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4.26.

수다꽃, 내멋대로 38 담그림



  둘레에서는 ‘벽화(壁畵)’라는 말을 쓰지만, 나는 ‘담그림’이라는 말을 쓴다. 곰곰이 보면, ‘벽화’라는 이름을 내세워 돈벌이를 하거나 곁들임(재능기부·자원봉사)을 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낙후된 구도심이 밝아 보이도록 벽화 그리기 사업’을 벌인다고 밝힌다. ‘벽화’를 그리는 이들은 들꽃을 안 본다. 골목마을에 치덕치덕 붓질을 하되 골목꽃을 못 알아본다. 더구나 골목마을에서 아예 살지 않을 뿐더러, 골목집 이웃을 사귀지 않고 알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는 터라, 골목마을하고 한참 동떨어진 뜬금없거나 터무니없는 그림을 철벅철벅 발라 놓고는 함찍(단체사진)을 하고서 사라진다. 이 땅에 ‘뒤떨어진 마을(낙후된 구도심)’은 없다. ‘안 뒤떨어졌다고 여기는 잿집(아파트)’에서 먹고자는 이들 눈으로는 두겹(2층)짜리조차 드문 골목집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담을 맞대는 살림집이 어떠한 숨결인지 겪은 적도 본 적도 알려고 나선 적도 없다고 할 만하다. 모름지기 골목집은 조용하다. 골목에는 쇳덩이(자동차)가 함부로 못 들어온다. 골목집에는 오름틀(승강기)을 놓을 일이 없다. 골목집은 씻는칸(욕실)이 조그맣게 한켠에 있을 뿐이라, 옆집에서 누가 씻건 말건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이와 달리 잿집에서는 쇳덩이가 하룻내 들락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오름틀 소리가 끝없고, 위아래에서 물을 쓰거나 씻는 소리까지 퍼진다. 골목집에서는 틈새소리(층간소음)가 없다. 잿집에만 있다. 다만, 골목집이 모인 마을에도 ‘다른 소리’는 있다. 바람이 불 적에 골목꽃이 춤추는 소리, 골목나무가 한들거리는 소리, 골목꽃하고 골목나무를 보러 찾아온 크고작은 새가 들려주는 소리, 이따금 풀개구리까지 나타나 들려주는 소리, 풀꽃나무 곁에 깃드는 풀벌레가 들려주는 소리가 있다. 골목마을에서는 비가 오면 빗소리가 고르게 퍼져 노랫가락을 이룬다. 이제는 골목에서도 잿집 놀이터에서도 어린이가 뛰노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지난날에는 골목 어디에서나 어린이가 우르르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노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란히 있었다. 무엇을 가리켜 ‘낙후(뒤떨어졌다)’라 하는가?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몇 천만 원이라 이르는 돈으로 사고파는 잿더미여야 ‘번쩍거리’는가? 2023년 4월에 인천 배다리책골목 곳곳에 갑자기 나타난, 뜬금없고 어이없는 담그림을 보았다. 그러나 ‘담그림’이라 하기에 창피하다. ‘인천시에서 4000만 원이란 목돈을 들여 만든 벽화예술사업’이라는데, 인천 배다리하고 얽힌 박경리·현덕·주시경·김구·김소월도 아닌 움베르토 에코·모비딕은 뭐고, 인천막걸리도 아닌 스타벅스는 뭔가? 인천이나 배다리 골목집에 피어나는 들꽃이나 수수꽃다리도 아닌 큼지막한 꽃을 칙칙 뿌려대면서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이라 내붙이는구나. 마을에, 골목에, 책집에, 이웃이자 동무로 어우러지려는 마음도 눈빛도 없기에 ‘아트스테이’였네 싶다. 우리말을 모르거나 안 쓰기에 잘못이지는 않다. ‘빛(아트)으로 머문다(스테이)’고는 하되, 정작 무슨 ‘빛듦(빛이 깃듦)’인지 종잡을 수 없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담아 책으로 여민 이들은 하루아침에 글·그림을 쏟아내지 않는다. 기나긴 삶을 숨빛으로 녹여내어 글 한 줄에 그림 한 자락으로 편다. 