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시티 SE 스페셜 에디션 (씨네석스 겨울 할인)
씨넥서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밤마을 (다크 시티)

Dark City, 1998



  어둠을 비추는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늘에서 올까, 해한테서 올까, 저 먼 별 어디에서 올까. 과학으로 본다면 지구가 돌고 해가 빛을 비추기에 아침이 되어 낮이 흐르다가 다시 저녁과 밤이 찾아온다. 그러나, 과학으로 보더라도 어둠은 따로 있지 않다.  빛은 늘 우리한테 있지만 빛을 생각하지 않고 쉴 때에 비로소 어둠이다. 그러니까, 어둠이나 밤은 무섭지 않다. 그저 고요히 쉬면서 새롭게 생각을 가다듬는 때가 어둠이나 밤이 된다.


  밤에는 새로운 빛을 본다. 온누리에 가득한 수많은 별이 저마다 환하게 뿜는 빛을 본다. 낮에는 우리 스스로 빛이 되어 삶을 새롭게 일군다. 눈을 뜨어 깨어나 움직이는 동안에는 우리 생각으로 삶을 짓고, 눈을 감고 잠들어 쉬는 동안에는 우리 마음으로 삶을 그린다.


  영화 〈밤마을(다크 시티,Dark City)〉는 온통 어둠뿐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삶을 가꾸’지 않는다. 어느 바깥별 사람들이 지구별 사람들을 몰래 데려가서 저희 별이 되살아날 길을 찾으려고 한다. ‘밤마을’에 갇힌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끌려왔으며 실험 도구이나 실험 대상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고 어떤 마음도 없으며, 그저 이끌리고 휩쓸리는 소모품이다. 게다가 사람들 스스로 어떤 몸이거나 삶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그저 쳇바퀴처럼 움직인다. 쳇바퀴처럼 돌면서 생각을 짓지 못하고 마음을 그리지 못한다.


  생각짓기와 마음그리기를 못하기에 바깥별 사람한테 사로잡혀서 실험 도구나 실험 대상이 될 테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어떠할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입시지옥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도시 물질문명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삶을 스스로 짓고 사랑을 스스로 가꾸면서 꿈을 스스로 그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돈을 얼마쯤 벌고, 어떤 아파트를 얻으며, 어떤 자가용을 몰면서, 어느 나라로 여행을 다닐까 하는 쳇바퀴질 말고, 삶을 사랑하는 꿈을 그리거나 짓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 〈밤마을〉은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삶도 죽음도 따로 없다. 부수는 것도 망가지는 것도 따로 없다. 모든 것은 아주 작은(그렇지만 작지 않고 아주 커다란) 점이 모여서 이루는 모습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그린 바탕에 생각으로 지으면서 나타난다. 내 하루는 내가 그려서 짓는다. 재미있는 삶이나 재미없는 삶 모두 스스로 그려서 짓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그러니까, 우리는 바로 이 대목을 그리면서 지어야 한다.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며 살 때에 즐겁고 기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하는 대목을 우리가 손수 그려서 지어야 한다. 4347.11.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강머리 앤 1+2집 17종세트 (17disc)
스크린에듀케이션(DVD)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빨간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1979



  끝에 ‘e’가 붙는 ‘앤’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밝히는 빨간머리 가시내는 능금꽃이 하얗게 물든 시골길을 아저씨하고 처음 지나간다. 말이 끄는 나무수레를 탄 앤이라는 가시내는 능금꽃물결을 보고는 넋을 잃듯이 아름다운 나라로 빠져든다. 말수레를 끄는 아저씨는 해마다 능금꽃물결을 보기는 보았으나 어린 가시내처럼 아름다운 나라로 빠져든 적이 없다. 앤이라는 아이가 지낼 곳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아주머니도 이와 같다. 아니,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 능금나무가 해마다 하얀 꽃물결을 이룬다고 생각한 이는 있기나 할까. 하얗게 일렁이는 꽃보라를 마음 가득 받아들인 이는 얼마나 있을까. 꽃이 피고 나면 이윽고 꽃이 지고, 꽃이 지면 이윽고 열매가 맺는다고만 여길 뿐, 꽃물결이나 꽃보라를 가슴에 포옥 안으면서 기쁨을 느낀 이는 없지 않을까.


  시키는 대로 따르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흐름으로 살던 사람들한테, 앤은 그야말로 말썽거리나 골칫거리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앤은 무엇이든 ‘똑같이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앤은 언제나 ‘앤이라고 하는 내 눈길’로 바라본다. 그래서, 앤은 모든 곳에 이름을 붙이고, 누구한테나 이름을 물으며, 모든 것에 걸맞도록 이름을 짓고 싶다. 이름을 붙이면서 새로운 숨결이 자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새로운 동무가 되며, 이름을 지으면서 새로운 삶이 피어난다.


