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7.23.

수다꽃, 내멋대로 48 너 참, 피곤하다



  오늘을 이루는 몸짓은 으레 진작부터 했다. 아직 몸에 배지 않았으면, 오늘부터 다스려서 몸으로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숲노래 씨는 어버이집에서 홀로서기를 한 1995년에도,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93년에도 수저를 챙기며 살았다. 예전에는 도시락을 챙겼으니 수저도 으레 챙길 만하지만, 도시락을 안 챙겼어도 ‘내 수저’를 들고 다니면서 한벌살림(1회용품)을 안 쓰려 했다. 1992년이나 1995년에도, 2002년이나 2005년이나 2012년에도, 이런 매무새를 지켜보는 둘레에서는 “너 참, 피곤하다.”라든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라든지 “일회용품 안 쓴다고 지구가 죽냐?”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다. “난 내 수저를 챙길 적에 즐거워.”라든지 “수저에 천바구니에 물병을 챙기는 사람을 힘들게 산다고 바라보는 네 눈길이야말로 힘들지 않아?”라든지 “난 푸른별을 살리려고 내 수저나 천바구니나 물병을 챙기며 다니지 않아. 이렇게 다니면서 스스로 즐겁고 넉넉하거든.” 하고 대꾸했다. 어마어마한 뜻(대의명분)을 품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말 ‘일’은 ‘일어나다·일으키다·일다’로 잇는 말씨앗이다. 모든 ‘일’은 물결이 일듯,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나기에 하고, 너울이 일렁이듯, 스스로 몸짓이며 매무새를 새롭게 일으키려고 한다. 1992년부터 책에 눈을 떴고, 책에 눈을 뜬 그날부터 책집마실을 하면 으레 ‘차고 넘치도록’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책을 장만했다. 1992년이나 2023년이나 수레(자동차)를 안 몬다.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린다. 좀 먼길이면 버스를 탄다. “아니, 책을 그렇게 많이 사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다 이고 지고 다녀? 차 좀 사. 차 살 돈 없어?” 하고 따지듯 묻는 분한테 “제가 건사하는 책은 스스로 품으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제가 온몸으로 읽을 꾸러미로 스며요. 손쉽게 수레에 실어서 나르려면, 아예 책집마실부터 안 하면 될 테지요. 책 몇 꾸러미를 이고 지면서 힘들거나 땀난다면, 뭣 하러 틈을 내어 책읽기부터 하나요? 책부터 안 읽으면 안 힘들지 않나요?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면 글을 안 써도 되어요. 아이도 안 낳으면 되어요. 아이를 낳았어도 천기저귀를 안 대고, 손빨래를 안 하면, 안 힘들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들이고 힘을 들이고 사랑을 들이고 숨결을 들이면서, 이 모든 일을 물결이 일렁이듯 노래하면서 즐길 적에, 저부터 스스로 웃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웃으면서 신나게 책짐을 이고 지고 노래하면, 우리 아이들하고 이웃 아이들은 ‘삶이란 늘 노래’라는 대목을 물려받을 만해요.” 하고 대꾸한다. 이런 말을 듣는 분은 으레 “참말로 그대는 제멋대로 사네!” 하더라. 그래서 “저는 마땅히 ‘제 멋’을 그대로 살리며 살아야지요. 이녁은 ‘이녁이라는 삶멋’을 그대로 살리며 살아야 ‘산빛’일 테고요.” 하고 보탠다. ‘제멋대로’란, ‘함부로·아무렇게나’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 + 멋 + 대로’ 하루를 그리고 삶을 지으며 오늘을 노래할 노릇이다. 나는 내 하루를, 너는 네 하루를 살아야잖은가? 흉내를 낼 일도, 훔칠 까닭도, 따라갈 일도, 쳇바퀴를 돌 까닭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멋을 보는 길대로’ 살아갈 적에 스스로 하늘빛이다. 그런데 ‘제멋대로’가 마치 ‘함부로·아무렇게나’라도 되는듯 밀어붙이는 이 나라이다. 우리가 스스로 ‘제멋대로’일 줄 알아야 ‘다 다른 눈빛과 숨빛과 삶빛으로 선’다. 제멋을 안 찾기에 흉내를 내다가 훔치거나 빼앗거나 괴롭힌다. 제멋을 누리고 나눌 줄 알기에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걸어간다. 마지막으로 그분들한테 한 마디를 보탠다. “제가 힘들게 산다고요? 제가 참 힘든 사람이라고요? 제 마음에는 ‘힘듦’이 없어요. 제 마음에는 ‘스스로 그리는 꿈하고 사랑’만 있어요. “너 참 피곤하다”하고 말씀하는 그대야말로 스스로 마음하고 몸에 ‘난 힘들어!’를 새기는 꼴이랍니다.” 나는 “힘든 일”이 아닌 “힘을 들이는 일”을 스스로 짓고 누린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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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7.22.

