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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레 읽어 주는 책



  훌륭하다는 책이 많습니다. 추천도서도 많고, 명작도서도 많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온갖 책을 장만해서 읽힐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우리 눈길을 사로잡을 아름답거나 멋진 책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모든 책을 다 챙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하다는 온갖 책을 알뜰히 챙겨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한테는 어떤 책이 마음에 깊이 남을까요?


  그때그때 느낌이 다를 테니, 어느 날에는 이 책이 마음에 남을 테고, 다른 날에는 저 책이 마음에 남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도 저 책도 아닌 ‘바로 그 책’이 늘 마음에 남을 수 있어요.


  훌륭하다는 책이 아닐 수 있고, 명작도서도 추천도서도 아닐 수 있으며, 거의 이름이 안 알려진 사람이 쓴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 하나가 내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서 언제라도 새로운 기쁨과 이야기를 나누어 주곤 합니다.


  무슨 힘일까요? 무슨 숨결일까요? 무슨 넋일까요?


  백만 권쯤 팔린 책이기에 내 마음에 남을 만하지 않습니다. 천만 권쯤 팔린 책이라서 내 마음에 남을 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나를 돌보던 어버이가 따사로우며 너그럽고 보드라운 사랑을 담아서 나긋나긋 읽어 준 책 하나가 내 마음에 남을 만합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한테 내 어버이가 따사로우며 너그럽고 보드라운 사랑을 담아서 고운 종이에 싸서 가만히 선물한 책이 오래오래 내 마음을 채울 만합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어린이는 어떤 책을 좋아할까요? 네,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가운 목소리로 즐겁게 읽어 주는 책입니다.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면서 아끼는 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따사로운 눈길로 사랑스레 읽어 준 책입니다.


  어릴 적에 이러한 책을 만난 푸름이는 ‘책’을 떠올릴 적에 무엇보다 ‘따스한 사랑’을 그립니다. 어릴 적에 이러한 책을 만난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스스로 삶을 꾸리거나 지을 적에 ‘따스한 사랑을 담은 책’을 곁에 두고서 마음밥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린이한테 건네는 책 하나는 매우 큽니다. 아무 책이나 함부로 건넬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훌륭하다는 책만 건넨다고 일이 끝나지 않아요. 여러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권장하는 책을 아이한테 읽혀 주었다고 일이 다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 할 적에는 늘 사랑으로 읽혀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나이가 되었으면, 아이한테 사랑을 담아 책을 선물해야 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푸름이 나이가 되었으면, 이때에도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 말고,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건넬 수 있는 어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도록 돕는 교재는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사랑을 담아서 건넨 책은 시험이 끝나도 언제까지나 이어집니다. 생각을 북돋우는 꿈을 실어서 선물한 책은 아이가 자라 마흔 살이 되거나 여든 살이 되어도 애틋하게 가슴에 남아서 즐겁게 웃음꽃 피우도록 돕는 햇볕으로 자리잡습니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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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먼저 이 낱말이 어떤 뜻인가를 살펴봅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온 대로 적자면, “(1)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 (2) 자신이 경험한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3) 어떤 사실에 관하여, 또는 있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꾸며 재미있게 하는 말 (4) 소문이나 평판”,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도 한국말사전에서 뜻풀이를 살펴보면, “(1)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2) 옛날에 있었던 일”,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예부터 사람들은 어른이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아이를 앞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이녁 아이한테 들려주는데,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아이’는 이녁 딸이나 아들이에요. 그러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낳은 딸이나 아들은 무럭무럭 커서 새로운 딸이나 아들을 낳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두 세대’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겨레이든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삶을 가꾸었습니다. 책이나 글로 지식이나 정보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지구별 어느 겨레이든 이야기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물려주었습니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모든 정보와 지식이 ‘이야기’가 되어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삶에서 비롯합니다. 집·옷·밥이란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살림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누리려면 살림을 꾸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한집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여러 집이 어우러지는 마을도 있지만, 마을이 되기 앞서는 언제나 한집입니다. ‘한집안’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러한 사람들이 차츰 하나둘 모여 마을이 됩니다. 가만히 보면, 마을이란, 다 다른 ‘한집’이면서도 밑뿌리는 모두 같은 ‘한집’입니다. “씨족 공동체” 같은 말을 쓰기도 하는데, “한집 사람들”은 스스로 뿌리를 내린 시골자락에서 모든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하면서 누리는가 하는 삶부터 짓고, 집이며 밥이며 옷이며 스스로 짓습니다. 웃음을 스스로 짓고, 노래와 춤을 스스로 짓습니다. 이야기 또한 스스로 짓습니다. 모든 삶을 스스로 지으니 이야기를 스스로 지을밖에 없습니다.