  그러고 보면,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우람한 능금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시골길을 지나면서 ‘능금꽃물결’을 알아채면서 환하게 웃기에, 나도 능금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마주하는구나 싶다. 앤이 그 길을 바라보면서 말을 걸기에 나도 그 길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웃음꽃을 알아보는구나 싶다.


  푸른 들과 숲에 둘러싸인 마을에 조용히 선 푸른 지붕 살림집에서 푸른 사랑이 푸르게 싹이 트려 한다. 푸른 빛깔 지붕과 빨간 빛깔 머리카락은 여러모로 살가이 어우러진다. 푸른 들에 피어나는 빨간 꽃이라고 할까. 새봄에 들과 숲이 푸르게 다시 태어날 적에 빨갛게 피어나면서 기쁜 노래를 알려주는 숨결이라고 할까.


  노란 꽃도 빨간 꽃도 곱다. 까만 씨앗도 곱다. 파란 하늘과 물결도 곱다. 하얀 구름도 곱다. 누런 밀알과 쌀알도 곱다. 이 땅에 곱지 않은 빛깔도 이야기도 넋도 따로 없다.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심을 때에 저마다 새롭게 깨어나면서 환하게 빛난다.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매트릭스 트릴로지 (3disc) - 매트릭스 + 리로디드 + 레볼루션
라나 워쇼스키 외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영화 〈매트릭스〉는 셋째 이야기까지 나온다. 곧 넷째 이야기가 나올 테지. 어쩌면 안 나올는지 모르나, 어젯밤 꿈에서 이 영화가 꾸준히 나온다면 다음에 누가 어떻게 나올는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내 꿈에 왜 영화 〈매트릭스〉 이야기가 나왔을까. 그리고, 꿈에서 본 이야기는 영화와 얼마나 얽힐 만할까. 또는,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삶’과 ‘생각’은 언제나 하나라는 대목을 알려주려는 뜻일까.


  내 꿈에서는 아주 어린 가시내가 나온다. 둘레에서 흔히 볼 만한 어린 가시내일 수 있으나, 이 가시내는 예전에 이 땅에서 살던 어떤 사람 넋이 새 옷을 입고 태어난 목숨이다. 이 가시내는 예전 삶을 떠올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 몸’이라는 새 옷을 입고 태어나면서 예전 삶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기억 지우는 프로그램’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어린 가시내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 이 아이를 알아보는 눈은 이 아이한테 어두운 그림자가 씌지 않도록 데리고 움직이는데, 오랜 나들이에 지친 아이를 좁은 곳에 숨기면서 한 마디를 들려준다. ‘네가 생각을 하면 너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 네가 생각하지 못하면 너는 어디로든 갈 수 없어.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머릿속에 똑똑히 그려야 너는 네가 가려는 데에 갈 수 있어. 기운 내.’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모든 것은 ‘프로그램’이라는 대목을 알려줄까. 그러면,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누군가 짠 틀에 맞추어 모두 똑같이 움직인다는 뜻인가. 하품조차 프로그램이고, 입시지옥조차 프로그램이며,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조차 프로그램이라는 뜻인가. 그러면, 프로그램대로 짜인 삶이란 무엇인가. 프로그램을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참답게 삶이 되려면, 누군가 짠 틀에 따라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종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지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곰곰이 돌아보면,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 생각을 심지 않는다.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길들이기만 한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은 그저 교과서 지식만 머릿속에 똑같이 집어넣는 짓을 한다. 때로는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이나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프로그램 틀을 깨도록 이끌지 못한다. 교사도 스스로 프로그램에 갇힌 톱니바퀴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간다는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은 뒤로는 돈 버는 굴레에 갇힌다. 즐겁게 누리는 ‘일’이 아니라, 돈을 안 벌면 굴러떨어지는 ‘굴레’ 같은 지옥에 휩쓸린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생각을 짓지 못하는 사회 얼거리요, 모든 사람이 이리로 휘둘리고 저리로 휩쓸리는 흐름이다.


  스스로 생각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스스로 생각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없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해야 한다. 흰말 탄 왕자님이나 공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사랑을 스스로 가슴에서 끌어내어 곱게 꽃으로 피울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 이루고 싶은 꿈도 스스로 생각해서 지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짓지 않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거나 어떤 꿈을 이루겠는가.


