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57. 무화과 한 알 나누기



  아침에 무화과알을 하나 딴다. 어제 따려고 하다가 하루 미루었다. 하루 미룬 사이 또 멧새가 와서 쪼았다. 하루 더 익혀야지 하고 생각하니 멧새가 먼저 찾아올까. 멧새도 배를 채워야 하니 살짝 쪼아먹어도 괜찮다. 다만, 잘 익은 무화과알은 오늘도 한 알만 있기에 셋으로 가른다. 하나는 어머니 몫, 둘은 두 아이 몫. 한 입에 넣으면 끝인 작은 조각으로는 배를 채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아침에 얻은 무화과알은 배를 채우려고 먹지 않는다. 한 알 얻은 무화과알을 함께 나누는 뜻이다. 우리한테 오는 고마운 무화과알을 기쁘게 노래하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집배움자리 56. 다 같이 가는 길



  작은아이가 마냥 갓난쟁이일 무렵에는 내가 앞뒤로 가방을 잔뜩 짊어진 뒤 이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다닌다. 작은아이가 씩씩하게 자라서 제 다리로 신나게 달리며 노는 요즈음은 작은아이가 마루문을 열고 닫아 주어서 짐을 든 몸을 퍽 홀가분하게 움직인다. 큰아이가 자전거를 앞에서 이끌지는 못하지만, 내가 다른 일을 살피는 동안 큰아이가 자전거를 붙잡아서 버티어 줄 수 있다.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신나게 몰다가 숨이 턱에 닿아 헉헉거릴 무렵, 두 아이는 샛자전거랑 수레에서 저마다 노래를 불러 준다. 그야말로 다 같이 가는 즐거운 삶길이요 사랑노래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집배움자리 55. 냄새



  여덟 살 어린이는 시골집에서 똥을 눈 뒤 스스로 씻고 치워야 한다. 똥을 똥통에 쏟고, 똥을 눈 그릇은 바깥에서 물을 틀어서 수세미로 닦아야 한다. 여덟 살 어린이는 일곱 살까지 아버지가 으레 밑을 씻어 주고 똥그릇을 닦아 주었다. 여덟 살인 요즈음도 가끔 아버지가 씻고 닦아 주지만 웬만하면 여덟 살 어린이 스스로 이 일을 다 하도록 맡긴다. 우리가 바깥마실을 다닐 적에 큰아이를 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갈 만한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 큰아이 스스로 할 앞가림이 있기도 하다. 오늘은 큰아이한테 ‘부엌에서 나오는 부스러기와 자투리 담는 통’을 닦아 달라고 심부름을 맡긴다. 큰아이는 “냄새!”라고 하면서 코를 막는다. 그런데 얘야, 아버지는 날마다 그걸 만지고 닦고 치우는걸?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네 아버지가 “냄새나는 것”을 다 치우고 갈무리하는 손으로 짓는걸? 얘야, 냄새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 손은 무엇을 만질까?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집배움자리 54. 우리 무슨 밥 먹을까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적마다 두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묻는다. 먼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큰아이한테 얘기를 하면, 큰아이는 마루로 콩콩 달려간다. 작은아이는 누나한테 “아버지가 뭐래? 아니, 내가 물어야지!” 하면서 부엌으로 달려온다. 그러고서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하고 똑같이 묻는다. 작은아이한테 얘기를 들려주면, 작은아이는 마루로 쿵쿵 달려간다. 큰아이는 동생한테 “아버지가 뭐래?” 하고 묻는다. 두 아이는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놀고, 나는 네 사람이 누릴 한솥밥을 신나게 땀을 흘려서 짓는다. 참말로 밥을 지으면 한겨울에도 땀이 난다. 내내 불가에서 쉴새없이 움직이니까. 그래서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늘 찬물로 시원하게 씻는다. 4348.8.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5-08-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와 보라가 콩콩콩 오가며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물으며 또 똑같은 말을
서로에게 묻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ㅎㅎㅎ
오늘은 무슨 꽃밥인가요~?^^
저희집은 주말이라 아마 이따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 것 같아욤~^^;;

숲노래 2015-08-22 14:04   좋아요 0 | URL
아아, 치킨이나 피자라... @.@
시골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도시로 어쩌다가 마실을 나가면
아이들은 할머니 이모 할아버지한테서
그런 치킨이나 피자나 짜장면만 얻어먹어요 ^^;;;

그나저나
벼리는 아직도 가볍게 `콩콩` 뛰지만
보라는 언제나 무겁게 `쿵쿵` 마루를 찍어서
^^;;; 보라더러 제발 마당에서 힘껏 뛰라고 말해요 @.@
 

우리집배움자리 53. 끝나지 않는 끝



  만화책을 보면 맨 끝에 으레 ‘다음 권을 기대해 주세요’ 같은 말이 나온다. 글순이는 이 말을 익히 새겼는지, 저 혼자 만화책을 엮으면서 맨 뒷자리에 이 말을 옮겨서 쓴다. 그러고는 아주 큼지막하게 ‘끝’이라고 적는다. 그러나, 그림순이 만화그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참말 ‘다음 이야기’를 자꾸자꾸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고 거듭 그리면서 그림순이가 빚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날마다 차곡차곡 늘어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