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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시골에서 태어난 노래

 


  우리 집 두 아이는 시골 어린이입니다. 시골집에서 마음껏 노래하고 뛰노는 어린이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시골바람을 마시고, 시골물을 마십니다. 가끔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저자마실을 다닙니다. 나와 함께 시골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옵니다. 2014년에 큰아이는 일곱 살이고 작은아이는 네 살입니다. 큰아이는 올해에 접어들면서 글읽기에 눈을 뜹니다.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는 않고 동시를 손수 써서 함께 읽는데, 아이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는 씩씩하게 읽습니다.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아이들한테 물려주고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누리는 즐거움을 깨닫고, 시골에서 일하고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헤아리며, 시골에서 꿈꾸는 사랑을 가꿀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펴냄,2014)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 “꽃을 생각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 어여쁜 꽃말이 자랍니다. 꽃을 헤아리면서 내 가슴속에 즐거운 꽃그림이 태어납니다(16쪽).” 하고 적었습니다. 참말 그렇거든요. 풀을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풀말이 자라고 풀내음 가득한 이야기가 솟아요. 숲을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숲말이 자라고 숲빛 그윽한 이야기가 태어나요. 자전거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전거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은 여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축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축구 이야기로 즐겁고, 정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 이야기로 바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마음속에 평화를 담으면 됩니다. 평화를 생각하면서 평화롭게 나아갈 길을 찾아요. 평화를 생각하는 동안 평화로운 빛을 마음속에서 가꿉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삶은 평화롭습니다. 그러니까, 걱정을 마음자리에 두면 언제나 걱정이 넘쳐요. 걱정하니까 걱정하는 삶이 됩니다. 즐겁게 웃으려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면 즐겁게 웃는 이야기가 흐르기 마련이에요. 사건과 사고로 얼룩진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들으면, 마음속에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쌓이면서,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온통 사건과 사고하고 얽힌 이야기입니다. 연속극을 즐겨 보는 분은 늘 연속극 이야기를 나누려 하겠지요.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하듯이, 어릴 적에 익힌 말이 할매 할배가 되도록 쓰는 말이 됩니다. 가는 말이 고울 적에 오는 말이 곱다고 하듯이,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아이들이 쓰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름답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예쁜 벗들도 아름다운 말과 글을 배우겠지요. 어른들이 아름답지 않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아름답지 못한 말과 글을 배울 테고요(5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삶이 고스란히 말이 되고, 말이 된 삶은 고스란히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아이가 물려받은 말은 앞으로 어른이 되는 동안 몸에 익숙하기 마련이고, 이런 말을 다시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사랑·사흘’ 같은 낱말도, ‘밥·젓가락·마당’ 같은 낱말도, ‘해·꽃·흙’ 같은 낱말도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두레·놀이·배우다’ 같은 낱말도, ‘믿다·보다·가꾸다’ 같은 낱말도 시골에서 태어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넋은 시골에서 흙을 살찌우면서 숲을 사랑하는 삶에서 태어나요. 오순도순 일구는 살림에서 오순도순 주고받는 말이 태어나지요. 텔레비전이 없고 전문가수가 없었어도 누구나 마을마다 일노래와 놀이노래를 부르던 우리들이에요. 시골사람한테는 즐거움과 평화와 웃음만 있었어요. 낫과 호미와 쟁기는 전쟁무기가 아닌 살림살이예요. 숟가락과 절구와 바늘은 삶을 빚는 연장이지, 피를 튀기는 첨단산업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지내든, 저마다 시골빛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시골노래를 부를 때에 어느 고장에서든 아름다운 이야기가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숲내음 나누고 풀바람 먹을 적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떤 말로 어떤 이야기를 속삭일 때에 즐거울까요. 어떤 글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아름다울까요.


  서로 아끼는 두 사람이 있으면, 둘은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으면, 둘은 군대를 거느리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지 않으니, 언제라도 쳐들어가려고 전쟁무기를 만들고 말아요.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언제라도 때려눕히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말아요. 전쟁무기와 군대를 갖추기에, 삶을 가꾸거나 살리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전쟁무기와 군대에 돈과 품을 쓰는 만큼, 마을을 가꾸거나 살리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밥 한 그릇이 목숨을 살립니다. 밥 한 그릇이 평화를 부릅니다. 깨끗한 물줄기가 숨을 살립니다. 깨끗한 물을 함께 나누어 마실 때에 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가져야 이웃과 더 즐겁게 나누지 않습니다. 밥 한 술 나눌 수 있을 때에 이웃과 즐겁습니다. 힘이 더 세어야 커다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 장을 맞들 수 있는 매무새이면 됩니다. 이름값이 더 높아야 삶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넋이면 사랑스러워요.


  우리 시골집 마당에 민들레꽃 한 송이 핍니다. 마을 논둑이나 들판에는 보름쯤 앞서부터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고, 우리 집 마당에는 하얀 민들레꽃이 오늘부터 꽃송이를 벌립니다. 우리 집 하얀 민들레꽃이 한들한들 봄바람 누리면서 씨앗을 맺으면 이 씨앗이 바람 타고 날면서 온 마을에 하얀 꽃잔치 이루도록 퍼지겠지요. 아직 한 송이라지만, 곧 열 송이 되고, 다시 백 송이 되며, 새삼스레 천 송이가 되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 태어난 노래가 도시로 흐릅니다. 나락 한 알에 시골노래가 감돕니다. 복숭아 한 알에 시골노래가 깃듭니다. 배추 한 포기와 무 한 뿌리에 시골노래가 서립니다. 풀벌레 콕콕 쪼아먹으면서 자란 닭이 낳은 알하고 항생제와 사료만 먹으면서 자란 닭이 낳은 알은 맛이 사뭇 다릅니다. 공장 옆에 있는 논에서 거둔 쌀이라든지 고속도로 옆에 있는 밭에서 거둔 남새는 호젓한 시골마을에서 거둔 쌀과 남새하고 맛과 내음이 모두 다르겠지요. 즐겁게 웃는 사람이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으로 아름답습니다. “두레를 하고 울력을 내며 품앗이를 하는 동안, 한 사람 손 하나란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가 하고 깨닫습니다. 일손 하나로 만나 이웃이 살가이 어울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집일과 마을일을 나란히 하면서 즐겁게 어울리는 삶이 어떠한 웃음꽃 되는가 하고 되돌아봅니다(119쪽).”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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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나오는 어느 주간신문에

글을 하나 씁니다.

 

주마다 나오는 매체인데

아무쪼록 오래도록 잘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저도 아직 실물을 못 봐서

어떤 주간신문인지 모릅니다.

 

지난주부터 이곳에 글을 쓰기로 해서

첫 글을 썼고

곧 둘째 글을 씁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과 책을 함께 노래하는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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