수다꽃, 내멋대로 47 다시, 돈



  살아가는 길에 꼭 있어야 한다면, ‘바람·해·비·숲’이 첫째라고 느낀다. ‘바람·해·비·숲’을 품고서 ‘별·새·메·바다’를 어우르는 하루라면, 언제나 스스로 빛나는 사랑으로 하루를 이루는구나 싶다. 이제 우리는 마을·고을·나라를 이루면서 높거나 커다란 집에 깃들어서 지내는 삶으로 바뀌는 사이에, ‘돈’을 쥐지 않으면 목숨을 잇기 어려운 흐름에 접어들었다. 곰곰이 보면, 사람들은 더없이 오래도록 돈 하나 없이 오직 살림살이로 오순도순 살았다. 누구나 돈없이 사랑으로 도란도란 지내었는데, 나라(정부)가 서고 우두머리에 벼슬아치에 먹물꾼이 늘면서 돈이 꼭 있어야 하는 얼거리로 뒤틀었다고 여길 만하다. 이런 얼거리를 똑똑히 읽거나 느끼기에, 또는 똑똑히는 아니어도 어렴풋이 읽거나 느끼기에, ‘돈 없이 목숨을 못 이을 듯한 나라’에서 ‘돈을 첫째로 삼아야 할 까닭이 없’는 줄 헤아리는 사람들이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마음·품·겨를·돈’을 옴팡지게 들여서 즐겁고 조촐하고 조그맣게 어깨동무를 한다고 느낀다.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힘을 쥐려는 속내로 책집을 차린 분도 곳곳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에 사로잡힌 몇몇 책집지기를 뺀, 훨씬 많은 책집지기는 ‘살림·사랑·숲’이라는 세 가지를 바라보고 품으면서, 서울(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바람·해·비·숲’을 고즈넉이 품고 나누는 길을 찾고 나누려는 마음을 꿈으로 그린다고 느낀다. 온누리는 더 많은 책으로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지 않다고 느낀다. 나부터 책을 허벌나게 읽기는 하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은 덜 읽거나 안 읽어도 얼마든지 훌륭하다’고 느낄 뿐 아니라, ‘종이꾸러미 책’을 넘어서 ‘바람이라는 책, 숲이라는 책, 하늘이라는 책, 바다라는 책, 풀꽃나무라는 책, 사랑 사이를 잇는 사랑이라는 책’처럼, ‘종이라는 덩이(물질)가 없어도 더없이 빛나는 책’이 둘레에 가득하다고 배운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이, 문득 하루 들르는 사람이, 책 한 자락 장만하는 나그네가, 작은책집을 돌보는 사람이, ‘돈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일 수 없다. 돈은 돈대로 대수롭되, 서로 사랑으로 잇는 사이인 사람이라면, ‘빛나는 새길이 서로 살리는 숨결’이라고 여기기에, 즐겁게 온마음으로 책을 짓고 엮고 나누고 사고팔고 이야기한다고 느낀다. 보라! 돈을 보며 사람을 만나려는 이는, 사람 아닌 돈을 보기에, 이내 등돌리거나 속이거나 들볶는다. 이름값을 보며 사람을 사귀려는 이는, 사람 아닌 허울(이름값)을 보기에, 어느새 무리지어 작은이를 짓밟는다. 힘꾼한테서 떡고물을 얻으려는 이는, 사람 아닌 힘(권력)을 보기에, 처음부터 들풀에 들꽃을 함부로 밟고 나무를 함부로 베고 숲을 함부로 무너뜨린다. 