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빛 2022.5.2.

숲집놀이터 270. 돌봄하루



천기저귀를 손빨래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안 몰고, 유리병을 쓰고, 포대기에 처네를 늘 다루고, 아이들 주전부리나 도시락을 챙기는데, 온통 등짐으로 바리바리 싸서 움직이는 나날이었다. 집에서 집안일하고 집살림에다가 바깥일까지 도맡아서 했다. 가시어머니나 둘레에서는 “그렇게 다하려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물었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 돌보는 하루가 힘들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요.” 하고 얘기했다. 돌봄하루가 힘들다고 느낀 적은 하루조차 없다. 아이는 몸이 안 좋거나 뜻이 있기에 보챈다. 아이는 졸립기에 어디에서나 잔다. 아이는 쉬나 뒤가 마려우니 언제라도 눈다. 아이는 배고프니까 바로바로 밥을 달라고 바란다. 이 모두를 “네, 알겠습니다. 바로 할게요.” 하면서 차근차근 했고, 밥을 지어서 차리건, 똥오줌기저귀를 빨아서 널건, 아이를 씻기거나 재우건,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다니건, 늘 노래를 불렀다. 이 모든 집안일에 집살림에 바깥일까지 신바람으로 하려고 아이를 낳은 삶이니까. 이런 나를 보며 “도인 같네요.” 하고 말하는 분한테 “옛날에는 모든 어버이가 이렇게 했어요. 요새 이렇게 하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제가 대단할 수 없어요. 모든 수수한 어버이는 참말로 ‘깨달은이(도인)’였다고 하겠네요. 아이를 돌보는 하루를 누리기에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우거든요.”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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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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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22.

숲집놀이터 269. 갈림길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이들은 ‘너무도 깐깐할 아버지 곁에서 힘들지 않겠느냐?’고 설레발 같은 걱정을 하는 분이 꽤 있는 줄 느끼고는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웃었다. “저기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치마를 입고 다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요. 아니, ‘치마차림 아버지’를 구경하는 사람들 때문에 저희까지 눈길을 받는다고 여겨서 짜증내지요.” 하고 말한다. 아이들이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따금 “얘야, 이 말을 글로 옮길 적에는 소리가 이렇게 난단다.” 하고 천천히 입을 놀려서 소리를 다시 들려주고서 글씨를 보여준다. 여기서 끝이다. 이다음에 또 틀리면 또 틀렸네 하고 그러려니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데 말야, 이 글씨는 이 소리를 이렇게 내며 옮긴 그림이란다.” 하고 보탠다. 이처럼 느슨히 열 몇 해에 걸쳐서 천천히 가끔 짚어 주면 아이들 스스로 어느 날 차근차근 깨달아서 다독이더라. 이렇게 느슨히 천천히 간다면, 아이들이 ‘셈겨룸(시험)’에서 0점을 맞거나 떨어질 만하겠지. 그러면, 아이들이 셈겨룸을 안 치러도 될 터전을 우리가 어른으로서 마련하거나 열 노릇이다. 아이도 어른도 ‘외워야’ 하지 않는다. ‘외우려’고 하니 글읽기나 책읽기가 모두 버겁다. 외울 생각이 아니라면, 누구나 하루에 책 100자락을 가볍게 읽어낼 수 있다. 우리는 ‘책읽기’를 즐길 삶이지, ‘책외우기’를 하며 갇힐 삶이 아니다. 하늘을 읽듯 책을 읽고, 사랑을 읽듯 오늘을 읽으면 넉넉하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갈림길이 있는데,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말자. 아침에 스스로 그린 우리 꿈그림을 돌아보면서 ‘스스로길’을 가자. 갈림길을 내려놓고서 ‘스스로길·숲길·삶길·사랑길·살림길·오늘길·노래길·춤길·꽃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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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22.

