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하고 그림책 읽기



  그림책이라고 하면 으레 ‘아이가 읽는’ 책이라 여기고, 조금 생각이 깊은 분은 ‘아이하고 어버이가 함께 읽는’ 책이라 여깁니다. 이 대목에서 조금 깊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림책은 ‘아이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함께 읽는’ 책이 됩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 줄 수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마을 아이’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서 그림책을 읽어 줄 수 있습니다. 예부터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이녁 아이뿐 아니라 마을 아이한테 두루 ‘이야기 할머니’나 ‘이야기 할아버지’ 몫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좋아하거나 따르기 마련이었어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언제나 ‘아이한테 들려줄 만한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하고, ‘아이가 재미있게 들을 만한 이야기’를 찾느라 마음을 기울이곤 하셨어요.


  오늘날 사회는 아이랑 어버이랑 어르신이 갈라섭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부터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바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에 있는 어버이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바쁠 뿐 아니라, 집살림을 꾸리느라 바쁘지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으레 따로 떨어져서 삽니다. 아이와 어버이와 어르신이 한자리에 모이기란 몹시 어렵고, 설이나 한가위가 아니라면 좀처럼 얼굴을 못 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도 만만하지 않고, 어쩌다 한 번 보는 사이에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어렵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책은 아이가 스스로 읽어도 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책을 소리내어 읽어’ 줄 적에는, 한국말에 있는 ‘긴소리 짧은소리’에다가 ‘높낮이’까지 골고루 들려줍니다.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적에는 한국말에 있는 ‘긴소리 짧은소리 높낮이’를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저 글만 읽지요.


  아이는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그림책 이야기를 듣다가,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그림책을 읽어 줍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품에서 동화책 이야기를 듣다가, 나중에 할머니한테 동화책을 읽어 주지요.


  아름답게 빚은 그림책이랑 동화책을 온 식구가 함께 누립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어르신도, 한자리에 모여서 책 한 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누립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구수하게 곁들일 만합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길에 고운 그림책과 살가운 동화책이 함께 있습니다. 4348.7.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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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고 이야기하듯이



  나무 곁에 서서 나무하고 이야기하는 아이처럼, 우리 어른도 나무하고 이야기하며 맑은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나무노래를 부른다면, 우리 노래는 모두 동시가 되고 문학이 되며 삶노래가 될 테지요. 나무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줄 모른다면, 우리 어른이 쓰는 글은 동시도 문학도 삶노래도 되지 못합니다. 나무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쓰는 글은 그저 혼잣말입니다.


  꽃 한 송이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풀 한 포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 한 줄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햇볕 한 줌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별빛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어요. 우리는 돌멩이나 모래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쌀알이나 종이 한 장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님’은 우리가 살가운 손길로 사랑스레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의인법’ 같은 어려운 말은 안 써도 됩니다. 그저 나무하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저 벌레하고 이야기하고, 새와 잠자리와 나비하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리고 살피고 가누고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엮으면, 동시가 되고 동화가 됩니다. 4348.6.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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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그림책



  재미나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 《금붕어의 숨바꼭질》을 보면, ‘조그마한 어항’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물고기가 두 마리 나옵니다. 얼핏 보기에 조그마한 어항에서 무슨 숨바꼭질을 하느냐 싶지만, 얼마든지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할 만합니다. 게다가 작은 어항에서 뿅 튀어나와서 어디에서든 춤을 출 만합니다. 물고기가 고양이하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림책이 아닌 우리 지구별을 헤아릴 적에도 이 같은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서는 ‘조그마한 어항’이고, 사람으로 치자면 ‘동그랗고 작은 지구별’입니다. 얼핏 보기에 지구라는 땅덩이는 무척 큰 듯하지만, 수많은 별이 함께 있는 온누리를 헤아린다면 지구별은 그야말로 조그맣디조그마한 곳입니다.