돈이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돈을 만지거나 다루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에 어떤 눈길이느냐’에 따라 돈을 다르게 굴릴 뿐이다. 스스로 착하고 참하며 곱게 하루를 짓고 펴는 사람은, 돈이 있거나 없거나 착하고 참하며 곱다. 스스로 안 착하고 안 참하며 안 고운 사람은, 돈이 넘치거나 없거나 늘 안 착하고 안 참하며 안 곱다. 다스리는 마음부터 닦고서 돈을 벌거나 얻거나 쓸 일이다. 나누는 눈빛부터 기르고서 돈을 바라보거나 건사하거나 건넬 일이다. 책부터 읽거나 글부터 쓰다가는 거짓말쟁이나 눈속임꾼이나 돈바치로 뒹굴기에 좋다. ‘책을 왜 읽느냐’에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책을 읽어서 얻은 낱조각을 살림살이에 어떻게 녹이느냐’ 같은 길부터 익히고 추스르고서야 느긋이 천천히 책 하나 쥘 노릇이다. 마음 한복판에 사랑을 그려서 사랑씨앗을 심었으면, 책집을 차리건 찻집을 차리건 모두 아름답게 꿈을 편다. 사랑을 안 심은 채 뭔가 해보려고 붙잡는 사람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치달으면서 돈·이름·힘에 얽매여 고꾸라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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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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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7.15.

수다꽃, 내멋대로 46 모나미



  2014년부터였지 싶다. 그즈음부터 ‘모나미 볼펜’을 끊었다. 하루아침에 끊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펴내고서 조촐히 책잔치를 서울 한켠에서 열었고, 그날 함께한 이웃님 한 분이 “숲노래 님은 늘 글을 많이 써야 하는데 ‘모나미 볼펜’ 말고 ‘좋은 볼펜’을 쓰셔야 하지 않아요? 제가 좋은 볼펜을 선물해 드려도 될까요?” 하고 얘기하셨다. “네? 좋은 볼펜이요? 좋은 볼펜이 어디 있어요? 좋은책 나쁜책이 따로 없듯, 좋은 볼펜과 나쁜 볼펜은 있을 수 없을 텐데요?” “아니에요. 아직 좋은 볼펜을 안 써 보셔서 그래요. 저는 문방구를 하는데요, 모나미 볼펜을 안 써요. 숲노래 님도 한번 모나미 말고 다른 볼펜을 써 보시고서 생각해 보셔요.” “에, 설마요? 그렇지만, 저는 글살림을 좋아하니까, 보내 주시면 써 볼게요.” 이웃님은 곧장 ‘일본 제트스트림 볼펜’ 12자루를 보내 주었다. 나는 여섯 달 동안 안 건드렸다. ‘제트스트림’ 한 자루이면 ‘모나미’ 열두 자루 값이다. 받은 글붓을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꺼냈다. 마침 ‘모나미’가 아주 말썽을 일으켜 쓸 수 없던 터라, “아, 그때 이웃님한테서 받은 글붓이 있었지. 그 글붓을 써 볼까?” 하고 쥐었다. 여섯 달을 묵힌 뒤에 꺼낸 글붓이지만 깜짝 놀랐다. 슥슥 글을 쓰고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 저녁 곁님한테 얘기했다. “여보, 이제 모나미 볼펜을 다 버려야겠어.” 