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3. 씨앗



지난날에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늘 내가 되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가다듬는 길머리로 삼았다면,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우리 아이들이 오늘하고 모레에 스스로 읽고서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새길을 찾는 징검돌이 되도록 길동무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다스리자고 여긴다. 씨앗이 될 글을 쓰고, 씨앗이 될 살림을 짓고, 씨앗이 될 하루를 누리고, 씨앗이 될 사랑을 함께한다면 모든 글이 아름답겠지. 내가 심는 씨앗은 나를 키우고,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을 보살핀다. 아이들이 심는 씨앗은 아이들 스스로 키우고, 이 곁에서 살펴보는 어버이를 돌본다. 우리는 저마다 씨앗이다. 우리는 누구나 시앗이다. 좋은 씨앗도 나쁜 씨앗도 아닌 그저 씨앗이다. 스스로 씨앗이기에 스스로 삶을 심고 스스로 생각을 심는다. 오늘 심는 이 씨앗은 사랑길을 갈까? 오늘 심는 이 씨앗은 노래요 웃음이 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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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4. 묻는 말



작은아이가 마당에서 딱정벌레를 찾아낸다. 틀림없이 갓 깨어난 아이로구나. 시골에서 태어나 골짝물 흐르는 소리에 포근히 잠들던 작은아이는 숱한 풀벌레에 딱정벌레에 잎벌레를 늘 가까이하던 아기로 살다가 어린이로 피어났다. “근데, 아버지, 얘 이름이 뭐예요?” 몇 해 앞서 이 딱정벌레 이름을 이웃님한테 여쭈어 알아냈는데 어느새 잊었다. 여름이 가까우면 밤마다 붕붕 힘차게 날며 모기그물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히다가 바깥마루에 톡톡톡 떨어져서 구르던 반짝반짝 노란빛 아이. 네 이름이 뭐였더라. 갓 깨어났을까. 낮이라 힘들까.  토실한 딱정벌레를 모시잎에 앉혀서 가만히 바라본다. 딱정벌레랑 나는 눈이 마주친다. “넌 어떤 기쁜 꿈으로 이곳에 태어나서 우리 곁에 왔니?” 하고 묻는다. 마음으로 묻는다.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눈빛으로 물으며 눈빛으로 듣는다. ‘너 참 눈빛이 밝구나. 후박나무 곁에 놓을 테니 이제부터 신나게 놀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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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숲집놀이터 252. 지옥



나를 보고 우리 아이들을 보는 둘레 어른들은 하나부터 쉰 일흔 아흔까지 “학교를 안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해요? 대학교도 못 사고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요?” 하고 걱정한다. 나는 “우리나라는 참되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가르치는 길보다는 죽음수렁이 있잖아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은 어쩌지요?” 하고 되묻는다.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배움길이 아니라, 치고받거나 겨뤄야 하는 수렁을 걷어낼 생각은 없이 아이들을 그저 배움터에 몰아넣기만 해도 좋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집에서 느긋하게 얼마든지 다 배워요. 우리는 우리가 배울 길을 스스로 생각해서 찾고 배워요.” 하고 말한다. 불구덩(지옥)은 왜 불구덩일까? 스스로 사랑인 줄 헤아리지 않은 채 치닫다가 굴러떨어지는 불구덩이지 싶다. 왜 궂거나 못되거나 나쁜 짓을 할까? 스스로 사랑이 없거나 아니기에 궂거나 못되거나 나쁘지 않을까? 우리가 모두 배우는 살림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배움나날이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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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51. 투덜



투덜대도 좋다. 토를 달아도 된다. 이래저래 새길을 밝히거나 말할 수 있지 않아도 좋다. 아니다 싶기에 아니라 말하고, 손사래치고 싶으니 손사래치면 된다. ‘비판을 하려면 대안을 말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이 있으나, 왜 꼭 누구나 ‘대안을 말하며 비판을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부터 느끼고 알아야 한다. 못마땅하거나 안 내키는가부터 헤아리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까지 모두 밝히지 못하더라도 마음·생각·느낌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홀가분히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보고 느끼고 안 다음에 차근차근 오래오래 살피기에 비로소 ‘새길(그러면 어떻게·대안)’을 가늠하거나 어림할 만하다. 새길은 바로 내놓아야 하지 않아. 새길은 하루 만에 뚝딱 내놓아야 하지 않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해이고 새길을 못 내놓고서 헤매도 좋고, 끝끝내 새길을 찾기 어렵다고 여겨 두 손을 들어도 된다.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면 삶이다. 뾰족하게 새길(대안·답·정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서두르지 말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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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50. 나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거나 가르쳐야 좋을는지 모르겠다는 이웃님한테 “잘 모르겠으면 아이한테 물어보셔요.” 하고 이야기한다. “아니,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아이한테 묻는다고요?” 하고 되물으면 “아이가 바라는 길이며 삶이며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아이가 스스럼없이 생각해서 이야기하도록 마음을 열어 보셔요. 그러면 길은 저절로 나와요.” 하고 덧붙인다. ‘전문가·교사·작가’한테 물어보기에 자꾸 길을 헤맨다. 아이하고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싶은 어버이라면 바로 아이한테 먼저 물어볼 노릇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나무랑 바람이랑 하늘이랑 별이랑 들꽃이랑 새한테 물어보자. 마음으로 물어보자. ‘돌봄길·배움길’은 책보다 삶에 있다. 책에는 아주 조금만 밝히거나 적을 뿐이다. 나이가 적다고 삶을 못 읽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고 삶을 잘 읽지 않는다. 그저 ‘나이에 따라 다르게 삶을 보고 읽고 알’ 뿐이다.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을 누리고 싶은가를 아이한테 물어봐야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즐겁기 마련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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