숲집놀이터 268. 손전화



2022년에 큰아이가 열다섯 살이니, 여덟 해 만에 ‘군청 청소년과’에서 드디어 ‘청소년 교육비’를 아이한테 다달이 10만 원씩 아이 계좌로 넣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서, “참 일도 빨리(?) 잘(?) 하시네요.” 하고 말하려다가 말하지는 않았다. 큰아이가 받아야 할 몫을 일곱 해 넘도록 못 받았는데, 난 그동안 낛(세금)을 하나도 안 빠뜨리고 꼬박꼬박 냈는데, 전남교육감이라는 나리(양반)는 “한 아이도 버리지 않겠습니다”란 말을 내걸고 벼슬자리를 얻었는데, 그동안 이 말을 아예 안 지켰는데, 배움지기(교육감)를 마칠 즈음인 올 2022년 6월 뽑기(선거)에서 이녁이 떨어질 수도 있어 아슬아슬하니 이제서야 뒷시늉으로 이렇게 하시는데, 그럭저럭 다 넘어가 주기로 한다. 그나저나 ‘군청 청소년과 벼슬꾼(공무원)’은 전화로 “그럼 아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셔요.” 하고 묻는다. “저희는 스마트폰 따위는 안 쓰려고 이 깊은 시골에서 아이 스스로 학교를 안 다니기로 하면서 사는데요? 아이한테 연락하고 싶으시면 저한테 전화하시면 돼요. 제 전화를 저랑 두 아이가 함께 씁니다.” 하고 말했다. “네?” 하면서 한동안 말을 잊은 군청 벼슬꾼을 문득 느끼고서 ‘아, 이 사람들은 아이(초등학생·청소년)가 손전화가 없다면 학대를 받는다거나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아이(초등학생·청소년) 스스로 손전화는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터럭만큼도 헤아리거나 알아볼 마음을 품은 적도 없겠구나 싶더라. 그도 그럴 까닭이 ‘마침종이(졸업장)’를 아예 하나도 거머쥘 뜻이 없이 집에서 노는 아이들 마음은 하나도 못 읽는 교육감·공무원·교사·작가·군수·국회의원·대통령 나리가 철철 흘러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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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22.

숲집놀이터 267. 나잇값



모든 싸움(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라면, 사내로서는 싸움터(군대)에 안 갈 노릇이고, 가시내로서는 ‘싸움꾼(군인)이 되는 사내랑 안 만나거나 헤어지면’ 될 노릇이다. 어쩔 길이 없이 싸움터에 끌려가야 하는 ‘가난하고 힘없고 이름없는 조그마한 집안에서 나고자란 사내’라면 허수아비(육군 보병)가 아니라 ‘하사관’으로 가라고 얘기한다. 허수아비보다 이태쯤 더 싸움터에 얽매여야 하지만, ‘미친나라’에서는 허수아비(육군 보병) 목소리나 몸짓으로는 안 바뀐다. 적어도 하사관쯤으로 싸움터에 끌려가서 일삯(월급)부터 조금이나마 제대로 받으면서 ‘중간관리자·간부’로서 썩고 멍든 싸움터를 조금이나마 손질하거나 다독이거나 바로잡을 길을 열 수 있다. 이쯤 마음을 기울이고 애쓰는 사내라면 가시내도 조금은 쳐다보아 주어도 되리라. 열줄나이에는 속으로만 품어야 했고, 스무줄나이에 입밖으로 내놓던 생각을, 이제 쉰줄나이를 앞두고 온삶으로 펼치면서 하루하루 맞이한다. 나잇값이 무언지 모르겠다만, 나이를 앞세워 잘난 척하거나 우쭐거리는 바보짓은 나잇값이 아니라고 본다. 나이를 돌아보면서 누구나 슬기롭고 즐거우며 참하게 아름길을 어깨동무하도록 앞장설 줄 아는 몸짓이 나잇값이라고 생각한다. 입만 번지르르하고 몸으로는 안 한다면 늙은이일 뿐이다. 생각하고, 입으로 뱉고, 몸으로 부대끼면서, 이러한 삶을 아이들한테 부드럽고 상냥하면서 노래하듯 사랑으로 들려줄 적에 비로소 ‘나잇값을 하는 어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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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7.

숲집놀이터 266. 지레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간 1982년 3월까지 제 마음이나 머리나 생각에는 ‘걱정’이란 낱말이 아예 없습니다. 한글조차 모르는 채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여덟 살 아이는 저 앞에 선 어른이 손에 뭘 쥐고서 까만 데에다가 슥슥 뭘 그리는데 뭐 하는 셈인지 몰랐습니다. 저 사람(어른)은 저 사람이 하고픈 걸 하겠거니 여기며 옆에 앉은 동무랑 시시덕거립니다. 이러다가 머리가 핑 돌 만큼 누가 후려쳤고, 꽈당 하며 자빠졌습니다. 떠들지 말고, 장난하지 말고, 칠판을 쳐다보라고 하더군요. 놀라고 아팠지만 멍할 뿐이었고, 뭐가 뭔지 몰랐어요. 앞에서 뭘 끄적인 어른은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불러야 했고, ‘한글’을 적었다더군요. 처음 보는 무늬를 보며 “와! 저게 글이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선생님이란 어른한테 된통 얻어맞은 줄 잊고서 이레도 안 되어 한글을 깨쳤고, 처음으로 보고 듣는 모든 이야기를 신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아홉 살을 지나고 열 살에 이를 즈음 ‘시험’이란 이름으로 엄청 억누르는 줄 느껴 비로소 ‘걱정’이란 낱말을 알았어요. 이즈음 우리 언니가 “네가 뭘 안다고 걱정해?” 하고 한마디 쏘아붙여요. 새삼스레 놀랐고, ‘아하! 그렇구나. 난 내가 하고픈 길만 생각하면 되는걸.’ 하고 뉘우쳤고, 이때부터 지레 걱정하는 일을 마음에서 싹 지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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