  가만히 보면,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수많은 ‘싸움 모습’은 우리가 쳇바퀴처럼 구르면서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려는 아귀다툼하고 똑같다 할 만하다. 우리가 늘 벌이는 맴돌이가 바로 영화에 나오는, 이른바 ‘액션 씬’이라고 할까? 영화에서 ‘더 짜릿한 액션 씬’을 바라듯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스스로 생각을 지우거나 잃거나 잊으면서 ‘남이 보여주는 틀에 길든’ 하루를 되풀이하기만 한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45주년 기념 컬렉션
줄리 앤드류스 (Julie Andrew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노랫소리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



  노랫소리가 흐르는 집은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 노랫소리가 끊긴 집은 오직 규율과 질서만 내뱉는 군대 같은 바람이 흐른다. 노랫소리가 감도는 집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노랫소리가 없는 집은 웃사람이 시키는 말을 아랫사람이 곧이곧대로 따르기만 해야 한다.


  노래란 무엇인가. 삶을 밝히는 빛이다. 소리란 무엇인가. 사랑을 들려주는 꿈이다. 노랫소리란 무엇인가.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노래를 부를 수 있기에 활짝 웃는다. 노래를 부르지 않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노래를 부르기에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넋으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한다. 노래를 안 부르기에 이웃이나 동무는 아무도 없이 그저 짓밟거나 깔아뭉개면서 권력을 떨치려고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어떤 모습인가. 학교에 사랑이나 평화나 꿈이 있는가? 그렇다면 학교에 노래가 흐르겠지. 학교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입시지옥으로 갑갑한가? 그렇다면 학교에 노래가 없겠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읊는 상업가요가 아닌, 사람들 가슴속에서 스스로 터져나와서 웃고 울면서 부르는 노래가 이 나라에 어느 만큼 있는지 돌아볼 노릇이다. 도시와 시골 어느 곳에 참다운 노래가 있는지 살필 노릇이다.


  노래하듯이 쓰는 글인가? 노래하면서 읽는 글인가? 노래하듯이 쓰는 책인가? 노래하면서 읽는 책인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없고, 노래를 하기에 사랑이 있다. 노래를 생각하지 않기에 꿈과 이야기가 없을 뿐 아니라, 평화와 평등과 민주도 없다. 노래를 생각할 때에 꿈과 이야기를 빚으며, 평화와 평등과 민주로 나아갈 수 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 아이들한테서 누가 어떻게 노랫소리를 이끌어 냈을까?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빌리 엘리어트 - 아웃케이스 없음
스티븐 달드리 감독, 게리 루이스 외 출연 / 블루키노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면 웃는다.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으면 웃지 못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같다. 하루하루 즐거우면 아이들은 맑게 웃는다. 날마다 즐거우면 어른들은 밝게 웃는다. 즐겁지 못하다면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이 아닌 그늘이 드리운다. 아이들이 왜 애늙은이처럼 되고 말까? 아이들이 왜 웃으면서 이야기를 안 하는가?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날 적에 새로운 꿈이 피어나지 않으면,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야 웃지 않는다. 아니,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터라,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부러 벌이면서 억지스레 웃음을 자아내려고 하는 ‘직업인’까지 생겨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탓에, 함께 어우러져 뛰놀 마당은 모조리 사라진 채, 텔레비전에 코를 박거나 경기장으로 찾아가서 ‘전문 직업 운동선수가 벌이는 쇼’를 구경해야 한다. 스스로 웃을 일이 없는 오늘날 사회이다. 스스로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힌 오늘날 문명이고 정치이고 교육이며 문화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탄광 노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야말로 빛을 잃고 꿈을 잃으며 숨결조차 잃은 슬픈 사람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침에 탄광회사 앞에서 목청을 높이면서 싸우다가, 저녁에 술집에 모여 해롱거리는 짓뿐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삶이 홀가분하지 못한데다가 즐겁지 않은 터라,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꿈이나 사랑을 들려주지 못한다.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한다.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도 달리 들려줄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없다. 꿈도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이 새까만 탄광마을인데, 길바닥만 본다면 새까만 무덤 같으나,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보면, 하늘빛이 파랗다. 고개를 들어 마을 앞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 바닷빛이 파랗다. 파란하늘과 파란바다가 베푸는 하늘바람과 바닷바람을 마실 수 있다. 다만, 고개를 들어야 하늘과 바다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바다를 보았다. 아이는 스스로 제 마음속을 읽었으며, 아이는 스스로 제 길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이녁 아버지와 형한테 들려준다. 이녁 아버지와 형은 땅바닥만 쳐다보느라 꿈과 사랑을 모두 잃거나 놓쳤는데, 빌리는 꿈도 사랑도 잃거나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또렷하게 밝힌다. 이리하여, 빌리는 이녁 아버지가 처음으로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도록 해 준다. 발레학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그리고, 빌리는 이녁 형도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바람을 쐬도록 해 준다. 드디어 빌리는 춤꾼(발레)이 되어 스스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모두한테 따사롭게 보여준다.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