집에 있는 모든 모나미 글붓을 샅샅이 훑어서 작은 꾸러미에 담았다. 버리지는 않았다. 꾸러미에 담아 구석에 치웠다. 마흔 해를 쓰던 ‘모나미’는 다음처럼 몇 가지로 갈무리할 만하다. 첫째, 값싼 척하지만 새것인데 공(볼)이 빠져서 못 쓰기 일쑤라, 버림치를 헤아리면 하나도 값이 안 싸다. 둘째, 값싼 티를 낼 뿐이라, 대가 쉽게 휘고 먹물(잉크)이 쉽게 마르는 터라, 모나미 글붓 먹물을 마지막까지 쓴 일이 없다시피 하다. 셋째,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십 분 넘게 쥐고서 글을 쓰면 ‘손에서 나오는 기운(열)’으로 대가 휜다. 넷째, 겨울이 아닌 가을에도 ‘-5℃’나 ‘-10℃’가 아니라 ‘+5℃’에도 먹물이 굳어서 안 나온다. 다섯째, 여름이 아닌 봄에도 먹물이 쉬 퍼져서 갑자기 종이에 확 번진다. 여섯째, 싸구려 모나미 글붓에서 나오는 똥은 ‘글씨에 들어간 먹물’보다 많기 일쑤이다. 일곱째, 공이 빠지거나 꽈배기쇠(용수철)가 늘어나서 못 쓰는 일도 흔하지만, 톡톡 누르는 단추가 처음부터 먹통이라 못 쓰는 일도 수두룩하다. 여덟째, 글씨를 안 썼는데 저절로 먹물(잉크)이 새서 옷에 먹물자국이 번져 옷을 버리기 일쑤요, 수첩이나 책도 버리고, 가방까지 버린 적이 있다. 아홉째, 공도 꽈배기쇠도 톡톡이도 아닌, 앞머리가 툭 부러져 그냥 ‘속대’를 쥐고서 쓴 적도 흔하다. 열째, ‘하얀 대’보다 값을 더 받은 ‘노란 대’는 값만 더 받을 뿐, ‘하얀 대’하고 똑같은 말썽이 똑같이 있을 뿐이었다. 열한째, 어쩌다가 빗물이든 그냥 물이든 닿으면 먹통이 되어 버려야 한다. 열두째, ‘모나미 회사’가 사람들한테 고개를 숙여 숱한 말썽을 엎드려 빈 적이 없었지 싶다. 숲노래 씨는 이제 ‘일본 제브라 사라사’ 글붓을 쓴다. ‘제트스트림’도 꽤 좋으나 ‘제브라 사라사’가 훨씬 낫고, 빛깔이 골고루 있고, 굵기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나라사랑(애국)’이 나쁠 일이 없되, ‘나라미움’을 할 마음은 없다. 그저 한마디를 하고 싶다. ‘글붓 한 자루 제대로 만들지 못 하는 나라’에서 무슨 ‘과학기술’이나 ‘첨단산업’이나 ‘4차산업’이나 ‘메타버스’ 타령을 할 수 있는가? 웃기지 마라. ‘연필·볼펜’ 한 자루조차 이웃나라 발가락 때만큼도 흉내내지 못 하는 판이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바탕(기본소양·기초실력)부터 엉터리라는 뜻이다. 이웃나라는 찰칵이(사진기)도 벼릴 줄 알 뿐 아니라, ‘연필·볼펜’에 ‘종이’도 정갈하고 훌륭히 선보인다. 아주 수수하고 흔한 글살림(문방구) 하나부터 찬찬히 짚고 돌볼 적에, 비로소 배움(교육)도 삶빛(인문학)도 꽃길(예술)도 벼슬(정치)도 피어나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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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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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6.8.