골목마을에 ‘벽화사업’이 아닌 ‘담그림’을 여미려면, ‘4000만 원 경비지출’이 아닌, 마을사람한테 물어보고서 그림감을 고르고, 마을사람이 스스로 담그림을 빚으며, 배다리책골목 책지기가 사랑하는 ‘인천 글꾼·그림꾼’에 ‘인천 이야기책과 글꽃’을 놓아야 아름답고 사랑스레 오래오래 흘러가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입다물거나 등돌린다. 돈을 노리는 사람이 돈에 군침을 흘린다. 사랑을 바라는 사람이 스스로 사랑을 짓는다. 이름을 거머쥐려는 사람이 이름팔이를 하려고 허수아비로 선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동무로 어울리는 사람이 마을을 가꾼다. 들숲바다를 등진 사람이 막말과 막짓을 일삼는다. 들숲바다를 읽고 헤아리는 사람이 이웃을 포근히 품고 달랜다. 풀꽃나무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 깎아내린다. 풀꽃나무하고 이야기하며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해맑게 피어난다. 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햇볕·햇빛·햇살을 싫어한다. 밤에 별바라기를 하는 사람이 햇볕·햇빛·햇살을 노래한다. 어른스럽지 않기에 아이 곁에 서지 않고, 아이가 못 알아들을 어려운 말을 일삼는다. 어른이 되려 하기에 아이 곁에 서면서, 아이랑 오순도순 즐겁게 우리말꽃을 상냥하게 편다. 볼썽사나운 담그림을 모두 지우기를 빈다. 그저 하얗게 발라 놓자. 마을은 마을사람 손으로 그려야 빛난다. 책이야기는 책집지기와 책꾼이 담아야 태어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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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17.

수다꽃, 내멋대로 37 강의



  2023년 4월 15∼16일 이틀에 걸쳐 부산 망미동 마을책집 〈비온후〉로 이야기꽃(강의)을 펴러 다녀왔다. 다음달 5월 19∼20일에 새로 이틀짜리 이야기꽃을 펴러 간다. 엊그제는 ‘헌책집·자전거’를 열쇳말로 삼았고, 다음달은 ‘책마루숲(서재도서관)·골목빛(민중생활문화)’을 열쇳말로 삼으려고 한다. 그다음달은 ‘시골 살림빛(시골 아저씨 육아일기)·말과 빛(사전과 사진)’을 열쇳말로 삼을 테고. 언제 어디로 누구를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펴든, 밑글(원고)을 미리 돌리기도 하지만, 되도록 밑글은 안 돌리려고 한다. 밑글보다는 숲노래 씨가 쓴 책이나 낱말책(사전)을 먼저 읽어 오시기를 바라고, 또는 이야기꽃 뒤로 책이나 낱말책을 사서 읽으시기를 바란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이야기꽃은 ‘길잡이가 가르치는 마당’이 아니라, ‘너나없이 함께 배우는 수다판’이다. 둘레에서는 으레 ‘강의·강좌·특강·수업’ 같은 일본 한자말을 쓴다. 그렇다. ‘강의·강좌·특강·수업’은 그냥 일본 한자말이다. 이 한자말 가운데 중국에서 예부터 쓰던 낱말이 있을 만한데, 오늘날 이 나라에서 쓰는 ‘강의·강좌·특강·수업’ 같은 낱말은 일본이 총칼로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뿌려놓은 ‘말씨앗’이다. 일본이 뿌린 말씨앗을 구태여 안 써야 할 까닭은 없다만, ‘총칼을 앞세우고 종살이(식민지 노예생활)로 짓밟으려고 노리면서 퍼뜨린 말씨앗’인 터라, 아무 낱말이나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글손질(언어순화) 때문에 일본 한자말을 안 쓰려는 마음은 없다. ‘마음닦기(정신건강·정신수양)’를 헤아리면서 일본 한자말을 씻어내고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자리에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쉽고 수수한 말씨앗(말씨)을 찾아내고 짓고 가꾸고 다듬고 여미고 풀어서 나누려고 할 뿐이다. 그렇기에 숲노래 씨는 ‘강의·강좌·특강·수업’이나 ‘클래스’ 같은 이름을 안 쓴다. ‘이야기꽃·수다꽃’ 가운데 골라서 쓴다. 