늦은 셈이지만, 이제라도 털어낸다면 나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동안 이 일본 한자말을 앞세우면서 어렵게 들볶은 어른들은 “어렵게 써서 잘못했다” 하고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였을까요. 낡은말 ‘종지부’는 이제 우리 터전에서 마침꽃을 찍고서 사라질 테지만, 아직 숱한 낡은말은 곳곳에서 활개를 칩니다. 아니, 숱한 낡은말이 낡은말인 줄 못 느끼거나 안 살피면서 그냥그냥 퍼지거나 맴돌아요. 곁에 어떤 말을 놓을 적에 스스로 빛나고 아이들이 반기는가를 헤아리는 어른이 늘기를 바라요. 어린이 눈높이를 살필 줄 아는 손길에, 모든 말이 꽃으로 피어나도록 북돋우는 손빛을 더하기를 바랍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이 서슬퍼렇게 억누를 적에 문득 ‘마침표’란 말을 엮었을 텐데, 끝자락 ‘-표’도 부드러이 다독이고 싶습니다. 끝을 맺어 ‘끝꽃’입니다. 온길을 담아 ‘온꽃’입니다. 새 하루를 그리며 오늘을 마치는 꽃입니다.


마침꽃 (마치다 + ㅁ + 꽃) : 1. 글을 다 쓰거나 마친다는 뜻으로 오른쪽 밑에 찍는 작은 자국. ‘.’을 가리킨다. 2. 가거나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다. 마지막까지 다 하다. 3. 더 하지 못하거나 잇지 못하거나 다 되다. (= 끝꽃·온꽃·마침·마치다·마침길. ← 종지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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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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