  “한집 사람들”한테는 절집이 없습니다. 예배당이 없습니다. “한집 사람들”한테는 우두머리가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경제 지도자나 문화 지도자나 교육 지도자가 따로 없습니다. 한집안에서 슬기로운 어른(어르신)이 있을 뿐, 권력을 휘두르거나 이름값을 내세우거나 지식을 뽐내는 사람은 “한집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온갖 ‘이름’은 지난날 “한집 사람들”이 모두 지었습니다. 다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갖가지 외국말이 넘나듭니다. 갖가지 외국말도 밑뿌리를 따지고 보면 ‘그 외국말을 쓰는 사회에서 지난날 조용히 한집안을 이루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우리한테 없어서 받아들이는 외국말’이 아니라 ‘우리한테 있지만 스스로 잊거나 잃어서 받아들이는 외국말’이 훨씬 많습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같은 테두리에서 권력자가 나타나면서 “한집 사람들”이 짓던 삶과 말과 살림과 이야기를 모두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한집 사람들”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한집 사람들”이란, 한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 이렇게 모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렇게 ‘큰 집안’을 이루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고 하루를 스스로 짓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요? ‘세 세대’가 모여서 사는 집은 더러 남았지만, ‘세 세대’뿐 아니라 ‘밥·옷·집’을 스스로 짓는 집은 이제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 나라에는 ‘이야기 짓기’도 없고 ‘이야기 물려주기’도 없습니다. 이야기를 짓지 못하고, 이야기를 물려주지 못하니, 아주 마땅히, 외국말을 받아들여서 ‘오늘날 새로운 문화나 문명을 가리킬 낱말’로 삼을 수밖에 없는 얼거리가 됩니다. 우리가 예부터 쓰던 말로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나 문명을 가리킬 수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을 잃었고, 생각을 다스리는 마음을 잃었습니다.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말로 나타납니다.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쓰는 말이 모두 이야기입니다. 꽃 한 송이한테 붙이고 나무 한 그루한테 붙이는 이름도 모두 말이면서 이야기입니다. 둘째, 노래로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든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든, 모두 이야기입니다. 셋째, 춤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예요.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몸을 살몃살몃 움직이다가 힘차게 휘두르는 춤사위가 바로 이야기입니다. 넷째, 마음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으로 나타나는 이야기는 꿈과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란 삶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아는 사람이란 스스로 하루를 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한집 사람들”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작은 집 살림”이 바로 배움터이자 마을이요 온누리였습니다. 깊은 멧골에서 조용히 홀로 살림을 일구던 옛 시골사람은 따로 학교를 안 다니고 학문이나 책을 몰랐어도 스스로 삶을 짓고 삶을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집이 바로 학교요 사회이자 나라였으니까요.


  마을이 커지고, 커진 마을에 따라 고을이 생기며, 커진 고을이 어우러진 고장이 나타나면서, 어느새 정치권력을 거머쥐려는 우두머리가 나타났고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사회가 어지럽게 흐릅니다. 어지러운 사회를 아름답게 다스리고픈 뜻으로 부처님 같은 이들이 나타납니다. 부처님 뜻을 섬기려는 절집에서는 어른(큰스님)이 아이(갓 절집에 들어온 스님)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절집 어른이 절집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불교라는 종교가 중국에서 들어온 만큼 중국말로 ‘화두’라는 낱말을 씁니다. ‘화두’란 ‘이야기’입니다. 먼 옛날부터 지구별 어느 겨레에서나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던 이야기가 바로 절집에서 일컫는 ‘화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집에서도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을 수 있는 한편, 나 스스로 내 삶을 가꾸고 일구면서 짓는 몸가짐이 된다면, 절집에 드나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스스로 ‘이야기’를 찾고 지으며 누려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 찾기(화두 찾기)’란 ‘삶찾기’입니다. 삶찾기란 ‘길찾기’입니다. 길찾기란 ‘마음찾기’이고, 마음찾기란, 내 마음이 나아갈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는 일이니 ‘사랑찾기’가 된다고 느낍니다.


  지난날 여느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삶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준 까닭을 생각합니다.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스스로 이녁 삶을 사랑하기에 이야기를 짓습니다.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스스로 지은 즐거운 이야기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곁에 두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사랑스러운 말에 담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미질과 낫질은 춤사위와 같습니다. 따로 빙글빙글 웃으면서 어깨춤을 추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무새가 모두 춤사위입니다. 밥을 짓든 비질을 하든 모두 춤사위입니다.