우리말 ‘이야기’는 “서로 새롭게 생각을 잇는 길”을 속뜻으로 품는다. ‘이야기 = 잇는 말길”을 뜻한다. ‘수다’는 “서로 수수하게 수런수런 가벼우면서 즐거이 생각을 주고받는 길”을 밑뜻으로 담는다. ‘수다 = 수수한 말잔치’를 뜻한다. 모든 ‘강의·강좌·특강·수업·클래스’는 언제나 길잡이(교사·강사·지도자) 혼자 떠들면서 이끄는 얼거리이다. 이런 얼거리가 나쁠 일은 없지만, 길잡이 혼자 떠들 적에는 길잡이만 혼자 배운다. 길잡이도 떠들고, 사람들(청중)도 함께 떠들면, 둘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이야기·수다’란 따로 누구를 길잡이로 삼기보다는 서로서로 이슬떨이가 되고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어 홀가분히 생각씨앗을 심어서 마음날개로 피어나는 길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밑글을 미리 챙겨서 돌리기도 하되, 되도록 밑글에 얽매이지 않고서 이웃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궁금한 수수께끼를 그때그때 풀면서 새삼스레 생각을 지피는 즐거운 수다판에 이야기밭을 일구고 싶다. 비록 숲노래 씨 한 사람은 어느 곳을 가든 그 하루만 마주하는 글이웃이자 글동무이자 글스승 노릇일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마음으로 사귀고 어울리는 이웃이자 동무로 어울릴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책이나 글이나 누리집(블로그·SNS)으로 만나면서 새록새록 말씨앗을 즐겁게 심고 가꾸는 오늘을 지을 만하다. 전남 고흥이란 시골에서 살기에 하루 내내 새노래·풀벌레노래·개구리노래에 바람노래·구름노래·별노래에 풀꽃노래·나무노래·숲노래를 누린다. 이런 하루살림을 누리면서 ‘숲노래’란 이름을 스스로 붙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시골숲노래’를 부르면, 저쪽에서 이웃님이나 동무님이 ‘서울숲노래(도시숲노래)’를 맞가락으로 들려줄 만하다. 서로 숲노래로 바라보고, 함께 숲빛으로 눈망울을 반짝이는 자리를 살아내려는 꿈길이기에, ‘강의’라는 어울림판을 ‘수다꽃’으로 바꾸고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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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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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11 자전거



  부릉이(자동차)를 아는 사람은 슥 스쳐 지나가더라도 안다. 어느 곳에서 만들었고, 염통(엔진)은 어떠한지뿐 아니라,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고, 어디 말썽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느낀다. 자전거를 아는 사람은 슥 지나가더라도 안다. 어느 곳에서 만들었고, 톱니(체인)가 제대로 맞물려 흐르는지,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톱니결(체인비)을 똑바로 맞추어서 타는지, 톱니에 기름을 알맞게 먹였는지 아예 안 먹였는지 마구 쳤는지 환하게 느낀다. 이뿐인가. 걸상(안장) 높이를 제대로 맞추었는지, 발판을 제대로 구르면서 무릎하고 발목하고 허리하고 등뼈가 곧게 펴도록 타는지를 곧장 낱낱이 느낀다. 아직 어릴 적에 자전거집 할배가 척 보고 다 아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여쭈었다. “어떻게 다 알아요?” “얌마, 안 쳐다보고 소리만 들어도 안다. 모르면 우째 자전거를 손보거나 고치노?”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이 아이들이 말을 않더라도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즐겁거나 아픈가를 느낄 뿐 아니라, 말을 안 해도 무엇을 바라는가를 환하게 느끼고 알았다. 