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집안에 빨래를 너는 철



  늦가을이 차츰 저물면서 겨울이 코앞이다. 이제 큰아이는 “겨울이야. 쉬 하러 살짝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도 손이 차.” 하고 말한다. 이런 날에는 볕이 곱게 내리쬐더라도 바람이 싱싱 불면 빨래가 영 안 마른다. 해가 떨어지기 앞서 마당에서 빨래를 걷어야 하고, 덜 마른 옷가지를 집안 곳곳에 걸거나 널거나 펼쳐야 한다. 바야흐로 집안에 빨래를 너는 철인데, 아버지가 혼자서 바삐 빨래 널 자리를 살펴서 옮기면, 어느새 큰아이가 일손을 거들겠다면서 나선다. 작은아이는 스스로 일손을 거들겠노라 먼저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작은아이는 마냥 놀기를 바라는데, 놀이에 온마음을 쏟으니 둘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거의 못 느낀다.


  바삐 일손을 놀리는 모습을 느끼고는 한손을 거들겠노라 하는 아이는 어떠한 숨결이요 넋이며 마음인가 하고 문득 헤아려 본다. 빨래를 곳곳에 걸다가 살짝 일손을 쉬면서 사진기를 잡으며 살림순이를 바라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내가 누리는 삶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긴다. 의젓한 아이가 의젓한 어버이를 키운다. 씩씩하고 야무진 아이가 씩씩하고 야무진 어버이를 기른다. 4348.11.2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늦가을 비가 그치고 해님이 반짝



  늦가을 비가 그치고 해님이 반짝인다. 며칠 만인가. 한가을에는 비도 비구름도 없이 거의 날마다 해님이 쨍쨍 비추었으나, 가실을 마친 늦가을부터 비도 비구름도 잦아서 해님을 보기 어려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마루로 스치기에 옳거니 빨래하는 날이네 하고 느꼈다. 파란 물병에 물을 담아서 섬돌에 올리고는 바지런히 아침 일손을 잡는다.


  봄이랑 여름뿐 아니라 가을이랑 겨울에도 해님은 얼마나 고마운가. 해님이 있기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해님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해님이 있는 터라 빨래를 해서 기쁘게 말린다. 해님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하며 빨래를 했고, 해님 사랑해요 하고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널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행주를 빨 적마다



  걸레나 행주를 빨 적마다, 걸레나 행주가 되어 주는 천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그런데, 걸레나 행주만 고마우랴. 내 둘레에 고맙지 않은 살림이란 있겠는가. 내 둘레에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란 있겠는가. 날마다 행주를 빨고, 비가 오지 않으면 날마다 행주를 마당에 널어서 말린다. 햇볕에 잘 마른 행주는 하루 동안 일을 쉰다. 행주 두 벌을 갈마들면서 쓴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살림이 천천히 손에 밴다. 앞으로 쉰 살이 되고 예순 살이 되며 일흔 살이 될 적에는 그즈음에 맞게 새로운 살림을 꾸리겠지. 오늘도 신나게 행주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면서 이 천조각을, 또 이 천조각을 쥔 내 두 손을 사랑한다.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를 해서 널고 말려서 걷고 개기



  아침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여러 가지 기계들, 이를테면 자동차나 텔레비전이나 세탁기를 안 쓰느냐 하고 묻는다. 그래서 자동차나 텔레비전은 아직 쓸 마음이 없고, 세탁기는 집안에 들였지만 선반처럼 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만, 몸이 아플 적에는 쓰는데, 요 한 달 사이에 오른무릎이 아직 낫지 않았기 때문에 세탁기를 쓴다.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부엌에 서서 밥을 짓는다. 한눈으로는 물 끓는 결을 살피고, 다른 한눈으로는 세탁기에 뜨는 눈금을 읽는다. 밥이 다 되어 즐겁게 차려서 아이들을 부른다. 이러면서 나는 빨래를 마쳐 준 세탁기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마당에 넌다.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을 훔친다. 이불하고 깔개하고 베개를 햇볕에 말린다. 틈틈이 뒤집어 준다. 저녁해가 기울 무렵 이불하고 베개를 턴 뒤에 집안으로 들인다. 옷가지도 하나씩 떼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온다. 집에서 하는 일만으로도 하루는 곧 지나간다. 우리는 집에서 무엇을 할까? 살림을 하고 하루를 짓지. 살림이란 무엇이고 하루란 무엇일까. 서로 즐겁게 웃으면서 나누는 이야기일 테지.


  대단하거나 뾰족하다 싶은 모습이 있는 하루는 없다. 언제나 수수한 모습으로 흐르는 하루이다. 그래서 수수한 삶결을 수수한 대로 아끼기에 즐거운 노래가 흐르고, 이 노래는 새삼스레 사랑스러운 살림살이로 거듭난다. 저녁햇살이 부드럽고 저녁바람도 싱그럽다. 4348.10.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 만에 걸레를 빨았을까



  낮에 걸레를 빤다. 무릎에 댈 누름붕대를 빨아야 하는데, 이 붕대만 빨려고 빨래기계를 쓰기에 뭐 해서 아이들 옷가지 몇 가지를 함께 빨까 싶어서 무릎을 살피는데, 쪼그려앉아도 이럭저럭 괜찮다. 뿌리는 파스를 아침과 낮에 한 차례씩 뿌려 주었더니 송곳으로 쿠욱 쑤시는 듯한 아픔도 사라진다. 운동선수가 무릎이나 관절에 ‘뿌리는 파스’를 뿌리는 모습을 곧잘 보았는데, 저렇게 뿌려도 괜찮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함을 오늘 푼다. 내 무릎에 뿌려 보니 그야말로 곧바로 무릎이 나아진다. 다만, 이렇게 곧바로 나아진 뒤에 어떻게 될는지 모를 일이겠지. 한 가지 더 재미있다면 뿌리는 파스를 무릎에 뿌린 뒤 피고름 멍울이 크게 줄었다. 아직 무릎을 펴고 굽힐 적에 뜨끔뜨끔 아프지만 뿌리는 파스가 꽤 잘 듣는다. 이럭저럭 가볍게 손빨래를 하고 걸레도 빨아서 마당에 넌다. 절뚝절뚝 걸으면서 옷가지를 너니 상큼한 구월바람이 온몸으로 스민다. 바람을 쐬며 마당을 거닐 수 있니 참으로 기쁘네. 4348.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