수다꽃, 내멋대로 45 생일이 없다



  밤늦도록 술에 절어 들어오던 우리 아버지는 우리 언니나 내가 태어났다는 날에 이따금 ‘아주 늦지는 않게’ 밤 열두 시나 한 시 무렵에 들어오면서 달콤이(케익)를 부엌에 던지곤 했다. “이 집안 가장이 들어왔는데 벌써 자빠져 자는 놈들이 어디 있어?” 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생일이라서 케익을 사왔으니 어서 일어나서 먹어야지!” 하고 또 큰소리를 보탠다.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자다가 먹어요. 이튿날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 되지.” 하고 말리면 언제나처럼 주먹이 춤춘다. 나는 왜 ‘달콤이(케익)’를 못 먹는 몸이 되었을까? 집안이 돌아가는 꼴을 보다가 숨이 막히면서 속에서 갇히지 않았을까? 여덟아홉 살 무렵부터 스물한 살에 이르도록 ‘생크림케익’이라는 것을 한 입이라도 먹으면 바로 게웠다. 자다가 일어난 한밤에 억지로 ‘술에 전 아버지 앞에서 달콤이를 몇 입’을 먹다가 또 게우니 “이놈의 자식들, 모처럼 비싼돈 들여서 사온 케익을 뱉어?” 하면서 두들겨팬다. 처음으로 달콤이가 몸에 받던 날을 돌아본다. 스물한 살이었을까. 강원 양구 싸움터(군대)에 들어가서 배를 곯으며 짐(완전군장)을 지고서 한겨울에 멧길을 밤새 오르내리던 어느 날, 열여덟 시간째 쉬잖고 걷다가 지치려던 즈음, 멧자락에 그득 쌓인 눈을 손으로 떠먹으며 “이 눈은 케익이야. 난 여태 케익을 못 먹었지.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이 케익눈송이를 먹어야지.” 하고 스스로 말씨앗을 심었다. 싸움터에서 첫 쉼(휴가)을 받아서 바깥(사회)으로 나온 날, 동무들이 물었다. “너 뭐 먹고 싶어? 다 사줄게. 고생 많잖아.” “케익 둘 사줄래?” “너 케익 못 먹잖아? 어쩌려고?” “그래도 먹어 보게. 군대에서 날마다 눈을 퍼먹었으니 먹을 수 있을는지 몰라.” 이날 밤, 혼자 ‘생크림케익’을 둘 통째로 다 먹었는데 처음으로 안 게웠다. 어릴 적부터 난날(생일)을 반기지 않았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랐다. 누가 “생일 언제예요?” 하고 물으면 “모든 하루가 새로 태어난 날입니다.” 하고 대꾸하며 넘겼다. 내 난날(생일)도, 우리 집 네 사람 난날도, 둘레 누구 난날도 안 챙긴다. 아이들하고 으레 “우리는 밤에 잠들어 아침에 눈뜨는 모든 하루가 새로 태어난 날이야. 한 해 내내 새롭게 태어나는 셈이지. 어느 하루만 ‘태어난 날’이지 않아.” 하고 얘기한다. 이런 우리 집을 둘레에서는 ‘너무 무뚝뚝한 사람들’이라고 핀잔을 하는데, “그날 하루뿐 아니라 삼백예순닷새가 우리 난날(생일)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아침에 서로 얼굴을 보면 늘 기뻐요!” 하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문득 “알면 알수록 힘들다” 하고 말하지만, ‘알다’를 참답게 ‘알’ 적에는 힘든 일이 없구나 싶다. 그러니까 ‘앎(알다·알·알맹이·알차다·알뜰살뜰)’이 아닌 ‘앎 가까이’나 ‘아는 척’이나 ‘아는 듯’일 적에 힘들 수 있구나 싶고. ‘앎(알)’이기에 허물을 벗고서 깨어난다. 아기란, 알을 깨어난 숨빛이다. 어른(얼)이란, 알을 깨어나고 자라서 빛이 무르익어 철든 숨결이다. 아기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은 ‘알아가는 길’이기에 가시밭길이나 고단한 나날이기 일쑤이다. 아직 ‘앎(알)’이 아닌 ‘앎 가까이’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 숨빛으로 이미 ‘앎(알)’이고, 어머니 뱃속에서도 벌써 ‘앎(알)’이었으나 ‘삶(살다)’을 새롭게 맛보면서 배우려고 ‘이미 아는 빛’을 다 내려놓고서 처음부터 걸음마부터 다시 뗀다. 그러니 아기는 넘어지고 울고 다시 일어나면서 걸음마부터 익히는데, 이에 앞서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일어서기를 한다만, 아무튼 아기는 새얼(새알)이 되려는 몸짓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앎(알)’이 아닌 ‘아는 척·아는 듯’에 머문다면 여러모로 힘들거나 어렵거나 까다로운 나머지 두 손을 들고서 벌러덩하고프기 쉽다. 