  조그마한 어항에서 물고기가 사이좋게 놉니다. 조그마한 지구별에서 사람은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서로 사이좋게 아끼고 북돋우면서 지낼 적에 춤과 노래와 웃음이 샘솟겠지요? 그러니까, 작은 그림책 한 권은 평화를 노래합니다. 물고기가 누리는 숨바꼭질을 넌지시 빗대면서 ‘사람이 나아갈 길’을 아이들한테 쉽고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물고기가 고양이하고 얼마든지 손을 맞잡고 춤을 출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물고기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고양이는 물고기를 ‘잡아먹을 밥’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는 동무로 여기고, 서로 사랑스러운 동무로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은 ‘평화’ 이야기를 무척 어려운 말을 빌어 두툼한 인문책으로 밝힙니다. 아이들은 평화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과학이든 무엇이든, 쉽고 재미난 글하고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을 보면서 즐겁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함께 나눕니다. 아이들도 평화를 그림책 한 권으로 배우면서 누리고, 어른들도 평화를 그림책 한 권을 아이와 함께 즐기면서 새롭게 배우면서 누립니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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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게 일어서는 문학



  저녁 늦게까지 뛰논 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이면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밤 늦도록 힘들게 일한 어른도 잠자리에 누우면 어느덧 곯아떨어지지요. 아이는 아이대로 몸에 새로운 기운을 담아야 하고, 어른도 어른대로 몸에 새로운 힘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아침이 됩니다. 아이가 먼저 일어날 수 있고, 어른이 더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하는 아이는 오늘 하루도 새롭게 놀자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어제 하루 그렇게 신나게 뛰어놀면서 기운을 다 쓴 아이는, 오늘 하루 새롭게 뛰어놀면서 새 기운을 그야말로 마음껏 다 씁니다.


  어른도 새 하루에 새로운 힘을 몽땅 씁니다. 아이하고 함께 누리는 하루는 서로서로 온힘을 내고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온몸으로 가꾸는 삶으로 거듭납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씩씩합니다. 전쟁이 불거져서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곳에서도 어린이문학은 참으로 씩씩합니다. 배가 가라앉고 비행기가 떨어진 곳에서도 어린이문학은 그야말로 씩씩합니다. 입시지옥이 서슬 퍼렇고 핵무기는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지구별에서 어린이문학은 더없이 씩씩합니다.


  어린이문학은 무릎을 꺾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등을 돌리거나 고개를 젓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씩씩하게 모든 바람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이 땅에 씩씩하게 서서 아름다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꿈으로 나아가는 똘망똘망한 이야기꽃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모든 아픔과 슬픔을 삭여서 사랑스러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밭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눈물을 씻어 주고 웃음을 다시 짓도록 곁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이야기숲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너와 내가 사이좋게 얼크러져서 춤추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이야기잔치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한결같이 푸른 마음이 됩니다. 어린이문학을 읽는 어른은 언제까지나 어린이하고 삶벗이자 길동무가 되려는 파란 넋이 됩니다. 어린이문학을 이루는 바탕은 바로 ‘씩씩한 숨결’입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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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를 다루는 문학



  어른문학이든 어린이문학이든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문학에서 다룰 수 없는 이야기란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는 사랑을 짚거나 건드리면서 슬기로운 생각을 스스로 짓도록 북돋울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린이문학을 살펴보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를 으레 ‘문학이라는 틀’에 담거나 다루기는 하지만, 막상 ‘삶을 짓는 사랑’을 짚거나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슬기로운 생각을 스스로 짓도록 북돋우는’ 몫도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을 쓰는 짜임새에 맞추어 ‘머리말·몸말·맺음말’이라든지 ‘기승전결’이라는 얼거리에 따라서 가벼운 재미만 들려주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굳이 사건이나 사고를 어린이문학으로도 다루려 한다면, 글을 쓰는 어른은 깊고 넓게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수수한 이야기이든 떠들썩한 사건이나 사고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야기나 수수께끼이든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글로 담아야 합니다.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사랑으로 녹이는 글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막에 ‘이혼한 집’이 늘고 ‘가정폭력·학교폭력·사회폭력’이 떠들썩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건과 사고만 짚거나 건드릴 뿐이라면, 문학도 못 되고 어린이문학도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짐더미나 숙제가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오직 사랑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을 북돋울 수 있는 이야기꾸러미가 되어야 합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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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5-20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어린이문학의 소재나 인물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어두운 면을 애써 밝게 표현한 것도 불편합니다.

숲노래 2015-05-20 08:29   좋아요 1 | URL
하양물감 님 말씀처럼
애써 밝게 그리려 한다고 해서 읽을 만하지 않아요.

모든 문학은 바탕이 `사랑`이 되어야 해요.
소재는 대수롭지 않아요.
소재에만 파묻혀서 반짝하고 인기를 끌어서
책을 팔고 이름을 얻으려 하다 보니...
요즈음 수많은 어린이문학이... 불편하고 재미조차 없기도 하구나 하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