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가기 앞서 빨래를



  놀이터로 가기 앞서 빨래를 한다. 볕이 아주 좋다. 이런 날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은 즐겁게 뛰놀 테지. 큰아이가 먼저 낮잠을 깨고, 작은아이가 이윽고 낮잠을 깬다. 작은아이가 아직 한창 잘 적부터 빨래를 하니, 빨래를 거의 마칠 무렵 작은아이가 깬다. 빨래를 널기 앞서 밥상부터 차린다. “아버지, 빨래 다 하고, 밥 먹고 놀이터 가요?” 하고 묻는 작은아이한테, “응.” 하고 말한다. 그래, 너희들 속을 든든히 채우고, 빨래도 마친 뒤, 신나게 자전거를 몰자. 해가 길어진 사월 끝자락이니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와서 영화도 하나 보자. 4348.4.26.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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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씻기는 빨래



  작은아이가 세숫대야에 앉아서 씻겠다고 한다. 요 작은아이가 그리 크지 않은 세숫대야에 앉겠다고? 살짝 생각하다가 네 뜻대로 놀라고 말한다. 이 아이가 세숫대야에 앉아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이맘때까지가 아닐까. 이 아이가 더 자라면 세숫대야에 앉고 싶어도 못 앉지 않을까.


  작은아이가 세숫대야에 앉아서 물놀이를 하는 동안 두 아이 옷가지를 빨래한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면서 물을 갈 적마다 작은아이 몸에 따순물을 끼얹는다. 오늘 작은아이는 ‘세숫대야에 앉아서 누리는 씻기놀이’를 그야말로 실컷 누린다. 따순물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씻겨야 이 아이들이 마음껏 놀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다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아주 마땅한 일이지만, 여태 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살았다. 4348.4.1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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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할 수 있는 날



  빨래를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나흘째 기다렸을까. 비가 오고 멎고 하기를 되풀이하는데 해가 나지 않는다. 이런 날에는 빨래를 해도 마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집 두 아이는 여덟 살과 다섯 살이니, 나흘쯤 빨래가 쌓여도 괜찮다. 기저귀처럼 날마다 빨아야 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해가 나지 않는 날이 죽 이어지니 고단하다. 이불도 말리지 못하고 평상도 말리지 못하니까.


  드문드문 빨래를 몇 점씩 해서 집안에서 말린다. 집안에 너는 빨래는 이틀 동안 걸어야 비로소 마른다. 비가 와야 냇물이 흐를 수 있으니 비는 더없이 고마운데, 비가 그친 날에 해가 나지 않으면 풀도 꽃도 나무도 제대로 못 자라고, 사람도 튼튼하거나 맑은 숨결이 되기 어렵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 빨래를 하기 어려운 날이 곧 끝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 찾아오기를 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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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4-07 23:10   좋아요 0 | URL
요즘 계속 흐리고 비가내려 정말 빨래가 골치입니다.
그냥 널어두자니 늦게 말라 아이들 옷이 부족하니 세탁기 건조기능을 쓰게 되는데 전기가 많이 낭비되는 것 같아 여간 찜찜한게 아니네요! 얼른 해가 나길 기대해봅니다.

숲노래 2015-04-07 23:30   좋아요 0 | URL
기저귀 빨래를 할 적에는 바닥에 불을 넣고 다리미질을 하느라 밤새 잠을 건너뛰었어요. 그나마 아이들이 커서 이럭저럭 요즈음을 넘기네요 @.@ 해가 얼마나 우리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새삼스레 돌아보며 지내요
 

빨래가 안 마르는 바람볕



  어제는 아침 일찍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었는데 낮이 지나고 저녁이 되도록 옷가지가 제대로 안 말랐다. 여느 때라면 빨래를 넌 지 한 시간쯤 뒤에는 바싹 말라야 하고, 바싹 마른 옷가지를 몇 시간 더 볕바라기를 시키는데, 어제는 도무지 바싹 마를 생각을 안 했다. 틈틈이 옷가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바람을 살피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살짝 끼기는 했지만 햇살이 자주 비추는데 옷가지가 안 마른다. 아무래도 바람에 물기가 많이 깃든 탓이로구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부터 비가 온다. 비가 오려고 빨래가 안 말랐구나.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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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찬물만 쓰는 빨래



  철이 바뀌면 바람이 바뀐다. 바람이 바뀌면서 철이 바뀐다고 할 수 있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로 접어들어 겨울이 다가올 즈음에는 뭍바람이 되고, 겨울이 저물며 봄이 다가올 즈음에는 바닷바람이 된다. 들풀은 한겨울에도 여러 날 볕이 포근하면 싹을 틔우고, 들꽃은 겨울 한복판에도 여러 날 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면 꽃송이를 벌린다. 그러나 들풀이나 들꽃만 보아서는 겨울이 지나갔다고 느낄 수 없다. 꽃은 볕에 따라 피고 지기 때문이다. 철이 아주 바뀌었구나 하고 느끼려면 바람을 읽어야 한다. 바람이 바뀌면 비로소 철이 확 바뀌네 하고 알아채는데, 이때에는 온 들에 새로운 싹이 트고 나무마다 겨울눈이 터지려고 한다.


  철바람이 바뀐 지 한 달 즈음 되는 오늘은 오직 찬물로만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찬물이 몸에 닿으면 오들오들 떨리지만, 이내 가라앉는다. 찬물로 개운하고 씻은 뒤 알몸으로 빨래를 한다. 복복 비비고 죽죽 짜서 탁탁 턴다. 새옷을 입은 뒤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서 하나씩 넌다. 봄볕이 따뜻해서 빨래는 일찍 마른다. 아이들과 풀을 뜯고, 밥을 지은 뒤, 다시 기지개를 켜고 해바라기를 한다. 바야흐로 삼월이 저물고 사월이 다가오는구나. 4348.3.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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