아직 알지 않을 적에는 쉽게 불타오르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고. 그렇지만 비로소 철이 드는 어른으로서 ‘어짊·슬기·철’ 세 가지를 고루 갖추어 ‘사랑·빛·숨’으로 거듭나면, 마음에 씨앗을 품는다. 이때 비로소 ‘마음’이 아닌 ‘마음씨’로 바뀐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씨(마음씨앗)로 바뀐 다음’부터 ‘앎을 새로 맞아들이고 바라보는 하루’를 누려서, 이때부터는 힘든 일이 없다. 아직 알지 않을 뿐이기에 힘들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이렇게 아는구나’ 하고 깨달으면, 환하게 웃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나날이 난날이니 참말로 난날이란 따로 없다. 깨어나는 날이고, 일어나는 날이고, 살아나는 날이고, 피어나는 날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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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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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31.

수다꽃, 내멋대로 44 분노



  ‘불타오르(분노·증오)’면, 앞뒤를 안 본다. 불타오르는 터라, 오직 ‘미워하고 싫어하는 놈’만 쳐다보면서 이글이글 태워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타오르기 때문에 ‘저놈만 죽이면 다 돼!’ 하고 여기는데, 저놈을 불길로 태워서 죽였는데, 뜬금없이 ‘아무 잘못이 없는 딴사람’을 불태우기 일쑤이다. 또는 ‘미운놈을 태워죽이’려다가 애먼 사람까지 태워죽이기 일쑤이다. “모기를 잡으려다 집을 불태운다”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가 ‘불(분노·증오)’이 되어버리면, ‘앞뒤가림’을 아예 잊고 말기에, ‘참(진실)’을 보려는 마음이 아닌, ‘미운놈을 찾아내고 솎아내어 죽이고픈 마음’이 가득하고 만다. ‘참(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아니라 ‘차가움(미움이 가둑한 마음)’으로 기운 탓에, 그놈도 죽이지만, 나도 죽고, 우리 둘레 착한 사람까지 다 죽인다. 이른바 ‘정의의 용사’가 나와서 ‘밉놈(악당)’을 물리치는 만화를 보자. ‘밉놈’ 하나를 죽인다면서 그만 마을(도시)을 송두리째 불바다로 만들지 않는가? 이 모습이 바로 ‘분노라고 하는 민낯’이다. 불(폭탄)은 아무것도 안 가린다. 무턱대고 덤벼서 모조리 죽음이란 잿더미로 몰아붙이는 기운이 불(분노·증오)이다. 얼핏 보았을 적에 아이가 그릇을 깨뜨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얌전히 있었는데, 바람이 훅 불고 지나가면서 그릇이 흔들려 저절로 떨어져서 깨질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엄마아빠가 아끼는 그릇을 왜 깼니!” 하면서 확 불타올라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무라거나 때리기까지 한다. 불타오르는 엄마아빠를 본 아이는 ‘불타오른 엄마아빠는 내(아이) 말은 아예 안 듣는’ 줄 알아차리며 그저 두려워 말도 못 한다. 숱한 어버이는 아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아이한테 그만 덤터기를 씌운다. 왜냐고? 어버이 스스로 앞뒤를 못 가리도록 스스로 불(분노)이 된 탓이다. 이른바 나라꼴(정치·사회)을 보면, 이쪽도 저쪽도 못난놈이다. 우두머리(권력자)란 모름지기 ‘사람들 눈을 속이면서 돈·이름·힘을 거머쥐는 자리’이기에, ‘깨끗한 우두머리’란 없다. 