이러던 어느 날 곁님이 말하더라. “여보, 그대가 느끼고 알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입으로 말을 하도록 해주어야 해요. 아이 스스로 바로 그때 무엇을 바라는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하지 않아요?”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숱한 사람들은 자꾸 ‘글님 이름값·펴낸곳 이름값’에 얽매인다. 우리는 줄거리하고 이야기를 읽을 뿐인데, 왜 글님이나 펴낸곳 이름값을 읽으려고 할까? 툭하면 몇몇 노래꾼이 어느 나라 어느 노래를 슬쩍하거나 슬그머니 베꼈는가 하는 민낯이 불거진다. 때로는 여러 글꾼이 어떤 글을 훔치거나 가로챘는가 하는 멍청짓이 드러난다. 왜 슬쩍하거나 베끼겠는가? 바로 돈 때문이요, 이름 때문이며, 힘 때문이다. 슬쩍하거나 베껴도 마음으로 읽어서 느끼고 알아채려는 사람이 적은 탓에 숱한 노래꾼하고 글꾼이 훔치거나 베낀다. 숱한 사람들은 속빛을 읽고 나누거나 새기기보다는, 이름값을 누리려 하면서 거짓꾼한테 돈·품·마음을 갖다 바친다. 자전거를 모르는 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걸상(안장)이 너무 낮으면 무릎도 등허리도 발목도 등뼈도 온통 어긋나고 시큰거리면서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른다. 이뿐인가. 걸상을 그이 키높이에 맞추면 “이렇게 높게 앉으면 안 위험해요?” 하고 걱정하더라. 그러나 걸상을 키높이에 안 맞추기에 그야말로 대단히 아슬하다(위험하다). 걸상을 키높이에 맞추면 넘어질 일부터 없고 뼈마디하고 힘살이 다칠 일마저 없다. 눈가림에 거짓말을 일삼는 노래꾼하고 글꾼이 넘치는 이 나라에서, 눈가림도 거짓말도 아닌 참글을 쓰고 엮으며 책으로 여미는 수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참 많다만, 뜻밖에도 이분들 책은 그야말로 적게 팔리더라. 우리는 뭘 볼까? 뭘 두려워할까? 뭐에 허울을 뒤집어쓰고서 그만 눈을 감아버렸을까? 그러면 나는 자전거를 어떻게 아느냐고? 어릴 적에 와장창 온몸이 깨지며 넘어지기를 밥먹듯이 했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자전거를 달리면서 했고, 한 해에 자전거로 2만 킬로미터씩 달렸고,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서 열두 해를 이끌고 다니면서 그저 온몸으로 익혔다. 이러는 동안 눈감고도 자전거를 알겠더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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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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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36 손글씨



  숲노래 씨는 ‘손글씨’를 말한다. 영어로 ‘사인·캘리그래피’를 말하지 않고, 한자말로 ‘서명·수결·필기체’를 말하지 않는다. 손으로 글씨를 쓰니까 ‘손글씨’일 뿐이다. 달리 까닭이 없다. 손으로 글을 쓰는 삶을 고스란히 말로 옮기니 ‘손글씨’이고, 단출히 ‘손글’이라 하거나 ‘손글꽃’처럼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읊기도 한다. 숲노래 씨는 골목을 거닐기에 “골목을 걷는다”고 말한다. ‘골목여행’이나 ‘골목탐방’을 하지 않는다. ‘어반(urban)’을 다니는 일이 아니다. ‘어반스케치’를 하는 이들을 보면 이들은 모두 구경꾼인 줄 알아챈다. 왜냐하면, 골목사람은 ‘골목그림’을 그릴 뿐이거든. 시골에 살기에 ‘시골살이’를 한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일 뿐, ‘촌사람(村-)’이 아니다. ‘농촌’도 아니다. 그저 ‘시골’이다. 숲을 품기에 ‘숲’을 품는다고 말한다. ‘자연(自然)’도 아니고, ‘내추럴’도 아니다. 