  아이들은 춤사위를 어버이 곁에서 익힙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몸짓은 스스로 가다듬는 춤사위입니다.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판타지’나 ‘창작’이나 ‘화두’여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입니다. 살면서 스스로 짓는 꿈과 사랑이 모두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길을 스스로 찾으면서 짓는 말과 이름과 생각이 늘 이야기입니다.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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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만화책



  아이들이 만화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만화책이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을 뿐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우면서 생각날개를 활짝 펼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만화책을 기쁘게 읽습니다. 만화책이 어른들 눈빛에 걸맞을 뿐 아니라, 재미있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빛이 그득하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은 만화로 빚은 책입니다. 만화로 빚기에 만화책일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빚은 책입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글책은 글로 빚은 책입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빚은 책입니다.

  만화나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이라는 ‘틀’을 써서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어떤 틀을 쓰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사람입니다. ‘틀’을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때때로 틀도 읽을 만해요. 만화결이나 그림결이 고소하다면 한결 재미날 수 있고, 글결이나 사진결이 이쁘장하다면 한결 반가울 수 있어요.

  아름다운 만화책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책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진책도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와 도서관과 문화와 학교를 돌아보면, 만화책은 ‘책’으로 안 다루기 일쑤입니다. 도서관 십진분류법에서 만화책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그림책이나 사진책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도서관 분류법은 오직 ‘글책’만 다루는 얼거리는 아닐는지요?

  만화로 이야기를 펼치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이야기를 펼치든 모두 반갑습니다. 어떤 틀을 쓰든, 삶을 빛내어 곱게 밝히려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담는 책일 때에 반갑습니다.

  요즈음은 ‘학습만화’라는 이름을 내세운 ‘껍데기 만화책’이 무척 많이 나옵니다. 여느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학습만화를 사다 줍니다. ‘만화책’이 아닌 ‘학습만화’를 말이지요.

  학습만화는 만화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학습만화는 문제집이나 참고서나 교과서와 똑같습니다. 참고서는 책이 아니고, 문제집도 책이 아닙니다. 책과 비슷한 꼴이지만, 책이 아닌 종이꾸러미이지요.

  글로 빚은 책 가운데에도 돈벌이에만 눈길을 둔 ‘처세책’이나 ‘경영책’이나 ‘자기계발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학습만화란 상업만화요, 상업만화란 오직 돈벌이를 헤아려 ‘아이들이 교과서 지식을 더 잘 갖추어 대학입시지옥에서 더 잘 살아남도록 하는 참고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버이도 교사도 여느 어른도 이 대목을 알 노릇입니다.

  그림책 가운데에도 그림책 모양새를 하지만, 정작 그림책이 아닌 종이꾸러미가 있어요. ‘교과서 진도와 학습’에 도움이 되도록 엮는 그림책이 바로 ‘종이꾸러미’이자 참고서입니다.

  이제는 꽤 널리 알려졌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않는 어른이 많기도 한데,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퍽 어린 아이들도 삶을 읽고 사랑을 읽으며 꿈을 읽는 길에 즐겁고 반가운 길동무가 되는 책입니다.

  어버이나 교사나 여느 어른이 ‘아이와 함께 즐겁게 읽으면서 삶을 밝히는 길을 생각하는’ 책이 바로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만화책도 이러한 얼거리하고 똑같이 맞아떨어집니다. 만화라는 틀을 써서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사랑을 착하게 담으며 꿈을 싱그럽게 일구는 만화책이란, 바로 우리 삶과 어깨동무하는 책입니다. 삶책입니다.

  한국에서는 창작 만화책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회와 교육과 문화가 오롯이 ‘입시 경쟁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학습만화가 불티나게 팔리고 읽히며 돈까지 됩니다. 이런 흐름을 그대로 따르면서, 책다운 만화책하고는 사귀지 못한 채, 학습만화에만 길들며 눈과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어떤 빛이 될까요.

  그림책 읽는 어버이처럼, 만화책 읽는 어버이로 거듭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무늬만 만화인 책이 아닌, 아름답고 착하며 사랑스럽고 즐거운 만화책을 알아보는 눈 밝고 슬기로운 어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눈이 밝은 몸짓으로 아름다운 그림책과 사진책을 알아보면 하루하루 즐겁겠지요. 눈이 밝은 몸가짐으로 춤을 추듯이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책을 하나하나 누린다면 날마다 활짝 웃으면서 이웃과 동무한테 살갑게 말 한 마디 건네겠지요.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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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깃든 아름다운 힘


  《지구를 다 먹어 버린 날》(뜨인돌어린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읽다가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글은 얼마 없으나 책에 담은 이야기로 살피면 예닐곱 살 아이보다는 여덟아홉 살 아이, 또는 열 살 즈음 되는 아이가 이 그림책을 잘 헤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야기를 쉽게 잘 풀었고, 그림 솜씨도 여러모로 재미있구나 싶어요. 아주 짤막한 글 몇 줄과 그림 몇 가지로 두툼한 인문책으로 밝히는 이야기를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알려주는구나 싶어요. 참으로 멋스럽습니다.