참말로 없다. 깨끗한 사람은 우두머리(정치·교육·문화예술 지도자)가 되지 않는다. 깨끗한 사람은 조용히 철들어 착한 어른이 될 뿐이다. 착한 어른은 언제나 아이들 곁에서 도란도란 같이 소꿉놀이를 하고, 아이 눈높이를 헤아려 ‘쉬운말’을 쓰고,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들을 품고 감싸고 돌보는 길을 간다. 착한 어른은 우두머리 짓을 안 하고, ‘이슬떨이’로서 ‘길잡이’를 할 뿐이다. 길잡이는 앞장서거나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즐겁게 스스럼없이 나아가고서, 아이들이랑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노래길·놀이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보라. 대통령·국회의원·시도지사·시의원·군의원 가운데 ‘이슬떨이로서 어린이 곁에서 소꼽눌이를 하고 쉬운말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른’이 있는가? 아예 없다. 그러니, 우리는 나라꼴(정치·사회)을 쳐다보면 그저 불(분노)이 치밀어오를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라꼴을 쳐다보지 않을 노릇이다.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고, 들꽃을 쳐다보고, 들숲바다를 쳐다보고, 해바람비를 쳐다보고, 마음빛을 쳐다보고, 이웃이랑 쉽게 주고받을 ‘착한 우리말’을 쳐다볼 노릇이다. 그러나 정 나라꼴(정치·사회)을 쳐다보고 싶다면, 먼저 ‘불타오르(분노·증오)’지 말아야 한다. 이놈이건 저놈이건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거나 탓할 마음을 싹 지워야 한다. 이놈이건 저놈이건 ‘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는지만 쳐다볼 노릇이고, 어느 쪽에 선 어느 놈이건 값(벌)을 달게 받도록 마음을 기울이고서 끝내면 된다. 보라! ‘전두환 손자’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엄마아빠랑 할매할배를 ‘잘못 만난 탓’에 제법 오래 굴레에서 허덕인 줄 오래도록 모르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동안 ‘전두환 손자’ 스스로 알게 모르게 저질렀을 숱한 잘잘못을 털어내려고 용쓰는데, 잘못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한테 어찌 돌을 던지는가? 그러니까, 이쪽이건 저쪽이건 잘못을 말끔히 뉘우치고서 값(벌)을 달게 받으려는 사람은 너그러이 보아줄(용서) 노릇이요, 어느 쪽에 선 놈이건 콧대가 높고 핑계에 달아나기만 하는 놈은 ‘불길’이 아닌 ‘참(진실)’이라는 눈빛으로 딱하게 보며 타이르거나 나무라되, 그놈 스스로 값을 치를 때까지 안 잊으면 된다. 문득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눈물로 뉘우치는데, 이 아이들을 안 봐줄 수 있는가?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다시 돌아보면서 되새기도록 타이르고, 자꾸자꾸 타이르고 보듬을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가 불길(분노)에 휩싸이면 다 죽여버리고 마니, 불길이 아닌 ‘별빛’에 ‘햇볕’으로 스스로 숨길을 가다듬어야지 싶다. 밤길을 밝히는 횃불이나, 집안을 고요히 밝히는 촛불이 되자. 오직 사랑이라는 빛줄기를 가만히 품어 어른이 되자. 우리 엄마아빠가, 또 싸움터(군대)에서, 또 일터(회사)에서, 숱한 사람들이 불길(분노)에 휩싸여 나를 괴롭히거나 두들겨팬 짓을 치러 왔다. 그분들 눈에는 사랑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불이 아닌 사랑을 오롯이 그리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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