그런데 둘레를 보면 온갖 꾸밈말(미사여구)을 붙이려고 한다. 가만히 보면, 골목사람으로서 골목을 거니는 이들은 ‘골목’을 말할 뿐, ‘어반’이나 ‘구도심’을 말하지 않는다.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마을’을 말할 뿐, ‘공동체·단체·집단·사회·국가’를 말하지 않는다. 시골이며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숲·시골숲’을 말할 뿐, ‘촌·자연·농촌·전원’을 말하지 않는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기에 나쁘거나 잘못일 까닭이 없다. 다만, 한자말이나 영어는 우리말이 아닐 뿐이다. 우리말은 수수하게 사랑으로 짝을 만나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서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수수하게 쓰는 말이다. 한자말이나 영어는 우두머리나 윗자리에 선 벼슬아치나 글바치가 쓰는 말이다. 자리에 따라 달리 쓰는 말이니 좋거나 나쁜 말은 아니다. 그저 ‘자리가 다른 말’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좋을까, 나쁠까? 이런 길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아무런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없다. 왜냐하면 ‘어깨동무’나 ‘손잡기’나 ‘두레’나 ‘품앗이’나 ‘함께살기’처럼 수수하게 오늘 이곳에서 살아내려는 말을 안 쓰고서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허울스러운 일본 한자말에 갇혔거든. 우리말 ‘왼·오른’이 있으나 굳이 ‘좌·우’나 ‘레프트·라이트’를 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잘못을 하거나 나쁘지 않다. 그저 한자하고 영어를 그들 혀나 손에 얹으면서 힘·이름·돈을 거머쥐려 할 뿐이다. 힘·이름·돈을 거머쥘 마음이 없이 삶·살림·사랑을 함께하려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왼·오른’을 이야기한다. 어린이를 보라. 어린이 가운데 누가 힘·이름·돈을 따지거나 붙잡으려 하는가? 힘·이름·돈을 움켜쥐거나 내세우려 하는 이들이 ‘우리말’을 안 쓸 뿐이다. ‘우리말’은 ‘순수한 우리말’도 ‘토박이말’도 아니다. ‘우리말 = 삶말·살림말·사랑말’일 뿐이고, 삶·살림·사랑은 숲에서 깨어난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려는 마음이라면 ‘숲말’을 쓰게 마련이요, ‘숲말 = 바람말·하늘말·바다말·들말·마을말·보금자리말(집말)’이다. 이리하여 숲노래 씨는 손글씨를 쓴다. 손으로 천천히 글씨를 그린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바람줄기를 글로 옮긴다. 마음으로 깃드는 햇볕을 글로 담는다. 마음으로 퍼지는 꽃내음에 풀빛을 글로 얹는다. 마음으로 품을 숲을 글로 고스란히 풀어낸다. 손이 아닌 손전화나 셈틀로만 글을 쓰려는 분이 둘레에 있으면 으레 붓(연필)하고 종이(수첩)를 내민다. “숲에서 온 종이랑 숲에서 온 붓으로 글을 그려 봐요. 그러면 누구나 스스로 꿈을 마음에 심어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을 가꿀 수 있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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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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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35 돈