  두툼한 인문책은 온갖 자료를 들면서 두툼한 쪽수가 됩니다. 짤막한 그림책은 굳이 온갖 자료를 들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단출하게 책을 엮는다고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할 적에, 이런 자료와 저런 보기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자료와 보기가 있어야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밥이 맛있다’고 말할 적에, 이런 까닭과 저런 대목을 들추어야 밥이 맛있구나 하고 깨닫거나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오직 한 마디 “아버지, 밥이 맛있어요!” 하고 한 마디만 하더라도 마음 가득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그림책 《지구를 다 먹어 버린 날》은 사람(어른)들이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아주 간추려서 짤막하게 보여줍니다. 그뿐입니다. 더도 덜도 없습니다.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찌 될까요? 맑은 물과 바람과 햇볕을 모두 먹어치우면 어찌 될까요?

  과학 논증이나 실험을 해서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역사 자료나 인문 지식을 펼친다거나, 이런 과학자와 저런 지식인 말을 옮겨서 덧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돼요.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른도 아이도 모두 죽어요. 지구를 살리고 사랑하려 하면 우리 모두 살아요.

  인문학을 살리고 인문책을 읽히는 일이 ‘뜻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인문학을 살리거나 인문책을 읽히려면, 무엇보다 참다운 그림책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고 즐기면서 삭힐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가장 쉽고 똑똑하며 올바른 슬기를 밝히는 그림책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누리면서, 삶빛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지식이 없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만, 늘 한 가지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지식이 있어야 하더라도, 쉬우면서 또렷하고 올바른 슬기로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할 만한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말로 감싸는 인문학이 아니라, ‘학교 지식’이 없는 모든 수수한 사람들이 환하게 알아차리고 밝게 알아들을 수 있는 빛이 될 때에 올바른 인문 지식이요 인문학이며 인문책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림책에는 아름다운 힘이 깃듭니다.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 쉽게 깨닫도록 이끕니다. 그림책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읽으면서 재빨리 고갱이를 알아보도록 돕습니다.

  자, 어떻게 하면 지구별을 살릴까요? 숲이 있어야지요. 도시를 줄여야지요. 숲은 어떻게 늘리고 도시는 어떻게 줄일까요? 나무가 자랄 흙땅을 넓히고, 아스팔트 찻길과 자동차와 아파트를 줄여야지요. 시골에서 스스로 흙을 사랑하면서 집숲을 이루도록 꾀하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는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야지요.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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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빚는 어른들 마음



  그림책을 빚은 분들은 바로 이녁 아이들한테 삶을 선물하고픈 마음이었다고 느껴요. 그래서 누구나 즐겁게 그림책을 빚고, 빙그레 웃으면서 그림책을 빚으며, 때로는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림책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부터 그림책을 읽을 때에 즐겁고, 웃음이 나면서, 눈물이 핑 돌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림책을 빚습니다. 전문 작가로 되어야 그림책을 빚지 않습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대학교를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여러 해 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선물하고픈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그림책을 빚습니다.


  우리가 빚을 그림책은 수천만 권을 찍어도 즐겁고, 한 권을 엮어도 즐겁습니다. 꼭 백만 권을 팔아치워야 할 그림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백 권을 팔더라도, 그러니까 한 해에 어린이 백 사람을 만나더라도, 따사로운 빛과 아름다운 손길과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나눌 수 있으면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눈부신 빛깔로 요모조모 꾸미는 그림책도 아름답습니다. 수수하면서 가벼운 그림결로 빙긋 웃는 그림책도 아름답구나 싶어요. 그림책이 아름다운 까닭은 얼마나 멋진 그림을 그렸느냐 하는 대목이 아닌, 얼마나 따스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느냐 하는 대목이로구나 싶어요. 그러니, 그림책을 빚는 어른들은 스스로 마음을 넓게 틔웁니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은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꿉니다. 스스로 마음을 넓게 틔우는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꾸는 어른이랑 같이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넋이 될까요? 문학과 책은 언제나 사랑과 꿈으로 이룹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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