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헹굼물을 밭에 주기



  집에서 빨래를 하며 비누를 안 쓴 지 보름 남짓 되었지 싶습니다. 그동안 빨래비누를 썼지만 이제 비누 없이 여러 가지를 섞어서 빨래를 합니다. 예전에는 되살림비누를 썼어요. 되살림비누가 땅이나 물에 한결 낫다고 여겨서 썼지만 그래도 이 되살림비누에서도 거품이 나와요. 그러니 되살림비누로 빨래를 하고 난 헹굼물을 밭에 주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비누를 안 쓰고 이엠발효액하고 가루하고 목초액으로 담가 놓고서 빨래를 한 뒤에는 스스럼없이 헹굼물을 밭에 줍니다. 헹굼질을 하는 손도 예전보다 힘이 훨씬 적게 들 뿐 아니라 수월하기까지 합니다. 옷에서 나는 냄새도 더욱 부드러우면서 맑구나 하고 느껴요. 2016.7.1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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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빨래하기



  그동안 되살림비누로 빨래를 했는데, 이제 되살림비누조차 안 쓰는 빨래를 하자고 생각한다. 되살림비누를 꼭 써야 하느냐 하고 곁님이 물은 지 한참 되었는데, 나는 이제서야 몸이 움직인다. 비누를 쓰지 않고도 옷을 빠는 길을 비로소 생각하고, 옷가지를 오래도록 고이 건사하면서 두고두고 입고 누리는 살림을 찬찬히 돌아본다. 세제를 쓰면 옷에 세제 냄새가 남을 뿐 아니라, 세제는 고스란히 땅과 바다로 스며든다. 되살림비누를 쓰더라도 되살림비누를 이룬 것들이 흙하고 바다로 스며든다. 빨래란, 옷만 깨끗하게 하는 몸짓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터전도 정갈하게 보듬을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할 테지. 아주 마땅한 일이지만, 이 아주 마땅한 일을 어릴 적부터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내가 어릴 적에 곁에서 늘 지켜본 ‘우리 어머니 빨래’나 ‘이웃집 빨래’는 모두 ‘세제 쓰는 빨래’였고, 내가 나중에 제금을 나서 혼자 살림을 가꿀 적에 이르러 ‘되살림비누’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나 제금을 나서 혼자 지내던 첫무렵부터 되살림비누를 알지는 않았다. 삶도 살림도 사랑도 사람도 하나씩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하나씩 배우는 동안 천천히 배워서 알았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저희 옷을 저희 손으로 스스로 빨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고 입을 무렵에는 오롯이 ‘맑은 빨래’가 되도록 해야지. 오늘은 햇볕이 좋아 옷장 하나를 마당에 내놓으면서 내 옷을 몽땅 바깥에 놓고 새로 말린다. 이제부터 날마다 한 사람 옷가지를 모조리 내놓아 뜨거운 여름볕에 바싹바싹 말리려 한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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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냄새 맡기



  ‘좋은숨결’이라 할 만한 ‘EM’을 써서 빨래를 하면 빨래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 이를테면 쌀뜨물을 닮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재활용비누로 빨래를 하면 재활용비누 냄새가 나고, 세제로 빨래를 하면 세제 냄새가 난다. 너무 마땅한 이야기인가? 냇물이나 샘물로 빨래를 하면 옷에서 냇물이나 샘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수돗물로 빨래를 하면 옷에서 수돗물 기운이 흐르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 또한 너무 마땅한 셈인가?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는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고, 매캐한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는 매캐한 바람을 느낀다. 농약을 치는 곳에서는 농약 바람을 느끼고, 소똥이나 돼지똥이 흐드러진 데에서는 소똥이나 돼지똥 바람을 느낀다. 아무래도 나는 너무 마땅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은데, 요즈음 ‘옷냄새’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내 손과 아이들 몸에 어떤 냄새가 배면서 어떤 살림을 지을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되새긴다. 2016.6.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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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이 갈라질 적에



  그제였다. 손톱 밑이 갈라졌다. 나무를 만지다가 갈라졌을까, 풀을 뜯다가 갈라졌을까. 아니면 부엌일을 하다가, 걸레질을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뭘 하다가 갈라졌을까. 어디에 폭 찍힌 듯이 갈라진 손톱 밑 때문에 설거지를 할 적마다 뜨끔거렸다.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서 설거지를 미루다가, 비닐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 보았다. 이런 손으로는 빨래를 할 수 없어서 그제는 비가 온다는 핑계로 빨래도 미루었다. 손톱 밑이 갈라지고서 하루 동안 손을 제대로 못 썼고, 하루는 어느 만큼 아물어서 손을 썼다. 오늘은 손톱 밑이 많이 아물었구나 싶어서 아침부터 신나게 빨래를 했다. 빨래를 마친 뒤에는 쑥하고 갈퀴덩굴을 뜯었고, 밥을 차렸으며, 이제 등허리를 살짝 펴려 한다. 볕이 좋은 봄날에 아이들은 집과 뒤꼍과 고샅을 넘나들면서 논다. 풀내음도 꽃내음도 싱그러운 하루이다. 손톱 밑도 오늘이 지나가면 말끔히 낫겠지.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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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빨래 실컷



  아침에 두 아이를 씻긴다. 이제 두 아이한테서 나오는 옷가지가 꽤 많다. 이 아이들이 옷을 두 벌 갈아입으면 그야말로 수북하다. 겨울옷이기에 수북할 수 있지만, 꽤 많이 자랐다는 뜻이다. 이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무렵에는 기저귀랑 배냇저고리랑 깔개랑 덮개랑 이불이랑 천을 날마다 신나게 빨았다면, 여섯 살 아홉 살을 지나가는 요즈막에는 웃도리랑 아랫도리랑 날마다 두 켤레나 네 켤레씩 나오는 옷가지를 이틀이나 사흘마다 신나게 빤다.


  내친 김에, 아이들이 쓸 폭신걸상도 빨래한다. 큰아이가 바깥물꼭지를 들어 주어서 한결 수월하게 빨래한다. 큰아이한테 묻는다. “어때? 걸상 빨기가 어때 보여?” “재미있어 보여.” “그래? 그러면 잘 보고 다음에는 너희들이 해.”


  마당 있는 집에서 사니까 폭신걸상을 빨 수 있다. 마당 없는 집에서 꾸리는 살림살이라면 이런 덩치 큰 빨래는 어떻게 할까? 빨기도 말리기도 어렵겠지.


  이 다음으로 털장갑을 빨래한다. 곁님이 뜨개질로 빚은 아이들 장갑 두 켤레를 빨기는 수월하다. 척척 슥슥 쭉쭉 빨아낸다. 이리하여 우리 집 봄마당은 해바라기를 하는 빨래로 가득하다. 오늘부터 마을논을 가는 트랙터가 움직이고, 아이들은 트랙터를 구경하려고 고샅을 달린다. 나는 해바라기하는 빨래 곁에서 손목이랑 팔이랑 등허리를 펴면서 함께 봄볕을 쬔다. 2016.2.2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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