  돈을 벌기는 쉽다. ‘나’를 버리면 ‘돈’은 쉽게 들어온다. ‘나’를 안 버리면 ‘돈’은 안 들어온다. 돈을 잔뜩 번 사람 가운데 ‘나를 안 버린 사람’이 있을까? 하나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돈을 벌려면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다운 ‘나’를 찾으려고 하는 이들은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쓰려는 길에 마음을 기울인다. 아무 데에나 돈을 뿌리는 이는 ‘나’를 버리면서 모은 돈이면서도 막상 ‘나’를 되살리는 길에조차 돈을 못 쓰는 셈이다. ‘나’를 나답게 가꾸려는 이들은 ‘나를 버리면서 모은 돈을 이녁 삶자리에서 치우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비로소 나를 되찾’는다. 아무렇게나 아무 데에나 뿌리는 돈으로는 나를 못 찾는다. 오직 스스로 사랑을 느끼는 자리에 돈을 써야 비로소 나를 되찾는다. 숲노래 씨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다만, ‘일’을 할 뿐, ‘직업·직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숲노래 씨가 어떤 일을 맡아서 해내고 나면 둘레에서 돈을 건네기도 하는데, 숲노래 씨는 일을 할 적에 오직 ‘나’로서 맡는 ‘일’을 바라볼 뿐이라, 일삯을 코딱지만큼도 안 쳐다본다. 숲노래 씨가 생각하는 일삯은 그저 하나이다. “저한테 일삯을 주시려면 1초에 1억 원을 주셔요.”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탠다. “1초에 1억 원이 비싸면 저한테 일을 맡기지 마셔요. 그리고 종이뭉치로도 1억 원이 있을 테지만, 마음으로도 1억 원이 있습니다. 일한 값을 돈으로 치르실 적에 종이돈으로 1만 원을 주셔도 좋고, 마음돈으로 1억 원을 주셔도 좋습니다.” 사랑을 값으로 헤아릴 수 없다. 사랑은 꽃 한 송이일 수 있고, 하늘에 드리운 구름무늬일 수 있다. 사랑은 웃음 한 자락일 수 있고, 노래 한 가락일 수 있다. 숲노래 씨는 일삯으로 때때로 노래나 춤을 바란다. “저한테 뭘 해주시고 싶으시면, 돈 말고 노래 한 가락 뽑아 주셔요. 춤 한 판 추어 주셔도 고맙고요.” 밑일삯(최저임금)을 값으로 매기는 일은 안 나쁘다고 여기지만, 오직 값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스스로 종살이에 갇힌다고 느낀다. ‘메시·김연경’한테 밑일삯만 주고 일을 맡길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메시·김연경’이다. 누구나 저마다 다른 ‘메시·김연경’이다. 셈값(숫자)으로만 바라보면 사람을 못 보고 사랑을 놓친다. 고마이 느끼는 마음을 셈값으로 돌리지 말자. 고맙다고 느끼면 언제나 사랑으로 헤아리면서 풀 적에 스스로 즐겁고 홀가분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빚은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나 여태 한 자락도 안 팔았다. 돈값으로만 바라보려는 분한테는 손글씨도 손그림도 건넬 마음이 없다. 사랑으로 바라보려는 분이라면 숲노래 씨도 나란히 사랑으로 바라본다. 다만, 돈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돈은 오직 돈일 뿐이다. 똥이 나쁜가? 아니다. 똥이 좋은가? 아니다. 똥은 오직 똥이다. 똥은 얼른 흙으로 돌아가려는 숨결일 뿐이요, 똥오줌은 잘 삭이고서 보내든 바로 땅한테 보내든 하면 될 숨결이다. 돈은 ‘돌다’라는 말밑을 품은 말결 그대로 ‘돌멩이처럼 뎅구르르 돌고돌면서 동글동글 동무로 만나는 자리에 주고받으면 되는 빛’ 가운데 하나이다. 돌고돌아야 할 돈을 돌리지 않고서 혼자 움켜쥔다면 ‘딱딱한 돌’로 굳는다. 돈을 못 벌어서 걱정하는 이들은 돈벼랑이나 돈수렁에 잠긴 채 스스로 뻣뻣하게 굳는다. 돈을 내칠 까닭은 없되, 움켜쥘 일도 없다. 흐르도록 돌릴 적에 빛나는 돈이다. 돈을 움켜쥐기에 ‘돌아(미쳐)’버린다. 돈을 돌리기에 서로 ‘동무’이다. 아주 쉽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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